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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신앙을 가져라! (막9:14-29)

by 【고동엽】 2022. 2. 7.

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신앙을 가져라! (막9:14-29)

 

인류역사에 찬란한 업적을 남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하나의 공통된 성공철학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나는 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생각은 절대적 지배력이 있습니다. 잠23:7절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이라고 했습니다. 사무엘 스마일즈는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둘 것이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거둔다'고 말했습니다.
생각은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유명한 마술사가 한 여자에게 '당신은 일주일만 지나면 죽을 것'이라고 가짜 예언을 시험삼아 해 보았습니다. 그때부터 그 여자는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유서를 써 놓고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워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여자는 진짜 일주일도 못되어 죽어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생각은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큰 목회를 하고 계신 유명한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엇인가 할 수 있다. 그러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불가능한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신앙에는 두 가지의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신앙이 있는가하면 또 하나는 부정적인 신앙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신앙은 '매사에 실패를 생각하고 고생을 겁내며 장애물을 바라보며 미리 포기해버리는 소극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신앙 인들은 '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한다'는 귀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4: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한 성공 자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유를 알아내자' 그런데 패자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성공 자가 실수를 하면 '내 잘못이었다.'고 시인하지만, 패자는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남에게 돌립니다. 성공 자는 어떤 고난도 극복한다는 자세이고, 그러나 패자는 고난을 돌아가려고 하고 피해가려고 하고 결국 이겨내지 못합니다. 성공 자는 모든 것은 실천하고 실행합니다. 그러나 패자는 언제나 약속만을 늘어놓는다고 합니다.
성공 자는 주변에 모든 사람들에게 뭔가 배우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패자는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깎아 내리려고 합니다. 성공 자는 매사에 '더 나은 것에 있을 텐데'하고 안타깝게 말합니다. 그러나 패자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어!' 포기해 버리고 만답니다.
우리는 민13-14장의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애급에서 지도자 모세를 따라나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는 도중입니다. 바란 광야에 모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족장 한 명씩을 뽑아 12명은 가나안 땅에 보내어 그 땅을 탐지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스파이를 파견해 명령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각 지파에서 대표자 한 명씩을 뽑아 12명을 보냈습니다. 이제 12명은 공동 운명체가 되어 40일간 전 가나안 땅 동서남북 구석구석을 돌며 탐지했습니다. 그들이 에스겔 골짜기에 들어가 보니 포도송이가 어찌나 큰지 한 송이를 둘이 맬 정도로 큰 것을 증거로 모세와 그의 백성들에게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보고를 합니다. '당신이 우리를 보낸 그 땅에 가 본즉 과연 젖과 꿀이 흐르고 있었소! 이것은 그 땅에서 난 실과입니다. 그러나 그 땅에 사람들은 강하고 성읍도 견고하고 심히 클 뿐만 아니라 거기서 아낙자손(거인)을 보았나이다.'
그리고 그들의 보고의 결론을 말하기를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고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백성들은 신장이 장대하고 또 내피림 후손 아난자손 대장부들로 보이는데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벌벌 떨면서 통곡을 합니다. 이때 믿음의 사람 갈렙과 여호수아는 큰 소리로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느니라!'고 당당하게 외쳤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은 '할 수 없다'는 자화상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할 수 있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니까 '할 수 있다는 자화상'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10명의 정탐꾼은 '해도 안 된다'는 자화상을 가졌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자화상을 가졌고, 10명의 정탐꾼을 '스스로 메뚜기'라는 자화상을 가졌습니다. 또한 두 사람은 '상대방을 밥'으로 여기는 자화상을 가졌지만,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10명의 정탐꾼은 '안 되는 것만 보고 안 되는 것만 말하고 안 되는 것만 고르는 비극적인 천재들'이었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여호수아와 갈렙은 '되는 것만 보고 되는 것만 말하고 되는 것만 고르는 소망적인 천재들'입니다.
드디어 10명의 부정적인 정탐꾼은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되었고,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할/
여기서 가나안땅은 어떤 땅인가? 약속의 땅이요, 천국의 모형입니다. /믿/ 그들이 그 땅에 못 들어갔다는 것은 지옥으로 떨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적극적인 신앙과 부정적인 신앙은 천국과 지옥입니다. 축복과 저주입니다. 성공과 실패의 차이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쪽을 택해야 합니까? 두 말 할 것 없이 적극적인 신앙을 택해야 합니다. 오늘 주님은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할/ ◀제목소개!▶

