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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날개를 달자! (시 55:1-8)

by 【고동엽】 2022. 2. 6.

믿음의 날개를 달자! (시 55:1-8)

 

어느 주일 아침 예배시간에 자칭 믿음이 좋다는 성도가 맨 앞줄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설교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데 그가 왠지 신발 한 짝을 벗는 것입니다. 예배 중에 그가 이처럼 기이한 행동을 하자 사람들이 소리를 죽이며 웃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모두 그에게 쏠려 있었습니다. 신발을 벗은 그 성도는 다시 양말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설교를 중단하고 '무슨 일입니까?' 물었습니다. 그 성도는 '별일 아닙니다. 양말 한 짝을 뒤집어 신은 것을 발견해서요.' 기가 막힌 목사님이 점잖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님 예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양말을 고쳐 신어 야죠?' '아닙니다. 목사님! 잘못된 게 있으면 당장에 고쳐야지요. 목사님의 방금 설교에도 절대로 뒤로 미루지 말라, 지금 당장 행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사람은 정작 행해야 할 것은 뒤로 미루는 사람입니다. /할/ ◀제목소개!▶

 

사람들은 인생의 행로가 평탄하기를 원합니다. 순풍에 돛단배처럼 잘 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어찌 세상살이가 그렇습니까? 원치 않는 인생고의 답답한 일들이 우리 앞에 가로막을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질병의 문제가, 어떤 사람은 사업의 문제가,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의 문제가 있습니다. 별의별 일들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이럴 때 누구 나가 그 답답한 환경 가운데서 새처럼 훌훌 날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이 시편은 다윗이 쓴 작품입니다. 어떤 환경에서 썼습니까? 나라가 정변이 일어났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쿠데타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 주동이 누구인고 하니 자기 아들 압살롬입니다. 그가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었던 다윗의 오른팔 격인 모사 아히도벨이 배신하여 원수 편에 서서 반란군을 진두지휘하고 질풍같이 쳐들어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 왕이 맨발로 왕궁을 빠져나가면서 절규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가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은 '다윗의 탄식시'로 자식과 친구의 배신을 통한 애절한 탄식의 기도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배반을 많이 경험합니다. 같은 직장의 동료들과 상관들로부터 많은 배신감을 느끼며 살기도 합니다.
요즈음에는 아예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한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되는 깊은 배신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회사나 동료로부터 당하는 배신은 친구에게 당한 배신에 비해 별로 큰 충격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까운 친구에게 당하는 배신은 인간성에 대한 배신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혹독하고 괴롭습니다. 그 보다 더 아픈 배신이 있습니다. 자기의 자식에게 당하는 배신입니다. 본문의 다윗은 바로 친구에게 배반당한 후, 그리고 그 아들 압살롬에게 배신을 당하고 그 상처를 싸맬 수 없어 괴로워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1. 본문의 표제를 생각해 보자!

 

'다윗의 마스길'은 다윗의 인생 경험을 통한 성도들에게 주는 '교훈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영장으로 현악에 맞춘 노래'는 그 당시 반주로 '현악으로 하느냐? 관악으로 하느냐? 타악기로 하느냐?' 거기에 따라서 그 내용을 대게 짐작해 볼 수가 있습니다.
반주를 현악기로 할 경우에는 그 내용이 대개 '깊은 애수에 젖은 내용'입니다. 관악기의 경우, 나팔을 부는 것이니까 대개가 '승리를 찬양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타악기의 경우 너무 감사하고 감격해서 '감격을 크게 표현'하려고 할 때 주로 타악기로 반주를 했다고 합니다.
본문은 현악기를 쓴 것을 보면 벌써 이 내용이 조용하게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심령을 토해놓는 것임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2. 다윗은 어떤 상황에서 본문을 쓰게 되었는가? 그 배경을 알아보자!

