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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신 33:24-29)

by 【고동엽】 2022. 2. 11.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신 33:24-29)

 

본문 29절은 우리 교회의 성구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해 '너는 행복 자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장차 행복자가 될 것이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일을 하면 행복하게 될 것이다'라는 조건도 아닙니다.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우리가 행복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한 행복 자로써 우리는 행복을 말해야 합니다. /아멘!/ 무엇이 행복의 조건인가?
⑴우리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가 있어 행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가 계십니다. 나를 교육하는 스승 아버지도 계십니다. /할/
힘들고 어려울 때 '아버지' 해 보십시오. 이름만 불러도 힘이 납니다. 이름만 불러도 문제가 해결됩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아버지'라고 불러 보십시오. 앞길이 보입니다. 나를 인도해주십니다. 지혜가 부족할 때, '아버지' 해보십시오.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십니다. 내가 깨달을 때까지 가르쳐주십니다.
두렵고 떨릴 때, '아버지'를 불러 보십시오. 우리를 아버지 뒤에 숨겨주십니다. 우리의 도움이 되십니다. 우리의 두려움을 영광의 승리로 바꾸어주십니다.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할/
⑵내 나라가 있어 행복합니다.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서러움이 있습니다. 집이 없는 서러움, 타향살이하는 서러움, 직장을 잃어버린 서러움. 당사자가 아니면 그 고통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서러운 것이 있습니다. 나라 잃은 서러움입니다.
물이 없으면 물고기도 없듯이 나라를 잃으면 다 잃은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현대인은 나라가 행복임을 잊고 있습니다. 나라가 있다는 것은 미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울타리가 있다는 것이고, 내가 있다는 것이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두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조국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도 있고, 조국 대한민국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이 두 배가됩니다. /믿/
곶감이 아무리 많아도 먹어봐야 맛을 알듯이 행복도 말하는 자가 누립니다. '나는 하나님 나라를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하늘의 기업이 우리의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희망의 나라입니다'라고 외치십시오! '나는 애국자'라고 고백합시다. 그 고백이 그 사람을 애국자로 만듭니다. /할/
하나님 나라와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면 모든 것이 더하여집니다. 성경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아멘!/
⑶우리의 가정이 있어 행복합니다. /할/ 인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가정이 시작될 때입니다. 가정에는 최고의 사랑이 있습니다. 바로 부모로부터 받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닮은 것이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가정은 내가 온전해지는 자리입니다. 가정에는 나의 반쪽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짝 지워준 반쪽입니다. 가정에서 그 반쪽과 하나 됩니다. 가정은 우리의 미래가 있는 자리입니다. 사랑의 걸작품인 자녀가 있습니다. 그 자녀는 나의 미래입니다. 그 자녀를 통해 우리의 꿈과 소망이 계속됩니다.
가정에서 우리는 나와 소통하고, 너와 소통하고, 하나님과 소통합니다. 또한 풍성한 관계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정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행복입니다. 가족과 많은 말을 합시다. 가정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도 말합시다. 그 안에서 행복이 커져갑니다. /아멘!/할/
⑷우리에겐 사명이 있어 행복합니다. 사명이란 또 다른 말은 '보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가 사명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어 이 세상에 살도록 '보낸 자'들이란 뜻입니다. 요20:21절에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파송한 것처럼 자신도 성도들을 세상에 파송하신다'고 하십니다. /할/
사명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예배이고 또 하나는 선교(전도)입니다. 또 사명 안에는 사역과 사명이 있는데, 사역은 공동체 안에서의 섬기는 삶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안 믿는 이들을 섬기는 사역입니다.
안 믿는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어려움 당한 이웃에게 위로를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면 아무런 사명을 감당한 게 아닙니다. 사명은 그들의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유언이며, 지상명령입니다.
마28:19-20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얼마나 중요하시면 유언으로 주셨겠습니까?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사명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특권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사명'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사명인가? 이 유언의 말씀은 안 믿는 자들에게는 없는 사명입니다. 오직 우리들에게만 주셨습니다. 비록 무거운 책임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릴 사용하시겠다고 주신 엄청난 특권입니다. 사랑도 아무나 할 수 없는데 사명은 더욱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바로 우리들에게만 이 사명을 주셨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멘!/
⑸가장 큰 행복의 근원은 구원받은 것에 있습니다. /할/ 오늘 본문에 분명한 행복의 조건이 나옵니다. '너는 행복 자로다'라고 선언한 뒤에 곧 바로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라고 말합니다. 모세가 보는 이스라엘의 행복의 조건은 '하나님의 구원'에 있습니다. ◀제목 소개!▶

