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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을 살린 모르드개와 에스더! (에 3:1-6)

by 【고동엽】 2022. 2. 7.

민족을 살린 모르드개와 에스더! (에 3:1-6)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지난 금요일은 현충일이었고, 이 달은 6.25가 들어있는 달입니다. 현충일(顯忠日)은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는 기념일로 매년 6월 6일이며, 공휴일로 지정된 국가가 정한 공휴일입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데에는 상당한 전란을 거치게 되어 있고, 모든 국가는 그 전란에서 희생된 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5월의 마지막 월요일에 '메모리얼 데이'라는 우리의 현충일과 성격이 비슷한 미국 판 현충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1948년 8월 정부수립 후 2년도 채 못 되어 6·25동란을 맞았고 이에 40만 명 이상의 국군이 사망했습니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된 뒤 3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자 정부는 1956년 4월 대통령령 제1145호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건'을 개정하여 매년 6월 6일을 현충일로 지정하여 공휴일로 정하고 국가보훈처가 주관이 되어 기념행사를 행하는데 서울에서는 국립묘지에서 행해집니다. 추모대상은 6·25동란에 전사한 국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모든 선열의 넋을 기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동족상잔의 비극과 그 주범을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되듯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도 그와 같은 '과거사'가 있었고 또 그것을 결코 잊지 않았던 후손이 있었습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약 900년에 걸친 긴 세월 동안에도 참된 이스라엘인에게는 결코 잊힐 수 없었던 한 역사를 통하여, 이제 겨우 반 백년 밖에 지나지 않은 우리의 6.25가 이 시대의 조국과 민족에게 가르쳐 주는 깊은 교훈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북한의 공산당들은 먼저 동족상잔의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민족의 원수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과 아말렉과는 역시 원수지간입니다. 출17:14절 이하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그 전투는 순전히 아말렉의 선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출17:8절을 개역성경에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고 번역되었는데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아말렉 사람들이 몰려와서 르비딤에 있는 이스라엘을 공격하였다'는 뜻이 됩니다.
아말렉의 공격은 매우 비겁한 공격이었습니다. 신25:17-18절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일깨워 주시는데 정정당당하게 선전포고하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아말렉이 이스라엘의 대오의 후미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습격함으로써 발발된 전쟁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라'고 선포했으며 신25:19절에서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아말렉은 이스라엘의 영원한 원수가 되었음을 재차 천명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남과 북이 많이 부드러운 분위기가 되었지만 저 개인적인 생각은 공산당과는 그 어떤 협상도 화해도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실컷 협상해 놓고 양쪽에 합의 문서에 도장까지 찍고서도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그들은 얼마나 우리를 곤욕스럽게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북한 공산당은 분명히 6.25동란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그 이후로도 우리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적 행위를 일방적으로 자행해 왔습니다.
사실 우리가 북한의 어선 하나라도 납치한 일이 없었고 북한 민간 항공기를 폭파시킨 적도 없었고 우리가 암살자를 보내어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죽이려 했던 일도 없었고 우리 쪽에서 휴전선을 넘어가 북한 군함에 총격을 가한 선제공격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도 시시탐탐 '적화통일'을 공언하고 있고 대한민국의 무고한 국민들과 정부 인사들을 향하여 저지른 수많은 납치와 테러행위와 군사적 도발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반성하거나 사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가 6월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이북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 번 가져야 합니다. /할/ ▶저 북한 공산당은 기독교가 절대로 무릎 꿇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영원한 대적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굻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아말렉은 영원한 하나님의 대적 원수 마귀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1절에 보면 하만은 '아각 사람'이라고 했는데 이는 바로 '아말렉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5절에 '하만이 모르드개가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심히 노하더니' 무슨 말인가? 신앙의 절개를 지키고 승리했다는 말입니다. 그 일로 인하여 전 유대인들의 위기가 왔습니다. 6절에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경하다 하고 온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간섭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하만에게 모르드개가 당한 것이 아니라 하만이 모르드개에게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유대민족을 살린 위대한 이야기가 에스서의 기록입니다. ◀제목소개!▶

 