 

다윗에게는 여러 아들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특히 압살롬은 보통 아들이 아닙니다. 키도 크고 얼굴도 준수하고 주도면밀한 계획성을 가진 아들입니다. 앞뒤를 제어 보니 후계대권주자가 솔로몬에게 갈 것 같아 미리 그 대권자리를 찬탈하려고 세밀한 계획을 세운 뒤에 그의 아버지에게 가서 '헤브론성지에서 특별 기도를 하고 오겠다'고 하니 대견하게 여긴 아버지 다윗이 쾌히 승낙하고 오히려 모든 준비까지 신경을 써 주었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그곳 헤브론에서 혁명정부를 세우고 잘 훈련시킨 군대를 이끌고 질풍같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진격해 오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이 황급히 기드론 시냇가를 건너 감란산으로 피신을 가는데 급한 나머지 맨발로 뜁니다.
왕을 따르는 무리는 늙어빠진 신하 몇 명만이 따르고, 이 광경을 본 백성들은 울며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때 소식이 왔는데 그 압살롬 혁명군에 아히도벨이 포함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깜짝 놀랍니다. 왜냐하면 그는 다윗의 일등공신으로 가장 믿고 아끼던 신하였으며 다윗에게 충성맹세를 했던 그런 신하입니다. 그는 대단한 모사꾼입니다. 그러니까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 공명처럼 전술에 능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배신을 한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이 삼하15:31절에서 이런 기도를 합니다. '다윗이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참으로 다윗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는 아주 급한 때에도 간단한 기도이지만 하나님 앞에 아히도벨의 모략을 막아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식놈인 압살롬도 압살롬이지만 13절에 보면 아히도벨에게 배신당함이 더 기가 막힌 것 같습니다. 배신한 사람이 누구라고 합니까?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 나의 동무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여러분, 어떻게 보면 가까운 사람이 더 무섭습니다.
▶로마의 시저도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당했습니다. '브루투스'는 원래 줄리어스 시저의 친구였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태어났고, 로마의 정치가요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주전 48년 '폼페이'가 시저를 대항하여 내란을 일으켰을 때, 그들 편이 되어 시저를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폼페이는 패배하였고, 시저는 '브루투스'를 용서하고 그에게 현 북부 이탈리아 가울 지역과 도시들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또 '부루투스'는 주전 44년 다시 '롱지누스'에게 설득 당하여 약20명의 자객단과 함께 로마 상원으로 들어오는 '시저'를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그때 시저는 '오 너 브루투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배신의 치를 떨고 죽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고 믿었던 사람, 가까이 지냈던 사람에게 배반을 당하면 마음은 더 아프고 쓰린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의 그런 배신감입니다.

 

3. 다윗의 그 당시 심정 상태를 한번 체크해 보자!

▶1절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다윗의 얼마나 다급했으면 하나님께 '숨지 말라'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응답해 달라고 합니다. 다윗은 단지 기도 자체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응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어라' 주님의 말씀을 확실히 믿고 구하고 바라본 것입니다. /아멘!/
다윗은 여기서 흥미롭게도 주님께서 '숨지 마시기를' 구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나님께서 숨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숨다'는 '무시하다, 혹은 외면하다'는 말로 '하나님, 저의 기도를 무시하지 마시고, 외면하지 말아달라'는 기도입니다. 무정한 사람은 이웃의 고난과 재앙을 회피합니다. 친구가 어려움을 당해도 도와줄 생각이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자신을 못 본체 하지 말라고 기도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이 '숨으신다면' 얼마나 두려울까요? 다윗은 지금 이 점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2절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하오니" 여기 '탄식하오니'는 '내가 지금 혼란스럽습니다. 내가 괴롭습니다. 내가 지금 불안합니다'라는 그의 심정을 토해 낸 것입니다.
▶4절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미쳤도다" 여기 보면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한다'고 했습니다. 여기 '심히 아파하며'라는 말은 원문을 보면 '심히 꼬인다'로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임산부의 고통을 일컫는 말입니다. 임산부들이 통증이 오면 장(腸)이 뒤틀린다고 합니다. 그것을 일컬어서 '해산의 고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해산하는 여인들은 온몸을 뒤틉니다. 왜냐하면 장이 꼬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그 때의 그 고통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5절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황공함이 나를 덮었도다" 여기 '황공함'은 '진동하다'의 뜻을 지닌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사지가 덜덜 떨릴 정도의 답답한 환경' 속에서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그의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내적인 것이고, 떨림은 두려움이 외부로 나타남을 의미합니다. 지금 다윗이 떨고 있습니다. 욥도 이런 두려움에 떨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욥21:6절에 "내가 추억하기만 하여도 답답하고 두려움이 내 몸을 잡는구나"
그러나 다윗은 절규로 끝나고 있지 않습니다. 이 답답하고 숨막히는 현실에서 자유 할 수 있는 출구를 찾고 있습니다.

