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만남이 참 중요합니다! (눅 19:1-10)

by 【고동엽】 2022. 2. 7.

만남이 참 중요합니다! (눅 19:1-10)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서로 대화하고 의논하고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중요하고도 행복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이웃이 필요하고, 친구가 필요하고 만남이 필요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인간은 그 근원에 있어서 상호관계의 존재요, 서로 대화하는 존재요, 서로 의지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개나 짐승은 고통 속에서도 혼자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고독 속에서는 살수가 없습니다.
감옥에서 제일 무서운 곳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바로 독방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완전히 고독 속에 빠질 때 미치거나 비인간적으로 전락하기 쉽다고 합니다.
인간의 만남에는 여러 가지 형태와 의미가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만남은 질투와 살인의 만남입니다. 예수님과 가롯유다의 만남은 배신과 가책의 만남입니다. 배신처럼 비인간적인 것은 없습니다.
희랍의 우화를 보면 한 선량한 농부가 겨울에 길을 가다가 길에서 꽁꽁 언 뱀을 발견하고 너무나 가엽고 불쌍해서 그 뱀을 자기 품속에 넣어 안겨주었는데 그 뱀은 본능적으로 농부를 물어서 죽였다고 합니다. 생명의 은인을 죽인 것입니다.
가롯유다도 3년 동안 예수님의 사랑을 독차지했건만 그 사랑을 배신으로 갚았습니다. 우리 인간 사회에도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고, 신세를 졌던 사람이 배신을 합니다. 배신자의 말로는 비참합니다. 가롯유다는 창자가 터져 죽는 비참한 운명이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행복한 만남도 있고, 불행한 만남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가하면 또 어떤 사람은 사람을 잘못 만나서 불행하게 살기도 합니다. 사람을 잘 만나야 축복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도들을 축복하고 기도할 때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아멘!/
▶한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향기를 진하게 발산하는 진흙 한 덩어리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진흙 한 덩어리를 몸에 지니고 있으면 온 몸에 향기가 진동했습니다.
나그네가 진흙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네가 그 유명한 바그다드의 진주냐?' '아닙니다.' '그러면 너는 인도의 사향이냐?' '아닙니다.' '그럼 너는 무엇이냐?' '나는 한 덩이 진흙일 뿐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향기가 나오느냐?' '그 비결은 내가 백합화를 만나 함께 오래 살았기 때문입니다.'
냄새나는 진흙이 백합화를 만나 오래 살다 보니 향기를 발하는 바그다드의 진주같이, 인도의 사향같이 아름다운 물건이 되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 사람을 만나 망하기도 하고, 저 사람을 만나 흥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산다는 것은 내가 너를 만나고 네가 나를 만나는 것입니다. 민족과 민족이 만나고 문화와 문화가 서로 조화하는 것이 인류의 역사입니다. 만남이 없이는 역사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자연도 만남입니다. 하늘과 땅이 만나고, 산과 바다가 만나고, 물과 나무가 만나고, 꽃과 나비가 만남이 자연입니다. 종교도 만남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 절대자를 만나려고 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무릇 '존재한다.'는 것은 '서로 만난다.'는 의미가 깊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만남도 좋은 만남이 축복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잘 만나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⑴만남 중에서 뭐니뭐니 해도 부모를 잘 만나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일평생동안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좋은 부모를 만나야 축복 속에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만남은 운명적인 만남입니다. 내가 태어나 보니까 이미 내 부모가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만남을 하늘이 맺어준 천륜의 만남이라고 말합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 세 번 이사했다고 합니다. 맹모는 아들을 위해서 묘지근처로 이사하고 시장근처로 이사하고 마지막에는 학교근처로 이사를 했다고 합니다. 묘지근처로 간 것은 아들로 하여금 그곳에서 인생의 깊음과 엄숙함을 체험케 한 것이고, 시장근처에서는 세상의 삶의 모습과 생존경쟁의 원리를 체득하게 해 준 것이고, 학교근처로 간 것은 거기서 학문의 깊음을 알게 하고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모세는 신앙의 어머니를 만나서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나라가 없을 때 태어납니다. 그때는 아들을 낳으면 모두 나일 강에 버려야 할 때입니다. 모세도 더 이상 부양할 수 없어 나일 강에 버렸는데 마침 하류에서 목욕하던 공주에게 발견되어 궁중에서 자라게 됩니다. 그리고 모세의 어머니는 유모로 고용되어 모세를 양육합니다.
그때 모세의 어머니는 어린 모세를 양육하면서 늘 품에 안고 말하기를 '너는 커서 나라 잃은 이 민족을 이끌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세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디모데는 경건한 어머니를 만나서 평생을 경건한 신앙 인으로 살았습니다. 김유신 같은 이는 절도 있는 어머니를 만나서 그 유명한 화랑이 되었고, 맹자나 율곡은 고결하고 정결한 인품을 지닌 어머니를 만나서 선비다운 선비가 된 것입니다. 부모를 잘 만나야 합니다. /아멘!/
▶미국에서 소매치기로 유명한 한 남자가 절도로 유명한 한 여자를 만나 서로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쪽 부분에 챔피언끼리 결혼을 한 것입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이 아이가 나오는데 글쎄 주먹을 꼭 쥐고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너무 이상해서 간호원이 어린아이에 손가락을 펴보니까 금반지가 쥐어져 있더랍니다. 벌써 나오면서 간호원이 끼고 있던 금반지를 슬쩍 한 것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⑵그 다음에 또 스승을 잘 만나야 합니다.

