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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그때'와 '이제'는 지옥과 천국의 갈림길입니다! (엡 2:1-8)

by 【고동엽】 2022. 2. 11.

'그때'와 '이제'는 지옥과 천국의 갈림길입니다! (엡 2:1-8)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초자연적인 '기적'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현대의학이 포기한 환자의 건강이 회복된다든지, 생리적으로 사람이 물만 먹고 살 수 있는 기간이 여자는 7일, 남자는 5일라고 합니다. 하지만 40일간 물만 마시면서 금식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며 애독하는 성경은 기적으로 가득 찬 책입니다. 창-요한계시록까지 기적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천지창조를 시작으로 출애굽, 홍해의 갈라짐, 여호수아 태양의 멈춤, 엘리야의 승천, 그리고 예수의 동정녀 탄생, 부활, 승천, 재림에 이르기까지 기적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크리스천은 기적을 믿고, 기적을 보고, 기적을 경험하고, 기적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믿/ 사실 신앙이라는 말 자체가 그렇습니다. 신앙이란 '믿는다'는 말입니다. 뭘 믿습니까? 믿지 못할 일을 믿는 것입니다. 믿을 만한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는 것이요, 이해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성경의 기적뿐 아니라, 오늘도 그 기적이 일어남을 믿습니다. /아멘!/
기적 중에 가장 큰 기적은 우리가 예수를 만나는 기적입니다. 그분만 만나면 내 인생이 변화가 됩니다. 인격도 변화되고, 환경도 변화되고, 부정이 긍정으로, 불평과 원망이 기쁨과 감사로 바꿔집니다.
이때부터 우리가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는 믿음으로 지는 것입니다. /할/
신학자요 철학가인 '루터 포드'는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는 무거우나 감미로운 것이다. 새에게 그 날개는 무거운 것이나 그것 때문에 날아가고, 배는 그 돛이 짐이 되나 그것 때문에 앞으로 나아간다. 성도는 십자가가 짐이 되지만 십자가가 성도로 하여금 천국을 향하여 전진케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져야할 십자가를 주실 때에, 담대한 마음으로 달게 지고 가야 합니다. 그 십자가는 고난을 딛고 날아오르는 부활의 날개가 됩니다. 우리가 자원하여 담대히 십자가를 지고 갈 때, 그 십자가는 태산보다 더 큰 고난의 파도라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돛대가 됩니다. /할/
어느 교회에 신앙생활을 잘하던 한 집사가 항상 마음속으로 '내가 진 십자가는 너무 무거워.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신앙생활을 해야 해' 하며 늘 원망과 불평을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한 곳에 여러 개의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그 때 어디서 음성이 들려오기를 '네가 진 그 십자가가 무겁다고 불평만 하지말고 여기 많은 십자가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지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 사람은 이것저것 살펴보니 번쩍 번쩍 빛나는 조그마한 황금 십자가가 있어 그것을 골라졌습니다. 그런데 이 황금 십자가는 일어서기조차 힘들 정도로 무거웠습니다. 그 때 다시 소리가 들리기를 '다시 골라 보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역시 조그만 십자가인데 아름다운 장미꽃이 활짝 피어있는 그런 십자가였습니다. 아름다운 향기도 나고 해서 그것을 골라졌습니다. 이 십자가는 무겁지는 않는데 가시가 등을 어찌나 찌르는지 도저히 지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결국 저 뒤쪽에 적당한 것 하나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때 또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무개야 그 십자가를 좀 더 자세히 살펴 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자기가 지금껏 지고 온 그 십자가였습니다. 자기의 십자가가 가장 가볍고 적당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만한 십자가만 주십니다. 고전10: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아멘!/ ◀제목 소개!▶

 

