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할 때 행복합니다! (마 25:14-30)
우리는 행복 자입니다. 행복한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공동체가 바로 참 행복한 교회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는 행복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말이요 모든 이들이 바라는 소망입니다. 세상은 행복을 상품화하여 팔고 있습니다. 이것을 먹으면 행복하다고 광고합니다. 이 집에 살면 남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자랑합니다. 이 차를 타면 행복이 보장된다고 말합니다.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대한민국 헌법에까지 명시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10조에 보면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말을 합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세계 10대 도시 중 서울의 행복지수가 제일 꼴찌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을 향하여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우리 교회 이름도 이 성경구절입니다. 신33:29절에 보면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자로다' /할/ 하나님 앞에 택함 받은 이스라엘이 행복한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 하나님의 부름 받은 선민들을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땅에 너같이 구원을 얻은 자가 어디에 있느냐? 여호와께서 너의 방패가 되시고, 너와 함께 하셔서 여호와께서 너를 보호하여 그의 칼로 너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시고, 너의 갈길 다 가도록 인도하여 너를 높은 산에 오르게 하시니 너는 행복자로다.' /할/
그렇습니다.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를 믿으며 경외하고 의지하는 그의 백성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제일주의로 생각하면 그런 사람은 어디에 살는지 무엇을 하든지 행복하게 되어져 있습니다. /믿/
사람들은 행복을 어디에서 찾습니까? 땅에서 찾고, 권력에서 찾고, 물질에서 찾습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 속에 행복이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보다는 그곳에서 더 많은 상처와 고통과 불행을 현대인들은 경험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행복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를 믿고, 그를 영접하고, 그를 사랑하는 가정과 개인의 영혼 속에 측량할 수 없는 기쁨과 소망과 은혜가 주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은 행복합니다. 성도는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행복합니다. /아멘!/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주인공들입니다. 우리의 이름 석 자가 하늘나라 생명 책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주의 율례와 계명과 법도를 따라 살아가는 성도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
▶프랑스의 작가 '모파상'의 작품 중에 '진주 목걸이'라는 유명한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주인공 마틸드는 아름다운 여성이지만, 가난한 처지에도 사치스런 생활을 추구하며 삽니다. 그의 남편은 하급 공무원이라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늘 생활이 불만 투성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장관 관저에서 열리는 파티의 초대장을 갖고 옵니다. 하지만 그녀는 짜증을 냅니다. 입고 갈 옷이 없다는 겁니다. 남편은 할 수 없이 몰래 모아두었던 4백 프랑을 내놓았고, 그것으로 옷은 해결합니다. 하지만 장신구가 문제입니다. 투정을 부리다 부자 친구를 찾아가 값비싼 목걸이를 빌립니다. 덕분에 파티에 참석한 그녀는 사람들 앞에 한껏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목걸이를 잃어버립니다. 깜짝 놀라 파리 시내를 샅샅이 뒤져 똑같은 목걸이를 구하지만 무려 3만 6천 프랑입니다. 친구에게 숨긴 채 전 재산을 털고 빚까지 내서 사다 줍니다. 그 후 그녀는 10년 동안 빚을 갚느라 온갖 허드레 일을 하며 죽을 고생을 했고, 팍삭 늙어버립니다.
겨우 빚을 갚고 한시름을 놓던 어느 날 거리에서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그때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이 기가 막혔습니다. '얘! 그건 5백 프랑 짜리 짝퉁이었어!' 그 말을 들은 마틸드가 얼마나 황당했을까 상상해 봅니다.
이 소설은 빈 껍데기 가짜 행복, 짝퉁 행복에 속아서 고생만 하다 허무하게 끝나는 인생을 풍자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을 행복인 줄로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속는 겁니다.
그러면 참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또 한번 강조합니다. 참 행복은 예수 안에 있습니다. 예수 안에 천국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감추인 보화 의 비유와 값진 진주 비유'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마13:44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고 했고, 또 45-46절에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고 했습니다.