스승은 알게 모르게 자라나는 지성에 굉장한 영향을 주는 분입니다. 스승의 말 한마디에 일생을 바꾼 사람도 있습니다. 그만큼 스승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울과 디모데를 보세요! 얼마나 좋은 스승과 제자사이 입니까. 좋은 스승 밑에 좋은 제자가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 복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있었기에 플라톤이 있게 되었습니다.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소크라테스라는 철학자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동안 그는 철학자가 되기로 마음을 바꿉니다. 그래서 이 땅에 플라톤이라는 철학자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 축복입니다. 이런 축복이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⑶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복입니다.

다른 사람은 마음에 맞지 않으면 안보면 되는데 이 배우자는 안보고 살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또 배우자는 한 번 만나면 평생 동안 바꿀 수가 없는 상대입니다. 저도 우리 사모님과 한 번 만나서 지금까지 바꾸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 만나야 합니다. 아마 인생의 만남 중에서 제일 중요한 만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성경에 보면 아주 이상적인 부부를 말할 때 '부르스길라'와 '아굴라'를 말합니다. 아주 뜻이 잘 맞는 신앙의 부부였습니다. 그 부부는 언제나 함께 다니며 전도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의 제일가는 동역 자들이 되었습니다.
남편을 잘 만난 아내, 아내를 잘 만난 남편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우리는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또 그 반대의 경우는 얼마나 많습니까? 요즘 결혼 세 쌍 하면 한 쌍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저마다 하는 말이 '남편, 아내' 잘못 만났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스코티 울프'라는 사람은 29번 결혼하고 28번 이혼했다고 합니다. 그 이혼한 이유들이 뭔지 아십니까? 부인이 침대에서 해바라기 씨를 까먹었다고 이혼했고, 또 부인이 자기 칫솔로 이빨 닦았다고 이혼을 했습니다. 이혼 많이 한 걸로 이 사람이 '기네스북'에 올라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의 23번째 부인도 여자부분 이혼 많이 하기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만남은 소중한 것입니다. 절대로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 이 만남입니다.
⑷또 이웃도 잘 만나야 하고, 친구도 잘 만나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동료나 선배 그리고 동창은 참 좋은 길벗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이 길벗이 절대적입니다. 우리나라는 이 동향, 동창, 친구가 상당한 역할을 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인생의 삶의 자원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다윗과 요나단은 친구를 말할 때 가장 이상적인 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가장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요나단은 그에게 가장 훌륭한 상담 자였고 의지 자였고 충고자였습니다.
친구는 평소에도 좋은 관계이지만 어려움에 처했을 때 마음놓고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입니다. 친구 따라 강남까지는 가도 되지만 지옥까지 가면 절대 안됩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 잘 못 만나 노름에 손대다가 가산이 왕창 무너졌습니다. 어떤 아줌마는 춤바람 난 친구 따라 강남 갔다가 제비족에게 걸려 가정이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그런데 좋은 이웃과 좋은 친구를 만나 범죄소굴에서 손을 씻은 자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좋은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 만남인지 모릅니다.
⑸그런데 여러분! 이 세상에 어떤 만남보다도 더 소중한 만남이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야 합니까? 그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을 만나야 구원을 받고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만남이 있다고 해도 주님과의 만남이 없으면 소용없는 일입니다. ◀제목소개!▶