 

신33장은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에게 축복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B.C. 1406년경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죽음 직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축복한 기도입니다.
1-2절에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그 오른손에는 불같은 율법이 있도다' /할/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지금 이스라엘이 요단을 마주하고 서 있습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야 하고 일곱 족속을 몰아내야 합니다. 육신의 눈으로 본다면 이들은 절망의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들을 위해 시내 산에서 오신다고 합니다. 어둠 가운데 있는 자에게는 빛으로, 질병 가운데 있는 자에게는 치료자로, 막막한 지경에 있는 자에게는 눈 열어 주시는 자로 오시며 저주스런 생활에 처한 자에게는 풍요로운 복을 안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할/
'세일산에서 일어나시고' 세일산은 본래, 에서의 기업이었는데 이방 호리 사람에게 빼앗긴 곳입니다. 그래서 그 땅이 '짓밟힌 땅이요 억울한 자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른 아닌 이 원통과 억울한 땅에서 일어나십니다.
하나님께서 약한 자를 위해 일어나 변호하신다는 것을 세일에서 일어나신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일어나서 눌린 자의 편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약한 자를 도우시고 택하신 자들의 편이 되어 주시는 그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아멘!/
'바란산에서 비취시고' 바란 산은 험한 악 산입니다. 그곳을 하나님께서 비추신다고 합니다. 곧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퉁이 돌아설 때에 부르시고, 수령에 빠져 있을 때에 건지십니다. 갈림길에 서 있을 때, 사업의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막막한 갈림길에서 주님께서 비추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할/
'일만 성도들 가운데 오신다'는 말은 '하나님을 뵙고자, 사모하는 자들이 모인 곳에, 간절히 구하는 자들이 있는 곳에 주님이 친히 오신다'는 말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를 행복의 사람으로 인도해 주시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아멘!/
▶본문 24-25절은 아셀 지파에 대한 축복의 내용입니다. 아셀은 야곱의 12아들 중 8번째 아들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기쁨'입니다. 모세는 인생의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입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귀한 일군으로 부름 받아 충성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죽기 전, 비스가 산에 오르기 전, 모압 평지에서 성령에 감동을 받아 백성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26-28절까지는 여수룬에게 축복하고 있고, ▶29절은 총 결론 편으로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할/ 여기 이스라엘은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도들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아멘!/

 

