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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시고 보호하시며 지키시는 하나님! (신 32:9-12)

by 【고동엽】 2022. 2. 7.

만나시고 보호하시며 지키시는 하나님! (신 32:9-12)

 

이번 목자합창단의 중국연주회를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잘 마치고 왔습니다. 우리를 초청해 주신 연태한인교회 조봉현목사님과 여러 장로님들과 권사님들과 성도들의 헌신적인 섬김의 대접을 잘 받고 왔습니다. 두 번 공연을 했습니다. 연대한인교회에서 했고, 둘째 날은 덕주 삼자교회에서 했습니다.
덕주는 연태에서 버스로 8시간을 걸려서 갔습니다. 그곳에서는 가장 실력자인 덕주시 정치부 부서기가 나와서 우리를 환송해 주고 연회도 베풀어주고 호텔도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또 8시간을 달려서 태안으로 와서 그 유명한 '태산'을 올라갔다 왔습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과연 높고 장엄한 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 목사님들에게 이 산은 우리 손자 '태산(泰山)'이의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중국은 여자들의 왕국이라고 합니다. 남편 출근할 때 밥도 안 해 주고 그렇다고 저녁에는 밥을 해 주는 것도 아니랍니다. 남편이 채소가게 들여서 반찬거리를 사 가지고 가서 밥을 해서 부인을 대접한다고 합니다.
그런 중국 땅에 오래 전에 우리 드라마 <사랑이 뭐 길래>가 방영이 되자 중국의 남자들이 난리가 났답니다. 이유인즉 드라마 속에 대발이 아버지인 이순재씨가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고 큰 소리를 쳐도 여자가 꼼짝 못하는 것을 보고 중국 남자들이 통쾌하게 대리만족을 느꼈다고 합니다. 무려 그 드라마가 13방까지 나갔다고 합니다.
그 드라마가 방영되고 나서 중국 남자와 한국 남자가 만났다고 합니다. 중국남자가 부러운 듯 '한국 남자들은 좋겠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은 땅으로 살고 여자가 하늘로 사는데 당신들은 하늘로 살고 여자가 땅으로 사니 얼마나 행복하냐?'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한국남자가 고개를 설래 설래 저으면서 하는 말이 '요즘 한국 땅값이 치솟아 상황이 역전됐다'며 고개를 숙였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당신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마 자신 있게 대답할 분이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너무나 광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담을 수가 없고, 우리의 생각 속에도 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나타나신 하나님마저 다 이해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가장 잘 알고 이해한 사람이 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직접 대면해서 보았고, 알았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하면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 된 이스라엘을 어떻게 인도하시는가를 실제로 체험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을 가장 잘 알고 있던 모세가 죽음을 앞두고 남긴 마지막 교훈을 기록한 유언 적인 말씀입니다. 모세는 본문에서 자기가 믿었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이 짧은 본문에서 이야기합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면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 9-10절은 '자기 기업으로 삼은 백성을 만나시고 보호하시며, 지키시는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11-12절로 '그 백성들을 독수리 같이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출생에서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직접 많이 경험했습니다. 본문은 그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 남긴 교훈으로 자기가 일생동안 체험했던 그 좋으신 하나님을 후대에도 체험하며 살아가라는 교훈입니다. ◀제목소개!▶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법도를 재조명하고 확인하기 위해 기록한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애굽을 떠나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신앙과 생활지침서인 것입니다.
그 가운데 신명기 32-34장은 신명기서의 결론 부분이 됩니다. 신명기의 결론은 두 자기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설명하고 있으며 모세가 죽기 전에 '각 지파를 축복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십니까? 구체적으로 본문 속에서 찾아보겠습니다.

 

1. 어려운 환경 속에서 지켜주시고 급한 위기에서 지켜주십니다.