오늘 본문은 민족을 사랑하는 한 젊은이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오직 신앙 하나로 위대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승리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승리자가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십니다.
잘 된다는 말은 이겼다는 말입니다. 영혼이 잘됨은 영적인 승리를 의미합니다. 범사에 잘됨은 인간세상의 승리입니다. 강건함은 질병으로부터의 승리입니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전쟁입니다. 생존경쟁에서 이기면 살고 지면 망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싸움에서 이겨야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아멘!/
본문에서 우리에게 주는 귀한 교훈은 영적인 승리자의 삶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그걸 가르치고 있습니까?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영적인 승리자로 살라는 교훈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주님이 이긴ㅁ 세상 믿음만 붙들고 나가면 됩니다.
요1서5:4절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님 자신도 승리하셨고, 우리에게도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모르드개도 에스더도 모두 다 승리자의 삶을 산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승리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머리 숙인 '참 행복한 교회'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위대한 삶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1. 본문의 배경을 알아보겠습니다. 그래야 이해가 됩니다.

 

이스라엘이 나라를 잃어버리고 바벨론 제국에 포로가 되어 노예생활을 한 지도 어언 70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당시 세상 판도는 새롭게 등장한 파사(페르시아) 제국이 바벨론을 정복하고 세계적으로 패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제국의 통치자 고레스는 유대인들에게 해방령을 내렸습니다. 그 후 유대인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제1차 귀국을 하게 되었고, 제2차 귀국운동이 에스라의 인솔로 준비되어 가는 중에 여전히 페르시아 제국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일대 위기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아하수에르(다리오 1세)의 신복 하만의 악한 계교로 전 페르시아 제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사형 포고령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그 피맺힌 바벨론 70년 간의 포로생활이 끝이 나고 꿈에도 그리워하던 조국 산천과 예루살렘의 시온성을 찾을 소망에 꿈이 부풀어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실로 절망과 슬픔과 탄식의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하만은 나라의 두 번째 치리 자로서 왕 다음에 권세를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가 길거리에 지나가면 모든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립니다. 그가 왕궁에 들어올 때에도 모든 신하들이 굽실거립니다.
그런데 유독 하만에게 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서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유대사람 모르드개입니다. 그는 자기가 근무하는 대궐문에 그 하만이 출입할 때에도 전혀 무릎을 꿇지도 않고 절하지도 아니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자기 스스로 죽을 함정은 판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인데 도대체 왜 모르드개가 그런 짓을 했을까요? 여기에는 분명한 신앙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이 바로 아말렉 사람인 것을 알았으며 또한 이스라엘과 아말렉은 영원한 원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하나님의 선언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사울 왕이 아말렉을 살려 주었던 때로부터 약 500년이 지난 세월이었고 출애굽때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때로부터는 이미 약 900년의 세월이 지난 때였습니다.
그 정도라면 '이제는 서로 다 잊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할 수 있는 먼 '과거사'가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드개는 '아말렉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이며 이스라엘의 원수이며 당연히 나의 원수이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그 아말렉 사람 하만에게 절할 수 있으랴?'라는 뚜렷한 역사의식과 신앙의 절개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가 목숨을 걸고 죽음을 각오를 하면서 하만에게 꿇지도 절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단점 하나는 쉽게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긍정적인 것 같지만 다시 보면 부정적인 면이 더 큽니다. 우리는 일본압제의 굴욕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또 6.25의 비극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 우리 신앙 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믿/
사실 모르드개도 대단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일찍 고아가 된 사촌 동생의 딸 에스더를 키웠는데 그 에스더를 왕후로 천거해서 왕후가 되게 한 말하자면 왕의 최 측근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 당시 정황으로 보아 유대인인 에스더가 왕의 부인이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만은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않는 것에 괘씸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더 심화되어 하만의 자존심이 굉장히 격해져 나중에는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아예 유대민족을 뿌리째 뽑기로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는 모르드개를 50규빗이나 되는 나무에 매달아 사형시키려고 계획했습니다. 모르드개가 유다인이기 때문에 모르드개가 속해 있는 모든 유다 인을 처단하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하수에로 왕에게 가서 '바사 국에 왕의 법률 보다 더 강한 법률을 가지고 있어서 왕의 나라를 해치는 민족이 있으니 그들을 처단하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허락해 주면 바사의 연간 세액의 배가 넘는 은 15,000달란트를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큰 금액은 유다 인을 죽이고 그들에게서 탈취한 재물로 드리겠다는 심사였습니다. 결국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에게 인장 반지를 빼어주면서 마음대로 하라고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만은 그 반지로 '아달월(12월) 13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 인을 남녀노소 무론하고 진멸하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하라'고 하는 조서(詔書)를 써서 누구도 변개할 수 없는 어인(御印)을 찍고 그 것을 역졸들에게 부쳐 바사 127도에 공고하게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바사에 있는 유다 인이 모두 죽게 된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이 꾸민 조서에 어인이 찍혀 각 도에 부쳤다는 사실을 알고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릎 쓰고 성중에 나가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조서가 도착한 각 도에서도 그 사실을 안 유다 인들이 크게 애통하며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누워 부르짖었습니다(4:1-3).
