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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믿음)에 합당한 삶을 살자! (빌1:27-28)

by 【고동엽】 2022. 2. 7.

복음(믿음)에 합당한 삶을 살자! (빌1:27-28)

 

세상에서 최고의 지혜 자였던 솔로몬은 그의 전도서에서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운명의 세 때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들이 세상에 '태어난 날, 태어난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지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존재해 있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사건이고, 기적입니다. 그것이 생일날의 의미입니다.
둘째로, 일생을 마치는 날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죽는 날입니다. 히9: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 죽음은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있습니다. 이 날은 우리들이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사건입니다. 사람의 모든 일생을 마치고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곳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리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또 하나의 관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는가? 안 믿었는가?'입니다. 예수 믿는 자는 영생의 자리, 천국의 자리로 오르게 되고,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은 영벌, 지옥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단 천국 백성이 되었으므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행위의 심판이 있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얼마만큼 '믿음의 합당한 삶을 살았는가?'로 심판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행위의 심판대로 하나님은 상급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왕 우리가 예수를 믿을 바에야 하나님 앞에 가서 잘했다고 칭찬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 ◀제목소개!▶

 

참 행복한 교회 성도 여러분, 행복하시기를 원하십니까?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라는 것입니다. 신10:12절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면 행복은 부산물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믿/ 그럼 행복의 조건이 무엇인가?
⑴저는 첫 번째로 건강을 꼽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의 기본은 건강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출세했어도 건강을 잃어버리고 병실에 누워 있으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또 단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잠을 달게 잘 수 없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127:2절에서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⑵즐겁게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정신 없이 즐겁게 할 일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⑶항상 웃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웃을 일이 있을 때 웃는 것이야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웃을 일이 없을 때에도 항상 웃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의 조건입니다. 솔로몬은 그의 잠17:22절에서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모든 병의 67%가 스트레스에서 온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⑷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받는 사람도 행복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더욱 행복합니다. 식물도 사랑을 먹고 자라면 건강하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짐승도 사랑을 받으면 건강하고 행복을 느낀다는 실험을 오래 전에 버클리 대학에서 사랑과 생명의 관계성을 연구했습니다. 사랑을 주고받으면 오래 산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오래 살기를 바라면 사랑해 주여야 합니다. 또 솔로몬은 말하기를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5;17)고 했습니다.
⑸믿음과 소망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믿음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들어 있습니다. 믿음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을 막 살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삽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삽니다. /믿/


행16장을 보면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때 세운 교회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루디아를 중심으로 한 여자 성도들이 주축이 되어 바울의 선교사역을 적극 지원한 교회였으며 구라파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로서 그 의미가 큽니다.
빌립보라는 뜻은 '작은 우물'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원래는 그 지역의 유명한 금광이 하나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조그마한 지역이었는데 금이 많이 나오는 바람에 당시 마게도냐 왕 빌립 2세가 그곳을 정복해서 도시를 건설하고 자기 이름을 따서 빌립보라고 명한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를 개척한 사도바울은 그 교회를 위해 열심을 다했고 또 많은 애착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빌립보 교회에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 세상 적인 두 가지 풍조가 교회 내에 들어와서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하나의 풍조는 '쾌락주의'가 교회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 쾌락주의는 윤리적인 실천이나 절도 있는 삶을 무시하는 신앙 형태입니다. 어떤 정신인가하면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죄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살아가는데 윤리적인 것은 무시해도 된다는 삶의 태도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쾌락주의를 따르는 사람들이 삶의 무질서한 행위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죄 속에 빠지고 윤리와 도덕의 기준이 무너지고 아주 흥청망청 살아갔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쾌락주의자들의 주장은 인생은 아주 짧은 것인데 괜히 고민하면서 복잡하게 살지 말고 쉽고 단순하게 살며 인생은 즐기며 살자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죽음 따위는 생각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내가 지금 살아있으니 죽음 따위는 없는 것이고, 살다가 내가 죽은 후에는 이미 죽어버렸으니 죽음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쾌락주의자들의 주장입니다.
당시에 그런 사상이 빌립보 교회를 휩쓸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그런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쾌락주의자들은 인생을 복잡하게 살지 말고 진지하게 살려고도 하지말고 그냥 쉽고 단순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치 아프게 죽음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말고, 심판이니,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일로 심각해지지도 말고 괜히 장래나, 미래를 생각하느라고 오늘을 수고롭게 살 것도 없고 질서를 지키느라 억압된 생활도 하지말고 그냥 되는 대로 살다가 가자는 풍조입니다.
그렇게 되니 그 세상이 얼마나 혼란이 왔겠습니까? 그런데 알고 보면 이런 사상은 그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 현대인들에게도 그 사상이 팽배하고 있습니다. 내 것 가지고 내가 쓰는데 누가 뭐라고 하느냐? 흥청망청 '이대로!'하면서 축배를 드는 족속도 있다고 합니다.
특히 있는 집 자식들이 이 풍조에 흠뻑 젖어있습니다. 돈 많은 부모를 둔 덕에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차, 굴리면서 온갖 쾌락을 쫓아다닙니다. 그들에게는 수고롭게 돈을 벌어야 하는 염려도 없고, 문제가 생기면 배경 좋은 부모가 모두 해결해 주고 그래서 밤낮 없이 마시고 즐기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질주하는 아이들을 보고 폭주족이라고 합니다. 이 아이들을 붙잡아 놓고 경찰이 '그러다가 사고가 나서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신나게 달리다 죽으면 그만이지! 무슨 문제냐?'고 한답니다.
쾌락주의자들은 어떤 질서, 책임, 윤리가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그래도 세상의 빛으로 소금으로 살 책임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죽음 뒤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당시 이런 무질서한 쾌락주의자들은 강력하게 경고한 것입니다.