 

10절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통과하고 있는 광야는 사람이 지체하거나 통과하기가 힘든 곳입니다. 사막지대입니다. 광야입니다. 그곳은 일교차가 심합니다. 낮에는 얼마나 뜨거운지 일사병으로 쓰러질 만큼 폭염이 계속되다가도 밤이 되면 추위가 몰아닥친답니다.
또 그곳 광야는 마실 물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뜨거운 폭염이 내려 쬐고 있는데 마실 물이 없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또 그곳 사막은 독사와 맹수들이 들끓기 때문에 언제 기습을 받을는지 예측불허입니다.
거기다가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본문은 그런 상황을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황무지와 광야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40여 년 동안 방랑하던 황량하고 삭막한 땅입니다. 실로 그곳은 아무런 수확도 기대할 수 없고 단지 짐승의 울음만이 스산하게 들려오던 두렵고 낯선 오지(奧地)였습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을 보면 그토록 어렵고 위험천만한 광야를 횡단했던 이스라엘 민족이 단 한 명도 목말라 죽었거나, 일사병으로 죽었거나, 배고파 죽었거나 추위에 얼어죽었거나, 맹수에 물려 죽은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왜 그들이 안전할 수 있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반석에서 생수를 내시고 마시게 했으며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녹여주었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를 덮으셨으며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여주셨습니다. /할/
그런데 애굽에서 나왔던 세대는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이 왜 죽었습니까? 배고파서 죽었습니까? 더위에 아니면 추위에 죽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죽은 이유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불순종한 죄' 때문이었습니다. /믿/
황무지와 짐승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원망하고 죄 속에 빠졌기 때문에 광야세대는 다 죽은 것입니다.
신32:20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 그들의 종말의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종류요 무신한 자녀임이로다"그리고 32절을 보면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포도니 그 송이는 쓰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환경이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인 요인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환경이 좋은데도 타락하거나 잘못되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환경이 정말 어려운데도 바로 되고 잘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많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정말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로 섬기다가 복을 받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오래 전 조선일보 주간 연재물인 유명인사 집안 소개하는 면에 '전 서울대 총장 유기천 박사'의 가문이야기가 소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유계준씨는 13세 때 고아가 되어 무역상을 하는 가게의 사환으로 들어가 10년 간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그는 미국인 선교사 '사무엘 모펫'이 평양시내에서 전도할 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중 평양의 그 유명한 산정현 교회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1944년 4월 감옥에서 순교할 때까지 5년 4개월 간 주기철 목사님의 옥중생활을 돌봐주었을 뿐 아니라 목사님의 가족들을 보살폈습니다.
주 목사님이 순교하자 일본제국의 금지령을 어기고 사회를 맡아 성대한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해방 후 공산정권이 교회를 적산가옥이라고 압수하자 자신의 집은 예배당으로 제공했습니다.
유제준 장로는 가족들에게 '죽어서 천국에 가서 다시 만나자'며 부인과 자녀들을 남쪽으로 피신시키고 혼자 남아 교회를 지키다가 평소 자녀들에게 교훈한 '한 알의 밀 알이 되라'는 가훈대로 6/25때 퇴각하는 공산군에 의해 1950년 10월에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그 큰 헌신을 그 분이 한 것입니다.
그 뒤 그의 자녀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장남 유기원은 하버드대 의학박사로 국립의료원장을 역임했습니다. 그의 사위가 과학 기술원 이사장을 역임한 이한빈 장로입니다.
차남 유기형은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연세대 교수에 기독교 의사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3남 유시선은 서울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 원장으로, 4남 유기철은 동경제대와 예일대 법학박사로 서울대총장을 역임했습니다. 5남 유기진은 세브란스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6남 유기묵은 세브란스 의대를 졸업하고 내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으며 미국 의과대 교수라고 합니다.
큰 딸 유기옥은 동경여자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 원장이고, 둘째 딸 유기숙은 동경제국 약대를 졸업하고 뉴욕 생화학 연구소에서 약리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3대에 걸쳐 의사와 약사만 26명이 되고 손자들 역시 사회의 쟁쟁한 저명인사가 되었습니다. /할/
그런데 어려운 환경을 탓하고 주님을 떠나 제멋대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환경이 어렵기 때문에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하고 믿음을 굳세게 지킨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 잘 벌고 성공하고 잘 살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외면하고 교회를 등지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사하고 감격해서 신앙생활을 더욱 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잘살든지 못살든지 성공했든지 실패했든지 일이 되든지 안 되든지 건강하든지 병들었든지 그리고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을 외면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황무지와 짐승이 울부짖는 광야 길에 서게 될 때, 더 철저하게 지키시고 보충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크게 아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칠 배나 뜨거운 풀무 불 속에 들어갔을 때, 그 풀무 불이 사르지 못하도록 지켜주셨고, 다니엘이 사자 굴에 떨어졌을 때, 하나님은 사자의 입을 봉하시고 다니엘을 지켜주셨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설명한다면 '언제 어디서나'입니다. /믿/
여러분! 사정이 더 어렵고, 환경이 더 어려울 때, 하나님은 더욱 더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지키시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지키신 것 같이 우리의 인생살이 그 광야 길에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꼬불꼬불한 길을 갈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십니다. /믿/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안전합니다.