 

4. 내가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6-8절 "나의 말이 내가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거하리로다(셀라) 내가 피난처에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시57:1절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여러분, 사실 다윗은 영광의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신앙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인생으로나 정치가로서 그리고 한 남자로서 보기 드물게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오늘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흠모하고 존경하는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도 한때 죽음의 골짜기를 드나들었던 사람입니다. 성경의 표현대로라면 그는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를 여러 번 통과한 사람입니다. 그때마다 다윗은 믿음의 날개로 훨훨 떨고 일어난 줄 믿습니다. /아멘!/
▶저는 이 시간 우리 성도들이 날개 있는 비둘기처럼 이 험악한 인생 광야를 날아가서 편히 쉴 수 있는 삶이 되시기를 바라면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행여나 여러분들 중에서 마음에 근심으로 편치 못하신 분이 있습니까? 탄식과 한숨이 있습니까? 답답한 일들로 우겨 쌈을 당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새장에 갇힌 새처럼 가정생활이 답답합니까? 왠지 마음이 울적하고 공허하여 삶의 허무를 느끼십니까?
이 시간 믿음의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며 하늘의 참 평화를 얻는 사람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만드신 생물의 세계를 보면 세 종류로 분류됩니다.
⑴땅 속에서 미생물과 곤충이 살고 있습니다. ⑵땅 위에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⑶공중에는 하늘을 나는 새들이 있습니다.
인간들의 삶을 보면, 땅 속에서 사는 미생물처럼 땅의 것으로 만족하며 땅만 바라보며 사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하늘을 나는 새처럼 살아가는 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 길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법을 보면 '걸어가는 사람이 있고, 열심히 뛰는 사람이 있고, 날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류의 교통수단의 발달을 보면 도보로 걷는 시대에서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시대로 그리고 오늘의 시대는 비행기를 타고나는 시대로 발달했습니다.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사람들은 인생도 날아다니는 삶의 방법을 배운 사람들입니다. 인간이 걷거나 달리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조그마한 새들이 수천 마일을 날을 수 있는 것은 몸에 날개가 있기 때문입니다. /믿/
여러분, 인생들의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노력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걸어도, 뛰어도, 달려도, 보 잘 것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위대한 삶의 비결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무엇입니까? 인생들에게 '믿음의 날개, 신앙의 날개'를 주었습니다. /할/
오늘날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날개를 달고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세계를 정복하며 위대한 승리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할/
믿음은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달아주신 날개요 은총의 선물입니다. 요일5:4절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또 5절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요16:33절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 막9:23절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할/

 

믿음이란 반드시 상대가 있습니다. 믿음의 상대가 사람일 수도 있고, 권세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고, 기업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믿음의 상태입니다. 또 믿음의 상대가 하나님일 수도 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마11:28절이하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우리 주님은 인생들에게 참된 평안을 약속하시고 초청하셨습니다. 그런데 반듯이 '멍에를 메고 배우라 그리하면 쉼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여기 '배우라'는 말씀에는 몇 가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①'예수를 바라보라'는 의미입니다.

히12: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할/ 왜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까?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기 '믿음의 주'라는 말은 '앞서 인도하는 자' 또는 '믿음의 창설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는 믿음을 창설하신 분이고,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라는 뜻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따라가고 예수를 닮으려면 믿음을 창설하신 예수를 바라보면 됩니다. /아멘!/ 여기 '온전케 하신다'는 말은 '완성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약한 존재를 강한 존재로 완성해 주시고, 깨어진 것들을 싸매어 주시고 찢어진 것들을 한 데 묶어 하나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천국 백성 되게 하시고, 영원한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주십니다. /믿/
여기서 '예수를 바라본다'는 것은 단순히 관망하거나 구경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곁 눈 팔지 않고 목표물만 응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바라본다는 것은 눈으로는 주님을 바라보고, 귀로는 주의 말씀을 듣고, 입으로는 주의 말씀을 전하고, 가슴과 머리로는 주님을 느끼고 생각하는 전 인격적 앙망과 교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아야 예수를 닮습니다. 예수를 바라보아야 믿음의 길로 인도를 받습니다. 예수를 바라보아야 구원을 얻습니다(민21:8-9). 예수를 바라보아야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예수를 바라보아야 믿음의 능력을 얻습니다.
그래서 앞서간 믿음의 영웅들도 예수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힘있는 믿음의 날개를 달수가 있습니다.


