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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이 외침을 들으라! (출14:1-20)

by 【고동엽】 2022. 2. 7.

모세의 이 외침을 들으라! (출14:1-20)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때때로 삶의 위기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도저히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암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절망과 좌절, 낙심 속으로 빠져버리고 맙니다. 때로는 이런 위기가 누구 때문에 왔다고 원망도 해 봅니다.
낙심, 무서운 병입니다. 낙심은 '히'어로 '마사스'인데 '용해시키다, 황폐케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낙심은 건강도, 희망도, 행복도 용해시켜 버리고 황폐하게 만듭니다. 또 '헬'어로 낙심은 '카코스'인데 '무가치한, 해로운' 이란 뜻입니다.
낙심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리고 백해무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한숨을 내쉬고 낙심과 좌절에 빠져있습니다. 물론 괜히 낙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낙심할 만한 이유가 있고 사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게 사람들이 낙심하는 이유들을 보면, ⑴개인적인 문제들 때문입니다. 실패, 질병, 그 어떤 사건 앞에 있을 때 사람들은 낙심을 합니다.
⑵사회적인 문제들 때문입니다. 사회생활에 적응이 안 된다든지 뒤떨어진다든지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다든지 요즘 세상처럼 사회나 정치가 불안하다든지, 전쟁의 위험이 있다든지 이럴 때 사람들은 낙심을 하게 됩니다.
⑶정신적인 문제들 때문입니다. 정서적인 불안, 노이로제, 신경과민, 고독, 단절 때문에 낙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낙심의 또 다른 표현이 절망입니다. 실존 철학자 '키엘 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낙심이나 절망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왔습니다. 이미 지나간 그것을 경험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지금 그것을 간직한 채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절망이나 낙심을 어떻게 극복하고 이기느냐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낙심과 절망을 술에 의지하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사건을 피함으로 이기려고 합니다. 술이 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피한다고 모든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신앙 인은 신앙의 방법으로 풀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속에 모세의 외침을 들어보십시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절대위기, 절대 절망가운데 빠져 있을 때의 모세의 외침입니다. 이 외침을 우리가 들어야 합니다.

 

1.잠깐 배경을 보겠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소리가 하나님의 귀에 들렸습니다. 하나님은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는 모세를 호렙산에서 불러 그를 애굽으로 보내서 이스라엘을 이끌고 나오게 합니다.
물론 애굽의 바로가 순순히 내어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의 고센 땅에서 430년의 종살이를 청산하고 이스라엘을 이끌어 냈습니다. 드디어 이스라엘의 해방의 찬가를 높이 부르며 모세를 따라 광야에 들어섰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살던 고센 땅은 나일강 삼각주지방으로 지중해 남단에 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은 거기서 지중해 동쪽 끝을 따라 동북 방향으로 1-2주일 정도만 걸으면 도착하게 돼 있습니다. 그 중간에는 지리적인 장애물도 없습니다. 다만 불레셋이라는 호전적인 민족이 살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북동진시켜 2주일 이내에 도착하게 하는 대신에, 반대로 남동진 하게 하였습니다. 남동쪽 방향에는 길이 없고 거친 광야만 있으며 그리고 홍해라는 애굽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바다로 가로막혀 있습니다. 전혀 길이 아닌 곳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돌쳐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미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 편 바다 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이 말씀은 가나안 땅을 향해서 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진행 방향을 돌이켜서('돌쳐서' 라는 말이 방향을 돌리라는 말입니다.) 홍해 바다 쪽으로 가서 진을 치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원래 잡았던 방향대로 계속 갔으면 며칠 후면 육지 길로 가나안 땅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이스라엘의 방향을 바꿔 남쪽으로 내려가서 홍해를 마주 대하고 진을 치게 한 것입니다. 사실 홍해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에 있지 않습니다. 훨씬 더 남쪽으로 내려가야 홍해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가깝고 쉬운 길을 놔두고 구태여 먼 곳으로 돌아서 바다가 가로막고 있는 곳에 진을 치게 하셨습니다.