▶저는 가끔 비극적 생애를 마감한 박정희대통령 내외분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육영수 여사는 철통같은 경비망을 뚫고 침입한 문세광에 의해 저격을 당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박대통령은 정보부장 김제규의 총탄에 돌아가셨습니다. 육영수 여사의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사격술이 가장 뛰어나다는 사람과 완전 무장한 경호원들이 보는 앞에서 저격을 당한 것입니다.
박대통령의 경우는 가장 신임하는 경호 실장 비서실장 정보부장이 동석한 자리에서 저격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이미 지나간 역사의 상처이지만 돌이켜보면 도대체 누가 누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까? 사람이 사람을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아멘!/
우리의 잘못은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과소평가하고 상대자인 사람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데 있습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사람을 대단한 것으로 평가하고 하나님은 소홀히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소홀이 여겨서는 안 됩니다. 신32:39절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 이 말씀을 깊이 주목해야 합니다.
또 시121:1-2절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할/

 

2. 왜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십니까?

 

9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하나님이 친히 선택하신 자기 백성이기 때문에 지키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세전에 저와 여러분을 선택하시고 당신의 백성으로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 부모의 사랑으로 우리를 지키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잘못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애정으로 우리를 대하십니다.
부모는 자식을 낳고 양육하며 자녀의 앞날을 위하여 온갖 수고를 다 담당하십니다. 자녀의 성장 과정 속에서 병들 때도 있고, 대학에 낙방할 때도 있고, 친구를 잘못 사귈 때도 있고, 정말로 근심 걱정되는 여러 문제들이 있지만 부모는 그 자녀들을 잘 돌보고 인도하십니다.
다만 부모도 간혹 인간인지라 자신의 능력의 한계 때문에 그 자식들을 만족하게 인도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엘로힘'의 하나님이십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롬8: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마7:9-11절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구하십시오, 주십니다. 찾으십시오, 만나주십니다. 문을 두드리십시오, 하늘 문을 열어주십니다.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구하는 것마다 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예수 안에 있는 우리가 그분의 자녀요 당신의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또 지키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믿/ 사랑은 모든 조건과 제한과 약점과 허물을 넘어서 덮어줍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을 어겼습니다.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약속도, 하나님만 사랑하겠다던 약속도 결코 한 눈 팔지 않겠다던 철썩 같은 약속도 제멋대로 깨뜨려 버렸습니다.
약속을 어긴 사람은 대접을 받기도 어렵고, 용서를 받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모든 것을 넘어섭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으로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할/

 