이제 모르드개는 내시를 통해 에스더에게 왕께 나아가 하만의 궤계를 알릴 것을 권했습니다. 에스더는 바사의 법이 왕께 나아가다가 왕이 홀을 내밀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게 된다고 했고 왕이 자기를 부르지 않은지 오래되어 30일 동안이나 왕께 나아가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모르드개는 회답하기를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고 했습니다(4:13-14).
▶우리도 이 말에 이해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말입니다. '비록 네가 왕후가 되어 왕궁에 있다고 해서 온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너도 유대 민족이 다 멸절 당하면 너에게도 그 위험이 닥칠 수 있다. 너 혼자만은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국가가 잘돼야 회사도, 가정도, 개인도 잘됩니다.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욕심만 생각하고, 부정부패하고 뇌물을 챙기고 국가의 기강을 어지럽히면 나라도 잘못되고 개인도 잘못되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은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나라와 이웃을 생각하고 사회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믿음만 지키면 괜찮겠지'라고 하면서 교회에 충성하지 않고, 자신의 주어진 직분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한다면 그것은 결코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주어진 사명을 다해야 하고, 민족과 나라, 교회, 이웃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세입니다. /믿/
이스라엘의 풍운아 모세를 보세요! 히11:24-25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바로 왕의 딸의 양자가 되어서 한 평생 궁전에서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고난 받는 자신의 민족을 생각하고 그 민족과 더불어 고난에 동참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민족의 편을 들었다가 결국 40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며 연단을 받은 후에 80세가 되어 하나님의 명령으로 민족을 구원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편하다고 안정됐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비록 고난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고난을 감당하면 나중에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미국의 유명한 록펠러는 '우리는 누구나 이웃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 혼자만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웃도 생각하고, 나라도 생각하고, 내가 소속한 단체도 생각해야 합니다.
미국의 연방대법관 '윌리엄 더글러스'는 '경제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체인과 같다. 고도로 산업화된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우리 모두가 함께 일어서거나 함께 쓰러진다.'고 말했습니다. 일어나면 다 같이 일어나고 쓰러지면 다 같이 쓰러지는 것이지, 혼자서만 잘 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떤 민족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중국 사람들은 '나는 죽어도 너는 살라'는 자세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나 '차이나타운(Chinatown)'을 형성해서 자기 민족끼리 똘똘 뭉쳐서 그 안에서 강한 경제권을 형성하고 상부상조하여 살아갑니다.
또 유대 민족들은 '너는 죽어도 나는 산다'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소수민족인 유대인들은 타민족들에 비해 수적으로는 불리하지만 이러한 지독한 생존의식을 가지고 막강한 경제권을 장악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 죽고 나 죽자'는 자세로 삽니다. 그래서 자기 민족들끼리 서로 싸우고, 분열해서 결국 다 같이 망하고 맙니다. 여러분, 이래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나 자신뿐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생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아멘!/
▶1967년 6월에 중동에서 6일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전 아랍국가(이란, 이라크, 이집트, 사우디 등)들과 작은 나라 이스라엘과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6일 만에 작은 나라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그 원인을 살펴보니 전쟁이 터졌을 때 아랍 청년들은 자기 나라에서 소집 영장이 날아오자 모두 도망치고 숨었는데, 이스라엘의 청년들은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자진해서 이스라엘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래서 6일 만에 이스라엘은 전 아랍 국가들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애국심과 단결력이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유학생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보았더니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귀국하겠느냐는 질문에 56%가 절대로 귀국하지 않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나라를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 혼자 잘살겠다는 생각은 결국 전체가 다 멸망하는 부정적인 사고입니다. 