진주 장수가 좋은 진주를 구하러 멀리까지 다니다가 어느 날 최상급 진주를 발견합니다. 너무 귀한 것이라 전 재산을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삽니다. 이와 같이 천국이 너무 귀한 것이기에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꼭 소유해야만 행복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천국의 가치를 잘 모르니까' 이 두 가지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알래스카(Alaska)를 아시죠. 지금은 미국의 한 주(State)이지만 본래 러시아의 영토였습니다. 1867년 제정 러시아가 미국에 720만 달러에 팔았는데 1 제곱킬로미터 당 5달러에 팔았으니 헐값도 그런 헐값이 없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좋아했고, 미국은 대통령과 장관이 쓸모 없는 '얼음 창고'를 샀다고 여론의 지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어떻습니까? 알래스카는 '보물섬'입니다. 석유와 가스 매장량이 미국 전체의 50%일 뿐 아니라 국가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기념일이 되면 러시아는 초상집이고 미국은 잔치 집이라고 합니다.
왜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립니까? 이 지상에 속한 알래스카의 가치가 그럴진대 천국의 가치는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이 크나큰 가치를 가진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장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은 그 가치가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겁니다. 때로는 무시하고 조롱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목숨조차 던져서라도 얻어야 하고 지켜야 하는 최상의 가치입니다. 그래서 순교자도 나오는 것입니다. /믿/
오늘 우리 교회가 새로운 성전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첫 예배를 드립니다. '참 행복한 교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참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고 참 행복한 신앙 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제목소개!▶
18세기 때 영국의 유명한 '넬슨'이라는 제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눈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1794년 코르시카 섬 점령에 큰공을 세우고 오른쪽 눈을 잃었습니다.
그는 손도 하나밖에 없습니다. 1797년 세인트 빈센트 해전에서 큰공을 세웠으나 오른쪽 팔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폴레옹의 프랑스 함대를 나일강 입구 해전에서 격파하였고,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 스페인 연합함대를 격멸시키고 영국을 위기에서 구출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영국의 넬슨 제독입니다. 그는 트라팔가 해전이 끝날 때 적의 총탄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숨을 거두기 전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하였습니다.'라는 최후의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넬슨 제독은 참으로 맡을 일에 충성을 다한 사람이며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군인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의무를 다하는 삶! 한쪽 눈을 바쳐가면서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 삶! 한쪽 팔을 바쳐가면서 자기의 생명을 다하는 삶! 죽기까지 자기의 직분을 다하는 삶! 실로 그런 사람은 충성된 자의 삶의 표본이 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직분을 받은 사명 자들입니다. 성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집사로, 권사로, 주의 종으로, 사명을 받았습니다.
믿음을 측량할 수 있는 비결은 그 사람의 충성심을 볼 때 판가름이 납니다. 충성은 사명감에서 오는 것입니다.
'칼 힐터'는 '사명 받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사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사명을 주시다니' 이런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려워도 즐겁습니다. 또 그 사명 때문에 열심을 냅니다. 그 사명 때문에 희생하고 헌신하면서도 기쁘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할/
미국의 백화점 왕 '워나 메이커'는 대통령이 장관으로 부르는데도 그는 주일학교 교사가 자기의 사명이라며 주일에 절대로 부르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는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유일한 사명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통령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것이 사명입니다. 또 사명이란 그것 때문에 죽을 수 있어야 사명 자입니다. '예수 때문에, 복음 때문에' 죽는 것을 순교라고 합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상급이 순교입니다. 또 죽어서도 하나님께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사명입니다.
여러분, 좋은 대학 나온 것이 하나님께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사업을 잘하여 돈을 많이 번 것도 하나님 앞에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자식들 공부 잘 가르친 것도 하나님 앞에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한 자만이 하나님 앞에 가서 당당히 자랑할 수가 있습니다. /아멘!/
고전4:2절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계시록에서 주님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정치가가 임기 후 국민 앞에서 자신의 정치력을 결산 받는 것처럼 신앙 인은 일생을 살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작고 큰일들을 마친 후 하나님께 결산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새 성전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보십시오! '주신 사명에 성실했는지, 내게 주신 재능가지고 내게 주신 직분에 충성했는지'를 오늘 이 시간 중간 평가해보는 계기로 삼으시고 잘 했다면 더 충성하시고 못했다면 다시 일어서서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1.본문의 배경을 보자!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감람 산에서 제자들과 마주 앉았을 때 제자들이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와 세상 끝 날에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이 질문에 예수님이 여러 가지 말씀을 해 주시면서 '세상 끝 날에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때 그때야 끝이 올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24:14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러면서 25장에서 비유로 세 가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열 처녀 비유와 본문의 달란트 비유,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열 처녀 비유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예비하라는 교훈이신 데 '깨어 있는 자만이, 기름을 준비하는 자만이 공중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음을 가르쳐 준 비유'이고, 양과 염소의 비유는 성도와 불신자의 비유로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오른편은 의로운 자리로 표현하고 왼편은 저주의 자리로 표현합니다.