 

▶또 하나의 풍조는 금욕주의자(율법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쾌락주의와는 정 반대자들입니다. 금욕주의를 율법주의라고도 합니다. 그들은 엄격한 금욕생활을 했고 엄격한 삶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할례가 구원의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도바울의 가르침과 혼동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구원은 할례나 어떤 행위 때문에 얻은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생명의 구주로 믿는 순간에 오는 축복입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의 금욕주의자들은 오직 세례만이 구원의 필수조건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어떤 공을 세워야 한다고 믿고 구약 성경에서 속죄 일 날 금식하라고 했는데 어떻게 일 년에 하루 금식해서 되느냐고 했습니다. 더 공을 세우기 위해서 일주일에 월요일과 목요일 이틀씩 철저하게 금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구원은 어떤 행위나 공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셔야 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야 구원을 얻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대부분 경건의 생활을 잘못 이해하고 자신을 학대하고 또 사람들은 많이 만나면 죄짓는다고 골방생활을 들려했습니다. 그러니까 불교에서 하는 수양생활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아주 자기 자아가 강합니다. 그래서 아주 편협합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서 '나처럼 살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죄인으로 취급받습니다.
물론 신앙인은 생활이 엄격해야 합니다. 절제가 있어야 하고 경건한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기를 학대하면서까지 수도하고 금욕하고 세상을 아주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기독교 신앙은 아닙니다. 이것은 쾌락주의와 함께 아주 좋지 않은 극단주의입니다.
빌립보 교회가 바로 이같이 상대적인 두 신앙 형태로 대립해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유분방한 신앙형태이고, 또 하나는 아주 엄격한 통제의 삶은 강조하고 율법주의적 신앙형태입니다. 너무 자유주의와 너무 율법주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그들에게 강조한 것이 바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오직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일심으로 그리고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고 했습니다.

 