②'날마다 예수를 닮으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볼 때, 거울을 봅니다. 그래서 흐트러진 옷맵시를 고치고 특히 여자들은 화장을 고칩니다. 고치는 것은 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화장만 고치지 말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누군가를 미워했을 때'에도 거울을 보고, 마음을 고치고 모습을 고쳐야 합니다. /믿/
주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주관이나 생각을 미루고 주님의 생각을 앞세우고 그 생각을 따르는 일입니다. 작가 '쉘던'은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수 닮은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 유명한 가수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언제 어디서나 돈을 벌고 인기를 얻기 위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은혜 받고는 '예수님이라면 이때 여기서 이런 노래를 불렀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 유명한 배우가 은혜를 받고 생각하기를 '아무리 출연료가 비싸고 배역이 좋아도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먼저 생각하고 결정했다고 합니다. 돈을 많이 버는 재벌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닮기 전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 버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손을 댔습니다. 그러나 은혜 받고 나서는 주님이라면 그 사업을 했을 것인가 그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삶의 자세가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면 이 일을 했을 것인가? 이 말을 했을 것인가? 거기를 가실 것인가? 그 사람을 만날 것인가? 바울은 고전11: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믿음의 날개가 달아 집니다. /할/


③'내게 배우라' 이 말씀 속에는 '날마다 주님을 위해 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무엇인가를 위해 살아왔습니다. 사업을 위해서, 직장을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 살았습니다. 여기에서 무엇을 얻었습니까? 물론 약간의 명예도, 지위도, 성공도, 재산도 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나에게 영생을 주지 못합니다.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한 어떤 중년 남자가 있었습니다. 휴가도 휴일도 회사를 위해 반납하고 수 십 년 동안 오로지 회사만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 덕으로 회사의 중역이 되었습니다. 중역이 된 다음부터는 더 충성을 다해야 된다는 사명감 때문에 밤도 낮처럼 일하고 주일도 회사 일을 핑계로 지키지 않았고, 가정도 회사일 다음으로 둔 채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 앞에서 일어난 어떤 문제 때문에 타의에 의해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 몸을 바쳐 일하던 회사에서 쫓겨난 그가 한 말은 '죽일 놈들 이럴 수가 있는가?'라는 탄식이었습니다.
여러분, 몸을 바치면 몸을 바친 만큼, 삶을 바치면 삶을 바친 만큼, 시간을 바치면 시간을 바친 만큼, 돈을 바치면 돈을 바친 만큼 보다 더 풍성하게 채우시고 보상하시는 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주님을 위해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믿음의 날개를 달아 주십니다. 그 날개를 가지고 그 어떠한 인생 고에서도 탈출할 수가 있습니다. /할/
주님은 마28:20절에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믿/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뜻은 ⑴날마다 나를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⑵날마다 나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⑶날마다 나의 쓸 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할/
누가 우리 곁에 항상 있습니까? 언젠가는 부모도 떠나갑니다. 언젠가는 남편도, 아내도 떠납니다. 졸지에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보낸 어떤 부인은 '백년 가약 맺어 놓고 자기 먼저 갔다'고 울었습니다.
세상 떠난 아내의 하관 식에서 어느 남편도 '바보같이 자기 먼저 가면 나는 어떡하느냐?'며 비통해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두 다 떠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만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아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믿음의 날개가 달아 집니다. 오늘 여러분 주님이 달아주시는 믿음의 날개를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5. 믿음의 날개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무엇입니까?

 

①기도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날며 살 수 있는 신앙의 날개는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신앙은 날개를 달고 걸어 다니는 새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엄청난 믿음의 날개를 기도로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주인공 다윗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16-17절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소리를 들으시리로다" 얼마나 확신 있는 기도입니까?
내 인생의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와 나의 부르짖는 간구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확신이 내 인생의 짐을 해결하는 첩경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믿는 자에게 주어진 최상의 특권입니다. 응답은 기도하는 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입니다.
여러분! 기도가 살아야 내 인생이 삽니다. 기도가 살아야 마귀가 도망갑니다. 기도가 살아야 승리가 찾아옵니다. 기도가 살아야 행복이 찾아옵니다. 기도가 살아야 주님이 여러분을 위해 일하십니다. /할/
가장의 기도는 온 가족의 짐을 해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가 살아야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의 짐을 해결하도록 열어놓으신 방법이 기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멘!/