오른편은 보호와 능력을 의미하고, 왼편은 무관심, 버려 둠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상의 우편 강도는 구원을 받았지만 왼편 강도는 버림을 받았습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는 성도는 천국에, 불신자는 지옥 불에 던짐을 받는다는 비유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의 비유는 충성심을 체크하는 비유입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주님 앞에 서게 되는데 그때 우리는 '청기지로서의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했는가?' 하는 결산보고서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는 충성심을 체크하는 그런 비유입니다.
어떤 주인이 먼 나라에 장기 출장을 가면서 자기 집 종들에게 장사하라고 자본금을 맡기고 떠났습니다. 생각 없이 준 것이 아니고 종들의 지혜와 능력을 면밀히 살펴서 각기 가진 재능대로 다섯 달란트를 준 자도 있고 두 달란트를 준 자도 있고 또 한 달란트를 맡기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왜 달란트를 주었습니까? 그 달란트를 잘 활용해서 많은 이윤을 남기라고 주고 떠난 것입니다. 그랬더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았던 종들은 그것으로 열심히 장사를 시작하여 곱절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그나마도 적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고 감추어 두었습니다.
드디어 주인이 출장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 맡겼던 돈을 결산하는데 그 결산 보고서를 보면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자들은 갑절의 이윤을 남겼으므로 그 주인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한 달란트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땅에 묻어 두었던 것을 그대로 갔다가 주니 주인이 대노하면서 '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고는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면서 '이 무익한 종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저주했습니다.
본문 속에 주인은 우리가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킴이요, 먼 나라에 갔다고 하는 것은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다시 오셨다는 것은 주님이 심판 주로 오실 재림을 의미합니다.
가시면서 그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겼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직분을 주시고 사명을 주시고 재능을 주시고 믿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한 자가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입니다.
불충한 자는 바로 한 달란트 받은 자입니다. 우리는 이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 갑절의 이윤을 남겼던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가 되어 우리 주님 앞에 설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받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
그렇습니다. 칭찬을 받을 때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칭찬을 받을 때, 학생이 선생에게 칭찬들을 때 행복해 집니다. 하물며 만 왕의 왕이 되신 예수님 앞에 잘했다고 칭찬을 받는다면 엄청 행복한 사람인줄 믿습니다. /아멘!/
2. 우리는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소유를 맡은 자들입니다.
먼저 본문이 시작인 14절을 보면 '그 종들로부터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종들은 원래부터 소유가 없었고, 가질 수도 없는 신분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맡김으로 이제는 주인의 소유를 맡고 있는 신분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맡겼다'는 말은 종들 편에서는 주인이 맡겨 주신 것을 맡은 자들입니다. '맡은 자들' 내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주인이 맡겨 주었습니다. 그들은 관리하는 관리자에 불과합니다. 요즈음 말로 매니저에 불과합니다. 좀 더 고대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그것이 청지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것은 주인으로부터 받은 것을 가지고 사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어떤 사람은 나의 주인이 남편, 아내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의 주인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믿/
그렇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주인이 종들에게 맡기듯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우리 주님이 많은 것을 맡겨주셨습니다. 무얼 맡기셨습니까? 시간도 맡겨 주시고, 돈도 맡겨 주시고, 재능도 맡겨 주시고, 은사도 맡겨 주시고, 또 우리의 몸도 맡겨 주시 고, 우리의 목숨, 인생도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갖고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맡겨 주신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내가 돈이 얼마나 많으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맡겨진 돈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재능과 달란트를 갖고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 앞에서 청지기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의 건강도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입니다. 나의 생명도 임시로 맡은 잠깐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 하나님이 거두시면 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분이 찾을 때 도망갈 수가 없습니다. 내 생명뿐만 아니라 내 재산도, 내 자녀도, 내 명예와 직위도 나의 지식까지도 이 모두가 하나님 앞에 종으로서의 맡은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을 때, 교만해지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대적한다고 물러서는 분이 아닙니다. 왜 맡겼습니까? '교회를 섬기라고, 천국을 건설하라'고 우리에게 맡겼습니다. /믿/
이 사실을 바로 알 때 맡은 것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죄 짓고 다른 사람은 해롭게 하는데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주신 분의 뜻을 따라서 그것은 선용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이 자세가 확실해야 충성된 청지기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어떻게 관리했습니까? 잘 관리했다면 하나님 앞에 축복된 일이고,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3. 달란트 분배의 원칙이 있습니다.