미국의 강철 왕 '카네기'는 멋진 인생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들지 않는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 중에서 43명의 백만장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은 자신도 행복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부자가 되게 하는 사람은 자신도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은 결국 그 죄악이 자신에게도 엄습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여러분, 나 혼자 잘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마시고, 항상 이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민족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모든 사람이 다 잘되는 공동체적인 생각을 하는 '참 행복한 교회'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이제 에스더의 신앙의 결단을 보자! 4:16절에서 에스더가 다시 회답하기를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 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3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에스더는 자신이 왕후가 된 것이 '이 때'라는 민족적 위기의 때를 위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얼마나 멋있는 신앙입니까? 우리 '이 때'를 바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어느 때인가? 깨어 기도해야 할 때도 전도해서 이 아룸다운 성전을 채워야 할 때입니다. /믿/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을 들은 모르드개는 유다 인들을 모아 수산성에서 금식기도를 하고 각 성에 있는 유다 인들도 각 처소에서 금식기도를 하고 에스더도 시녀들과 함께 금식기도를 하면서 왕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기도를 마친 에스더는 예복을 입고 왕께 나갔습니다. 왕은 왕비를 보자마자 그의 아름다운 미모에 뿅 가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홀을 내밀면서 '왕후의 소원이 무엇인가?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에스더는 '왕을 위하여 내일 잔치를 열 것이니 하만과 같이 오라'고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하만은 왕비가 자기만 잔치에 초청한 것이 너무 기쁘고 왕이 자기만을 알아주는 것이 너무 기뻐서 자랑을 하면서 거드름을 피웁니다.
그런데 그 날도 기분이 좋아서 하만이 청사에서 나올 때 모르드개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기쁨이 싹 가시고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내와 친구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뭘 그런 일 가지고 걱정하느냐? 오십 규빗 쯤 높이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기를 구하고 왕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파티에 나가라고 달콤하게 말을 해 줍니다.
이 말을 들은 하만은 좋은 생각이라고 판단하고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친 그물에 가지가 걸려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밤에 하만은 모르드개를 처치할 목적을 가지고 왕에게 허락을 받기 위해 왕궁 바깥뜰로 갔습니다.
▶한편 왕은 그날따라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왕은 잠이 오지 않자 신하들을 시켜 역대 왕궁을 일지를 읽으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 중에 모르드개가 왕을 모살 하려는 자를 사전에 탐지하여 왕에게 고한 사실이 있어 위기를 면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르드개가 왕의 생명을 지킨 것입니다. 그 때 그 순간 그 기록을 읽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기도의 위력입니다.
하나님은 일차의 오차도 없이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믿/ 왕은 그 자리에서 신하에게 이 일로 인하여 무슨 존귀한 관직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신하가 없었다고 하자 왕은 '누가 뜰에 없느냐?'고 하자 마침 하만이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왕께 구하기 위해 거기에 와 있었습니다.
왕이 하만에게 말합니다. '나를 기쁘게 한 사람에게 어떻게 해 주었으면 좋겠느냐?'고 묻자, 하만은 왕이 기뻐하는 자는 자기 밖에 더 있을까 싶어서 당당하게 대답합니다.
6:7-9절 '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케 하시려면 왕의 입으시는 왕복과 왕의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취하고 그 왕복과 말을 왕의 방백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붙여서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그러자 왕이 하만에게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준비하여 모르드개에게 조금도 빠짐없이 그렇게 행하라'고 명령을 합니다. 어느 전이라고 그 명령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꼼짝없이 하만은 자기가 죽이려고 한 모르드개를 말에 태워 온 성을 끌고 다니면서 '왕이 가장 존귀하게 여기는 분이시다'고 외치며 다녀야 했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말하자 아내는 이제 큰일이 났다고 말합니다. 당신이 모르드개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했으니 능히 저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서 엎드러지겠다고 말합니다.
과연 하만은 에스더의 잔치에 초청되었으나 왕비와 유대민족을 죽이려는 음모가 탄로가 나자 하만이 왕께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알고 왕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왕비인 에스더에게 애원하면서 붙잡고 있는 모습을 왕이 보았는데 하만이 왕후 에스더를 겁탈하려는 것으로 알고 왕이 심히 진노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명령으로 하만은 자기가 세웠던 50규빗의 나무에 달아 죽이게 했습니다(7:9-10). 한마디로 자기가 판 함정에 빠져 죽은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조서를 변경하여 유다 인이 하만을 따르던 아말렉 족속을 그 날에 모두 진멸하도록 하여 공고하게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유다 인들은 자신들이 죽게 된 날에 살게 되고 그 날에 원수들을 합법적으로 진멸할 수 있었습니다. /할/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길이 보호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하만이 죽고 나서 에스더가 왕에게 모르드개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모르드개에게 주며 그를 국무총리에 세우고 유대 민족에게 해방을 선포하게 했습니다.
한마디로 유대인들에게는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고,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었고, 통곡과 탄식이 변하여 노래와 춤이 되었습니다. /할/ 우리들에게도 이런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대인들에게는 새로운 경축일이 생겼는데 그것이 바로 부림절이라는 절기입니다. '길한 날'이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이 날을 지키고 있는데 '위기 때 금식하며 합심으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큰 능력을 나타내는지 알게 해줍니다. 기도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할/