▶기도가 무엇인가?
⑴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의 향기'입니다.
계5;8절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금 대접에 가득히 채워진 향은 성도들의 믿음의 기도를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에 살던 믿음의 선진들은 희생의 제물을 잡아 태워서 향기를 하나님께 드렸지만, 신약시대 성도들은 믿음의 기도의 향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⑵기도는 하나님과 '다정하게 속삭이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말은 '히'어로 '라카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하나님과 귓속말로 정답게 속삭인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귓속말로 속삭이는 것은 아무하고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친한 사람, 연인사이에만 이루어지는 은밀한 대화입니다. 우리는 조용한 장소에서 사랑하는 자와 다정하게 속삭이듯이 하나님과 다정하게 속삭이듯이 사랑을 고백하고 소원들을 아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축복이고, 행복입니다.
⑶기도는 하나님께 '간구, 탄원, 강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르짖어 간구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시145;18절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 도다" /할/
⑷기도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대화가 중요합니다. 대화가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대화가 있는 집안입니다. 부부간에 대화!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 형제간의 대화, 이웃 간에 대화가 바로 평화요, 화목이요, 축복입니다. 정치도 대화로 풀어야 순리입니다. 지금 이북과 현대가 대화가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대화는 쌍방이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족이나 이웃과 대화를 통하여 더욱 더 가까워지듯이 성도들도 하나님과 기도를 통하여 가까워지며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⑸기도는 성도들의 '영적인 호흡'입니다.
'마틴 루터'는 '기도하지 않고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숨쉬지 않고 사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했고, '매투 헨리'는 '호흡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없듯이 기도 없이 사는 성도는 죽은 성도이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호흡은 생명입니다. 호흡이 끊기면 죽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하지 않은 성도는 영적으로 죽은 성도이기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됩니다.
⑹기도는 '만능의 열쇠'입니다.
하늘에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약5;17-18절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마18;18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그렇습니다. 날지 못하는 날개는 더 고통스럽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신앙, 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의 특권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환경이 어렵습니까? 칠흑 같은 어두움이 가로 막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까? 살기가 곤고합니까? 가슴이 답답하고 아무 소망이 없습니까?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 하나님이 능력의 날개를 달아주십니다. 그 날개 가지고 훨훨 자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수 만 가지 복을 받는 비결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은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면 채워주십니다. 치료해 주십니다. 막아 주십니다. 해결해 주십니다. 기도는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비결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통로입니다.
렘29:12-13절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기도하면 뭐니뭐니해도 '죠지 물러' 목사님이 생각납니다. 뮬러 목사님은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예수 믿는 것이 귀찮고, 세상이 좋아서 세상과 짝하며 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의 주변에는 깡패, 사기꾼, 도둑놈, 도박꾼들만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아들을 위해 그의 어머니는 기도하다가 그가 16세가 되던 해 죽고 말았습니다. 죠지 뮬러는 어떤 사기죄로 감옥에 들어갔는데 배가 고파서 간수에게 먹을 것 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간수가 가져다 준 것이 바로 성경이었습니다.
뮬러는 감옥에서 성경을 읽었고, 눈물을 쏟으면서 회개를 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90평생 고아들을 위해 살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의 생애는 93년이었는데 기도의 응답이 무려 5만 번이나 된다고 합니다. 성경은 150번 통독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마6:34절의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는 주님의 산상보훈의 말씀을 생활의 신조로 삼고 기도를 생활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기자들의 물음에 거침없이 '기도생활이 나의 본업이요, 부업은 고아를 돌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죠지 뮬러에게 응답해 주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아멘!/


②믿음의 날개가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은 '봉사'입니다.

여러분 주를 위해 일해 보십시오, 신이 납니다. 맛을 봐야 맛을 안다고 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봉사하고 얻어지는 기쁨,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신앙이 자라기를 원하십니까? 주를 위해 일하십시오, 전도하면 새로운 힘이 생깁니다. 구역 식구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가 나옵니다. 교회를 쓸고 닦아 보십시오, 내 집을 쓸고 닦는 것보다 더 기분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청소한다는 것, 복중에 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를 기억하시고 일일이 행위 록에 기록하십니다. 성가대원들 기쁨으로 봉사하십시오, 반주자, 지휘자, 사명으로 행하십시오, 여러분의 생애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③믿음의 날개는 '섬김'에서 힘을 얻게 됩니다.

