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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경을 돌이키시는 하나님 (욥42:10)

by 【고동엽】 2022. 2. 7.

곤경을 돌이키시는 하나님 (욥42:10)

 

인생의 행로를 '고해와 같다'고 말들을 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형편과 처지가 다를 수 있을지 몰라도, 한 가지 공통되는 것은 모두가 '괴로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도 생로병사를 말했습니다. 찬송가에도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쉬 일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290)라고 했습니다. 괴로운 세상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고난도 오고 역경도 만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국가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이 곤경은 남녀노유,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그 처지와 환경을 따라서 만나게 되는 것이 우리인생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누구도 곤경을 피하거나 면제받을 수 없습니다. 그 원인은 첫 사람 아담이 범죄 한 후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생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문제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고난이 없고 역경이 없는 곳은 딱 한 군데 있습니다. 어디입니까? 공동묘지에 입학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욥에 대하여 많은 설교를 들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동방에서 큰 부자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욥1:1-3절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 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욥의 순풍이 역풍으로 바뀌게 됩니다. 낮이 밤으로, 여름이 겨울로 바뀌듯이 어두워지고 싸늘해집니다. ▶욥은 갑자기 10가지 고통이 한 거번이 찾아 왔습니다.
⑴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목장을 다 태우고 많은 짐승들이 죽어버렸습니다. 또 갑자기 도둑 떼들이 쳐들어와 재산을 다 빼앗아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어버렸습니다.
⑵설상가상으로 자식들이 큰 아들집에서 생일파티를 하다가 태풍이 불어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10남매가 그 자리에서 다 즉사해 버렸습니다.
⑶거기다가 욥의 몸에 악창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구더기까지 생겼습니다. 고름이 어찌나 흐르던지 잿더미에 앉아 고름을 빨아내야만 했습니다.
⑷그 모습을 보고 그의 아내가 차라리 '당신이 그토록 의지하고 믿던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리라'고 악담을 남기고 떠나가 버렸습니다.
⑸욥19:13-14절을 보면 형제도 친척도 욥을 떠나버렸습니다. 그래요, 일가친척, 형제도 내가 돈이 있을 때 가깝고 어울리게 되지 내가 망하면 다 거리를 두고 떠나갑니다.
⑹친구들도 모두 욥을 떠나가 버렸습니다. 친구도 그렇습니다. 돈 있을 때 말이지 돈이 떠나면 모두가 떠나가 버리고 맙니다.
⑺물질이 사라지고 망하니까 아래 종들을 불러도 대답이 없고 순종이 사라져버렸습니다.
⑻동네 어린아이들까지 욥을 업신여기고 조롱합니다.
⑼사단의 끈질긴 공격은 멈추지를 않습니다. 사단을 어떻게 하든지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배반하도록 집요한 공격을 가했습니다.
⑽그런 와중에서도 하나님까지도 욥에게 침묵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욥23:8-9절에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하고 욥은 탄식하고 있습니다.
지금 욥은 어디를 보아도 역경 투성이요 곤경 투성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고 괴로움 속에서 탄식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욥1:20-22절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아니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현재 큰 곤경에 처해있는 분이 계십니까? 자신의 곤경을 욥의 곤경과 한 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우리의 환경이 어렵 다해도 욥의 곤경과도 비교도 안 되지요,
우리말에 '조족지혈'이란 말이 있습니다. 새 발의 피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욥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사탄을 통해서 욥의 곤경을 허락하셨습니다. 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십시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곤경을 돌이키실 수 있는 분이시기에 욥에게 곤경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도 ◀곤경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 곤경을 유익하게 바꾸어 주실 수 있고 돌이키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사단에게 곤경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해롭게 하고 망하게 하고 곤경에 빠뜨리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 곤경을 돌이켜서 더 복되게 더 잘되게 더 유익하게 돌이켜서 어떤 축복을 주시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곤경을 돌이켜서 구원의 복, 영생의 복, 천국의 복을 주십니다.