 

2. 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왜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절하지 않았습니까?
①하만을 우상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고 무릎을 꿇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상에 절하지 않고 무릎을 꿇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압정 때에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순교를 당하였고 곤욕을 치렀습니다. 대표적인 순교자가 손양원/주기철목사님이십니다. 바로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렸습니다. 하늘 나라의 상급이 제일 큽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한경직 목사님은 생전에 신사 참배한 것을 회개하고 한국교회 앞에 용서를 빌었습니다.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 잡혀갔으나 그들은 신앙적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이 금 신상을 만들어 놓고 경배하라고 할 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생명을 아끼지 않고 이를 거부하여 풀무 불 속에 들어갔습니다.
다리오 왕 때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 넣는다'는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신앙의 맥이 모르드개 마음속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절한다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최고의 경배방법입니다. 성경에서 우상숭배를 금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과 존귀를 피조물에게 돌려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어느 인간도 하나님보다 더 영광을 받아서는 안 되고 하나님보다 더 섬길 수 없었기 때문에 절하지 않은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것은 신앙의 절개에서 나온 행동입니다. 모르드개는 오직 신앙으로 살고 신앙으로 죽은 아브라함의 신앙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시내 산의 율법인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는 이 계명을 어기면 죽는 것으로 알았기에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것입니다.

 

②하만은 아말렉의 후손이기 때문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의 정체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만은 아말렉 왕 아각의 후손이었습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가장 증오한 족속 중 하나입니다. 출17:16절에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얼마나 하나님이 괘씸하게 여기셨으면 이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아가도 말씀드렸지만 모세가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홍해를 건넜을 때 맨 처음 나타난 적이 바로 아말렉입니다. 출17:8절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싸워야 할 적이 있고, 이스라엘이 싸워야 할 적이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왕은 모세가 싸워야 할 적이므로 하나님은 모세에게만 이길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의 권세를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에 대하여 싸운 일이 없었고, 데모한 일이 없었습니다.
오직 모세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로 바로를 이긴 것입니다. 모세가 이김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바로를 이긴 것입니다. 모세를 따르면 승리가 있습니다.
아말렉 족속이 어떤 족속입니까? 창36:12절에 보면 '에서의 후손'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이요, 이스라엘은 야곱의 후손이니 에서와 야곱의 싸움이 출애굽한 후에도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을 따라 애굽에 들어와 430년을 살고 나올 때, 이스라엘 민족에게 에서의 후손들이 적으로 등장합니다. 이 적은 엄밀히 따지면 한 혈육이었던 형제가 이제 원수가 되어 적이 되어 등장한 것입니다. 원수는 먼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③여기서 아말렉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인데 우리가 잘 알다시피 에서는 단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 권을 팔아먹은 육신의 정욕을 좇아 살아가는 타락한 육의 속성의 대표잡니다. 장자 권을 우습게 아는, 그러니까 예수님을 우습게 아는 그런 세속주의자입니다.
지금 당장 배고픈데 언제 갈지도 모를 천당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입니다. 예수가 밥 먹여 주느냐 그런 족속입니다.
여러분 아말렉은 육신의 조상이요, 타락한 육의 속성을 가진 인본주의를 의미합니다. 우리 안에도 이 에서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씻어 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기고 승리해야 합니다. /아멘!/
하나님은 신25:19절에서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 명령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에게 명하셨습니다. 삼상15:2-3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 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그런데 사울 왕은 아말렉을 치기는 했으나 왕을 생포하고 그들의 소떼와 양떼와 어여쁜 여인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사울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고, 결국 그는 아말렉 청년의 칼에 마지막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누구라도 사울 처럼 버림을 받습니다. /믿/

