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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온 성(城)! (계 21:1-8)

by 【고동엽】 2022. 2. 6.

하늘에서 내려온 성(城)! (계 21:1-8)

 

세계 모든 민족은 공동 축제의 명절들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3대 명절이 있는데 '유월절과 칠칠절과 수장절'이 있습니다. 이 절기 때에는 이스라엘은 온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 민족도 고유의 명절인 추석이 있습니다. 음력으로 8월 15일인데 올해는 이번 주 화요일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날씨와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초가을에 맞는 추석은 우리 조상 때부터 참으로 아름다운 명절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추석날에 아침 일찍 새 옷을 갈아입고 추석 다례를 지내는데 햅쌀로 술과 떡을 만들고 밤 대추 감 등 햇과일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들은 추석날을 당하여 가족들끼리 모여 조상의 은혜를 추모하면서 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이 신앙인의 행위입니다. /믿/
올해는 연휴가 길어 고향으로 내려가는 귀향 객이 전국적으로 사상 최대의 인파가 이동할 것이라고 정부 당국자가 말했습니다. 이 행렬을 '귀성객'이라고 합니다.
'추석, 또는 명절'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고향입니다. 그래서 명절에는 기를 쓰고 고향을 찾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마다 고향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고향이 있습니다. 고향에 대한 추억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매우 소중합니다. 그래서 많은 문학가들이 고향을 예찬하였고 또 많은 가수들이 고향을 노래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사연을 시로 문학으로 예술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고향은 마치 모태와 같은 곳입니다. 사람들은 고향을 사모하고 그리워합니다. 모든 동물들은 '귀소 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호랑이는 죽을 때 자기가 태어난 굴에 와서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강원도 남대천에서 태어난 연어는 태평양에서 몇 년 동안을 살다가 죽을 때는 자기가 태어난 남대천을 찾아와서 산란을 하고 죽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고향을 찾을 줄 모른다면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고향에 가면 부모를 비롯한 반가운 이들을 만나듯이 천국에 가면 그리운 모든 이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무덤에서 만나는 이들을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만날 것입니다. 생각만 하여도 신납니다. 예수 안에 간 사람이면 누구나 만날 수가 있습니다. 저의 장인어른도 만날 수 있습니다. 먼저 간 사랑하는 남편을 만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를, 먼저 보낸 사랑하는 자녀를 다시 만날 것입니다. /아멘!/

 

1. 성경 속에서도 보면 '고향을 찾아간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①야곱은 20년 만에 고향을 찾아갔습니다.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 권을 빼앗고 아버지 이삭까지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하여 외삼촌이 사는 하란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20년 동안 속고 속이는 삶을 살다가 드디어 결심하고 가나안땅으로 찾아갔습니다. 야곱의 귀향은 '금의환향'입니다.
②나오미도 고향 베들레헴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마라' 즉 '쓴 물의 환향'입니다. 신앙의 도성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땅으로 갔다가 남편 엘리멜렉과 아들 말룐과 기룐을 사별하고 며느리 룻과 함께 고향 베들레헴을 찾아갔습니다. 금의환향이 아니고 실패하고 망하여서 돌아온 나오미를 고향 사람들은 그래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고향이 좋은 곳입니다.
③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에서 가나안을 찾아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조상 야곱이 70명의 가족을 이끌고 7년 대 기근을 피하여 애굽에 온지 430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이었지만 이제는 모세를 영도자로 하여 애굽에 온지 430년 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고향 가나안을 향하여 떠나게 되었습니다.
④유다민족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70년 만에 고향을 찾아왔습니다. ⑤눅15장에 보면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도시로 가서 허랑 방탕한 삶을 살다가 그 재산 다 허비한 뒤에 그 땅에 흉년이 들어 죽을 고생을 하다가 그래도 아버지가 계시는 고향에 찾아온 탕자 그 아들을 아버지는 다 용서하고 품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북실향민들은 지척에 고향을 두고도 못 가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그들도 고향에 가는 날이 열리게 되기를 우리 모두 기도해야 합니다. /할/

 

2. 추석을 한번 생각해 보자!