1. 복음을 바로 이해할 때 그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복음에 대하여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 기쁜 소식'입니다. 이 복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까? 그리스도가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문제가 어디서 왔는지 아십니까?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창1:2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러니까 만물 가운데 유일하게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그곳에서 풍요와 부요와 능력과 은혜와 결실을 누리는 최고의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생육, 번성, 충만, 정복하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떠난 데서부터 인간의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창3장에 아담이 사탄의 꾐에 넘어가 하나님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됨으로 영적인 죽음에 이르게 되었고, 파멸로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이 물밀듯 밀려오게 되었고, 인간의 안식과 평안과 참 행복을 빼앗겨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롬3: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인간은 이때부터 사탄에게 묶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의 지배아래 놓이게 되었고, 사탄의 종노릇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엡2:2절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이때부터 인간들은 미신에 빠지고 우상에 빠지고 점을 치고 굿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무당 집에 가서도 점괘가 안 나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소속이 하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문제가 어디에서 왔다고 보십니까? 모든 것이 영적인 문제입니다. 세상이 문명, 문화가 이렇게 찬란하게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의 마음속에 불안이 오고 허무가 오고, 우울증, 노이로제 분별중이 옵니까?
지식이 있고, 재물이 있고, 가정이 있는데도 왜 인생이 허무합니까? 한마디로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 것이 인간의 근본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신 해결 자로 오셨습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셨는가? ▶하나님을 떠난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죄로 인한 저주의 문제를 해결하셨고, ▶사탄에 묶여 끌려가는 문제를 해결자로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메시아'라는 말인데 '기름부음을 받은 3직'을 나타내는 말로 '선지자, 제사장, 왕'직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①주님은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요14: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께로 갈 자가 없습니다. 행4:12절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②주님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갈보리 산상에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인간의 죄 문제를 청산하시려고 죽은 것입니다.
롬8:1-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주님이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신 것입니다.
③주님은 만 왕의 왕으로 오셔서 사탄의 권세를 겪으셨습니다. 요일3:8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또 창3: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예언하신 그분이 바로 여자의 후손 즉,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인간의 근본문제가 어디서 왔는가를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이 사건이 모든 문제를 진단할 수 있는 키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문제, 죄 속에 빠진 문제, 사탄의 지배 하에 마귀의 자녀로 살아가는 문제, 이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믿/
그렇습니다. 하늘가는 길을 열어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십자가에서 구원하여 천국백성 삼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 죄로 인한 저주와 멸망의 자리에서 건져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사탄의 종노릇하는데서 우리를 건져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확실히 믿고 깨닫고 진심으로 그 분을 영접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 받습니다(요1:12).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아멘!/ 신분의 변화가 옵니다.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모든 죄와 저주로부터 즉시 해방을 받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모든 문제가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요14:13-14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아멘!/