15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각각 그 재능대로 맡기십니다. 얼굴 생김이 각각 다르고, 마음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듯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도, 직분도, 재능도 각각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를 확실하게 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뜻대로 주시는 것입니다. 재능대로 주시는 것입니다.
섬기는 직분도 주시고, 전도의 재능도 주시고, 봉사의 재능도 주시고 음악, 체육, 과학하는 사람, 사업하는 사람, 하나님이 주시는 재능, 우리는 주신 재능 가지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은 갑절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지혜도, 힘도, 조건도, 환경도 더하여 주십니다. /믿/
여기서 달란트는 '만능 재능 꾼'이란 의미가 있습니다만 여기에서는 그 당시 금화, 즉 돈의 단위입니다. ▶이것은 신령한 의미에서 4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⑴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간이라는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금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90년, 100년 사는 아주 긴 시간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70년, 60년 그러나 어떤 사람은 20-40년, 그 이하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하는 아주 짧은 단위의 달란트를 준 사람도 있습니다.
⑵재능의 달란트가 있습니다. 사람은 재능이 다 각각 다릅니다.
⑶은사의 달란트입니다.
⑷기회의 달란트가 있습니다. 공부할 수 있는 기회, 하나님께 봉사할 수 있는 기회, 우리가 봉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병들어 보십시오, 늙어 보십시오, 할 수 없습니다. 건강 주실 때, 우리는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은 돈을 버는 기회도 주시고, 장사할 수 있는 기회도 주시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의 달란트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 기회들을 우리 모두 잘 활용하시기를 바랍니다.
4. 달란트 관리 원칙을 보십시요!
본문에서 충성을 다한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6절에 '바로 가서'입니다. 또 17절에 '그와 같이하여'입니다. 이것, 저것, 망설일 필요 없이 달란트를 받자마자 즉시 장사하러 나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망서려서는 안 됩니다. 우물쭈물해서도 안 됩니다. 게으르고 나태하면 여러분이 손해입니다. 왜지요? 기회를 놓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바로 즉시 순종해서 갑절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①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문제입니다. 18절을 보면 땅을 파고,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돈이 지하로 숨어드는 것을 지하경제라고 합니다. 떳떳치 못한 돈을 검은 돈이라고 합니다. 대 삼성이 검은 돈 때문에 특검을 받았습니다. 큰 망신을 당했습니다.
돈은 정당한 방법으로 유통되어야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돈과 같이 땅에 묻어 두면 돈에 유통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그 결과 질서가 흔들리게 됩니다. '바로 가서' 달란트를 활용해야 합니다.
그 사람도 바로 가서 부지런히 장사하였더라면 한 달란트라도 남겼을 것입니다. 부지런히 장사하면 이익이 남게 되고 묻어 두면 썩어버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엄청난 달란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훗날 쓰겠다고 미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됩니다. 주인 되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쁜 곳에 써야하고, 바르게 써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19절의 말씀대로 우리가 주인 되신 하나님 앞에서 회계할 때가 오기 때문입니다. 즉 심판을 받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받아 가지고 있느냐가 관심이 아니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관심을 집중시키십니다.
다시 말하면 '맡겨진 일에 얼마나 충성했는가?'를 지켜보십니다. 하나님은 지켜보셨다가 충성된 자에게는 칭찬뿐만 아니라 더 큰 축복을 안겨주시는 분입니다.
21절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군수로 충성했더니 도지사가 되게 했습니다. 과장으로 충성했더니 국장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신도로 충성했더니 집사, 권사, 장로로 세워주셨습니다.