 

1. 본문의 배경을 알아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수석제자 셋을 데리고 높은 산 위로 가셨습니다. 성경에는 변화 산이라고 기록되었는데, 학자들은 그 산을 헬몬산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세 제자만 데리고 갔고 나머지 아홉은 산밑에 있었습니다. 성경에 아홉을 남겨 놓고 가신 사건이 세 번 나오는데 오늘 본문에서와 야이로의 딸이 죽던 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입니다.
변화산에서 주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에게 천국의 영광과 주님의 귀한 영광을 보여 주었습니다. 세 제자들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시몬 베드로는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서 세 개의 초막을 '하나는 주님을 위해서, 하나는 모세를 위해서,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짓겠다고 할 정도로 크게 마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주님은 별관심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왜냐면 주님의 주 관심은 산밑에서 괴로워하며 마귀에게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산밑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변화 산에서 내려 오셨을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께서 변화 산에서 내려오시니 산 아래에서는 귀신들려 간질하는 한 아이를 놓고 아홉 제자들이 쩔쩔 매면서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날 때부터 벙어리 귀신들린 아들 때문에 근심, 걱정 속에 살아가는 부모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의 병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다니며 약을 쓰고 노력해 봤지만 아무 효험이 없었습니다. 이 아이는 어려서부터 물에도 넘어지고, 불에도 넘어지곤 했습니다.
이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 산밑까지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 계셨지만 제자 아홉이 있었기에 이 아이를 부탁했습니다. 아홉 제자들이 제법 큰 소리로 고함을 치며 귀신을 꾸짖었으나 모두 허탕이었습니다.
이 제자들이 얼마나 창피했겠습니까? 성경에는 없지만 그 아이의 아버지는 제자들을 우습게 보았을 것입니다.
'저것들도 예수님의 제자냐? 왜 그리 능력이 없나' 오늘날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많지만 참 교인구실을 못하는 사람들도 참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차라리 찍어 불에 던지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셨으며 또 맛을 잃은 소금은 밖에 버리어 사람들에게 밝힐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오셔서 '무슨 일이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그의 아버지가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는 세대여!' 책망하시고 그를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 아버지가 예수님께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하는 말이 '할 수 있으시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고 하자,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들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신 뒤 기도하시니 귀신이 소리 지르며 나가고 그 아이는 즉시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할/
여러분, 믿는 자마다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과학의 힘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의 힘, 돈의 힘, 권력의 힘이 크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큽니다. 대단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힘은 세상의 모든 것을 초월합니다. 세상 적인 힘은 상대적인 것이고 순간적인 것이고 찰나적인 것이지만 믿음의 힘은 모든 것을 초월합니다. /믿어지면 아멘!/할/
이 말씀이 믿어지는 자가 복 받을 잡니다. 그런데 믿음이란 하루아침에 근방 되어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꾸 훈련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자기가 결심하고 결단하는 다짐도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처서 복종시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가짐입니다. 신앙생활은 마음공부이기 때문입니다.