우리가 복음을 바로 알 때, 복음의 합당한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 기쁜 소식입니다. 그 복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아갈 때, 우리는 복음의 합당한 자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인생들을 초청하고 계십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은 바로 주님의 초청에 응하고 내 삶을 그분께 맡기는 것입니다. 마11:28-29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할/
세상은 참 살기가 좋아졌습니다. 옛날에 비하면 생활환경도 좋아졌고, 풍요로워졌고, 문화도 많이 발달되어서 뭐 부족함이 없는 것 같은데도 현대인들에게 참 고민도 많고 겁도 많습니다. 학생들을 보면 임시 때문에 참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입니다.
어디 학생들뿐입니까? 뒷바라지하는 학부모들의 짐도 만만치 않습니다. 또 부모들에게는 생활의 짐이 무겁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 때문에, 직장인들은 또 직장 안에서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생각하면 참 고달픈 인생입니다.
그런데 요즘 또한 건강에 대한 고민이 무거운 짐으로 다가옵니다. 무슨 병명이 그렇게도 많은지 어제까지도 건강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불치의 병에 걸렸다고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참 무서운 일입니다.
그런가 하면 늙은 것도 고민입니다. 머리가 조금만 희어져도 그것을 감추느라고 야단입니다. 여자들은 주름살 커버하느라고 열심히 화장을 합니다.
어떻게든 인생의 이래저래 고달픕니다. 고민이 많고 짐도 많습니다. 이 세상은 얽히고 설킨 짐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짐 다 가지고 오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이 복음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생명수와 같은 말씀입니다. '오라 내가 쉬게 하리라. 무거운 짐 다 벗어버리고, 내가 주는 가벼운 짐을 지란 말'입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이것이 진정한 안식입니다.
▶이 말씀 속에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①너희들의 문제는 내가 다 해결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다 내게로 오라'는 말씀은 다정한 초청의 말씀입니다만 이 말씀 속에는 '너희가 정말 나를 믿느냐? 그렇다면 너희 근심, 걱정, 염려, 불안 다 내게 맡기라! 부질없이 짐을 지고 근심하지 말고 다 네게 맡기고 벗어 버려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지고 있는 짐이 너무 무겁다'고 늘 한탄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그 짐 맡아 주시겠다고 합니다. 얼마나 축복입니까? 여러분의 짐은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께 맡기십시오, 가정의 문제, 생활의 문제, 자녀들의 문제, 건강의 문제, 모든 것을 다 믿음으로 맡기고 기도하십시오, 맡기는 방법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고독한 것은 주변에 사람은 많은데 내 마음의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내게로 오라! 그 무거운 고민을 다 털어놓아라'고 했습니다.
②쉼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 쉼은 안식과 평안입니다. 진정한 쉼은 예수께 가야 얻을 수 있습니다.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여러분 진정한 참 안식과 쉼터는 주님 안에서 가능합니다. 그분만이 영혼의 안식처입니다. 그래서 성전은 신앙인의 고향이고 안식처입니다. /믿/아멘!/
③감당할 힘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기본적인 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맡기고 산다지만 우리들의 기본적인 짐은 우리가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내 안에 오셔서 순간마다 사건마다 환경마다 우리들 도와주십니다.
롬8: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의 모든 세상사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과정입니다. 절대 망하는 길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의 처지가 어떻습니까? 그 환경을 통해서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다만 우리가 '복음에 합당한 자로 살 때' 얻어지는 축복입니다.
④깨달음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이 말씀 속에는 아주 좋은 깨달음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때로는 몰라서 무지해서 가벼운 짐인데도 무겁게 지고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생각에 따라서 짐이 무거울 수도 가벼울 수도 있습니다. 깨닫고 보면 모든 것이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됩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은 여러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귀한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영접하고 바로 살 때 하늘의 엄청난 축복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할/