 

①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을 길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셨을까요?
⑴그들을 절망적인 광야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게 하여, 그들 마음속에 가득 찬 애굽 생각을 하나님 생각으로 바꾸려는 것입니다.
⑵사람이 2주일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 무서운 광야에서 이스라엘 2백만 명을 수년 동안 살려내심으로, 세상 사람들로 여호와만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⑶애굽의 바로와 그의 군대를 완전히 물리치려는 생각이셨습니다.
⑷하나님의 위대하심을 후손들에게 전해줄 역사적 자료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어쩌던 이스라엘은 기분 좋게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이 되어 휘파람을 불며 애굽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 5절을 보니 바로의 '마음이 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②왜 바로의 마음이 변했을까요?
⑴무수한 노동력의 상실 때문입니다. 장정 60만을 노임 한 푼 주지 않고 그들로 공장을 짓고, 길을 내고, 성을 쌓았습니다. 두들겨 패기만 하면 기계처럼 돌아가며 일 잘하는 것이 노예입니다. 히브리 여인들은 밥 짓고, 빨래하고, 심부름하는 여자 노예로 사용했고, 히브리 남자들은 노동하는 노예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니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마음이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⑵바로의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당시 애굽은 세계 최강국이었습니다. 인류문명이 이집트에서 발생을 했고, 나일강유역의 곡창지대에서는 쌀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천하를 호령하는 이집트의 바로가 일개 히브리 지도자 모세에게 항복한다는 것은 당시 바로의 체면문제요 권위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사실 바로가 모세와 싸운 것이 아닙니다. 모세와 바로의 대결은 하나님과 바로의 대결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전능자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보내는데 체면도 말이 아니요, 국익 손실도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이 변하여 최신식 정예부대인 특별병거 600승과 애굽의 모든 병거들을 출동시켰습니다. 그리고 바로가 직접 지휘를 했습니다.

 

③한편 이스라엘은 어디까지 왔습니까?
본문 1-2절을 보면 '홍해 바다 앞 믹돌 사이 바알스본에 장막'을 치게 했습니다. '믹돌'이라는 말은 '성벽'이라는 뜻입니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앞에는 홍해가 있는 곳에 장막을 친 것입니다. 이때 바로가 공격해 온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은 독 안에 든 쥐입니다. 자! 이스라엘이 눈을 들어보니 앞에는 홍해바다요, 뒤에는 애굽 군대, 양 좌우 편에는 성벽처럼 높은 산입니다. 이런 상황을 가리켜 진퇴양난, 사면초가, 속수무책, 막다른 골목이라고 합니다.
▶이때 이스라엘 표정을 보십시다. 10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두려움은 사람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들고, 절망과 좌절과 낙심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다가 남을 원망하게 됩니다. 11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모세를 원망합니다. 여기서 모세를 원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④이스라엘의 원망은 무엇인가?
⑴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에서 죽게 만드느냐? ⑵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기적을 친히 본 백성입니다. 그래서 본문 8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날 때, 담대히 나갔다고 했습니다. 당당한 승리자의 모습으로 애굽인에게 금과 은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소유를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신 있게 나온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이 이렇게 금방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짧습니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바위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지도자 모세는 어떤 상황, 어떤 조건가운데서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사건 앞에서도 담대해 질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도피를 가져오지만 믿음은 도전을 하게 됩니다. 또 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낙관적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이 절대절망 가운데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기도가 능력입니다.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중세기 유럽의 어떤 수도원에 수도사들이 기도하는 기도 방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네 삶이 가난해도 나를 원망치 말라'는 제목이랍니다.
<너는 나를 주라고 부르면서 나를 주인 삼지 않았고/너는 나를 진리라고 하면서 내게 배우지 않았고/너는 나를 빛이라고 하면서 나를 바라보지 않았고/너는 나를 길이라고 하면서 나를 따라오지 않았고/너는 나를 능력이라 하면서 나를 의지하지 않았고/너는 나를 응답이라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았느니라>
▶미국 LA에 한일침례교회에서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구입한 대지가 가파른 산언덕이었습니다. 그 언덕을 파내고 교회를 지으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는 설계견적이 나왔습니다. 목사님은 이 일을 위하여 특별기도회를 열고 성도들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믿고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특별기도 기간 중 성도들은 열심히 '산언덕을 옮겨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특별기도회를 마치고 난 후에도 그 산언덕 비탈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전화국장이 전화를 했습니다. 이유는 전화국을 새로 건축하는데 그 땅이 교회 땅 밑인데 너무 지대가 낮아서 흙으로 매 꿔야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충분한 땅값까지 받고 난 후 불도저가 와서 산을 옮겨 교회를 멋지게 지었다고 합니다. /할/
기도의 사람, 모세의 신앙을 보십시다. 이스라엘은 똑같은 환경가운데 절대절망, 절대 위기감을 느끼고, 원망과 불평하고 있을 때,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고 외쳤습니다. 우리도 이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아멘!/
똑같이 햇빛을 받지만 산 나무는 더욱더 싱싱해 지고 생기를 얻고 무성해 집니다. 그런데 죽은 나무는 점점 바짝 말라갑니다. 같은 상황 속에서 망하는 사람이 있고 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에 '위기'라는 말은 퍽 재미있는 말이 되었습니다. 위기라는 말은 위험이라는 말도 되지만 기회라는 말도 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위기상황 속에서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 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오히려 축복의 기회로 만들어 갑니다. 기도가 해결의 통로입니다. /아멘!/