 

사단은 우리를 곤경에 빠뜨려서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들고 낙심하고 좌절하게 만들고 그래서 하나님은 멀리 떠나게 해서 결국 지옥에 돌아가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하나님을 떠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재난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소리를 우리는 많이 듣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이럴 수 있느냐? 사랑의 하나님이기는커녕 저주의 하나님'이라고 불평합니다.
요 몇 해 동안 지구촌이 이상 기온 현상인 엘니뇨현상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재난이 닥치고 있습니다. 남미 쪽에는 바다 해일이 갑자기 덮쳐 36만 명이나 죽었고, 어떤 나라는 더위가 너무 심해 수백 명이 죽은 나라도 있으며, 몇 년 전에 중국도 비가 많이 와서 홍수 피해가 엄청났습니다.
우리나라도 많은 피해를 입었었습니다. 지진으로 재난 받는 나라도 있고, 미국 어딘가는 폭설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왜 이런 사건이 옵니까? 우리는 바로 진단해야 합니다. 인간들이 범죄한 결과로 받는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예표로 보여준 사건들입니다. /믿/
이런 사건들을 통해서 완악한 사람들은 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부인하지만 이러한 중에도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은 인간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깨닫고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파스칼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과학자, 수학자, 철학자'이며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전자계산기를 만들 정도로 영리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자기 머리를 더 신뢰하던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사랑하는 여동생이 불치병에 걸려 고생하다가 예수님을 믿고 그 병이 기적적으로 고침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파스칼은 '아!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는구나!' 깨닫고 열심히 신앙 생활하다가 개인적으로 하나님이 깊이 만나는 체험을 한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질병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 구원의 복, 영생의 복, 천국의 복을 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큰 사업을 하다 망해 가지고 자살하기 직전 예수님을 만나 구원의 복을 받은 자가 있습니다.
지금도 소록도에 가면 문둥병자들이 많습니다. 그곳에 가보면 얼굴이 다 망가진 사람, 손이 뭉개진 사람, 코가 다 떨어져 나간 사람도 있고 처참한 지경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러한 사람들의 신앙을 우리가 따라갈 수가 없답니다. 늘 기쁨이 넘치고 찬양이 넘치고 감사가 넘칩니다.
그들에게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자신의 병 때문에 비관하지는 않았는가?' 그러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기쁩니다. 왜냐하면 내가 문둥병자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나같이 약하고 교만한 사람은 그냥은 예수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문둥병이 걸렸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 얼마나 복입니까?'
여러분, 이와 같이 병 때문에 곤경에 빠져 있지만 그것을 돌이켜서 구원의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구원을 여러분 시시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이 축복 중에 최고의 복입니다. /아멘입니까?/할/ 또 어떤 사람은 감옥에 들어가 고생하다가 그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극락의 불나비'의 저자인 김성화 목사는 전에 중(스님)으로 살았던 분으로 경북대학교, 스리랑카 불교대학을 나와서 불교 대학을 크게 세우려고 모금을 하다가 불교의 세력 다툼에 의해서 감옥에 억울하게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낙심 중에 있었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열심히 불경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공익근무를 하는 교도 대원에게 화엄경을 갖다 달라고 하니까 '그 책이 없습니다. 벌써 다 빌려갔습니다.' '아니 여보시오! 그 책은 전부 한문으로 되어 있고, 내용도 어려워서 볼만한 사람은 나 같은 사람뿐인데 이곳에 얼마나 나 같은 사람이 많다고 그 책이 벌써 다 떨어졌냐?'고 반문했더니 예수를 잘 믿는 청년이었던 그 방위병이 '스님 이 성경책도 훌륭한 책입니다. 이 성경책 때문에 훌륭하게 된 사람들이 많고 또 세상에 훌륭한 사람들 중에서 이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스님! 이 책을 꼭 읽어보십시오' 그러면서 감방 안에다 책을 집어 던져 넣고는 가버렸습니다.
이 스님은 며칠은 그냥 두었다가 어느 날 심심도 하고 호기심도 있고 해서 성경책은 읽게 되었는데 읽다보니까 세상에 그렇게 구원의 길, 영생의 길이 자세하고 쉽게 기록된 책은 처음 본 것입니다.
불교는 자기 자신을 수양하면서 매일 도를 닦아봐야 죄는 그대로 남고 번뇌도 그대로 있고, 아무리 나무아비타불을 찾아도 도루아미타불이 되 버리고 말았는데, 그것도 30년 동안 해봐도 괴로웠는데 성경에 보니까 인간의 죄와 저주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만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니 너무 감격하고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나오던 날 고등학교 선생으로 있는 가장 친한 친구를 찾아가 '내가 성경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는데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니까 그 친구가 '지금 빨리 결단을 내리게 나는 교회는 안가지만 자네는 지금 빨리 바꾸는 것이 좋겠네.'하더랍니다. 성령의 역사인줄 믿습니다. /아멘!/
그래서 그 다음 주일날 교회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듣는 순간 그 말씀이 자신의 가슴속에 부딪히는데 눈물이 폭포수같이 쏟아지더랍니다. 그때부터 중복도, 절간도 다 던져버리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신학을 하고 지금은 목사가 되어 부인도 미인 전도사를 만나 같이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간증집회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감옥에 갔다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의 복, 영생의 복, 천국의 복을 받았습니다. 이 복이 보통 복이 아닙니다. 이 가치를 아는 사람은 자부심이 있습니다. 기대와 설렘이 있습니다.