 

2. 복음에 합당한 삶은 어떤 삶인가?

 

복음의 합당한 삶 속에도 빨리 빨리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①회개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눅19장에 예수께서 여리고를 지나시고 계셨습니다. 이제 며칠 있으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즈음입니다. 이 때 예수님을 만나지 못 하면 영영 만나지 못 하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여리고에 삭개오라는 세리장이 있었는데 그는 부자였습니다. 그가 예수를 보고 싶었는데 키가 작아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인파 속에서 특별하게 행동하는 삭개오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뽕나무 밑으로 가시더니 말씀하시기를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을 듣고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고 예수님 앞에 회개부터 했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삭개오가 이렇게 회개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할/
회개는 빨리 할수록 좋습니다. 회개를 늦게 하면 할수록 죄가 자리를 잡습니다. 죄에 만성이 됩니다. 죄는 반복성이 있고 성장성이 있고 전염성이 있기에 조금이라고 빨리 회개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암 균이 몸 속에 들어오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고치면 완전 정상이 됩니다. 초기에 발견하여 고치면 완전 정상이 됩니다. 그러나 조금 늦으면 고칠 수가 없습니다. 암이 자리를 잡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죄를 버리는 것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②영혼 구원 즉 전도는 빨리 할수록 좋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우리 인생의 운명을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약4:14절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무디 목사님이 한번은 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할 때였습니다. 웨이터의 얼굴이 너무나 우울하고 무슨 고민이 잔뜩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성령께서 '저 사람에게 전도하라'는 영감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전도하려고 하니 음식점에 손님들이 많아서 왔다 갔다 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데 붙들고 전도하면 영업 방해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성령님께 말하기를 '하나님! 다음에 한가할 때 전도하겠습니다.' 그리고 돈을 지불하고 돌아오는 데 성령님은 빨리 전도하라고 강권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던 길을 돌이키고 다시 음식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인이 음식점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보니 식사하고 방문 돈을 내고 나간 손님이 다시 오는 것을 보고 물었습니다. '왜 다시 오십니까? 계산이 틀렸나요?' '아니요. 지금 내게 음식을 나르던 웨이터를 만나 전도하고 싶어서 옵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나가고 이층으로 올라가 목을 매어 자살해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문을 닫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전도자 무디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5분 차이로 천국으로 인도하지 못 했습니다. 그 후 무디는 성령께서 마음에 부딪치기만 하면 전도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도했다고 합니다. 전도는 빨리 하며 할수록 좋습니다.
▶전도하지 않는 것은 세 가지 죄입니다.
⑴전도하지 않는 것은 주님의 가장 큰 명령에 '불복종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막16:15절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명령이 지상명령입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불순종하는 것은 죄 중에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회개의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기가 싫었습니다. 왜? 니느웨는 이스라엘의 원수국인 앗수르의 수도이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원수의 나라가 구원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니느웨로 가는 배를 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풍랑이 일었습니다. 제비를 뽑아 보니 요나였습니다. 요나를 바다로 던졌습니다. 고래가 삼켰습니다. 고래는 요나를 니느웨에 토하여 놓았습니다. 결국은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라는 곳에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풍랑이 일어납니다. 오늘 당신의 니느웨는 어디입니까? 오늘 당신의 다시스는 어디입니까? 오늘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여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⑵전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태만하게 한 나태 죄'입니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할 때에 로마인들은 여기저기를 점령하면서 노예들을 포로로 잡아 왔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시킨 일이 길을 닦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노예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가 만든 길이 망가지면 그 노예를 죽였습니다. 그래서 노예들은 길을 닦을 때 평생 망가지지 않도록 잘 만들었습니다. 충성을 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태만하게 하는 사람에게는 저주가 임한다고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렘48:10절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당할 것이로다.'
어느 전쟁 후에 한 사람에게 사형언도가 내려졌습니다. 그 사람이 항변을 했습니다. '나는 전쟁 중에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왜 사형입니까?' 장군이 말하기를 '모두가 죽을 각오로 싸우는 데 너만 가만히 있었다. 그런 치열한 전투에 가만히 있었다는 것은 사형 감이다.' 판결을 내렸다고 합니다.
⑶전도하지 않는 것은 '영혼 살인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분명히 살인죄입니다. 그렇다면 영혼을 죽이는 것은 영혼살인죄입니다. 아내나 남편이나 자녀, 그리고 부모나 이웃이나 친척, 친구나 옆 집 영혼이 지옥가게 하는 것은 영혼 살인죄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시급한 영혼이 있습니다. 오늘 전도하지 않으면 지옥으로 갈 영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③우리 안에 '원망, 불평, 시기, 질투, 다툼'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빨리 정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도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27)고 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내 안에 들어 왔으면 빨리 씻어야 합니다. 빨리 씻지 않고 품고 있으면 병이 됩니다.
아무리 부부 싸움을 하고 아무리 누구와 싸웠다 할지라도 해가 지게 되면 넘어가는 해를 보면서 이렇게 외치십시오. '아! 해가 지는 구나! 성경은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하셨다. 분을 풀어야지! 분을 품고 자면 암 덩어리가 뭉치기 시작한다. 마귀가 틈타기 시작한다. 그러면 나만 손해다' 부정적인 감정을 빨리 씻을수록 좋습니다. /할/
④하나님의 일은 빨리 하면 할수록 좋습니다. '첫 생각은 하나님 생각이고 두 번째 생각은 내 생각이고 세 번째 생각은 마귀 생각이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생각이 나면 빨리 해야 합니다.

 

3.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았던 바울의 신앙고백은 무엇인가?

 