 

성경 안에 보면 예수님을 만나 수지맞은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18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 받던 여인이 예수를 만나 치료받았고, 눈먼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나 광명을 찾았습니다.
혈기 투성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 사도가 되었고,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치우고 인생의 갈증을 느꼈던 수가성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탕자 어거스틴이 예수님을 만나 성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지 못했더라면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지옥 음부에 떨어지고 맙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이 신앙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천당 가는 티켓입니다. /믿/
그뿐만 아니라 예수를 만나면 인생이 변화가 됩니다. 성경을 보면 누구보다도 예수를 만나서 가장 크게 변화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삭개오라는 인물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리고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복음서에는 여리고의 이야기가 세 번이나 나옵니다. 막10장에서 디매오의 아들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를 만나 고침 받은 사건이 여리고 성에서 일어났습니다. 또 눅10장에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 만난 이웃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삭개오가 여리고성에서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삭개오가 예수를 만나 구원을 얻는 장면은 너무나 극적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어린아이에서부터 어른까지 아주 인기 있는 본문입니다.
▶여리고는 어떤 곳인가? 이스라엘 여러 지역 가운데 예루살렘보다도 더 오래된 성읍이 바로 여리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제일 먼저 정복한 성이 여리고성입니다. 고대 성읍들은 역사 속에서 대부분 폐허가 되어 지금은 그 흔적들이 남아있지 않습니다만 이 여리고라는 도시는 지금도 유대인들에게도, 아랍인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도시에 해당합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약 80리 정도 떨어진 요단 계곡에 자리잡고 있으며 '하나님의 낙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리고는 종려나무가 울창하고 향료 생산지로 유명했기 때문에 여러 나라의 무역상들이 국제적인 교역의 중심지로 삼고 있었던 곳으로 경제적인 부를 상당히 누리는 곳입니다.
이런 도시에서 세리장에 앉아 있는 삭개오야 말로 돈방석에 앉아 있는 위치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삭개오는 어린 시절에 부모를 일찍 여의고 친척들의 눈칫밥을 얻어먹으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그는 돈을 버는 일이라면 아무것도 가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 정부에 충성을 다해서 세리장까지 올라갔던 사람입니다. 당시 유대나라는 로마의 식민지였는데 로마 정부에 온갖 아양을 다 떨면서 출세해서 동족들의 피를 빨아먹는 그런 매국노가 그 당시 세리입니다.
당시 세리들은 로마정부의 위임을 받아 자기들의 재량대로 세금을 징수하여 로마 정부에서 정한 세액을 바치고 그 나머지는 자기들이 착취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허가받은 도둑놈입니다. 삭개오가 세리장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동족들의 피를 빨아먹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래서 동족들의 저주를 받고 민족 반역자로 낙인을 찍힌 사람입니다.

 

1. 삭개오를 한 번 분석해 보면서 은혜를 받자!