▶계22-22장에 나오는 천국의 실체를 보세요!
⑴밤이 없는 곳입니다. 밤은 죄악과 공포의 상징입니다. 밤은 위험합니다. 주님의 영화로운 빛이 천국의 구석구석마다 비취시므로 밤이 없습니다.
⑵질병과 고통이 없는 곳입니다. 어떤 사람은 고통이 너무 심해서 빨리 죽게 해 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도 있고, 정신적인 고통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암병, AIDS병, 신경성 질병 때문에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이런 고통이나 질병이 없습니다.
⑶죽음과 슬픔이 없는 곳입니다. 세상에는 슬픔이 가득 차 있습니다. 슬픔이 손 못 대는 가정이란 세상 아무 데도 없습니다. 거리에서 만나면 반갑게 웃어 주지만 그 웃음 뒤에는 쓰라린 상처와 슬픔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일러라' 복음성가 가사 중에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슬픔도 없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승리만 있네. 고통은 모두 다 사라져버리고 영광만 가득하겠네' /할/ 여기 '지나갔음이라'는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모든 악한 것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흔적도 없다는 뜻입니다. /아멘!/
⑷염려와 근심이 없는 곳입니다. 세상에는 근심과 걱정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사업 때문에, 자식들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온갖 염려와 근심이 끊일 날이다.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 스위스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제일 많다고 합니다. 천국에는 염려와 근심이 없습니다.
⑸유혹과 죄가 없습니다. 아무리 살기 좋은 나라라도 마귀의 유혹의 역사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사단의 음모가 없는 곳입니다.
⑹바다가 없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바다가 없다는 것은 폭풍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인생의 풍랑이 없는 곳입니다.
⑺천국엔 예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에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으리라" /할/
여러분, 하나님은 이 세상에 어려움과 곤경을 돌이켜 구원의 복으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2. 곤경을 돌이켜서 구원의 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 더 큰 믿음의 복을 주십니다.

 

여러분, 믿음이야말로 보배인데 더 큰 믿음은 더 큰 보배인줄 믿습니다. 믿는 자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믿음이 세상을 이기고 자기 자신도 이기고 환경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믿/
그런데 여러분, 그 사람이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곤경을 만나보면 그 사람의 믿음이 드러납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때 그는 두말없이 하나님 앞으로 갔습니다. 제단을 쌓고 아들을 제물로 드리려는 순간! 하나님이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급하게 부르시더니 알았다. 네가 100세에 얻은 이삭보다 나를 더 사랑한 것을 알았다.'고 하시면서 복의 근원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근원의 복은 샘 줄기의 복입니다. 퍼주고 나누어주고 쓰고도 남는 복이 바로 샘 줄기의 복입니다. 우리 모두 이 복을 탐내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자녀들에게 문제를 주고, 고난을 주고 그래서 그 곤경을 통해서 믿음의 시험을 하십니다. 여러분,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하는지 못하는지는 무엇을 보고 알 수 있겠습니까? 시험을 보고 등수를 계산합니다. 그렇습니다. 학생들이 시험을 통해서 성적이 올라가고, 직장에서도 진급시험을 통해서 계급이 올라가듯이 우리의 신앙도 역경과 환란을 통해서 올라갑니다. 그래서 작은 믿음이 큰 믿음이 되고 냉랭한 믿음이 불같은 믿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믿/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무엇을 보십니까?
⑴변함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를 보십니다.
⑵변함 없이 신앙생활을 잘하는가를 보십니다.
⑶변함 없이 헌신하고 있는지를 보십니다.
⑷변함 없이 감사하는지를 보십니다.
욥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은 열 가지 역경을 인간의 정금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변화론 적으로 말하면 욥은 드디어 정금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욥42:5절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의 곤경이 바로 큰 믿음을 산출한 것입니다. 욥 뿐 만 아니라 우리가 잘 아는 장로교의 대부 칼빈 선생은 병이 얼마나 많았는지 약 50가지가 넘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칼빈이 지나가면 종합병원이 지나간다고 수군거리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유명한 신학자가 되고 스위스를 개혁해서 오늘의 부강한 선진국이 되는 거국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곤경을 돌이켜 큰 믿음의 복을 주시려고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곤경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시인은 시119:67절에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또 71절에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곤경을 돌이키시는 분이십니다. 시80:7절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 시85:4절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그치소서' 욘3:9절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않게 하시리라'
하나님이 돌이키시면 질병도 치료받습니다. 무너진 사업도 회복됩니다. 막힘도 뚫리고 묶어진 것도 풀립니다. /아멘!/ 우리 교회도 하나님이 돌이켜주신 것입니다. 화양동에서 성수 동으로 돌이켜주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옮겨지는 과정이 기적입니다. 앞으로 더 큰 기적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멘!/