3. 어떻게 지키십니까? (10-12절에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①구체적으로 지켜주십니다. 10절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⑴만나시고: 멀리 계시지 않고 가까이서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사업장에서, 직장에서, 또 우리가 여행하는 현장에서 하나님은 지켜주십니다.
⑵호위하시며: '호위'라는 말은 '에워싸는 것을 말하고, 사방에 둘러 있는 것을 말하고, 포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호위해 주십니다. 얼마나 황송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광야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이렇게 지키시고 함께 하고 계셨기 때문에 그 어느 대적도 이스라엘을 막을 민족이 없었습니다. 아람 왕이 군대를 풀어 엘리사를 잡으려고 야밤을 이용하여 엘리사의 집을 포위했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사를 죽이거나 사로잡아가려고 철통같은 수비망을 쳤습니다.
아침 일찍이 사환이 영문도 모르고 문을 열고 밖을 나갔다가 기절을 할 만큼 깜짝 놀라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라고 만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 소리를 듣고도 놀라지 않았고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사를 해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하늘의 천군 천사를 보내왔기 때문입니다.
아람 왕이 보낸 군사보다 하나님이 보낸 하늘 천군 천사가 더 많았습니다. 결국 엘리사를 잡으려고 왔던 아람군사들은 빈손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전폭적으로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천군 천사가 우리를 호위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오른손이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어떤 보호입니까? 암탉이 병아리를 품고 있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품고 계십니다.
⑶자신의 눈동자같이 지키십니다. 한마디로 완벽하게 지켜주신다는 뜻입니다. 특히 눈동자같이 지키신다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사람의 눈에는 30만개의 회로가 있고, 1억 만개의 신경세포가 있어서 '거리, 광도, 색상'을 자동으로 조절한다고 합니다. 모든 신체의 기능이 완전 자동시스템으로 되어있지만 특히 눈의 기능은 전자동이라고 합니다.
눈꺼풀만 해도 완전 자동개폐식이어서 어떤 위험이 오면 자동적으로 눈꺼풀이 덮어 눈동자를 보호합니다. 그리고 눈물샘을 만들어 언제나 안구 운동에 지장이 없도록 촉촉하게 습도를 조절해 줍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눈동자같이 지켜주신다는 것은 자기의 눈을 보호하듯 철저하게 완벽하게 지켜주신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지체 가운데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신경조직, 두뇌 판단, 눈 동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눈을 보호하듯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②홀로 인도하십니다. 12절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힘이 모자라 누구의 도움을 받는다든지 연합전선을 펴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홀로 하셨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기병대를 동원하고 이스라엘을 추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홀로 홍해를 가르셨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을 홀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저와 여러분들을 홀로 인도하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홀로 인도하시고 원수의 목전에서도 홀로 인도하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축복에만 정신을 쏟고 있지 그 축복을 받는 그릇인 과정을 쉽게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 과정이 중요합니다.

③그 백성들을 강하게 훈련시키십니다(11).

⑴'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세끼 위에 너풀거리며' '새끼 위에 너풀거린다'는 말씀은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어미가 새끼에게 날아가는 시범을 보이기 위하여 시범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이제 막 나르려고 애쓰는 새끼를 보호하기 위하여 옆을 떠나지 않고 날아다니는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처음 나르는 새끼가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면서 독수리는 도와 주지 않고 위에서 너풀거리기만 합니다. 힘들 때 힘들게 합니다. 그래야 강한 독수리가 됩니다.
⑵'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하시고'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약하게 키우지 않습니다. 강하게 키우십니다. 강한 훈련을 시키십니다.
▶독수리는 어떤 새인가? 크고 강인한 새입니다. 새 중의 새입니다. 땅에 호랑이가 있다면 하늘에는 독수리가 있습니다. 독수리는 자기의 영토를 77 평방 킬로미터나 확보하고 삽니다.
높이 멀리 날며 높은 곳에 집을 짓고 살며 자기의 영토에 불법 침입자를 허락지 않습니다. 새끼를 강하게 훈련하여 하늘의 왕으로 키웁니다.