오늘 본문은 '예수 안'에 있을 때와, 예수 밖에 있을 때의 인간의 실존에 대한 상태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고유의 신학적 표현으로 '그 때에(예수 믿기 전에)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사람들이, 이제는(예수 믿고 난 후)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엇입니까? 사망과 생명, 천국과 지옥, 저주와 축복의 갈림길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생명이요, 천국이요, 축복입니다. 반대로 예수 밖은 사망이요, 지옥이요, 형벌의 저주입니다. /믿/
1-3절까지는 예수 믿기 전의 우리의 실존입니다. 1절에서는 '죽었던 자들'이라고 합니다. 2절에서는 '불순종의 아들들'이라고 합니다. 3절에서는 '진노의 자녀'라고 합니다. 다 무시무시한 말들입니다. 우리는 다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더러 죽었다니 무슨 말인가?'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본문 1절에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합니다. 5절에서는 '허물로 죽은 우리'라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죄의 본래 뜻은 표적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허물과 죄로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벗어났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삶을 죽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살아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죽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영적인 죽음입니다. /할/

 

1. '그때에' 우리는 어떤 존재였는가?(1-3)

여러분! 인생의 절대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죽음의 문제요, 영생의 문제입니다. 이 영생의 문제는 어떤 종교에서도 확실한 대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 1절에 확실한 해답을 주십니다.

 

①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였습니다(1).
왜 인생이 죽었다고 합니까?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망의 원인은 죄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인생이 죄를 범하므로 죽게 되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죄로 인한 인생의 사망은 세 가지입니다. 사망은 분리를 말합니다. 생명은 연결된 것을 말합니다.
⑴영적인 사망이라고 하는 하나님과의 분리인 영의 사망입니다.
⑵육신과 영혼이 분리되는 육신의 사망이 있습니다.
⑶영원히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천국과 분리되는 영원한 지옥이 있습니다.
▶영적인 사망이 언제 왔는가?
창2:17절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뒤에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에 죽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그 후에도 수백 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실언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는 날 죽었습니다. 바로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비록 육체는 수백 년을 더 살았지만 그의 영은 그 순간 죽은 것입니다.
창3:8절 보면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이들은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었고,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과의 모든 대화가 끊겼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분리, 하나님과의 단절이 생긴 것입니다. 바로 이 하나님과의 분리, 하나님과의 단절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영적인 죽음입니다. /할/
눅15:24절에 보면 의미심장한 표현이 나옵니다.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돌아온 탕자에 대해 그 아버지가 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탕자가 아버지 품을 떠나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는 동안 탕자는 적어도 아버지께는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와 분리된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분리된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해서는 죽은 자입니다. 결국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분리된 것을 말하고, 하나님께 대해 죽은 것을 말합니다. /아멘!/
우리가 흔히 시각장애인들은 시력이 죽었다고 합니다. 또한 청각 장애자들은 청력이 죽었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떠듭니다. 그 영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믿/

 