①아셀 지파가 받은 축복은 무엇인가?(24-25)
⑴아셀은 다자한 복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아들, 딸을 많이 낳았다는 것입니다. 생산의 복이요, 번성의 복입니다. 지금은 무자식 상팔자니, 혹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자는 등 적게 낳기 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우리 때만해도 자식 많은 것은 큰복이고 능력이었습니다. 시127:3절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자식들의 번성의 복이 행복입니다. 이 복이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 임하게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⑵자식들간에 우애가 깊었습니다.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서로 서로 아끼고, 돌보고, 사랑하며 형제들이 화목을 이루고 산다는 것이 행복이고, 기쁨이고, 축복입니다. /할/ 성경에 보면 형제간에 우애가 없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돌로 쳐죽인 일이 있었고, 에서와 야곱은 서로 의가 좋지 못했습니다.
요일4:20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롬12:10절에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했고, 시133:1절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자식들이 우애하고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아멘!/
⑶기름진 땅의 풍요의 복입니다. '그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창49:20절에서 야곱도 아셀 지파를 축복하기를 '아셀에게서 나는 식물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진수를 공궤하리로다' 아셀 지파의 땅이 비옥한 옥토임을 의미합니다.
당시 부의 상징인 감람유를 생산하는 감람나무가 울창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름은 그 생활의 윤택함을 의미합니다. 옛날의 기름은 화폐 대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화폐가 통용되지 않을 때 기름은 가장 귀한 화폐가치를 대신했습니다.
왕하4:1-7절에 보면 엘리사의 제자인 선지생이 죽자 그 아내가 과부가 되었는데 빚쟁이들이 두 아들을 빚 값으로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그때 엘리사가 빈 병에 기름이 차고 넘치는 기적을 행하여서 이것을 팔아 빚을 갚고 나머지는 생활하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영적 의미는, 구약 이스라엘의 왕이나 제사장, 선지자들은 기름을 머리에 부어 세우게 됩니다. 이 기름이 조금 많으면 발까지 흘려 내려옵니다. 일군 되는 의식입니다. 아셀지파에서 하나님의 일꾼들이 많이 나올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의 사명 따라 헌신하며 충성하며 사는 것'입니다. /믿/
⑷삶의 터전인 성읍을 견고하게 지켜줄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네 문빗장은 철과 옷이 될 것이라' 여기 문빗장이란 말은 '단단히 잠그다, 꼭 닫다, 안전하게 닫다 혹은 요새, 성체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견고한 성 즉 난공불락의 요새가 될 것을 의미합니다.
또 다른 의미는 '신발'이란 뜻으로, 순례자의 신발이요, 전투하는 신발이요, 승리하는 신발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축복'입니다. 시121:8절에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이 축복이 임하게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할/
⑸'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신앙의 힘을 능력입니다. 사40:28절 이하에서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약함을 능력으로 보충해야 합니다. 빌4:13절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그런데 본문이 주는 영적 의미는 여기 '능력'은 '평온'이란 뜻으로 '길이 길이 태평성대를 누리라'는 뜻입니다.
태평 성대의 복, 얼마나 행복한 복입니까? 이 복이 사랑하는 참 행복한 모든 성도들의 삶의 터전 위에 임하게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②'여수룬'의 받은 복은 무엇인가?(26-28)
본문을 일명 '여수룬의 행복'이라고도 합니다. 사44:2절에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고 하셨는데, 여기 여수룬이라는 말속에 하나님의 선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수룬은 이스라엘의 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잘나서 택한 것이 아니라 숫자가 많고 강해서 택한 것이 아니라 가장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신 것은 그들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여수룬'이란 말은 원문이 '예수룬'을 음역한 말인데, 70인 역에서는 이 말을 '사랑 받는 자'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델리취라는 신학자는 이 말의 어원을 '야솨르'(옳음, 곧음)로 보고 '옳은 자, 의로운 자'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수룬을 보편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의로운 자가 된 이스라엘'을 의미하며, 오늘에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 즉 저와 여러분들을 의미합니다.
여수룬, 곧 이스라엘, 다시 말하면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의 행복이 무엇인가? 여기에 사용된 행복의 단어는 '아쉬레'로 '충만한 행복, 완전한 행복'을 의미합니다. 그 내용을 한 마디로 설명하면 성도의 행복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아멘!/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입니다. 그래서 행복 자입니다. ▶왜 그들이 행복 자입니까?
⑴하나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26).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여수룬'은 계약이란 말과 의란 말의 합성어로서 '의로운 계약의 백성'이란 뜻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계약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기록된 계약의 말씀대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기록된 계약의 말씀대로 인간을 구원하셨고, 기록된 말씀대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성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약으로 선택된 백성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계약대로 부름 받은 구원의 백성입니다.
엡2:8-9절에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스위스의 철학자 '칼 힐티'는 그의 '행복 론'에서 '인생 최대의 행복은 하나님 가까이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만이 가장 완전한 행복 자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불안하고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흙으로 빚어진 연약한 존재인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 스스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 자이신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는 사람만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야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히13: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느니라' 롬8:2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은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십니다.' 왜냐하면 사단권세를 짓밟기 위해서입니다. /할/
⑵하나님이 나의 처소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28).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렇습니다.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영원하신 하나님을 처소로 삼는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아멘!/
시16:1절에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또 시91:9-10절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들의 안전한 처소이며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피난처입니다.
⑶하나님의 능력의 팔이 대적을 멸해 주시기 때문에 행복 자입니다(27).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여기서 팔은 '힘과 능력과 보호'를 나타냅니다. 팔은 안전한 피난처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팔과 우리의 팔에는 무한한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의 팔이 가정을 지키고, 자녀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의 한계가 있습니다. 내 팔은 일터와 사업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 오면 그 팔은 힘이 되어주지 못합니다. 능력과 힘의 한계를 드러내는 자신을 믿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팔 아래에 잡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팔은 쇠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팔은 그 힘과 능력이 다하는 법이 없습니다. 시91:5-7절에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의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운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할/
⑷하나님은 우리의 안전한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에 행복합니다(28).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다윗은 시18:2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할/
⑸이슬 같은 은혜를 주시니 행복 자입니다(28).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근동지방의 이슬은 모든 농작물을 잘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성경에서 이슬은 하나님의 은혜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이슬을 머금고 사는 성도는 복받음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시1:3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할/
이슬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이슬을 가리켜 하늘의 보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이슬이 매일매일 내리는 성도는 불황에서도 호황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사는 성도는 어떠한 구조조정이 있다고 할지라도 두렵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이슬로 적시는 성도는 그 인생이 도산 당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임하는 가정은 언제나 행복합니다. /아멘!/