 

①삭개오는 고독한 사람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친구가 없고, 이웃이 없는 사람입니다. 돈도 있고, 권세도 있고 명예도 가지고 있었는데도 이 사람은 대화 할 상대가 없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매국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따돌림을 받는 사람들처럼 불쌍하고 처량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요즘 학교에서도 왕따 문제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아무리 많이 소유하고 살아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소유와 출세는 소용이 없습니다. 외톨이처럼 고독한 것은 없습니다. 삭개오가 그랬습니다. 그 누구하나 상대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웃도 친구도 없었습니다.
②삭개오는 갈증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삭개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에게는 메워지지 않는 심령의 구멍이 있었습니다. 그의 가슴에 크게 뚫린 구멍은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었습니다. 돈으로도 메워지지 않습니다. 명예로도 메워지지 않습니다. 권력으로도 메워지지 않습니다. 예쁜 아가씨를 만나 결혼하면 그 공허함이 메워질 것 같지만, 결혼해도 그 구멍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영적 갈급함입니다. 이 영적 갈증은 세상적인 것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직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인간실존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42:1절에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삭개오는 욕심껏 가져보았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부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허전합니다. 가져보면 무엇이 있을 줄 알았는데 가져 봐도 갈증만 더 심했습니다.
③삭개오는 이름 값도 못하고 살았던 위인입니다.

삭개오의 이름은 아주 거창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결한 사람,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마 그 부모는 그에게 만인들에게 존경받는 깨끗한 인물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삭개오라고 이름을 지어준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이름 값을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여기 삭개오도 그 이름과는 정반대로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갔습니다. 사실 돈은 인간사회에서 가장 큰 위력을 가진 현대인의 우상입니다.
심리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 중에 50%가 돈 생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90%가 돈 생각으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 삭개오는 돈을 많이 가졌는데도 만족은 없고 오히려 갈증만 더 심해졌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소유하면 행복으로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소유와 행복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는 것이 행복이고, 삶의 의미와 인생의 궁극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알고 뛰고 달립니다. 그래서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것을 얻고 높은 위치를 차지했는데도 웬일입니까? 그 마음속에 평안이 없고, 그 곳에 기쁨과 행복이 없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삭개오가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여러분, 왜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도 만족이 없고 갈증만 더 심해집니까? 그것은 인간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과 교재하며 교통하며 살아갈 때만이 참 기쁨과 참 소망을 부여잡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사는 존재로 지었습니다. 삭개오는 풍부하게 모든 것을 다 소유했지만 그의 존재는 너무나 비참하고 외로운 존재입니다. 돈은 모았지만 양심은 잃어버렸습니다. 명예는 얻었지만 그의 인격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고독했고 외로웠습니다.
④그래서 삭개오는 견디다 못해 예수님을 만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지금의 고독함과 외로움과 목마름을 해결하는 길은 예수께로 가는 길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간은 여기까지 와야 합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뽕나무로 올라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뽕나무를 가로수로 심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삭개오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는 행동이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악하다 해도 100% 다 악한 것은 아닙니다. 그 내면의 어딘 가에는 적어도 부드러운 한 부분이 있습니다. 삭개오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어린아이의 순진성이 남아있었습니다. 삭개오의 이 마음이 그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 보려는 적극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종교개혁자 칼빈은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과 단순성은 믿음의 준비단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런 마음을 결코 놓치지 않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자를 뽕나무 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장막 뒤에 가려져 있다 할지라도 다 아시고 만나주시는 분이십니다.

 

2.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①예수의 소문을 듣고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한 번도 만나 본 일은 없었지만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죄인들과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는 좋으신 분인 것을 알았습니다.
특별히 마태라는 세리를 불러서 예수님의 제자로 삼았다는 그 소문이 전국의 각처에 세관이나 세무서에 쭉 퍼져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대체 예수라는 분이 어떤 분인데 정말 사람들이 멸시하고 죄인시하는 세리까지 제자로 삼았을까?' 이런 관심을 가지고 살다가 기회가 와서 그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만사 제쳐놓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관심입니다. 천국에 대한 관심, 주님에 대한 관심, 교회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관심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믿/
②예수를 보기를 원했습니다.