 

2.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곳까지 인도하셨습니까?

 

여러분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의 인도를 받고 왔습니까? 모세의 인도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입니다. 출13:21절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행하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신다'고 했고, 22절에는 '구름기둥, 불기둥이 이스라엘을 떠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궁지로 몰아넣은 것은 바로 구름기둥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의 상징인 구름기둥이 왜 이스라엘을 사면초가로 인도했습니까? 하나님은 때때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런 막다른 골목에 집어넣어 훈련시키십니다.
욥이 이런 훈련을 받았습니다. 왜 이렇게 집어넣었습니까? 욥23:10절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하나님만 '아시나니' 즉 아신다고 고백합니다. 자기 자신도 자기를 몰랐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이 나를 더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엘로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욥을 훈련 후에 정금같이 쓰시려는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쓰시려고 훈련을 시키십니다. 모세도, 요셉도, 욥도, 다윗도, 모두 다 하나님께 훈련을 받았습니다. 고난은 성숙을 동반합니다. /믿/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아무 고난도 없기를 바라는데 이 고난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고, 이 고난은 성숙을 동반합니다.
▶어느 양봉업자가 꿀을 따는데 겨울이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벌통을 남쪽 열대지방으로 가져가면 겨울이 없으니 꿀 생산을 배나 잘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꿀벌을 열대지방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랬더니 첫 해에는 그 벌들이 부지런히 꿀을 날라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수확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이듬해에 그 벌들은 전혀 일을 하지 않고 벌통을 다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양봉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겨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없으니 벌들이 꿀을 저장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벌들은 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여기가도 꽃들이 있고 저기가도 꽃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추운 겨울이 없다보니 일 년 내내 꽃이 있었습니다. 꽃만 많다고 양봉을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겨울이라는 계절 때문에 꿀을 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에게 적당한 고난은 유익이 됩니다. /믿/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런 코너로 몰아넣은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요, 애굽의 원수들을 수장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의지하게 하시려고 그런 것입니다.

 

①이스라엘이 머문 곳이 어디입니까?
본문 2절에 보니 이스라엘이 머문 곳에 '바알스본'이라는 곳입니다. 이 말은 '파수대'라는 말에서 유래된 말로 '지키시는 곳'입니다. 바알스본, 애굽 군대가 볼 때는 독 안에 든 쥐같이 갇힌 장소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스라엘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감시하시고, 하나님이 지키시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어려운 위기에 처할 때는 언제나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위기가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믿/
그러므로 위기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기억하십시오, 그리하면 믿음의 승리자가 됩니다. 모세는 홍해의 위기가 하나님의 승리임을 알았습니다. 롬8: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어떤 위기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시고 하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귀한 신앙의 자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위기 속에서 영광을 받으십시다. 4절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할/
바로는 홍해를 들어설 때, '이스라엘은 이제 죽을 길로 갔다. 우리는 추격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십계'를 보면 바로가 새파랗게 질린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너희들의 하나님 여호와는 병법에는 무식하구나'하고 큰 소리 치면서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역전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죽은 것이 아니라 바로 군대가 전멸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건지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다니엘을 사자 입에서 건지시고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의 친구 사드락과 매삭과 아벳느고를 풀무 불 속에서 건지기고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욥을 그 큰 시련 속에서 건지시고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믿음은 승리합니다.