 

여러분은 추석이면 생각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이 생각이 나고, 송편이 생각이 나고, 시골 산소에 벌초가 생각이 나고, 또 조상들에게 제사 들이는 것이 생각이 나고, 이웃과 송편을 나누어 먹는 것이 생각'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추석은 ①나눔의 명절입니다. 베풀며 사는 삶이 축복입니다.
평소 인색하기로 소문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유서를 썼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 재산을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이런 유서를 쓰고 나서 가만히 생각하던 그 부자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아니지! 죽은 후에 베풀면 무슨 소용이 있나? 살았을 때에 해야지.' 이렇게 외친 후 그는 유서를 찢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베풀면서 살았습니다. 가진 것을 나누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두가 그를 존경하게 되었답니다. /할/
또 추석은 ②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에서도 추석에 추수감사절로 드리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리시기를 소원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시50: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③누구에게 감사할 것인가?
⑴가족과 친척과 이웃에게 감사합시다! 왜 감사해야 합니까? 이들이 우리들의 삶의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통해서 돕기도 하시며, 연단도 하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마19:19)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라는 가장 큰 의미는 그들의 생명을 살리라는 것입니다. 전도해서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주인공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믿/
⑵부모님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명절날 최고의 선물을 하십시요! 효도는 본인이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엡6:1-3절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할/
⑶주의 종에게 감사합시다! 히13:17절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또 갈6:6절에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하셨습니다.
⑷국가에 감사합시다! 그렇습니다. 국가가 있어야 내가 있습니다. 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습니다. 나의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가 있어야 내 기업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면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지 해외로 나가려고 합니다.
저는 이 나라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그렇게 감사하고 기쁜지 모릅니다. 얼마나 살기 좋습니까? 4계절이 뚜렷합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할/ 그리고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IMF를 극복하고, 이 만큼 회복되게 된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12월에 뽑는 대통령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위해서 우리 모두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⑸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감사의 결론은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롯해서 가족, 친척, 이웃, 국가, 자연이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다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롬11:36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으리로다. 아멘!'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감사의 결론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롬7:25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⑹정말 우리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무엇입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사모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요14:1-3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할/
지금은 다들 자가용들이 많이 있지만 오래 전에 고향 가는 차표를 구하기 위해 며칠씩 고생한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고향을 찾아간 다음에는 허무함을 맛봅니다. 산은 산이로되 그때 그 산천이 아닙니다. 옛날 그 친구들은 모두 다 바람처럼 흘러갔으니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나은 본향을 찾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고향을 찾는 행렬을 귀성객이라고 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저 천국을 향하여 달려가는 신령한 귀성객들입니다. /믿/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바라보며 순례의 길을 떠났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도 이 믿음의 길을 따라 저 영원한 천국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길을 떠나는 순례 객들입니다. /아멘!/
히11:15-16절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여기에 보면 두 종류의 본향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나온바 본향'입니다. 아브라함의 갈대아 우르입니다. 땅에 있는 본향입니다. 즉 우리가 태어나서 부모님의 슬하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난 육신의 고향입니다.
저희 고향은 전라도 정읍군 감곡면 계룡리 175번지입니다. 이 고향은 내 몸이 태어난 곳이고,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계신 곳입니다. 어릴 적 같이 자라난 친구들이 있는 곳이며, 나의 육신과 마음과 꿈이 함께 자란 곳입니다.
또 하나는 '더 나은 본향'입니다. 하늘에 있는 본향입니다. 우리는 이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며 매일매일 세상을 살아가는 거룩한 순례자들입니다. /믿/