 

③왜 이스라엘이 행복 자입니까?(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⑴성도의 진정한 행복은 구원받은 것에 있습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여기 '행복'이라고 하는 말 '아쉬레'는 '복 그 자체'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복의 본질, 복의 실존 그 자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복 그 자체가 무엇입니까? 바로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생명 그 자체보다 더 큰 복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영적인 것에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이란 죽어서 천당 가는 그런 영적인 구원도 되지만, 이생에서도 통용되는 단어입니다.
▶질병으로부터의 구원받은 결과가 건강입니다. ▶가난으로부터의 구원받은 결과가 부요와 재물입니다. ▶위험으로부터의 구원받은 결과가 평안입니다. ▶저주로부터의 구원받은 결과가 축복입니다. ▶그 절정이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인데 그것이 생명입니다. /아멘!/
그런데 참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사43:2절에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구원은 하나님 편에서는 완성된 일입니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다'고 할 때 하나님 편에서는 구속된 것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고 할 때 지명된 것이고 부른 것입니다. '너는 내 것이라'고 할 때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편에서는 구원이 완성된 것이고 또 확실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구원을 받아들이는 확신이 없다는데 문제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했다'는 것을 어떻게 믿는가? '나를 불렀다'는 것을 어떻게 믿는가? '너는 내 것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장하는가? 구원받는 우리편에서는 모든 것이 다 불확실합니다. 이래서 신앙의 깊이가 없습니다. 상황을 따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신앙인이 되고 맙니다.
이런 사람은 본문에서 말하는 행복자라는 말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모두 구원의 확신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아멘!/
그렇다면 구원을 무엇으로 얻어지는가? 롬5:1-2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여기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었은즉'은 완료형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할/
그러니까 구원을 받았는가 안 받았는가에 머물지 말고 구원받았기 때문에 화평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화평을 누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구원에 대해서는 확신을 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지명하여 불렀다고 한 이상, 너는 내 것이라고 한 이상,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상 우리는 이미 구원의 확신에 이른 것입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방황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아멘!/
2절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여기에도 '얻었으며' 완료형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진 우리는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일만 남아있습니다.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은 구원의 기쁨, 확신만이 필요합니다. /할/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떤 때에 구원하셨는가? 롬5: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또 10절에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왜 구원의 확신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신앙생활의 본질은 구원의 확신에서 이루어집니다. 내가 구원받은 이것이 기쁘고 즐겁고 의미가 있고 흔들 수 없는 확고한 기반이 되어야만 그 다음에 영적인 문제가 성화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크리소스톰'이라는 유명한 믿음의 사람을 로마 황제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감옥에 가두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황제가 불러다 묻습니다. '너는 어떻게 된 놈이기에 감옥 안에서도 기도하고 찬송하고 감사를 하고 있느냐?'
그러자 크리소스톰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내가 예수 믿다가 감옥에 갇힌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감옥에 갇혔으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황제가 다시 '그럼 저 놈에게 아무 것도 주지말고 굶겨라' 그래서 굶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며칠동안을 아무 것도 주지 않고 굶겼는데도 여전히 기도하고 찬송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황제가 다시 묻기를 '도대체 굶어가면서도 무엇이 그리 감사하다는 말이냐?'
그때 크리소스톰은 '주님을 위해서 금식하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황제가 화가 나서 끌어내어 매를 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매를 맞으면서도 감사를 합니다. '매를 맞으면서 무엇이 감사하다는 말이냐?' '주님을 위해서 맞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주님은 나를 위해서 채찍에 맞으셨고 십자가에서 찢겨 죽으셨는데 내가 그 분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는데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러분! 이것이 진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드디어 황제가 명령합니다. '끌어내어 죽이라' 그러자 크리소스톰은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치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합니다.
황제는 '이제 죽을텐데 죽으면서도 감사하다는 말이냐?' 그는 '믿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영광과 최고의 축복이 순교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최고의 축복이 순교라고 했는데, 이 순교는 또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의 반열에 참여 할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나를 참여시켜 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황제가 기가 막혀 명령하기를 '내 보내라 이런 놈은 죽여도 아무 소용이 없겠다'라고 했답니다. /할/