 

2.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신앙을 발전시키기 위해 몇 가지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①매일 우리들의 생활 속에 '긍정적인 생각, 긍정적인 말'을 사용하십시오!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귀합니다. 모든 성공 자들도 거의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사람들이랍니다.
미국의 수필가 에머슨은 '사람이란 종일 자기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을 이루고 산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마음에 품은 생각에 따라 삶을 이루어 나갑니다. 잠23:7절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 즉'이라고 했습니다.
큰 생각을 품은 자는 큰 작품을 남깁니다. 그러나 옹졸한 생각은 그 작품도 옹졸해 집니다. 우리들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입으로 시인하는 말의 능력은 더 크답니다. 롬10:10절에서 바울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들은 말씀은 믿어 그 믿음을 입으로 고백할 때 구원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약2장에 보면 '혀는 키와 같아서 키가 큰배의 방향을 정하는 것처럼 사람의 혀가 온 몸을 지배한다.'고 말했습니다. 말이란 마치 자동차의 기어 장치와 같습니다. 만일 부정적인 말을 하면 그 분위기가 부정적으로 바뀌게 되고 파괴적인 말만하면 결국 파괴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자동차의 기어를 앞으로 전진하도록 걸고 스위치를 넣으면 그 차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후진기어를 넣으면 자꾸 뒤로 물러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말은 앞으로 전진하지만 부정적인 말은 우리 인생을 후퇴시키고 맙니다. /믿/
우리는 언제나 남에게 소망을 심어주는 축복의 말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적극적인 사고가 '지그 지글러' 박사가 흑인 구두 닦기 소년에게 구두를 닦다가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소년은 '네 제 이름은 짐 윌슨입니다.' 그때 지글러 박사가 '윌슨아! 그 이름이 참 좋구나! 윌슨이라는 대통령도 있었지 그 이름같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 보게!'라고 말하면서 등을 다독거려 주었답니다.
그때 이 흑인 소년은 마음에 희망과 용기가 샘솟았습니다. 그 후 그는 계속 노력해서 훌륭한 흑인 지도자가 되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한마디의 말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다는 말 대신에 할 수 있다는 말로, 큰 일 났다는 말 대신에 문제없다는 말로, 불평 대신에 감사의 말만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남의 허물보다는 칭찬의 말을, 불행하다는 말 대신에 행복하다는 말로 바꿔 나가십시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소리는 원망, 불평, 불만, 의심의 소리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큰 사람의 화제는 아이디어이고, 보통사람의 화제는 물질(돈)이고, 작은 사람의 화제는 남의 험담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큰 사람은 남의 험담을 하지 않습니다. 험담은 비평입니다. 남을 비평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먼저 해를 당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긍정의 말과 생각을 가져야 합니까? 한마디로 그 긍정의 생각이 나 자신에게 상당한 암시를 주기 때문입니다. 또 그 암시는 자신감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자신감은 희망이고 약속입니다.
미국인들은 별 것도 아닌 것을 보고도 '베리 굿'이라고 말합니다. '원더풀'이라고 응답합니다. 비 오는 날도 '굿 모닝' 합니다. 말이 좋고 생각이 참 좋습니다. 그 말을 듣는 너도 좋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긍정의 말과 생각은 아름다운 말입니다. /믿/
▶어느 언어학자가 연구한 논문에 보니까 '우리 조상이 가난하게 살고, 후진국으로 살아야 했던 이유는 부정적인 말에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보통 죽겠다는 말을 수없이 씁니다. 좋아죽겠다. 기뻐 주겠다, 배불러 죽겠다. 배고파죽겠다. 더워죽겠다. 추워죽겠다. 우스워죽겠다. 죽겠다는 언어문화가 우리의 삶을 열어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일리 있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신앙의 말만 합시다.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말을 합시다. 주님은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시고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섰다'고 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할 수 있다'는 자화상을 가져야 합니다. 또 '해야 한다'는 자화상을 가져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자화상을 가지십시다. 나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능력의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할/
빌4: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또 마19:26절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믿/

 