 

④모르드개는 누구입니까? 사울 왕의 후손입니다.
2:5절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저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 모르드개는 베냐민 자손이요 기스의 증손입니다. 기스는 사울의 아버지입니다. 모르드개는 사울 왕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울 왕이 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는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아말렉의 정체와 원수 됨을 알았습니다. 사울 왕이 범한 죄를 자기는 절대로 다시 짓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을 때 그의 신복이 와서 '거역하지 말라'고 날마다 권했으나 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이유를 '나는 유대인'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말은 '유대인의 적은 아말렉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만은 영원히 저주받아야 할 아말렉 족속의 후손이므로 성령의 감동을 받은 모르드개는 하만의 정체를 알자 자신이 유다인임을 밝히고 공개적으로 절하기를 거절한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생명 걸고 지키는 것입니다. 신앙은 좌우로 치우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바라보고 죽어도 주의 것이요, 살아도 주의 것임을 고백하면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르드개의 위대한 신앙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아멘!/

 

⑤하만은 적 그리스도의 대표이니 때문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적 그리스도가 누구입니까? 한마디로 하나님의 구속 사업을 방해하는 사탄의 후예입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핑계로 유다인 전부를 멸하려고 한 것은 사소한 감정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만의 혈관 속에 흐르고 있는 적 그리스도의 본성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는 하만 속에 감추어진 무서운 사탄의 정체를 알았기에 그에게 무릎을 꿇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이요,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으로 보았기에 생명 바쳐 싸워 이겼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승리는 그리스도인의 승리입니다. 오늘날도 하만의 정체는 또 다른 각도로 우리를 넘어뜨리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보다 물질을, 하나님보다 명예를, 하나님보다 취미생활에 빠지고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보다 육적 쾌락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무릎을 꿇어서는 아니 됩니다. 황금에, 권력에, 명예에, 절해서는 안 됩니다. 유대인들은 절한다는 것을 최고의 경배의 대상으로 알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마4:10절에서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멘!/

 

⑥오늘 에스더에게 배울 것이 무엇인가? 그의 신앙의 결단입니다.
그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이 외침은 일사각오의 결단입니다. 신앙은 위대한 결단입니다. 한번 '마음먹은 것, 다짐한 것' 믿고 나가십시오, 에스더의 이 기도는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한 소원입니다. 에스더는 자기의 부귀공명을 구한 것이 아니고 민족의 구원을 소원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운동은 바로 한국 기독교 정신이 주축이 된 현대판 에스더의 탄원입니다. 확실히 이 민족의 번영이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생각지 못한 어려움과 위기가 닥칠 수 있습니다. 그 위험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이나 신앙, 성격, 학식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위험이 닥치고 위기가 닥치면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리고 결국 자살을 택하는 사람도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오늘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은 어려운 일을 당함으로 그 사람의 신앙의 깊이를 알 수 있고, 믿음의 분량도 알 수 있습니다. 건물이 튼튼하게 지어졌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지진이 한번 일어나면 알게 됩니다. 나무의 뿌리가 깊으면 태풍이 지나가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 길에서 이와 같이 믿음의 깊은 뿌리를 박고 하나님을 섬긴다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낙심하고, 절망하고, 포기하고, 자살할 만한 위기의 때에도 흔들림 없이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으로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고, 전화위복이 되는 축복을 받아 더 큰 성공과 은혜를 입게 될 줄 믿습니다. /아멘!/
기도는 마치 풍차와 같습니다. 풍차는 바람이 세게 불수록 빨리 돌아가고, 빨리 돌아갈수록 더 많은 양의 전기를 발생시킵니다. 또한 기도는 마치 물레방아와 같습니다. 물살이 세면 셀수록 물레방아가 빨리 돌아가고, 빨리 돌아가는 물레방아에서 동력이 발생합니다.
18세기 미국의 정치가 '벤자민 프랭클린'은 '일할 때는 백 년을 살 것처럼 왕성하게 일하고, 기도할 때는 내일 죽을 것처럼 진지하게 기도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할 때는 내일 죽을 것처럼 진지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기도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할/
오늘 또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승리는 기독교의 최후 승리를 의미합니다. 기독교인의 승리는 바로 성경의 약속입니다. 기독교의 승리는 뭐니 뭐니 해도 죽음을 뛰어 넘는 영생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최후의 승리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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