3. 하나님은 곤경을 돌이켜서 더 큰 축복을 주십니다.

다시 한 번 말하면 하나님은 곤경을 돌이켜서 더 큰 복, 더 잘되게 하는 복을 주십니다. /믿/ 본문 말씀에 '욥에게 곤경을 돌이켜 갑절의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욥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믿/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을 못 주어 주시려고 몸부림을 치시는 분이십니다. 히6:14절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전화위복'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나쁜 것은 복으로 바꿔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할/
▶영국에 신앙이 좋은 '멜리사'라는 여자 군인이 걸프전에 참전했다가 재수 없이 이라크 군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여자로서 유일하게 포로가 된 것입니다. 얼마나 낙심하고 절망했겠습니까?
그런데 걸프전이 끝나고 포로교환을 하는데 그때 미국의 CNN방송과 매스컴들이 멜리사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신문에 내고 방송에 내고 TV까지 연일 보도했습니다. 그때 멜리사의 얼굴은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광고업자들이 그녀를 찾아와 우리 광고에 나와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한 군데가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광고 사진을 찍는 등 갑자기 유명인이 되어 돈방석에 올라앉았습니다. 포로 신세가 되어 비참한 운명에 빠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입니다.
욥5:17-19절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아멘!/
다윗은 13년 동안 사울 왕에게 쫓겨다니면서 별의 별 곤경은 다 꺾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고 전무후반 통치권을 주셨습니다. 요셉은 자기 형제들에게 버린바 되어 애굽의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곳에서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요셉은 그런 와중에서도 하나님은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는데 그 곤경은 하나님이 돌이켜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게 하셨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 목사님은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시카고에 큰불이 일어나 무디 목사님의 교회가 다 타버렸습니다.
이때 믿지 않은 신문기자들이 조롱할 수 있는 기회가 왔구나 싶어 '목사님 이래도 좋으신 하나님이십니까?' '예! 변함 없이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떻게 변함 없이 좋으신 하나님이십니까? 이번 화재로 교회가 다 타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무디 목사는 '그동안 성도수가 많아져서 교회를 다시 지켜야 할 형편인데 철거비가 걱정이었는데 하나님은 철거 비를 벌어주셨다'고 감사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기자들이 집요하게 물고 넘어집니다. '그럼 다시 지은 돈이 있습니까?' '당장 돈은 없지만 성경책에다 저축해 놓았습니다.' 그러자 기자가 두 손 들었다며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얼마 있다가 무디 목사님은 불타버린 교회보다 더 크게 교회를 지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곤경이 올 때 우리는 믿음으로 생각합시다. 곤경을 만났을 때 그것을 인간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믿음으로 생각하고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상황과 여건을 만났을 때도 절대로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믿음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할/
낙심하고 절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큰 죄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떠난 죄'요, 또 하나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입니다.