②그때에 영이 죽어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세 가지입니다(2-3).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여기서 '그 가운데'란 '허물과 죄 가운데'입니다. 죄를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면서 죄짓는 것을 평범한 일로 생각하며 죄 속에서 편안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⑴세상 풍속을 좇아 살았습니다.
'이 세상 풍속을 좇고'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이 세상 풍조를 따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에 자랑을 좇아 삽니다.
중국 감숙성 난주에 가보면 도시 한 복판에 황하가 흘러갑니다. 황하의 상류 부분이기 때문에 물살이 여간 빠른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물이 탁한지 자판기 커피 색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탁류 속에도 물고기가 살고 있고, 그 물고기 크기가 여간 큰 것이 아니고, 그 물고기 요리가 또 진미랍니다. 그러나 그 물고기가 죽으면 배를 드러내고 물 위로 떠올라 겉잡을 수 없이 탁류에 휩쓸려 하류로, 하류로 떠내려갑니다.
바로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세상의 물질주의 흐름에 휩쓸립니다. 쾌락주의의 물살에 휩쓸립니다. 이기주의 탁류에 휘말립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 풍속은 만족이 없습니다. 항상 고갈된 인생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채우려고 죄를 짓고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할/
여러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내 안에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만족이 옵니다. 기쁨이 옵니다. 평안이 옵니다. /믿/아멘!/
⑵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릅니다.
여기서 '공중'은 하늘과 땅 사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공중'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하늘나라와 이 세상 사이에서 두 세상을 갈라놓는 중간영역을 지칭한 말입니다. 그리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마귀를 가리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은 영적으로 분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고 그에 종노릇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인생은 모두가 죄의 종들로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소리하면 성질을 냅니다.
동해 바다에 가보면 해가 지고 바다가 어둠에 잠기고 나면 오징어 잡이 배들이 나타납니다. 한결같이 이 배들에는 수백 개의 전구를 달고 있습니다. 전구들이 일제히 불을 밝히면 그 불을 보고 오징어들이 몰려옵니다. 미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도 그물을 쳐놓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몰려온 오징어들을 낚아 올리기만 하면 됩니다. 오징어들이 그 불의 유혹에 이끌려 죽는 줄도 모르고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바로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지를 못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유혹에 질질 끌려 다닙니다. 그러다 죽는 줄도 모르고 따라 다닙니다. /할/ 그렇습니다. 마귀는 그의 졸개들과 함께 불순종의 아들들, 즉 하나님을 거역하며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마귀를 따르는 자들을 하늘나라로부터 격리시키는 작업을 합니다. 여기에 말려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믿/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보내주시고 우리 대신 그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하시고는 그를 다시 일으켜 살리심으로써 마귀의 권세를 꺾으시고 그에 대해 승리하시고 그의 지배를 끝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억누르며 하늘나라로의 길을 막고 있던 공중의 권세를 다 물리치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 거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중권세 아래 있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믿/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거부하고 그 밖에서 머무르는 자들은 모두 불순종의 아들이고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입니다. /할/
⑶욕심을 따라 죄를 좇아 삽니다(3).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은 그 심령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에 말씀을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하고 싶은 대로 욕망에 따라 살아갑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 동물들은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제 멋대로 입니다. 바로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제 멋대로 입니다. 자기들을 위해서 좋은 길을 열어줘도 도무지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은 그 영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졌습니다. 하나님께 대해 죽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 삽니다. 그래서 세상 풍조에 휩쓸립니다. 사탄의 유혹에 대책 없이 끌려갑니다. 제멋대로 살아갑니다. 결국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원래 우리가 그렇게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이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믿습니까?/아멘!/
▶그들의 종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됩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3절은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할/

 

2. 이제는 우리가 어떤 존재입니까?(4-10)

 

①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할/
3절까지 '전에는' 이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4절 번역에서 빠진 단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라는 접두사입니다.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여기 '그 큰사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내어 주신 사랑입니다. 요3:16절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 하나가 바로 긍휼입니다. 인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이 속에 자비와 인자가 있습니다. /아멘!/
5-6절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할/
여기서 '함께 살리신' 것은 우리의 '중생'을 말하고, 함께 일으킨 것은 우리의 부활, 하늘에 함께 앉히신 것은 우리의 영화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소속이 바꾸어졌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자입니다. 빌3:20절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아멘!/
▶어떤 탈북자가 몇 년 전 북한에서 탈출해서 중국에서 숨어 지내다가 베트남을 거쳐 한국에 왔습니다. 그분이 한국에 와서 꿈에도 그리던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을 받으면서 쓴 글이 있습니다.
'나는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주민등록증을 받는 순간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고생의 여정들이 눈앞을 지나가며 감회에 젖었습니다. 밤에 자는 사이에도 머리 위에 주민등록증을 놓고 자다가 잠이 오지 않아 다시 불을 켜고 주민등록증에 자신의 얼굴이 선명하게 있는 것을 보고 잠을 잤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주민등록증이 뭐 그리 대수겠습니까? 그러나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을 통과하고 베트남을 거쳐 한국에 온 사람은 이 주민등록증이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영적으로 지옥가야 하는 우리 사람들이 천국에 가는데 그 신분이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그때에 우리가 이 감격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이 분이 북한에 있을 때는 어떤 신분이었습니까? 압제아래서 죽지 못해 살았지만, 대한민국에 오니 이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할/