히11:13-16절은 이스라엘의 조상이요 믿음의 선조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등의 삶을 마치 고향 가는 길로 묘사하여 믿음생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살았고, 세상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으며,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고 그 곳을 향하여 인생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외국인처럼 나그네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13).
▶나그네는 고향이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타향에 얼마 동안 머물러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고로 그 생활은 항상 임시적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은 모두가 나그네와 같습니다. 미국으로, 캐나다로, 브라질로 이민을 가야만 나그네인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 살고, 고향에 살아도 나그네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 모두는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나서 낯 설은 인생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요 무덤을 향해 가는 행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의 행렬이 있습니다. 이는 하늘나라로 향해 가는 거룩한 순례 객들입니다. 이 행렬이 오늘 이 귀한 성림의 제단에 모였습니다. /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갔습니다. 그는 언제나 나그네로 살았고 외국인같이 살았습니다. 그 땅 어느 곳이든지 그가 영원히 영주할 땅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창23:4절 이하에 보면 아브라함은 그의 사랑하는 아내 사라가 127세에 죽었을 때에 헷 족속들에게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 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창23:4).
여러분, 진실로 인생은 무상하고 허무합니다. 세월이 가노라면 인생 모두가 무덤을 남긴 채 떠나갑니다. 풍운아 다윗은 대상29:15절에서 인생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또 히11:13절에서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다' 고백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대를 이은 믿음의 족장 야곱이 요셉의 안내로 애굽 바로 왕과 대면을 합니다. 그때 야곱은 자신이 지나온 날을 회고하면서 이야기하기를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 라고 고백했습니다.
실로 우리의 인생은 나그네와 행인 같은 길을 가게 됩니다. 인생길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만은 크게 보면 하룻밤을 여관에서 유숙하고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잘 살아도 한 세상이요, 못 살아도 한세상입니다. 인생은 한번 왔다 가는 인생입니다(히9:27).
누가 이 길을 거역할 수 있습니까? 권력을 쥔 자도, 재물을 쥔 자도 이 길을 막지 못합니다. 시90:3절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여기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누가 거역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나이 많으신 노인들은 70객, 80객이라고 하는데 이는 나그네로 7,80을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하룻길을 가다가 해가 저물어 대궐 같은 큰집에 하룻밤 쉬어가기를 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 주인이 이 집은 여관방이 아니니 저 건너 여인숙으로 가라고 거절을 합니다.
이때 김삿갓이 묻기를 '이 큰집에 몇 대나 살아오시는 겁니까? 예 16대째 살아옵니다. 그 16대가 지금 다 생존하십니까? 그야 다 세상 떠났지요! 그렇다면 당신도 살다가 떠날 것이니 당신도 나그네, 나도 나그네 같은 처지에 하룻밤 쉬어 갑시다.' 이 소리를 들은 주인이 크게 깨닫고 잘 대접했다고 합니다.
인생은 본향 집을 떠난 나그네이기 때문에 항상 괴롭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고독합니다. 나그네가 여관에 들면 숙박 계를 씁니다.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출신지를 씁니다. 지금 무엇 하러 여기에 왔습니까? 용무를 묻습니다. 내일은 어디로 갈 것입니까? 행선지를 기록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이 세상에 왔고, 지금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어디론가 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은 귀성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저 천국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가고 있습니다.
▶암으로 죽어 가는 사업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당하는가?' 발악을 하면서 죽음을 증오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으므로 그 고통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이 몸부림이 너무나 안타까워 부인은 목사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목사님이 그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한 후에 영접기도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시오, 부활이심을 영접합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합니다.' 그 사람이 기도를 따라 합니다. 그리고 다 맡겼습니다. 그리고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는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하면서 목사님과 자기의 부인의 손을 꼭 움켜쥡니다. 그리고 평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서는 나그네길의 삶은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여러분, 결국 인생이 머물 곳은 이 땅 위가 아니라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입니다. 그곳은 믿음으로 한 발짝씩, 한 발짝씩 올라가는 곳입니다. /할/아멘!/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별히 나그네 의식이 강하였습니다. 70년 로마에 나라를 빼앗긴 이스라엘은 이 나라 저 나라, 이 곳 저 곳 떠돌아다니며 살아야 했습니다. 1948년 독립할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그네 생활을 하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인생은 모두 나그네입니다.
나그네 인생이란 '잠시 머무르고 가는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천년만년 살 곳이 아닙니다. 잠시 머무르다가 가야 할 곳입니다.