▶1782년 6월 2일 미국의회는 흰머리 독수리를 국조(國鳥)와 국장(國章)으로 정했습니다. 1982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흰머리 독수리의 미국 국장 채택 200 주년 기념식에서 '비상 할 때의 우아함과 힘, 가족집단을 지킬 때의 경계심과 충성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기로 인해 이 독수리는 자랑스럽고 적합한 미국의 상징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독수리의 기상과 장점과 특성이 있습니다.
⑴일기 불순하고 바람 부는 날에 활동하며, 고요한 날에도 활동합니다.
⑵날개 치며 높이 오르는 기상과 특징이 있습니다.
⑶멀리서도 세밀하게 볼 수 있는 통찰력 있는 눈을 가졌습니다.
⑷독수리는 날개 있는 새 중에서 가장 신속하게 목표를 향합니다.
⑸독수리는 작은 동물 같은 것을 채어갈 힘이 있습니다. 저가 어릴 때에 암탉을 채어 가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병아리를 보호하는 어미 닭을 순식간에 독수리의 다리 사이에 끼어 올라가서 병아리가 뚝뚝 떨어지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훈련하시는 것을 독수리에 비유를 합니다. 자녀를 두신 분은 부모의 사랑이 다양한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회초리를 든 아버지의 손길도 있고, 상처를 어루만지시는 어머니의 손길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언제까지나 눈동자같이 지켜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다루듯이 혹독한 훈련을 시켜서 더 큰 믿음으로 세우시는 것을 봅니다.
어미 독수리는 평안하게 노는 새끼 독수리의 보금자리를 흔들어 버립니다. 마구 입으로 쪼아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새끼들은 어미가 왜 그렇게 하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보금자리를 빠져나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어떤 조류학자의 말에 의하면 어미 독수리는 새끼들을 끌어내기 위해 푹신푹신한 깃털 침대를 전부 밖으로 밀어 던져 버린다고 합니다. 바닥이 딱딱해서 견디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대부분 보금자리 속에서 이대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대로가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 '어느 날 갑자기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가정에 이상이 생기고 사업에 이상이 생기고'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날개로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힌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흔히들 이것을 시험이라고 하고 환란이라고 합니다.


▶이제 독수리 새끼 훈련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독수리 새끼들이 둥우리에서 기어 나오면 어미 독수리는 긴 날개 위에 새끼를 얹어 높은 고궁으로 올라갑니다. 새끼는 잔뜩 겁에 질려 웅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미가 새끼를 사정없이 떨어 뜨려버립니다. 그때 새끼는 비명을 지르며 땅으로 떨어져 내립니다. 어미는 공중에서 새끼가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고 있다가 새끼가 땅에 떨어질 만하면 쏜살같이 내려와서 힘있는 날개로 안전하게 받아 다시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다시 떨어뜨리는 훈련을 반복해서 시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새끼가 자기 힘으로 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를 다루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언제까지 다루실 까요? 높은 하늘을 힘차게 날을 수 있는 믿음의 날개가 생길 때까지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깨달아지면 아멘!/
그러므로 생활이 힘들고 고된 일이 자꾸 반복되면 하나님이 공중에서 떨어뜨리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정신 없이 추락할 동안 누가 지켜보고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십니다. /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큰 일할 일군들은 호되게 훈련시키십니다. 그리고 적당히 사용하실 사람들은 적당히 훈련시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쓰시지 않을 사람은 훈련도 시키지 않고 고생도 시키지 않으시고 편안하게 내버려두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훈련도 안 받고 편안하게 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지 않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까? 아니면 적당히 훈련받고 적당히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눈물이 펑펑 쏟아질 정도로 호되게 훈련받고 크게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독수리가 최고의 새가 되는 비결은 어릴 때부터 강한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신앙의 훈련을 호되게 받아 주님께 쓰임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⑴독수리가 그 새끼를 땅에 부딪쳐 죽게 내버려두지 않듯이 하나님도 우리를 망하도록 방관하시지 않습니다. '큰일났구나!' 하는 절박한 순간에 하나님은 반듯이 우리를 구해주십니다.
⑵독수리가 훈련을 통해서 스스로 날 수 있게 되듯이 우리 역시 신앙의 고된 훈련 속에 하나님의 인격을 닮아가게 하며 오직 믿음으로만 사는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으로 연단 시키시지만 절대로 망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벧전5:10절을 보면 '은혜의 하나님이 고난 받는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할/