신앙의 가장 좋은 자세는 섬김입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다가 이상한 진리에 들어가 이단에 빠진 자가 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다가 신비주의에 빠져 탈선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섬기는 종으로 죽도록 충성하다가 탈선한 사람은 이단이 된 일이 없습니다. 열심히 봉사한 사람은 가정이 열리고 사업이 열리고 인생이 열리고 자손만대가 복을 받습니다. 성경의 주인공들이 다 이런 삶을 살다가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었습니다. /믿/


④믿음의 날개는 '순종'에서 힘을 얻게 됩니다.

성경의 순종의 주인공은 역시 아브라함입니다.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는 시험은 사실 순종하기 어려운 시험, 감당키 어려운 시험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라는 것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고, 도저히 순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명령에도 주저하지 않고 즉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일 가라, 모레 가라고 시한을 정해주시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군대 갔다가 휴가를 나옵니다. 아빠, 엄마는 그 아이하고 한 시간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하며 떠나보낼 때, 어떤 때는 단 몇 분이라도, 아니 몇 초라도 더 손을 붙잡고 싶어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일 가라, 모레 가라는 시간에 대해 아무런 코멘트를 달지 않았는데도 그는 다음 날 일찍이 일어났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즉시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듣는 것으로만 만족하면 열매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진실된 성도는 '왜'라는 의문을 갖지 않는다. 진실된 성도는 '왜'라는 의문을 십자가에 못박고 의문 없이 순종하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순종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여호와 이레' 준비된 축복을 받았습니다. 순종이 바로 믿음의 날개입니다. /할/

 

6. 이번에는 왜 믿음의 날개가 움직이지 못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①믿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다는 믿음만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또 믿음이 성장하려면 믿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의심하고 따지려고만 하지말고 믿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철학교수가 성경도 믿을 수 없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도 불신했습니다. 그런 교수가 여름철 수양회에 학생들과 같이 바닷가에 갔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잘 믿는 학생이 바닷가 한쪽에서 웅덩이를 파 놓고 바가지를 가지고 바닷물을 퍼 붇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 교수가 물었습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학생이 대답하기를 '지금 바닷물이 몇 바가지가 되는지 세어 보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교수는 그 학생에게 '어리석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학생이 말하기를 '교수님 바닷물을 이 바가지로 셀 수 없는 것처럼 이 바다를 지으시고 우주 만물을 지으신 그 광대하신 하나님을 바가지만한 우리 머리로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였더니 그 교수가 아무 말도 못하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신앙의 날개를 주십니다. 그 날개 가지고 자유를 일으키시기를 바랍니다.


②신앙의 날개를 쓰지 않으면 퇴화됩니다.

연장도 써야 합니다. 안 쓰면 녹이 습니다. 봉사를 쉬고 섬김을 쉬고 순종도 쉬면 그 믿음의 날개는 녹이 슬어버리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날개는 쓰지 않으면 퇴화됩니다.
▶기러기는 여름에 왔다가 가을에 떠납니다. 기러기 한 마리가 남쪽을 찾아가다가 옥수수 밭에 앉았습니다. 한참을 배불리 먹다가 생각하기를 '조금만 쉬었다 가자!' 그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조금 쉬었다 가자! 그러다가 찬 서리가 내리는 아침, 날개를 펴보니 날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몸에 살이 졌기 때문입니다. 그 기러기는 그만 그 겨울에 그 곳에서 얼어죽고 말았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도 무뎌집니다. 봉사하지 않을 때 우리의 신앙은 잠들게 됩니다. 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 말씀을 먹지 않으면 영적인 고갈이 오게 됩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 보십시오, 그 날, 그 날이 기쁩니다. 새롭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보다 더 잘 날 수 있도록 가끔 우리들의 보금자리를 흔드십니다. 마치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시키듯이 우리들에게도 그런 훈련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행여나 어렵고 캄캄하다 할지라도 참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지금까지 모든 사건은 인간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면서 오는 징계입니다. /믿/ 조심할 것은 신앙 안에서 날마다 겸손을 배우십시오, 사도바울은 '너희가 선 줄 알았거든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권면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믿음의 날개를 단 영혼은 이 세상은 이기고 승리합니다. 믿음의 날개를 강하게 달았던 사도바울의 승리의 고백을 우리 다 같이 읽고 마치겠습니다.
고후4:7-9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 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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