 

▶곤경은 우리들을 어떻게 합니까?
⑴우리의 신앙은 키우는 것이요 우리의 인격을 완성하는 지름길입니다. 사람들은 역경을 통하여 완성된 나를 만나게 됩니다. 마치 뜨거운 용광로를 통하여 쇠가 완성되는 것과 같습니다.
▶독일에는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어느 농부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번 여름에는 햇빛을 많이 주셔서 농사가 잘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으시고 햇빛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쭉정이들만 생겼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하나님께 항의를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잘못이 없다. 네가 요구하는 햇빛은 내가 충분히 주었다.' 농부가 외쳤습니다. '그런데 왜 농사는 망쳐졌는가요?' 하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넌 햇빛만 구했지 찬 서리는 구하지 않았단다. 찬 서리가 없으면 곡식은 여물지 않는단다' 그렇습니다. 서리 없이는 곡식이 없듯이 인생도 역경이 없이는, 곤경이 없이는 신앙의 인격도, 신앙의 완성도 없습니다. /할/
⑵곤경은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입니다. 역경의 장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모세는 홍해라는 역경 앞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요나는 고래뱃속이라는 곤경 앞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욥은 곤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위대한 신앙가인 '죤스 프레빈' 박사는 '인간의 한계 상황은 하나님의 기회'라고 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비상능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날 어느 남자가 자동차를 수리하다가 자동차가 밀려서 깔리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놀라서 황급히 차를 들어서 남편을 구조했습니다. 잠시 후 다시 들어보라고 하였더니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비상 능력입니다.
역경은 비상능력이 나오는 위대한 기회입니다. 그래서 곤경은 언제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믿/
⑶곤경은 축복입니다. 욥은 역경을 역경에서 끝나지 않고 축복으로 끝났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앞에 나오는 단어가 귀합니다.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이 벗들이 누군가하면 욥이 어려움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세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그 세 친구들은 욥을 위로해준 것이 아니라 정죄하고 심판했습니다. 한마디로 욥을 괴롭힌 자들입니다. 욥은 그들로부터 평생 잊을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욥에게 그 친구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용서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7-9절의 배경입니다. 그래서 욥은 그 친구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이 사건은 용서와 화목을 뜻하는 것입니다. 욥은 고통 중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괴롭혔던 모든 사람들은 용서하고 화해했습니다. 십자가는 화해의 길입니다. 위로는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옆으로는 이웃과의 화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해야 되고 믿음의 인생들과 화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루에도 일곱 번씩 일흔 번씩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화목하고 용서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본문에서 그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욥이 그 친구들을 용서하고 화해하자 즉시 하나님이 그의 곤경을 돌이켜 주셨습니다. /할/
성경에는 용서에 대하여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롬12:8절을 보면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죄를 짓되 수없이 지어도 언제나 찾아오면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무한대의 용서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따뜻한 마음, 위로하는 마음, 중보 하는 마음이 모두 성령이 주시는 긍휼의 마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긍휼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중보기도 하는 마음도 긍휼의 마음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눈물로 기도하는 그 마음도 긍휼의 마음입니다. 어떤 문제나 고통을 지닌 사람에게 뜨거운 동정심을 느끼는 마음도 긍휼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또한 자비의 마음입니다. 긍휼은 곧 자비를 말합니다.
바울서신을 보면 바울은 유일하게 자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긍휼은 사람이 베푼 자비를 말합니다. 병든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환란 중에 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무력한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 노약자를 돌보려는 마음이 모두 성령이 주시는 자비의 마음이고 긍휼의 마음입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눈에 눈물이 있습니다. 언제나 마음과 가슴이 뜨겁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 이야기만 해도 눈물이 흐릅니다. 그런 사람은 TV 연속극만 보아도 눈물이 흐릅니다. 그 마음에 긍휼의 마음이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TV를 보다가 눈물을 흘리는 사람 그 사람은 유치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그 마음에 이 긍휼의 마음이 충만합니다. 그 마음이 성령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용서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6:12절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고'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가 막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무지 기도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할 때입니다. 용서하면 기도의 문이 열립니다.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잘못 되면 기도의 문이 닫힙니다. 부부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를 푸십시오.