 

②'예수 그리스도안에서'가 중요합니다(6).
여기서 결코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을까요? 선물은 '받는 자의 몫'입니다. 감사할 수도 있고, 안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전적으로 선물로 받는 자의 몫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를 선물로 받았다면 그 값에 대하여 알아봐야 합니다.
여러분, 볼펜을 1,000원을 주고 샀으면 1,000원짜리입니다. 손목 시계를 10만원을 주고 샀으면 10만 원짜리입니다. 자가용을 5,000을 주고 샀으면 5,000만 원짜리입니다. 재벌 그룹 회장 댁 사모님이 결혼 25주년 기념으로 반지를 선물로 받았는데 몇 억씩 주고 샀답니다. 그 반지는 몇 억 짜리니 조심스럽게 보관하겠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의 목숨을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으니 나와 여러분 우리 값은 얼마가 되겠습니까? 독생자만큼의 값, 즉 몇 억 자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값, 예수님의 짜리'가 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이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얻은 사람은 그 값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그래서 인생이 새로워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한 자로 여기십니다. 시16:3절에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우리는 예수 생명과 맞바꾼 엄청난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아멘!/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게 된 것은 결코 우리 노력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우리의 공적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결과요,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사람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동안 결코 자기 힘으로 중력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중력의 힘이 너무도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은 죄의 힘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사탄의 유혹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주선이 로켓의 힘을 빌리면 지구의 중력장을 벗어나 저 우주로 향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능력,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 저 보혈의 능력을 힘입으면 죄의 능력을 물리치고, 사탄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7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이 구원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됩니다. 20절을 보세요!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할 능력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능력으로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다시 살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 능력을 힘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우리는 예수 때문에 운명이 바꿔졌습니다. 요5:24절에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 말씀은 적어도 내 인생에 있어서 천지개벽할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최대의 문제가 뭡니까? 정치문제, 경제문제, 도덕문제, 환경, 실업자문제, 물론 이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만 정말 문제는 철학자의 말처럼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삶의 문제요 죽음의 문제입니다.
'영생을 얻었고' 이것이 해답입니다.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사망의 집에서 생명의 집으로 이사했다는 말씀입니다. /믿/아멘!/

 