여러분 교회 직분 우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모든 직분은 세상에서 끝나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직분은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인정받는 줄 믿습니다. '아무개 권사야, 집사야 네가 죽도록 충성했으니 생명의 면류관 받아 쓰라'고 우리 주님이 축복하십니다. /믿/
②충성을 다한 자는 하나님나라 즐거움에 참여하게 됩니다.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찌어다.' /할/
여러분 지금까지 어떻게 보냈습니까? 착한 청지기로 보냈습니까? 아니면 게으르고 악한 청지기로 보냈습니까? 인간은 판단할 수 없으나 우리의 머리칼까지 세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보시고 아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새 성전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합니다. 이제 우리는 지난날을 한번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과연 하나님께 충성했는가를 반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본문의 한 달란트 맡은 자와 똑같기 때문입니다.
사실 본문의 포커스는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맞춘 것이 아니라 한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맞춘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시지요? 우리들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아멘!/
5. 한 달란트 받은 자를 조명해 보겠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왜 악하고 게으른 종아!' 책망을 받았는가?
⑴그의 착각 때문입니다.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먼저 자기 자신을 모르는 착각 때문입니다. 달란트를 다르게 주신 것은 각각 재능대로, 자기의 힘대로, 능력에 맞게 주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세 사람 모두 100%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자기의 능력이나 달란트를 보지 않고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를 우습게 보았다고 불평합니다. 사람은 자기 분수를 잘 알아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은 자기가 잘 압니다.
또 이 사람은 주인에 대한 착각 때문입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라고 했는데 여기 '굳은 사람'은 '힘든 사람, 이해심이 없는 사람, 고집 센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는 주인을 돈만 아는 구두쇠라고 착각하고 몹시 두려운 분으로 공포의 대상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⑵잘못된 비교의식 때문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무서운 비교 의식과 열등감을 가졌습니다. 비교의식이 강할수록 인간관계가 왜곡되어 친구도 잃고 스스로 좌절감에 빠지고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사단은 비교의식으로 인간을 망하게 하는데 명수입니다. 가인도 비교의식 때문에 아벨을 죽였습니다. 사울 왕도 비교의식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⑶악하고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이 종은 본래부터 천성적으로 악하고 게을렀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악한 사람이 악하고 게으른 사람이 게으릅니다.
⑷결국은 남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열매를 바라고 계십니다. 눅13:7절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이 사람은 너무 아는 것이 탈입니다. 많이 알면 많이 알기에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데 실상 사람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상스럽게 많이 알면 알수록 말이 많아집니다. 그런데 말이 많아지면 일이 되지를 않습니다. 일이 자꾸 걸림돌에 걸리고 추진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자기의 주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습니다. 주인이 굳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데서 모으는 줄을 잘 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만 있으면 무엇합니까? 바로 가서, 즉시 가서 행해야 되지 않습니까? 사실 아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바로 믿을 수가 있습니다. 아는 만큼 겸손을 잃는다면 그 사람은 믿음의 큰 손해를 봅니다.
D.L 무디는 '많은 사람들이 혀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그러나 경건한 사람은 손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자기가 주인을 잘 아는 것으로 변명을 했는데 알아도 크게 잘못 안 것입니다. 왜? 오해가 생기는지 아십니까?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선한 주인을 공연히 악한 사람으로 몰아 붙였습니다.
자기 주제는 생각지 않고, 자기가 한 일을 생각지도 않고, 오히려 자기를 신임하고 한 달란트 맡긴 주인을 야속하게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은 '주인은 굳은 사람, 혹은 엄한 사람으로만 알았고, 용서와 관용을 베푸시는 주인을 몰랐으며, 풍성한 것으로 주시기를 좋아하는 주인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각박한 주인으로 오해를 해도 단단히'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심은 데서 거두는 분입니다. 갈6:7-8절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할/
여러분, 심은 데서 거두고 심은 대로 대접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으며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미국에 이런 실화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어느 농부 한 사람이 수십 년 동안 경마장에서 도박을 했는데 한 번도 경마 표를 맞추지 못해서 쫄딱 망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상천외로 경마 표가 1등으로 당첨이 되었습니다. 그 상급은 2억불이나 됩니다.
미국의 마사회는 당첨 발표 전에 상급 받은 사람에 대하여 조사를 한답니다. 그래서 농부에 대하여 조사해 본 결과 찢어지게 가난한 농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2억 달러를 건네주면 심장마비나 걸리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전달해 주는 방법을 연구하는 중에 그가 카톨릭 신자 인 것을 알고 그가 다니는 성당의 신부에게 그 돈을 전달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신부는 그 농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이번에 경마 표를 사셨죠? 만일 일등으로 당첨되었다면 그 상급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농부는 '신부님, 맞을 턱이 있나요?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대답하고 나서는 '만약 내가 당첨이 되어 2억불을 받게 되면 그 중에 1억불은 신부님께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이 말을 들은 신부가 갑자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었다는 실화입니다.