갈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복음의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세 가지 원리를 적용했습니다.
①자기 죽음을 선언하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고백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첫 번째 우리의 삶의 고백입니다. '나는 예수와 함께 죽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할/
영국의 고아의 아버지라 불리는 '죠지 뮬러'에게 어떤 사람이 '목사님은 어떤 계기로 영적인 존재가 되었는가?'라고 물을 때 그는 '나는 어느 날 죽임을 당하였다. 나 자신에게 죽었고, 나의 의견에 대해 죽었고, 나의 선택에 대해 죽었고, 나의 좋아하는 것에 대해 죽었고, 나의 의지에 대해 죽었고, 세상에 대해 죽었고, 세상 칭찬과 책망에 대해 죽었고, 심지어 친구나 내 형제들의 칭찬이나 책망에 대해서도 죽었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님께 대하여 살았노라' /할/
롬6:5절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이것은 죽으심에 연합한다는 것입니다. 연합은 나의 과거가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인간들을 대표해서 예수님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 내가 있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나도 죽었다는 것을 믿는 것이 바로 별세신앙입니다.
▶초대교회 김익두목사는 예수 믿기 전에는 아낙고을의 불량배였습니다. 그는 강팍한 사람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행패부리면서 탕자와 같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소안론 선교사가 김익두를 보고 전도지를 주면서 '청년 예수 믿고 천당 가세요' 김익두가 전도지를 받아 가지고 코를 풀어서 휙 던지면서 '너나 천당 가라' 하고 말했습니다. '청년 전도지 코 풀면 코 썩어요.' 하니까 김익두가 그 종이를 다시 한 번 소안론 선교사에게 던지면서 '네 코나 썩어라' 하면서 갔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잠을 자는데 선교사의 '코 썩어요.' 하는 소리가 그의 귀를 울리면서 정말로 코가 썩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길을 지나가는데 소안론 선교사가 부흥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설교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사람답게 살아야지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 동물이나 다를 바가 없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새 사람을 입는다.'는 요지였습니다. 김익두가 이 말씀을 듣고 자기 자신의 과거에 대한 부정한 모습을 보면서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합니다.
그가 예수를 믿고 새 사람이 된 이후에는 집 안에서 두문불출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지냅니다. 그러니까 아낙고을에 '김익두가 죽었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김익두가 죽었다고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마음놓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데 어느 날 그가 나타났습니다. 죽었다던 김익두가 나타나니까 동네 사람들이 놀래 가지고 도망칩니다. 그러니까 김익두가 이렇게 말합니다. '옛날 김익두는 죽었소. 여기 있는 김익두는 다시 태어난 김익두요.' /할/
남을 때리고 괴롭히던 손은 자비의 손으로 바꾸어 남을 구제하고 사랑하는 손이 되었고, 남을 괴롭히며 빼앗던 손은 남에게 구제하고 사랑을 베푸는 손이 되었고, 다른 사람을 안수해 주는 거룩한 손이 되었고, 남을 욕하고 저주하던 입은 복음을 전하는 생명의 입이 되었습니다. 자기 죽음을 선언했습니다.
②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자기 죽음을 선언한 것은 예수님과 함께 살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내 안에 무엇을 주인으로 모시느냐에 따라 인생관과 가치관이 달라지게 됩니다.
예수가 내 안에 살아서 나의 주인이 될 때 사는 목적이 달라집니다. 주를 위하여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왕이 되고, 생명이 되고, 머리가 되고, 주님의 심장이 나의 심장이 되고, 오직 주님이 나를 다스립니다.
▶영국을 최대의 강국으로 번영시킨 여왕이 빅토리아 여왕입니다. 어떻게 그가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습니까? 믿음으로 영국을 통치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 사랑, 국민 사랑, 나라 사랑'으로 일생을 살면서 늘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는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여왕이 가난한 과부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과부는 여왕이 친히 왕림해 주니까 너무 황송해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과부에게 여왕이 묻습니다. '아주머니, 이제까지 이 집을 찾은 손님 중에 가장 고귀한 손님이 누구입니까?' '저에게 가장 소중한 손님은 여왕 폐하시옵니다.' 이 대답을 듣고 여왕은 실망하는 눈빛을 띠면서 '예수님이 아주머니를 찾은 가장 고귀한 손님이겠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이 여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폐하, 예수님은 손님이 아닙니다. 그분은 저의 주인이십니다.' 여왕은 아주머니의 훌륭한 신앙을 칭찬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그는 궁실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나는 오늘 과부의 집을 위로 차 간 것이 아니옵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천사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천사였습니다. 나의 주 나의 왕 예수여 이 나라에 세세토록 주인이 되시고 이 궁실의 주인이 되소서. 그리고 제 생전에 강람하시어 이 왕관을 주의 발 앞에 드리게 하소서.' /할/
여러분, 이제 나의 생명도 주의 것이요, 나의 사업도 주의 것이요, 나의 자녀도 나의 재산도 주의 것으로 고백하고 사십시다. 우리는 더 이상 예수님을 나그네로 모셔서는 안 됩니다. 나의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주님으로 모셔야 합니다. /아멘!/
③사랑 받는 존재로 살아야 합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그리스도인답게 산다는 것은 사랑 받는 존재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 받기 위해서 태어났고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그리스도가 나와 연합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 받기 위해서 산다.'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사랑 받도록 행동해야 합니다. /아멘!/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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