 

④인생은 나그네이기에 나그네 철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⑴나그네는 어느 곳에 있든지 궁극의 목적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늘 고향을 그리워하는 본능을 귀소본능이라고 합니다. 여우는 죽을 때 꼬리를 자기 굴로 향하게 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늘 하늘나라를 그리워하며 본향을 그리워하는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⑵나그네는 항상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지금 있는 곳은 영원한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떠날 때는 모든 것을 놓고 가야 합니다. 여행 중에 땅을 사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그네는 지나가는 곳에 애착을 갖지 않습니다.
야곱은 흉년을 피하여 애굽으로 70명 식구들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그 곳에서 살면서도 고향 가나안 땅을 늘 그리워했습니다. 평생 나그네로 애굽에서 살면서 자기 시체를 고향 땅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하고 죽었습니다.
⑶나그네는 언제 떠날지 모릅니다. 나그네는 외롭습니다. 그렇기에 모두가 나그네 인 것을 알고 나그네끼리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과부심정 과부가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그네 심정 나그네가 서로 알아주어야 합니다. 신10:19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 우리 모두는 나그네이기에 나그네 된 모두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런 철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⑷나그네는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벧전1:17절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나그네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이기에 늘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쓰러지기 쉽고 넘어지기 쉬운 것이 나그네입니다. 겸손하게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벧전2:11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나그네는 항상 유혹이 많습니다. 시험도 많습니다. 싸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이 쪽 저 쪽으로 치우치지도 말고 육체의 정욕에 빠지지 않게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면서 넘어지지 않게 두려움으로 살아야 한다고 베드로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3.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해야 합니다(히11:14-16).

 

우리의 육체는 흙에서 왔지만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왔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참된 고향, 영원한 고향은 하늘입니다. 하나님의 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 품을 떠난 탕자 같은 인생들은 고향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습니다. 찾아갈 고향이 없는 불쌍하고 가련한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키엘 케에골'은 인간을 가리켜 말하기를 '고향 잃은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영혼의 고향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빌3:20절에 말합니다. 물은 바다로부터 왔기에 바다로 흘러갑니다. 불은 태양으로부터 왔기에 하늘로 올라갑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명이 어디서 왔습니까? 우리의 생명을 부모님들이 주었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큰 무지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믿/
▶지금 이북의 연기자들이 찍은 '사육신'이 방영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조시대의 대 유학자이며, 어린 단종을 위해 목숨을 버린 충신이요, 학자였던 사육신의 대인 성삼문을 잘 압니다. 지금은 존경받는 위인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가 마지막 남긴 한 수의 시가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얼마나 실망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는 세조에게 모진 고문을 받고서 굴러가는 마차에 매달려 겨우 몸을 가누면서 사형 터에 도착한 그는 깨어진 기왓장에 한 수의 시를 썼는데 그 시가 그의 평생을 평가하는 마지막 그의 철학이 되었습니다.
<북 소리는 목숨을 재촉하는데 돌아보니 지는 해 서산을 넘어 저물어가는구나! 아 황천길에는 여관이 없다는데 오늘밤에는 뉘 집에서 쉬어야 하나!>
저는 지금 그의 죽음이 값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삶의 마지막 종착에서 이토록 절망해야만 하는 유교의 가르침에 슬픔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밤 뉘 집에서 묵어야 하나> 성삼문 그는 세상과는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생을 살았으면서도 그의 마지막 소망은 겨우 '뉘 집에서 머물 것인가?'에 대한 걱정뿐이었습니다. 이 독백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우리는 더 나은 본향이 있습니다. /할/
하루는 공자에게 제자들이 죽음 이후를 물었습니다. 공자의 대답은 '살아 있는 일도 다 알지 못하는데 죽은 이후의 일을 어찌 알겠는가?' 공자도 죽음 뒤에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 이 땅위에 사는 어떠한 피조물도 한 치의 앞길을 헤아릴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오직 그 일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믿/

 