③여기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과정 세 가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⑴'함께 살리셨고'(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던 우리의 영이 다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영이 다시 살게 됩니다. 우리의 영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 안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아멘!/
우리가 주안에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요15: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리고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할/
⑵'함께 일으키사'(6)
'또 함께 일으키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게 됩니다. 적극적으로 기도하며 찬송하며 전도하며 봉사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드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 감방에 두 사람의 수감자가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에게 어떤 집사님이 끊임없이 전도를 했는데 한 사람은 전도를 받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는 감격 속에서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면서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만일 내가 여기에 들어오지 아니하였으면 주님을 알지 못하고 밖에서 오히려 더 죄를 짓는 그런 사람이었을 텐데 하나님의 은혜'라며 날마다 감사하며 찬송하며 웃으면서 활기찬 생활을 하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과 달리 다른 한 수감자는 언제나 한숨을 쉬며 원망하며 불평과 한숨으로 가득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극도로 원망에 찬 나날을 보내며 자기가 그렇게 된 것은 누구의 탓이라며 이를 갈며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둘 다 형기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감사하며 지내던 사람은 그동안 쓴 원고뭉치를 가지고 출판사로 달려갔으나, 부정적으로 일관하여 원망하며 이를 갈던 사람은 정신병원으로 실려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무엇이 이 두 사람의 운명을 바꾸게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거부하느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일으켜 세우십니다. /아멘!/
⑶'함께 하늘에 앉히시니'(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미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로 오르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처럼 장차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주님의 재림 뒤에 주님과 함께 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할/
여러분, 천국을 확실히 믿습니까? 우리 교회는 '오직 예수! 오직 예배! 오직 천국!'을 전파하는 교회입니다. 제 목회 철학입니다.
여러분, 유토피아(Utopia)라는 말을 아시죠? 우리말로 이상향(理想鄕)입니다. 하지만 본래는 '아무 데도 없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어리석게도 존재하지도 않는 유토피아를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천국의 존재를 분명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말씀하셨습니다. 요14:2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천국을 가리며 '아버지의 집' 즉 '하나님의 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곳에 거할 곳이 많다고 했습니다. '거처'라는 말은 '장소' 어떤 번역본에는 '저택'으로 되어 있습니다. 실재로 존하는 장소라는 의미입니다. /믿/
또 사도요한이 계시를 받아 기록한 책 요한계시록을 보면 더 구체적으로 천국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계21-22장이 성경에서 천국을 가장 자세하게 설명해 놓은 곳입니다. 그 중에서 계21:1-4절에 보면 천국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고, 그 중앙에 '새 예루살렘'이 있다고 합니다. 실재하는 장소라는 겁니다.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치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표현합니다.
여인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바로 시집가는 날 꽃단장한 모습이 아닙니까? 사도 요한이 계시로 보게 된 천국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그 백성이 함께 삽니다. 거기에는 이 세상과 달리 눈물, 사망, 애통, 질병 등 부정적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기쁨, 평강, 만족 등 긍정적인 것들만 있습니다. /아멘!/
바울은 천국을 가리켜 이렇게 말합니다. 롬14: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천국의 신령한 은혜가 지금 우리 가운데 임한다는 겁니다. 성령을 통해 우리의 마음 속에 부어지는 의, 평강, 희락 등을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과거에는 죄악이 좋았는데 이제는 의로운 삶을 열망합니다. 세상은 요동하고 풍파가 많을지라도 마음 속에 넘치는 평강과 희락으로 감사하며 승리합니다.
▶세계에는 유명한 호텔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숙박비가 얼마나 비싼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두바이의 6성급 호텔이라는 '버즈 알 아랍' 호텔은 기본 룸 1박에 2천 2백불(한화 2백만 원)이나 합니다. 그렇게 비싸도 항상 예약 손님으로 넘친다고 합니다. 대기자 리스트까지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루 이틀 묵으려고 그렇게 예약하고 야단인데, 영원히 살집을 위해 영원히 앉을 자리를 위해 예약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천국 예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만 예약됩니다. 요14:6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리고 행4:12절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아멘!/
그런데 여러분, 천국의 실재와 더불어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지옥의 실재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럽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왜 지옥을 만들어 놓았겠는가? 그러니 지옥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괜히 목사들이 사람들을 교회에 붙잡아두기 위해 협박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지옥 이야기를 너무 안 해서 탈입니다. 성경에는 천국 이야기보다 지옥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옵니다. 왜 그런가요?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반영한 것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지옥에 가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지옥에 관해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막9:48-49절에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눅16장 보면 역시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 이야기인데, 나사로는 죽어서 천국에 가고 부자는 지옥에 갔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부자가 멀리 천국의 아브라함과 나사로를 보고 절규합니다.
눅16:24절에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이 말씀대로 지옥은 영원한 고통이 있는 곳입니다. 존재가 끊어지지도 않은 채 영원히 그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빈정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에게는 그런 말이 안 통한다는 겁니다. 뜨거운 불 가마에 들어가서 '아 시원하다' 그러는데 그게 무슨 대수냐 이겁니다. 그런데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5분이나 10분 동안 땀만 빼고 나오니까 시원하지 문이 닫혀서 1시간 만 갇혀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칠 겁니다. 그렇다면 한 번 들어가면 영영 나올 수 없는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 걸까요? 우리는 천국의 실재와 더불어 지옥의 실재를 추호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할/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 우리는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서 살았습니다. 심령 속에 하나님을 몰아내고 사탄의 지배를 받으며 죄의 노예가 되어 내 욕망대로 내 멋대로 살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죽었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우리의 영이 다시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놀라운 능력으로 하나님께 대해 다시 살아났습니다. 하나님과 다시 교제를 시작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됐고, 이 땅에서도 저 하나니 나라를 맛보며 살게 됐습니다.
그래서 먼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 찬양을 뜨겁게 부르며 살아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 밖으로 다시 나가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 복된 삶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 주신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할/