3절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보고 싶어 하는 마음, 이 마음이 귀합니다. 사랑의 관계는 보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런 노래도 나왔습니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하나님을 보고 싶어하는 사모함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기 '보고자 하되'라는 말은 '보기를 열망하되', '간절히 사모하되'라는 뜻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간절히 보기를 원했습니다.
③삭개오가 주님을 만난 목적이 무엇인가?

삭개오가 왜 예수님께 나왔습니까? 돈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사업을 위해, 병 고치기 위해, 결혼을 목적으로 나온 것도 아닙니다. 더더욱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나온 것도 아닙니다. 그의 동기는 매우 순수했습니다.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이것이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려는 순수한 동기였습니다. 신앙은 순수해야 합니다. 이 마음이 어린아이의 마음입니다. 그는 소문을 들어 주께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요, 귀신들린 자를 고치셨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으며, 38년 된 중풍병자를 걷게 하신 분이셨습니다. 삭개오는 이것이 궁금하여 예수님을 한번 만나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④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장애물을 극복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를 원했지만 두 가지 난관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하나는 키가 작았기에 주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키가 작다는 것은 믿음의 분량이 작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없는 사람, 믿음이 적은 사람은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이 올라가야 합니다. 자라야 합니다. 삭개오가 뽕나무로 올라갔다는 것은 믿음이 자랐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가리었습니다. 신앙생활의 장애가 주변사람들로부터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이, 아내가 때로는 신앙의 장애물이 되기도 하고, 또 부모나 형제가 어느 때는 신앙의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이 장애물들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생명이요 축복입니다. 이것을 지키는 일에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삭개오를 보세요! 삭개오는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어려운 결단입니다. 용기 있는 결단입니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기라도 한다면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조롱하고 비웃을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세무서장이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부하직원이라도 만나면 무슨 꼴입니까? 그러나 삭개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시간을 맞추어서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수모가 있어도 조롱이 있어도 체면이 상해도 예수님은 꼭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이 마음이 복 받은 마음입니다. /할/
우리는 체면 때문에 손해를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체면 때문에 그 좋던 기회들을 많이 잃기도 합니다. 체면을 버리고 자존심을 버리고 솔직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모하십시오, 그리하면 틀림없이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병 낫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갔던 12년 된 혈루병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거지 소경 바디매오는 눈을 뜨기 위해 부르짖으며 소원하고 나갔다고 눈을 떴습니다. 하나님은 간절히 찾는 자를 만나 주시는 분입니다. /믿/ 그래서 신앙생활은 사모하는 생활입니다. 간구하는 생활이요, 기다리는 생활이요, 나아가는 생활입니다. /할/
⑤예수님이 우러러 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시다가 삭개오가 올라가 있는 그 뽕나무 밑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본문에 '우러러 보시고'라고 했는데 거꾸로 되었습니다. 삭개오는 '내려다보고' 예수님이 삭개오를 '우러러 보셨다'고 했습니다. 그 분이 내려다보시고, 인생들이 우러러 보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 여기서 '우러러 보시고'는 삭개오의 얼굴을 보았다는 말이고, 삭개오의 얼굴을 주목했다는 것이고, 삭개오의 눈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삭개오야, 내려 오라. 오늘밤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여러분, 다른 말이 필요합니까? 이것은 삭개오의 마음을 보시고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향하여 마음이 열려 있습니다. '오늘밤 내가 네 집에 가겠노라' 이것은 삭개오의 중심을 보시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삭개오의 마음을 향하여 지금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삭개오의 집이 어떤 집입니까? 세리의 집입니다. 예수님이 세리의 집에 가는 것은 그 당시에 큰 사건이 됩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일입니다. 세리의 집은 그냥 아무나 가는 집이 아닙니다.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거지도 세리가 준 돈은 안 받는다' 그만큼 세리는 악질이요 완전히 시민들이 등을 돌린 사람입니다. 도무지 상종이 불가능한 이런 세리 집에 주께서 가겠다는 것입니다.
⑥삭개오는 주님을 영접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리로 지나가시는 주님을 그리워하는 눈빛으로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나무 밑을 지나가시던 주님이 고독함과 외로움과 갈증으로 찌들어 있는 삭개오를 올려다보십니다.