②부정적인 감정에 굴복하지 말자!
사람이 말로 늘 불평하고 원망하고 탓하다 보면 누구보다도 내 자신의 감정이 상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의 감정이나 관계도 상하게 되고 악화되어 그 생활이 어두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낙관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좋은 기분으로 살아갑니다. 늘 웃으며 감사하며 타인을 도우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인간의 속성은 부정적인 것을 더욱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과 공의와 화평보다는 불행과 싸움을 더 매력 있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담배나 술이 사람에게 대단히 해로운 것임을 알면서도 요즘 어린 학생들이, 특히 어린 여성들의 음주 흡연 인구가 날로 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좋은 일을 위해서 살아가기보다는 좋지 못한 것을 따라가는 인간의 모습에서 과연 인간은 '죄 성이 있구나!'를 깨닫게 해 줍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마음의 결단이 중요합니다. 행여나 우리들의 마음속에 게으름이 오고 나태함이 오고 부정적인 요소들이 찾아오면 과감히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일어나 빛에 자리에 거하십시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고 당부하셨습니다.

 

③어떤 형편에 처했던지 항상 좋은 것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중간결산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최종 웃는 자가 승자이듯이 주 앞에서 내려놓아야 할 결산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항상 좋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롬8: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또 갈6: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불행한 환경도 불리한 조건도 모두 다 합력하여 좋은 결과를 주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환난과 고난을 최상의 축복으로 변화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요셉은 형제에게 버림받은 노예가 되어 수십 년 동안 고생했지만 하나님은 그 과정 속에서 그를 애굽에 국무총리로 세우셨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지만 믿음을 지키며 내일이라는 큰 것에 기대하면서 살다가 드디어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환경이 어렵고 조건이 안 풀립니까? 더더욱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영혼을 사랑하고 성전을 사랑하고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는 관심이요, 주는 것입니다. 주님께 더욱 더 투자하십시오, 시간을 투자하시고, 재능을 투자하시고, 물질을 투자하시고 생명까지 투자하십시오, 그리하면 깜짝 놀랄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히11:6절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또 모세는 26절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좋은 교회를 찾지 말고 우리 교회를 좋은 교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나라로 이민 가는 것도 좋지만 우리나라를 좋은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요즈음 우리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이민 가 살고 싶다는 사람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살기 좋은 나라가 지구상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상파울로에 갔다 온 사람이 말하는데 그곳은 일 년 열두 달 냉방도 필요 없고 온방도 필요 없다고 합니다. 에어컨도 필요 없고, 난로도 필요 없는 곳이 있다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일까요?
캐나다도 그렇게 자연환경이 좋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다 살기 좋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땅을 찾지 말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이 땅을 좋은 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나 한사람이 바로 서면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나 한 사람부터라도 빛이 되고 소금처럼 살면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아멘!/

 

④항상 감사하는 생활은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합니다.
언제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원망과 불평 대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십시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요, 창조적인 감정을 가진 자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원에서 대수술을 받고도 교통사고로 인하여 큰 부상을 당하고도 하나님께 감사헌금을 합니다. 그 상황 속에서도 지켜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주일 동안에도 병원에 가지 않고 약 한 알 먹지 않고 건강하게 지낸 시간을 더욱 감사해야 될 줄 믿습니다. /아멘입니까?/할/
▶두 마을이 있었습니다. 한 마을은 감사 촌이고 다른 마을은 불평 촌이었습니다. 감사 촌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범사에 감사하기에 늘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불평 촌에 사는 사람들은 무슨 일에든지 감사는 찾을 수 없고 불평만 하는 사람들이기에 모두가 짜증스럽게 보였습니다.
하루는 감사 촌사람들이 불평 촌을 방문했습니다. 그들이 매사에 불평하며 사는 모습을 보고 감사하며 사는 삶이 너무나 감사하다며 더욱 기쁨을 얻고 돌아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평 촌에 사는 사람들이 감사 촌이 어떤 곳인가를 견학하러 모두가 호기심 속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방문을 마치고 돌아 와서 불평하며 말하기를 '에이 괜히 감사 촌에 갔다가 얻어먹은 것도 없이 감사만 하고 왔네' 하고 불평하더랍니다. 행복을 원하거든 아예 감사 촌으로 이사를 가야 합니다.