⑵성도의 행복은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할/ 이 말은 하나님이 여수룬, 곧 이스라엘, 즉 오늘의 성도들의 모든 삶의 방패가 되어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여기서 방패는 막아주심을 의미합니다. 권력의 보호보다 하나님의 보호가 더 안전합니다.
▶누가 우는 사자 같은 마귀의 공격에서 우리를 막아 주셨습니까? 오늘 말씀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분명하고 강한 보호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성도는 참 행복 자입니다. /믿/
다시 29절의 이어지는 말씀을 보세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여기서 '칼'은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가리킵니다. 또 능력을 상징합니다. 성도의 행복은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영광의 칼이 되셔서 전쟁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승리케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전쟁에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질병에 걸렸을지라도 도와주십니다. 고아와 같이 버림을 당했을지라도 도와주십니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용서하시고 구원과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누가 인간을 강하다고 했습니까? 절대로 인간은 강하지 않습니다. 약한 존재입니다. 부족합니다. 연약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강하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흙을 빚어서 사람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잔병치레가 많습니다. 병들기 쉽습니다. 부서지기 쉽습니다. 약한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역경과 문제가 닥치면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까? 우리는 사람의 도움보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시고, 적과 싸워 승리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시28:7절에 다윗 왕은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고 방어하는 강한 성이요, 그의 팔은 우리의 방패요, 그의 지팡이는 우리의 칼'이라고 말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우리의 가정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우리의 사업장도, 직장도, 우리의 국가도 사회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안전합니다. /아멘입니까?/할/