그 때 눈과 눈이 마주친 것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통했습니다. 그 순간이 체험의 순간이요 하나가 되는 순간입니다. 주님이 삭개오의 눈에서 고독과 외로움과 그의 갈증도 보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삭개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미십니다.
5절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그 순간 삭개오의 가슴속에 뭉쳐 있던 온갖 외로움과 고독함과 갈증들이 다 풀어지고 말았습니다. /믿/ 그리고는 그의 가슴속에 온갖 기쁨과 소망과 행복만이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만나는 기쁨이요,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속히 내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려오는 과정도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위치에서 내려가지 않겠다고 발버둥을 칩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내려와도 분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만나려면 내려와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인류를 살리시기 위해 하늘 영광보좌를 다 버리시고 이 낮고 천한 곳에 그것도 말구유간에 내려오셨습니다. 여러분 자기의 지식, 체면, 교만, 직위 다 내려놔야 예수님을 만납니다.
아람나라 군대장관 나아만도 자기 계급장까지 다 벗어버리고 흙탕물 속에 낮아졌더니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게 치료받았습니다. /할/ 우리 모두 내려놓으십시다. 교만도, 판단도 나의 계산도 내려놓고 십자가 아래 무릎을 꿇으십시다!
바울은 '나는 날마다 십자가 아래 죽노라'고 고백했습니다. 날마다 죽지 않으면 날마다 예수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새 생명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삭개오는 체면도 염치도 눈치도 볼 것 없이 즐겁게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영접했습니다.
6절에 '급히 내려와 영접하거늘' 신앙은 영접입니다. 주님을 모셔들이는 것, 이 영접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예배 때마다 영접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영접해야 내 안에 그 분이 오셔서 나를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할/
그 분을 만나는 순간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됩니다. 종교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요,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 만남이 최고의 만남이요, 축복의 만남입니다. 이 만남을 통하여 죄 사함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된 것은 믿으십니까? 육신의 아버지는 그 자식들을 다 책임집니다. 그런데 육신의 아버지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전능 자이십니다. 모든 것을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영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멘!/할/
⑦삭개오는 주님을 만나자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끝나버리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삭개오는 주님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큰 빛을 보았습니다.
의의 태양이신 주님의 찬란한 빛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한 모습입니다. 죄 투성이의 모습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자기 자신이 그렇게 큰 죄인인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빛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때 자기가 얼마나 큰 죄인이고 도적이었는가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 앞에 엎드려 고백했습니다. 8절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이것은 대단한 기적입니다. 주께서 돈 많은 부자가 구원받기가 마치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비판적인 말씀을 하셨는데 그 불가능하게 보이던 부자의 구원이 눈앞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8절의 말씀을 많은 설교자들이 삭개오의 회개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대목이 물론 회개의 뜻도 있습니다만, 그보다 한 걸음 더 앞을 봅니다. 삭개오의 이 고백은 회개의 열매입니다. /아멘!/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자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여러분, 기적이 무엇입니까? 내가 예수님을 믿어 내 삶이 변화되고 내 인격이 내 모습이 변화되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삭개오는 주님을 만남으로 물질로부터 자유를 찾았습니다. 주님 만나기 전에는 수단 방법도 가리지 않고 돈만 모으려다가 매국노란 이름으로 매도되었고 뭇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조롱을 받았지만 이제부터는 자기의 것을 털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여러분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받는 즐거움보다는 주는 즐거움이 더 큽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칼 힐터'는 '사랑은 서로 그리워하는 것, 서로 마주보는 것, 서로 자기를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행복입니다. 행복은 자기를 주는 것입니다. 다 주는 것입니다. 마음을 주고 물질도 주고 정신까지도 주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에게 입힌 손해와 고통에 대하여 무관심한 사람이었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변했습니까? 예수님 만난 사람은 이런 변화가 일어납니다.
▶기독교는 새 사람 창조 운동입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삭개오에게 두드러지게 돋보이는 사건이 생깁니다. 그것은 그에게 예수님을 믿는 증거가 당장에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신앙생활 10년을 했다고 해도 정말 구원받았는지 아리송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 현대 교회의 고민인데 반해 삭개오의 증거는 너무나 확실합니다.