▶감사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예배의 행위입니다. 시116:17절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할/

바울은 살후2:13절에서 당부하기를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마땅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살전5: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아멘!/
▶왜 감사해야 합니까? 고전15:5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김을 주시는' 이 말은 현재 분사로써 한번만 이기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승리의 삶을 주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예수 안에 있으면 지는 것 같지만 이기고, 실패할 것 같지만 성공하고 무너질 것 같지만 다시 회복되고, 죽어도 사는 축복의 길이 있습니다. 욉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김을 주시는 승리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말로, 마음으로, 재능으로, 물질로, 생명 드려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면 감사할 수 있는 더 좋은 조건이 열리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한 시대에 빛을 남겼던 고 김활란 박사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묘소에 가보면 묘비에 그분의 화려한 학력과 업적을 크게 써 놓았으리라 예상했는데, 예상외로 평범한 무덤 위에 성경책 한 권을 돌로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살전5:16절의 말씀인 '항상 기뻐하라'는 성구 한 절을 새겨 놓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살았던 분이셨기에 그토록 위대한 생애를 살고 가셨습니다.

 

⑤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믿음의 기도를 드리십시다.
막11:24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본문 29절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하면 능력이 옵니다. 기도하면 하늘의 지혜가 옵니다. 기도하면 막혔던 것이 풀리고 열립니다.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나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도하는 개인이 살고, 기도하는 교회는 부흥됩니다. 기도하는 국가는 흥왕의 축복을 받습니다.
요15: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중요한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주님 마음에 합한 자로 사는 자의 기도는 다 들어 주시겠다는 언약입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십시오, 약1:5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할/

 

⑥큰 믿음의 꿈을 가지십시오!
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땅콩 농장의 주인이었는데 주지사가 되고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비결은 오직 믿음 하나였다고 술회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외국에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꼭 자기가 섬기는 고향 교회에 나가서 5학년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담임목사가 이제 대통령이 되셔서 못 올 줄 알고 그 반을 다른 교사에게 넘겼는데 대통령이 왔습니다. 그래서 '각하! 어떻게 바쁘신 데 오셨습니까?' '무슨 말씀입니까? 대통령은 세상의 부업이고 교회 선생은 나의 본업'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 훌륭한 믿음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새벽기도도 빠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통령 중에서 자기 딸을 흑인 빈민학교에 처음으로 넣었던 대통령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미 카터가 새벽 기도를 드릴 때 '지미가 누구냐?'고 하지말고 '누가 지미를 모르느냐?'로 바꾸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대통령 출마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카터는 대통령직에 있을 때보다 내려왔을 때가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높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믿음 안에서 큰 꿈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사람 한사람, 한사람에게 하나님의 계획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를 실패로 이끄는 계획이 아닙니다. 성공 자로, 축복 자로 이끄는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경은 꿈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합니다. 요셉은 꿈 하나 때문에 위대한 성공 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꿈을 가지십시오, 꿈이 바뀌면 인생이 바뀝니다. 목표가 바뀌면 삶이 바뀝니다. 우리 교회도 참 행복한 교회로 개명하고 새로운 부흥의 꿈을 가지고 출발합니다. 이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들을 오늘도 주님이 찾고 계십니다. /믿/

 