▶'더 나은 본향'은 세상 고향과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고향을 말합니다.
⑴위치가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우리의 본향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그 위치부터가 세상 고향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⑵하나님께서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마25:34절에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했고, 요14:2절에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했고, 본문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했습니다. 또 고후5: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이라고 했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더 나은 본향'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곳입니다.
▶보험회사 직원이 믿음이 좋은 집사님에게 생명보험에 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생명보험에 들어야 될 이유를 이것저것 설명하니까, 집사님이 대답합니다. '알았습니다. 내가 당신 말대로 생명보험에 들지요. 그 대신에 당신은 내가 말하는 참 보험에 들어주어야 합니다.' 참 보험이라는 말에 보험회사 직원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집사님은 '생명보험은 그 보험에 든 사람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하면서 '그것 들면 안 죽는다는 것입니까? 죽어서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는 돈인데 그것이 어떻게 생명보험입니까? 참 보험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을 전도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참된 보험이 어디에 있고, 참 고향이 어디에 있습니까? 오직 예수 믿어야 참 생명 보험에 든 것이고, 그러한 성도에게 하늘나라가 참 고향이고 그 본향에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요14:6). /믿/

 

4. 우리가 들어갈 처소는 어떤 곳인가? '하늘에서 내려온 성'입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최고로 비싼 집'이 어떤 집인지 아십니까? 영국 런던에 있는 '업다운 코트'라는 집입니다. '집'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커서 '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그 집은 시가 1,300억 원으로, 방이 130개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한 방은 바닥이 24K 순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 7만 평의 숲, 수영장, 영화관, 테니스 장, 스쿼시 장, 리무진 8대 들어가는 차고, 헬 기장 등이 있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유지관리비만 1년에 수십 억 원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이 보다 훨씬 더 고급스럽고 고풍스러운 집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믿/ 그렇다면 어디에 있습니까?
①새 하늘과 새 땅은 완성된 곳입니다(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사도요한이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요한은 단순히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는 것을 믿은 것이 아니라 직접 자기의 눈으로 영안을 통해서 보았다는 것입니다.
②요한이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사65:17-18절에 나오는 예언의 성취입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이전 것, 즉 옛 하늘과 옛 땅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이사야서에 예언되어진 말씀이 성경 계21-22:5절까지에서 그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언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만을 예언했지만, 계시록에서는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그것이 벌써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③이곳에 누가 다녀왔습니까? 사도 바울이 보고 왔습니다. 그는 그 곳을 묘사하기를 '셋째 하늘, 낙원'이라고 했습니다. 고후12:2-4절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이 땅에서 그토록 충성하고 헌신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천국에 있습니다. /아멘!/

④'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성입니다(2).
천국에는 센터가 있습니다. 그곳에 '거룩한 성'이 있는데 '새 예루살렘, 즉 새로운 평화의 도시'라는 천국의 수도가 있습니다. 지상의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인 것처럼, 새 예루살렘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수도입니다. 거기는 성도들의 영원한 공동체가 거주하는 곳입니다. 말하자면 성도들이 거주할 영원한 집인 셈입니다.
그곳이 얼마나 좋은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말씀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단장된 것은 신부의 모습입니다.
천국은 이미 공사가 다 끝났습니다. 여기 '단장한'이란 말은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미 준비가 끝났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신부인 성도들을 데리고 들어갈 신방이 다 꾸며졌다는 뜻입니다.

⑤천국의 우리가 들어갈 처소를 무엇으로 지었는가? 몇 구절을 한번 살펴봅니다. 10-11절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새 예루살렘이 '보석, 벽옥, 수정 같이 맑고 빛나는 모습'이라는 겁니다.
18절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새 예루살렘 성곽이 벽옥으로 쌓여있고 정금으로 되어 있고 유리 같이 맑고 아름답습니다.
21절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성에 문에 열 두 개인데,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길이 정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옛날에 어느 사람이 고생하면서 큰돈을 모았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죽은 겁니다. 그는 너무 억울해서 죽음의 사자에게 사정을 해서 '금 덩어리가 든 자루' 하나를 갖고 갔습니다. 그가 도착하자 천사가 그에게 '왜 아스팔트를 들고 다니느냐?'고 물었습니다. 부자는 '이것은 아스팔트가 아니고 황금입니다.' 그러자 천사가 웃으면서 '세상에서는 그것을 황금이라고 부르지만, 여기 천국에서는 그것으로 길을 포장하는 데 씁니다.' /할/
여러분! 아름다운 본향 있음에 감사하며 기뻐합시다. 고후5: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노라'고 했습니다.
천국의 소망이 없다면 굳이 예수 믿을 필요도 없고, 전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은 지옥 갈 우리를 값없이 구원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할/