4. 왜 이런 과정을 주십니까? '삶의 승리자로 살라'는 교훈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 기독교 윤리학자인 '리챠드 니버'는 그의 '응답 받는 자아'라는 책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서 인간의 유형을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기주의자'가 있다고 합니다. '강도'같은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 규범에 메인 사람'입니다. 어떤 규례를 만들어 놓고는 그것을 스스로 지켜 가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은 상관없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이 역시 이기주의자입니다. 레위 사람이나 제사장 같은 사람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상당히 거룩하고, 자기는 대단히 옳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죄짓지 않고 착하고 깨끗하게 살아간다고 자부하고 삽니다. 그러나 남을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남의 일을 이해하지 않고 앞뒤가 꽉 막힌 사람입니다.
세 번째가 '책임감이 강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 편에 서서 책임을 느끼는 것입니다. 잘못한 자식을 혼내지만 않고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통감하며 같이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사회의 잘못을 욕하기 전에 이 사회의 한 시민으로서 책임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선한 사마리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웃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도움을 주고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나 자신의 신분을 잘 알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우리 이런 우리의 신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우리의 신분은 우리가 이 땅위에 있을 때도 이런 신분이요 천국에 가서도 이런 신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습니까? 과연 이런 신분 됨의 자부심(프라이드)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 제가 묻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이 기쁩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까?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는 사실이 영광스럽습니까?
여러분! 바로 여기에 승리의 비결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신앙의 위대한 승리자인 사도 바울이 이런 자부심 속에 살았습니다. 그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자신만만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고백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시고,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어떤 사람을 그렇습니까? 강한 훈련 속에 바른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사는 자들을 만나주시고 지켜주시며 보호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승리의 비결을 빌4:11-13절의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⑴자족하는 삶을 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해보면 '만족하면서 감사하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세상 적으로 볼 때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나서 복음을 증거 하는 사도가 되고 나서는 그는 많은 것을 포기했습니다.
빌3: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므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셨습니다. /할/
감사하면서 자족하는 삶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감사를 모르고 원망과 불평에 길들어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동안 무엇을 먹고살았습니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신 만나를 처음에 저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꿀 섞은 과자'(출16:31)로 받아먹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기름 섞은 과자'(민11:9)로, 그 다음에는 '박한 식물'(민21:5)로 표현하면서 그 음식을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감사함으로 받다가 나중에는 박한 식물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원망을 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원망하는 저들에게 불 뱀을 보내어 물게 했습니다. 한마디로 감사를 떠난 백성은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자는 승리합니다. 시50: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할/ 가장 축복 받은 사람은 가장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욘2;9절에서도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감사 드릴 때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에게 더 풍성해 진다. 우리가 고난에 대해 감사를 드릴 때 고난이 사라짐을 보게 된다. 감사는 경건한 심령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총의 꽃으로부터 딸 수 있는 생명의 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⑵겸손이 바로 승리의 비결입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우리 기독교의 트레이드마크는 '온유와 겸손 그리고 감사'입니다. 겸손한자는 어떤 복이 따릅니까? 잠22:4절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할/
⑶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어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은 '청교도 운동'을 하다가 번번이 실패하고 사랑하는 아들마저 잃게 되었습니다. 그는 '내 생애는 끝났다. 온 세상이 어둠으로 가득 찼다. 이제 절망이다.'라고 고백하면서 포기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빌4:13절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는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청교도 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고 그 혁명으로 영국을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크롬웰은 자신이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능력은 이미 결론이 난 능력입니다. 내 능력은 어느 때는 성공했다가 어느 때는 실패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는 능력이 내게 있습니다. 주님이 내게 능력을 주시면 무너지지 않고 실패하지 않습니다. /믿/아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지켜주십니다. 그러나 훈련을 통하여 믿음으로 사는 비결을 알게 하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감사가 승리의 비결입니다. 또 겸손함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능력 주시는 하나님 안에 있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할/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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