▶유럽에 수도원을 제일 먼저 세운 사람이 있습니다. 마카리우스입니다. 그가 수도원을 세우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그가 목회하던 교회 홀로 사는 여자가 있었는데 이웃 남자와 정분이 나서 임신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누구 아이냐고 추궁을 하자 그 여자는 차마 그 남자 이름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카리우스 목사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습니다. 교회에서는 너무나 뻔뻔한 목사라고 그를 내쫓아 버렸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위선자라고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마카리우스는 그 아이를 길렀습니다. 심지어는 업고 그 교회를 다녔습니다. 다른 목사님이 부임하여서 설교하는 데 아이를 업고 뒷자리에 앉아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교인들은 동네 사람들이 창피하다고 제발 이 교회만은 나오지 말아 달라고 신신 당부를 해도 마카리우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아이를 업고 교회 뒷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지극히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 여자는 괴로워서 견디다 못 하여 사실 이야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교회는 난리가 났습니다. 모든 교인들이 몰려 와서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와서 목회해 달라고 애원을 하자 마카리우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산 속으로 들어가서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그를 조롱하던 이들이 모두 그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믿는 사람들은 넓은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어느 농촌에 커다란 논이 둘 있었습니다. 하나는 예수 믿는 사람의 논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의 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의 논은 지형 상, 물이 잘 고이는 논이고, 믿지 않는 사람의 논은 항상 물이 빠져나가도록 된 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지 않는 농부는 밤늦게 나와서 예수 믿는 사람의 논에서 물을 빼서 자기 논에 채우곤 했습니다.
예수 믿는 농부가 아침에 논에 나가 보면 자기 논의 물이 다 빠져 있고 옆의 논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비가 붙곤 했습니다. 분명히 내 논에서 저 사람의 논으로 물이 빠져나갔는데, 말을 하면 자기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잡아뗐습니다.
사실 농촌에서는 논에 물대는 것이 아주 심각합니다. 저의 시골에서 어느 노인 한 분은 논에 물대는 것 가지고 다투다가 홧김에 들고 나갔던 삽으로 상대방을 쳤는데 머리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지게 해서 살인죄로 종신형을 받고 고생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 믿는 농부가 옆의 논 주인과 물 때문에 늘 다투면서 한편 그 마음에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데 왜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까? 옆의 논 주인이 잘못해서 그것을 깨우쳐 주는데 왜 평안이 없습니까? 하나님, 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기도하는 중에 이 사람의 마음속에 이런 질문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너는 왜 네 바른 것만 생각하고 주장하느냐? 그 이상의 일을 할 수 없느냐? 왜 너는 네 논의 물이 필요한 이웃에게 너 스스로 물을 대 주지 못하느냐?' 이때 이 사람은 깨달았습니다. '아, 그렇군요. 저는 제가 옳다는 사실만 주장하고 있었지 제 도움과 사랑이 필요한 이웃에게 무엇을 베풀어야 할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못했었습니다.'
그 날 이 사람은 옆의 논 주인이 오기 전에 자진해서 옆의 논에 물을 가득 대 주었습니다. 그 날 밤에 옆의 논 주인이 여느 날과 다름없이 몰래 물을 빼 내려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나와 보니 이미 자기 논에 물이 가득 대어 있었습니다. 그는 깜짝 놀랐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튿날 믿지 않는 옆의 논 주인은 믿는 농부를 찾아와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그 동안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정말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도 그 예수를 믿고 싶습니다.' 그래서 전도가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할/
⑷욥의 축복은 1장과 비교해보면 전부 갑절입니다. 12절을 보세요! 양이 1만4천, 약대가 6천, 소가 1천, 암나귀가 1천, 당시 욥은 동서양을 통틀어 제일가는 부자가 된 셈입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재산만 갑절로 주시지 않았습니다. 자녀도 갑절로 주셨습니다. 당시 아들 7과 딸3 10명밖에 안되지 않습니까? 원래 욥의 자녀가 10이었는데 갑절로 받았으면 20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이 문제 때문에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천국에 10명이 생각났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자녀를 합하면 20명 즉 배가 된 셈입니다. 나이도 140인데 갑절로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 곤경에 빠질 때가 70세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역경도 돌이킬 수 있으시는 분입니다. 어떤 자에게 돌이키시고 축복하십니까? 용서하고 이해하는 자에게 오는 축복입니다. /할/

 

4. 욥이 잃어버리지 않은 것 세 가지 때문에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욥은 모두를 잃었습니다. 물질을 잃었습니다. 사람을 잃었습니다. 건강도 잃었습니다. 그러나 욥이 잃어버리지 않은 것 3가지가 있습니다.
⑴내일을 잃지 않았습니다. 욥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욥14:7절에서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찌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나무를 잘라도 그 옆에서 가지가 나오는 것을 보고 욥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다 잘렸어도, 다 잃었어도 다시 돋아 날 수 있다는 내일을 바라보았습니다. /할/ 희망이 없으면 망합니다. 우리는 천국에 소망이 있습니다.
⑵하나님을 잃지 않았습니다. 욥은 다 잃어 버렸어도 하나님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처를 받으면서 욥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욥23:10절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⑶기도를 잃지 않았습니다. 욥이 그런 곤경에서 돌이켜 큰 축복이 시작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도였습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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