 

②하나님이 그들을 홍해 앞으로 인도함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애굽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셨습니다(4). 이 소식은 온 애굽에 전해졌고, 뿐만 아니라 가나안의 모든 족속들에게 전해져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했습니다. 감히 대적하려고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 증거로 여리고 사람들은 성문을 굳게 잠가버리고 말았습니다.
(2)자기 백성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신 참 신이심을 분명히 알게 하셨고, 믿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자신의 종 됨을 분명히 드러내셨습니다.
(3)이스라엘을 '블레셋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13:17-18절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라고 했습니다.
⑷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이 홍해의 사건을 통해서 '자기 백성들을 애굽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광야에서 자신과 함께 동행하는 새로운 백성으로 출발시키는 의미인 세례식'을 베푸신 것입니다. 이제는 애굽의 모든 풍습과 문화와 전통과 습관을 모두 홍해에 장사 지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새로운 이스라엘로 살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홍해의 사건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참 좋은 길로 인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걸작품'입니다.
고전10:1-2절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닷물이 어떻게 벽을 이루었느냐? 애굽의 병거 바퀴가 어떻게 벗겨져서 추격하지 못했느냐? 어떻게 애굽의 군대가 수장되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서 이루시려는 깊은 뜻을 우리들이 눈 여겨 바라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행하신 일'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생각은 자기 백성들 보다 앞서가십니다. 사실 자기 백성들이 대적들에게 짓밟히도록 내버려두시는 법이 없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한 명이라도 잃어버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떤 상황이라도 낙심하지 마시고 위기에서 건져내시는 하나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위기는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할/

 

3. 모세의 외침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이 외침을 들어야 합니다(13-14).

 

①너희는 두려워 말라!(13)
그렇습니다. 적을 보면 두려움이 오고, 환경을 보면 두려움이 옵니다. 그래서 믿음의 대사도 바울은 히12:2절에서 '믿음으로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바라보아야 믿음이 생깁니다.
▶루마니아가 공산치하에 있을 때, 기독교를 몹시 핍박했습니다. 그때 '렘브란트' 목사님은 수년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성경을 읽다가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무서워 말라!'는 말씀을 몇 번이나 기록되었는가를 세워 보았는데 무려 365번이나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하루에 한 번씩 눈을 뜨고 일어날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해고 용기를 얻어 믿음의 승리자가 되라'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크게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왜 두려움이 옵니까? 우리의 삶이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확실합니다. 내가 천국 가는 것이 확실하고,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 것이 확실합니다. /아멘!/
하나님은 두려움에 떠는 자들에게 오셔서 위로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두려워 떨고 있을 때(창15:1),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큰 성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당당히 아이 성을 향해 갔지만 참패를 당했습니다. 이때 두려워 떨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여호수아야 두려워 말라 군사를 거느리고 아이로 올라가라'고 부드러운 음성을 들여 주셨습니다.