⑦섬김의 생활을 하자!
미국 미시간대학 사회연구소 심리학자 스테파니 브라운 박사는 423쌍의 장수 노인들이 '왜 장수하는가? 생활에 무슨 특징이 있는가?'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장수노인들은 한결같이 친구, 이웃, 친척들의 가사, 육아, 심부름 등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인류의 기본 나이는 120세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원인이 세 가지라고 합니다. 하나는 폭식하는 것이고 둘째는 무절제이고 세 번째는 누군가를 돕는 일이 없이 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인색하게 살던 사람이 죽어 심판대에 섰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그의 일생의 기록을 보니까 누구를 도와준 기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굴 도와준 적이 없느냐고 물으니 오기 며칠 전 거리에서 동전 500원짜리를 거지에게 한번 준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길을 가는데 거지가 빤히 쳐다보기에 주고 왔으니 나도 천국 갈 자격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곁에 앉아있는 미카엘 천사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미카엘이 '동전 500원 주고 지옥 보냅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성경은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고받은 법칙이 있습니다. 눅6: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먼저 드리고 나면 되돌려 주실 때에는 누르고 흔들어 넘치게 하여 안겨 주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쩨쩨하게 주시지 않습니다. 차고 넘치고 흔들어 안겨주십니다. 하나님은 주고받는 법칙을 통하여 축복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헌금하고 봉사하는 것, 절대로 거저가 아닙니다. 30/60/100배로 되돌려 주십니다. 예수님은 '냉수 한 그릇'의 선행도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할/

 

3. 본문에서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우리의 어떠한 인생의 문제도 예수 그리스도께 가지고 나가면 해결된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믿/ 문제는 해결 자를 만날 때 해결됩니다. 노련한 자동차 정비공이 고장난 자동차를 순식간에 고치듯이 우리의 고장 난 부분을 주님께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①주님께 데리고 오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17-20절까지 기록된 말 중에서 '데려온다.'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데리고 나오는 것', 즉 전도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전도란 한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데리고 나오면 귀신도 쫓겨 갑니다. 어린 아이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여기서부터 믿음의 기적은 출발합니다.
②우리의 주변의 가까운 사람을 먼저 데리고 와야 합니다. 17절 "선생님! 벙어리 귀신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
가족구원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이웃구원이 우선입니다. 여러분 전도의 대상을 멀리서 찾지 마시고 나와 더불어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 그리고 형제 자매 나아가서 친척, 친구, 동료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4. 산아래 아홉 제자들의 영적인 상태를 보고 우리들도 진단해 봅시다!

 

18절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 만은 이미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마10:7-6절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우리들에게도 이 권세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에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할 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행3:6절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5. 예수님의 본문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①왜 책망하시는가? 19절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믿음이 없는 것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②그리고 23절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는 할 수 없으나 예수님이 내 안에 역사하실 때 세상을 이길 힘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이 힘을 내가 얻어야 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할/
③예수님의 권세를 사용합시다! 25절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그러자 바로 그 아이에게서 귀신이 나가게 되고 아이는 정상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할/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확신을 붙잡아야 합니다. '할 수 없다, 안 된다'의 불 신앙의 태도에서 책망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바로 듣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걱정과 근심이 기쁨과 감격으로, 죽음이 생명으로 전환되는 상황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외쳤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이 고백이 오늘 우리의 믿음이며 우리의 고백이며 우리의 가능이어야 합니다.
④우리는 28절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 때 주님은 두 가지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힘의 법칙을 설명해 주십니다.
첫째는 '너희의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같은 내용이 마17:20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한 겨자씨 만한 믿음'이란 '생명력 있는 믿음, 섞임이 없는 순수한 믿음, 거짓 없는 진실한 믿음, 의심하지 않는 절대적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너희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29절입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마17:21절 "오직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기도가 능력입니다. 기도가 세상을 이길 힘입니다.
▶기도할 때 움직이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⑴기도하면 입이 움직입니다.
⑵기도하면 손이 움직입니다. 주를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하라고 예레미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강렬한 기도를 의미합니다.
⑶귀도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응답을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귀가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응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⑷눈도 움직여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기도할 때에 눈동자를 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강물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면 극단적인 상황도 돌이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울면서 기도하면 웃으면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시126;5-6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결론의 말씀을 막16:17-18절에서 보겠습니다. 우리는 굉장한 존재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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