⑥천국은 주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곳입니다(3).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천국에는 황금으로 아스팔트를 한 거리가 있고, 열두 진주 문이 있고, 아름다운 집이 있고, 면류관이 있고, 별별 것이 다 있다고 해도 예수님이 안 계시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천국에는 가장 귀한 예수님이 계셔서 영원히 그분과 함께 살게 됩니다.
예수께서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나있는 곳에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골3:1절 이하에 '그리스도 안에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위에 누가 계십니까?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할/

 

5. 그러면 새 하늘과 새 땅은 누가 유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까?

 

①이기는 자들이 유업으로 받습니다. 7절 '이기는 자는 이것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이기는 자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주고 그 곳에 들어가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싸워서 이기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할 대적은 누구입니까? 우리의 대적은 사탄 마귀와 이 세상과 내 자신의 교만과 탐욕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3대적입니다. 이 3대적과 싸워서 이기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②어떤 사람이 그곳에 못 들어갑니까? 8절을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자들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⑴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세상이나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권세자들을 무서워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마10장에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시면서 32-33절에서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⑵'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 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천국행이 아니라 지옥행입니다. /믿/

 

6. 지옥이 어떤 곳인가?

 

⑴전체가 불입니다. 불 못이라고 합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하는 곳입니다. 불은 심판을 상징하고 저주를 뜻합니다.
⑵어두운 곳입니다. 마8:12절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⑶세세토록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영원한 고통입니다.
⑷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입니다. 사람이 너무 고통스러우면 이를 갈게 됩니다. 엄청난 괴로움을 참을 수 없어서 이를 갑니다. 마13:50절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⑸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입니다(막9:48).
⑹하나님이 없는 곳입니다.
⑺누가 그 지옥을 갑니까?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7. 하늘에서 내려온 성, 천국은 어떤 곳인가?

 

⑴밤이 없는 곳입니다. 밤은 죄악과 공포의 상징입니다. 밤은 위험합니다. 주님의 영화로운 빛이 천국의 구석구석마다 비취시므로 밤이 없습니다.
⑵질병과 고통이 없는 곳입니다. 어떤 사람은 고통이 너무 심해서 빨리 죽게 해 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도 있고, 정신적인 고통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암병, AIDS병, 신경성 질병 때문에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이런 고통이나 질병이 없습니다.
⑶죽음과 슬픔이 없는 곳입니다. 세상에는 슬픔이 가득 차 있습니다. 슬픔이 손 못 대는 가정이란 세상 아무 데도 없습니다. 거리에서 만나면 반갑게 웃어 주지만 그 웃음 뒤에는 쓰라린 상처와 슬픔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일러라' 복음성가 가사 중에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슬픔도 없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승리만 있네. 고통은 모두 다 사라져버리고 영광만 가득하겠네' /할/ 여기 '지나갔음이라'는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모든 악한 것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흔적도 없다는 뜻입니다. /아멘!/
⑷염려와 근심이 없는 곳입니다. 세상에는 근심과 걱정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사업 때문에, 자식들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온갖 염려와 근심이 끊일 날이다.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 스위스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제일 많다고 합니다. 천국에는 염려와 근심이 없습니다.
⑸유혹과 죄가 없습니다. 아무리 살기 좋은 나라라도 마귀의 유혹의 역사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사단의 음모가 없는 곳입니다.
⑹바다가 없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바다가 없다는 것은 폭풍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인생의 풍랑이 없는 곳입니다.
⑺천국엔 예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에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으리라"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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