⑶성도의 행복은 하나님이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이 말은 싸움에서 승리하고 승자의 편에 세워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전쟁은 냉정합니다. 패자는 승자의 노예가 됩니다. 패자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승자는 개선가가 있고 면류관이 있습니다.
하박국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합3:19절에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우리가 왜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승리자로 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승리자로 세우셨고, 다니엘도 승리지로 세우셨습니다. /할/
말라기 선지자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말4:1-3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악한 사람은 마지막에 가서 심판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결국 승리합니다. 눅10:19절에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권세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면 축복도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야 이길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한국교육방송공사 경영본부장을 지낸 이덕선 장로가 평사원에서 이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간증했습니다. 그는 가난 속에서 자랐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벌써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7남매의 가장으로서 그는 동생들을 돌보아야 했습니다. 막노동, 학교 급사 등 안 해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교회에 다녔습니다. 하나님 앞에 새벽 기도를 했습니다.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러자 나이 55세가 되어서야 겨우 학업을 끝낼 수 있었지만, 방송통신학교를 거쳐 석사과정, 박사과정을 모두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사원에서 이사까지 되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새벽 기도까지 했습니까?'라고 질문을 받자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일찍 세상을 떠났지요, 동생들은 줄줄이 있지요, 친척도 친지도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는 도움 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고 의지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만 믿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앞에 아침마다 가서 새벽 기도를 했습니다. 여행할 때도 어디를 가서나 새벽 기도를 늘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믿음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희망을 주셔서 지금은 회사의 이사까지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부모가 없어도, 재산이 없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건강을 주십니다. 재물의 축복을 주십니다. 영광을 주십니다. /아멘!/할/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행복하고, 구원에는 반드시 행복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실제로 세계 역사 가운데 가장 행복하고 성공한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노벨상을 제일 많이 받은 민족이 유대인입니다. 미국 유수한 대학의 교수의 30% 이상이 다 유대인입니다. 사업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세계경제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다 유대인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그렇습니다. /할/

 

④마지막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4가지 원동력은 무엇인가?
⑴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이요. 중심입니다. 미국의 역사상 존경받는 대통령을 꼽으라면 링컨과 루즈벨트입니다. 루즈벨트는 경제적 대공황을 극복한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그가 사랑 받는 대통령이 되기까지 훌륭한 부인의 내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엘레나 라는 부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자녀를 여섯 명을 낳았습니다. 너무 가난하고 힘든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아이를 잃기도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어느 날 남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다리가 점점 마르기 시작합니다. 치료가 되지 않아서 다리를 절게 되었고, 마침내 남편은 휠체어를 타야만 했습니다.
이것을 안타깝게 지켜본 친척 중에 한 사람이 엘레나에게 '이렇게 어렵고 힘든데 이혼을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엘레나가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제가 사랑한 것은 남편의 다리가 아닙니다. 저는 남편을 사랑했습니다. 저는 남편의 다리 때문에 결혼한 것이 아니라 남편을 사랑했습니다. 그 다리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 우리의 관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엘레나의 조건을 뛰어 넘은 사랑의 힘이 가정을 지킬 수 있었고, 장애인 루즈벨트를 미국 최고의 대통령으로 만들게 된 것입니다. /할/
⑵행복한 가정의 원동력은 대화입니다. 가정에서의 대화는 혈액순환과 같습니다. 피가 온 몸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듯 대화는 가족 간의 사랑을 전달하는 통로입니다. 피가 막히면 동맥경화가 오거나 신체에 심각한 이상이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에 대화가 부족하거나 단절되면 심각한 가정 문제가 발생합니다.
⑶행복한 가정의 원동력은 질서입니다. 가족의 행복과 안전은 질서에 달려 있습니다. 골3:20절에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행복한 가정에는 영적인 권위의 질서가 세워져야 합니다. 부모의 권위, 형제간의 권위가 세워져야 합니다 이 권위는 하나님이 정하시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⑷행복한 가정의 최고의 원동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입니다. 가정을 디자인하신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가정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가정 중심에 모신 가정은 복이 있습니다.
시인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자손 천대까지 복을 받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성도가 예배의 감격을 잃어버리면 가장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찬송을 해도 기쁨이 없고,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고, 말씀을 들어도 아무런 감동이 없고, 봉사를 해도 기쁨이 없으면 다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아멘!/
스펄존 목사가 하루는 '십자가를 생각해도 아무런 감동이 없어서 통곡하고 울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큰 위기는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감격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참 행복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반드시 여러분을 도울 것이며, 여러분의 대적을 물리칠 것이며, 여러분의 산업을 지켜 주실 것이며, 승리자의 삶을 살게 할 것입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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