삿6장을 보면 언제나 추수 때가 되면 미디안이 침략해서 이스라엘이 지어놓은 농사를 다 빼앗아 갔습니다. 이때 두려운 맘으로 기드온이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은 '너는 안심하고 두려워 말라'고 위로하셨습니다. 유라굴로 광풍을 만난 바울에게 주님은 '바울아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는 무슨 말인가? '염려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 포기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요14: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주님이 내 곁에, 주님이 내 안에,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면 됩니다. 나 혼자는 무섭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주님이 함께 하시면 두렵지 않습니다. 사41:10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②'가만히 서'있으라고 하십니다(13).
앞에는 홍해 바다가 있고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따르고 있고, 양 좌우 편에는 험한 성벽으로 된 계고입니다. 이럴 때 우왕 자왕 하는 것이 인간의 연약한 본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만히 서' 있으라고 하십니다.
▶'가만히 서'라는 말씀은 '조용 하라, 정숙 하라, 고요 하라'는 말로 이 말씀 속에 몇 가지 영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⑴과거를 한 번 회상해 보라는 의미입니다. '너희가 여태까지 살아온 것이 누구의 은혜로 살아왔느냐?'를 생각해 보라는 메시지입니다. '누가 바로의 압박에서 너희를 구출하여 여기까지 왔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어찌 이스라엘뿐입니까? 지구촌의 세계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지 않으시고 공기를 주시고 햇빛을 주시고 바람을 불게 하시고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일년 삼백 육십 일을 회전하시고 사계절을 주십니다. '일반 은총'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잠시만 하늘 문을 닫고 비를 주지 않으시며 난리가 납니다. 또 계속 비만 내리시면 온 천지가 물난리로 초토화가 됩니다. 올해는 비기 자주 와서 일조량이 부족해서 모든 열매가 여무는데 지장이 있다고 걱정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재 반사를 운행해 주셔야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보십시다! 신앙 안에서 한번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봅시다. 내 죄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 외아들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갈보리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왜 예수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었습니까? 인류의 죄 값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의 문제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인류의 구원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만 믿기만 하면 우리의 공로는 아무것도 없어도 죄에서 용서해 주시고 구원을 주시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저 천국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이것은 '특별 은총'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의 포커스는 예수 믿는 자들이 들어가는 천국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이요, 두 번째는 다윗 왕국이요 그 마지막이 천국입니다. 가나안땅을 모형이요 천국은 실체입니다. 그 사건이 완성된 곳이 계21-22장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아멘!/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이 구원의 은혜를 실감하지 못한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을 깨닫게 하옵소서!' /할/
그런데 성경에 보면 천당 가는 구원보다는 이 땅에 살면서 현세 구원이 더 많습니다. 병마에서 건져주시고, 환란에서, 실패에서 건져 주시고, 근심과 걱정에서도 우리를 건져 주십니다. ▶건짐 받는 비결은 기도입니다. 빌4:6-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귀한 직분을 주신 것에도 감사하며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⑵마음을 모으고 정돈해 보라는 의미입니다. 아우성치고 원망하고 헐뜯는 자리에서 좀 마음을 정돈해 보라는 것입니다. 혈기 부린다고 능사는 아닙니다. 남을 헐뜯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이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누구를 원망하고 있습니까? 누구를 헐뜯고 있습니까? 한번 마음을 모으고 정돈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자신이 보입니다. 여기서부터 신앙 인격이 변화됩니다. /믿/
⑶하나님 보다 앞서 가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하나님보다 앞서 가지 마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보다 앞서 가지 마십시오. 시작도 기도로 시작하고, 끝마무리도 기도로 마쳐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모세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보다 앞서 가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절대로 하나님보다 앞서 설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서 가는 것이 교만입니다. 우리도 그 분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습니까? 홍해를 가를 수 있었습니까? 아니면 산을 평지로 만들 수 있습니까? 또 애굽의 군대를 꺾을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역사 하시는 손길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만히 서서 보아야 합니다. 염려하고 불안하고 그래서 떠들고 원망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노력가지고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머리칼하나도 희게나 검게도 할 수 없으며 키도 한 치라도 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합니다. 누가 저 바로의 막강한 군대에서 이스라엘을 건져낼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만히 있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잠3:5-6절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③하나님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13)
지금 하나님께서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계획하시고, 지금 금방 시작할 것이니 너희는 두려워 말고 조용히 하나님의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구원은 '현세의 구원'입니다. 지금 바로의 칼날에서 '구원해 주시리라'는 것입니다. 시62:1절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 도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건져 낼 수 있습니다. 본문의 더 큰 의미는 '귀로 듣거나 마음으로 믿으라고 하지 않고 눈으로 보라! 네 눈으로 볼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구원을 체험하고, 능력을 체험하고, 기쁨을 체험하고, 사랑을 체험하고, 은혜를 체험하고, 내 영이 살고 내 육신의 병 고침을 체험하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강의실의 종교가 아닙니다. 책 속의 종교도 아닙니다. 생활 속의 종교이며 눈으로 보는 체험하는 종교입니다. /믿/
여러분, 영안의 눈으로 주님의 세계를 보십시오. 그 분이 지으신 세계를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십시오.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요5:24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믿음의 단계 세 가지가 있습니다. ⑴귀의 단계입니다. 복음을 듣는 단계입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는 단계입니다. 듣는 단계가 귀합니다.
⑵발의 단계입니다. 발걸음을 주님께 옮기는 단계입니다. 교회로, 구역예배로, 은혜의 자리로, 봉사의 자리를 찾는 단계입니다.
⑶마음의 단계입니다. 주님이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알고 믿게 됩니다. 신앙의 체험을 합니다. 생활 속에 삶의 터전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그 하나님께 감사가 저절로 나옵니다. /할/
보약을 먹으면 10년 더 산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영원히 산다는 것을 믿지 못하다가 확실히 믿게 되는 단계입니다. 이 순간 흥분과 감격이 밀려옵니다. 구원의 확신을 받는 단계까지 올라가야 겸손해지고 순종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 모두 여기까지 올라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④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싸우신다'는 말은 '역사 하신다. 일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본문에서 어떻게 싸우셨는가?
⑴홍해바다를 가르셨습니다. 누가 그 큰 물결을 바로 잡을 수 있습니까? 누가 바다 속에다 길을 뚫을 수가 있습니까? 누가 내 인생 길에 새로운 길을 낼 수 있습니까? 누가 절망으로 출렁이는 인생의 바다에 길을 낼 수 있습니까? 하나님만이 하실 수가 있습니다. 홍해 같은 절망의 바다가 여러분의 인생의 행로를 가로막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아멘!/
⑵건네게 하셨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건널 수 있습니다. '건네다가 물이 합해지면 어떻게 허냐?' 의심이 많으면 못 건너갑니다. 하나님이 내신 길이니 믿고 건너가시기를 바랍니다.
⑶바로의 추격대를 바다 속에 수장시켜 버렸습니다.(28)
이스라엘진영도, 애굽의 군인들도 다 바닷길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건넜고, 애굽의 군대는 다 수장되어 버렸습니다. 후로는 그들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위해서 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싸우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 하십니다. 홍해는 새벽에 갈라졌습니다. 여리고 성도 새벽에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가 큽니다. 기독교는 새벽의 종교입니다. /할/