하나님은 감당할 수 있는 그 몫대로 복을 주십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믿음대로' 주십니다. 오늘 한 달란트 종은 적다고, 시시하다고 그 재능을 땅에 묻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적다고 불평하지 말고 그 한 달란트를 잘 개발해서 갑절의 이윤을 남기는 '참 행복한 교회'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6. 충성할 때 행복합니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은 충성해서 잘했다고 칭찬을 받았고 더 많은 것에 복을 받았습니다. 충성된 자는 더 큰 것을 얻게 되고, 불충한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깁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더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30절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시간은 흘러갑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가 멀지 않았습니다.
▶이솝우화 가운데 사냥을 잘하는 들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동물도 들개의 빠른 발은 따라올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토끼 한 마리를 뒤쫓았는데 그만 잡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개들이 놀려댔습니다. 말 그대로 개망신만 당했습니다. 그때 그 들개가 해명하기를 '그놈의 토끼는 목숨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뛰었고, 나는 그저 저녁 식사거리를 위해서 뛰었기 때문이야'
목숨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 달리는 자와 먹이를 위해 적당히 달리는 자는 그 뛰는 모습이 다르고 결과도 다릅니다. 성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죽으라고 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최선의 믿음이 우리를 이기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교회는 '죽도록 충성하라고 부탁 받은 곳'입니다. 계2:10절에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죽도록 충성하라'는 부탁의 말씀은 무거운 말씀이지만 사실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사도 바울과 서머나 교회의 감독에게나 부탁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부탁의 말씀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또는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며 충성할 수 있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나 이순신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나 유관순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나 주기철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무나 손양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별한 사람들만이 나라를 위해서 또는 주님을 위해서 죽음으로 충성할 수가 있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축복은 주님으로부터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우리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 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눅10:20절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크게 기뻐할 일은 하늘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일입니다. /할/ 스데반에게 그 면류관이 주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그 면류관이 주어졌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위해서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달려갈 길을 달려갔습니다. 딤후4:7-8절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기를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성령의 열매 중 하나가 충성입니다.
'충(忠)'자는 '가운 데(中), 마음(心)'의 합성어입니다. '옆에 있는 마음이 아니라 중심으로 무엇을 하는 것을 충성'이라고 합니다. 중심은 곧 진실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충성이란 말의 근본 뜻은 '믿음'과 '미쁘다'는 말입니다.
▶충성에는 몇 가지 시금석이 있습니다.
⑴양(量)의 시금석입니다. 작은 것에도 충성하고 큰 것에도 충성해야 합니다. /아멘!/ 요셉은 보디발 장군 집에서 종살이할 때 충성되게 일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애굽의 총리 대신으로 일할 때에도 충성된 대신이 된 것입니다.
⑵시간의 시금석입니다. 얼마나 오래 충성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속담에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이나 맡아서 충성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열심히 얼마나 오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충성은 지내보아야 압니다. 교회를 봉사하는 것도 몇 해 동안은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0년, 20년 꾸준히 봉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맡은 일이 무엇이든지 끝까지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할/
⑶환경의 시금석입니다. 녹음방초 우거진 여름에는 송죽의 절개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찬바람이 불고 흰눈이 펄펄 내리게 되면 송죽의 참 절개를 알게 됩니다. 옛말에도 나라가 어지러워질 때 충신을 안다고 했습니다. 집안이 가난할 때, 어진 아내를 알 수가 있습니다.
충성이 언제 나타납니까? 어려운 일이 일어나고 환난이 있고 핍박을 받을 때 나타납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우리는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 백제의 계백 장군을 보게 됩니다. 어린 단종 시절의 성삼문을 위시한 사육신의 충성을 보게 됩니다.
▶충성된 일꾼의 특징이 있습니다. ⑴언제든지 부르면 달려오는 사람입니다. ⑵소리 없이 행하는 사람입니다. ⑶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⑷시간이 지나도 꾸준한 사람입니다. ⑸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않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이런 사람들의 몫입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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