 

④이제는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8).


8절이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여기서 믿음 몇 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⑴믿음은 들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그래서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⑵믿음은 고백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니라'(롬10:10) 입으로 막 시인하십시오! '나는 축복 받은 사람이다' /할/
⑶큰 믿음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마15장에 보면 한 가나안 여인이 나옵니다. 막7장에 이 여인은 수로보니게 여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녀는 과부이며, 가난하고, 천한 삶을 살면서도 딸 하나를 자기의 생명처럼 알고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외동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려 미쳐버리고 말았습니다. 딸은 어머니도 알아보지 못하고 괴성을 지르며 머리가 산발된 채 다 찢어진 옷을 입고도 부끄러움을 몰랐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딸의 병을 고치려고 여러 병원, 좋다는 약을 다 써 보았으나 딸의 병세는 날로 심해져만 갔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현대인들에게는 이 여인처럼 절박한 문제 한계상황에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딸의 문제로 밤잠을 못 이루면서 괴로워하고 있을 때 한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 소식이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시방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써 능치 못할 일이 없으며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수만 명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를 남긴 기적을 베푸신 분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 위를 걸으실 수 있을 뿐 아니라 병든 자를 고치시며 귀신도 능히 쫓아내시는 능력자라는 소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주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만이 자기의 딸을 구원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복음을 듣는 것이 귀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 자가의 딸을 고침 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란 확신과 믿음과 소망이 있었습니다.
여러 곡절 끝에 드디어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28절에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할/
여기 '네 믿음이 크도다' 참 굉장한 말씀입니다. 크다는 개념도 여러 가지입니다. 이를테면 부자도 웬만한 부자면 감당하라고, 더 큰 부자는 거부하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크다는 것에는 조금 큰 것, 더 큰 것, 엄청나게 큰 것이 있는데 여기 '네 믿음이 크도다'란 원어적인 의미는 '네 믿음이 위대하다. 과연 메가톤 급'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 여인이 믿음이 '메가 톤급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큰 믿음 적은 믿음이 있습니다. 이왕 우리 믿음 생활을 할 바에는 큰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큰 믿음 있으면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멘!/
▶이 여인의 위대한 믿음이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예수님 앞에 가면 병이 나을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주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이 믿음이 위대합니다.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임을 고백하는 믿음, 어떤 사람은 예수님도 믿으면서도 예수님께 의지하지 않고 자기 수단 방법 배경, 돈을 의지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부스러기라도 달라'는 그의 태도가 위대합니다. 이런 위대한 믿음은 위대한 축복의 역사와 응답의 역사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될지라' '그 시로 그의 딸이 나으니라!' /할/
⑷이제 우리 모두 '푯대를 향하여, 부름의 상'을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빌3: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여기 '푯대를 향하여 좇아간다'는 말은, 하나는 달리기 경주에서 선수들이 골인 지점을 향해서 전력질주 할 때 쓰던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사냥꾼이 표적을 정해 놓고 집요하게 추적하며 사냥할 때 쓰던 표현입니다. /할/
우리 모두는 '그때'의 사람이 아니라 '이제'의 사람입니다. 고후5: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할/ 이 신앙을 잘 지키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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