 

4. 신앙은 행함이 있을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15-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으로 갈라지게 하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라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기도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기도만 하지말고 이제 지팡이를 높이 들어 바다를 갈라지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기도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움직일 때에 하나님이 역사 하십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왜 기도만 하고 있느냐? 지팡이를 들어 바다를 갈라지게 하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15절에 '앞으로 나아가라'고 명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오직 앞으로 전진만이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폭적으로 믿고 따르라'는 말입니다.

 

①그런데 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까?
⑴두려움 때문입니다(10). 왜 두렵습니까? 뒤를 돌아보기 때문입니다(10). 바로의 군대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환경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불가능한 환경, 조그마한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하는 계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신 하나님,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멘!/
⑵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확실하게 인도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고 지도자 모세를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⑶과거의 집착 때문입니다(11,12). 사람은 과거에 집착하면 미래를 향해 활짝 날개를 펼칠 수 없습니다. 좋았던 과거에 집착하면 사람은 교만해지거나 자신감에 사로잡혀 실패하기 쉽습니다. 나쁜 과거에 집착하면 사람은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매사 자신이 없어집니다. '왕년에 어쨌는데' 라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미래가 불투명한 사람이거나 현재가 변변치 못한 사람들입니다.

 

②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⑴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16). 하나님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가면 내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한 번도 바다가 갈라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다가 갈라지는 것을 그들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⑵하나님께서 그 기적의 사건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17). 우리가 위기 앞에서 하나님을 통하여 문제가 해결 될 때 우리도 기뻐하시지만 우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⑶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18). 애굽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게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 의지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습니다.
미국의 무디 신학교 학장 '죠지 스웨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위기를 접할 때 그 사람의 신앙의 깊이가 비로소 들어 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평시 순탄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신앙의 깊이를 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삶의 진정한 위기가 부딪쳐 왔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의 깊이는 들어 나게 됩니다.

 

③모세가 누구에게 들으라고 외쳤습니까?
선택받은 이스라엘백성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외친 소리입니까? 절망의 자리에 있을 때 외쳤습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선택받은 백성입니다. 행여나 우리의 삶의 울타리가 무너지고 있습니까? 절망하지 마시고 모세의 이 외침을 다시 들어보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너희는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는 말씀은 모세의 말만이 아닙니다. 삼상12:16절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 행하시는 큰일을 보라'고 사무엘도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시43:5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 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할/
그러므로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만나면, 가만히 서서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훈련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특유한 방법으로 개입하여 도우실 것입니다.
▶결론적인 말씀은 31절에서 보겠습니다. 한마디로 홍해사건은 하나님 경외를 가르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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