▶그 증거는 회개와 봉사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토색한 것을 4배나 갚겠다고 합니다. 그 당시 유대나라 법은 착취한 것에 5/1만 더 내면 법적인 보상이 이루어졌습니다. 예를 들면 10만원을 착취했다고 할 때 12만원만 돌려주면 되는데 삭개오는 40만원을 갚겠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것도 부족했던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재물의 반을 이웃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고 돕는데 내 놓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삭개오의 결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한마디로 돈에 대한 애착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는 돈의 사슬에서 해방을 받은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스위스 법학자 '칼 힐터'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간을 지배하는 세 가지 강력한 힘이라고 할 수 있는 '돈과 명예와 향락과 관계를 끊어버리면 그때부터 사람은 비로소 자기가 자유롭다고 느낄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삭개오가 바로 이런 경지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 결과 삭개오는 여태껏 그를 지배해 왔던 생활철학이 바뀌었습니다. 변화 받기 전에 남의 것을 착취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급급했던 사람이 이제부터는 자기 것을 털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는 다른 사람에게 입힌 손해와 고통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이었지만 이제부터는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 싸매어 주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자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았지만 이제부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런 변화가 꼭 일어나야 합니다. 주님의 능력은 위대합니다. 주님 앞에 나오기 만하면 돈의 노예로부터 구출해 줍니다. 돈의 굴레에서 일생을 허무하게 살은 사람도 삭개오처럼 변화됩니다. /믿으시면 아멘/
▶한 성도가 목사님에게 공장 문을 닫는데 폐업예배를 드려달라고 했습니다. 보통 개업예배 몇 주년, 기념예배를 드렸어도 이 목사님은 폐업예배는 처음 드렸답니다. 예배 후에 그 집사님은 사업한다고 까맣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았고, 하나님 앞에 인색하게 살았고, 자기가 최고로 착각하고 살다가 회사가 부도나고 공장이 문을 닫게 될 때 퍼뜩 깨달은 것은 '아! 아직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때리시고 망하게 하셨구나!' 생각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목사님 이제 사업은 오늘로 폐업이지만 나의 신앙은 오늘부터 개업'입니다. /할/
하나님 앞에 깨달은 자가 복을 받습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 철저하게 깨닫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삭개오는 참 그리스도인의 본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 재물 욕에서 벗어난 삭개오의 환한 모습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아끼고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던 돈을 들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건네주고 또 자기가 부당하게 착취했다고 생각하고 집을 찾아가서 겸손하게 용서를 빌고 4배나 얹어서 갚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삭개오가 진정으로 회개할 때 여리고에는 얼마나 큰 감동의 물결이 일어났습니까?
주님은 삭개오에게 직장을 그만두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직장이 구조적으로 잘못되어서 양심적으로 살지 못한다고 핑계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은 썩은 자리로 들어가서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나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⑧삭개오가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물질이 자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질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 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도 생명처럼 여긴 재산을 절반을 가난한자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성실하게 사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 얻었느냐 잃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나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이고 이웃과의 바른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⑨삭개오가 예수를 만나 가장 값진 축복은 무엇인가? 구원입니다.
삭개오에게 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나자 주님이 드디어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아멘/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은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이 복을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 이 구원의 축복 속에 세상의 모든 조건이 다 들어가 있음을 정말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신데렐라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그 동화에 보면 신데렐라라는 아가씨가 계모 밑에서 고통스럽게 생활합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습니다. 그 만난 사람이 왕자였기에 신데렐라는 왕비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현대판 신데렐라들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나라 왕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믿/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