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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삼상 17:41-51)

by 【고동엽】 2022. 2. 7.

나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삼상 17:41-51)

 

이 세상은 수 없는 경쟁자들 틈에서 달리고 있는 경주 장과 같습니다. 정치가들은 정치 경쟁자들 틈에서 서로 주도권 싸움을 합니다. 기업인들은 기업인들대로 경쟁자들 속에서 피눈물이 나는 첩보 전을 합니다. 학생은 어떻습니까? 서로 좋은 대학에 가려고 경쟁합니다. 어떻게 보면 모두 다 경쟁자들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닥쳐오는 환경이 적들과 더불어 싸우며 살아가는 싸움터와 같습니다. 먹지 않으면 먹혀 버리고 마는 냉정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약육강식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환경이 안 좋습니다. 우리나라는 참 약점이 많은 나라입니다. 우선 땅덩어리가 너무나 적습니다. 그것도 작은데 둘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렇게 좁은 땅덩어리인데다 더 어려운 것은 우리나라의 땅 가운데 70%가 산악지대입니다.
국토의 효율가치가 아주 적습니다. 경제성도 너무도 보잘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길을 내려고 해도 산을 뚫어야 하기 때문에 돈이 더 든다고 합니다. 산도 산 나름입니다. 우리나라 산은 나오는 것이 없습니다.
그 많은 산에서 기름이나 펑펑 쏟아져 나오든지 아니면 지하자원이라도 좀 많이 매장되어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불행하기도 우리나라 산에는 그런 것들이 전혀 없습니다. 거기다가 산에 있는 나무도 보면 쓸 만한 것이 그렇게 많이 없습니다.
미국 같은 나라는 땅도 넓지만 가는 곳마다 기름이 나오고 많은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습니다. 로키산맥 같은 곳은 산 전체가 구리 가루로 뒤덮여 있다고 합니다. 네팔 같은 나라는 히말라야 산 이라도 있어서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돈을 뿌리고 간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습니다. 그 좁은 땅이 둘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분단된 나라는 이제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작은 나라에다가 거기다 둘로 나뉘어 있으니 무슨 힘이 있습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결정적인 약점은 전쟁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 북괴 집단은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릅니다. 지금도 미사일을 발사하고 개성경제공단에서 우리나라 공무원들을 추방시켰습니다. 이런 조건들 때문에 우리나라는 살기가 참 어렵습니다. 여기에 더 큰 약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의식이 너무 많이 굴절되어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몇 가지 삐뚤어진 생각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요령주의'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성실한 사람보다 수단이 좋은 사람이 더 잘 산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실하게 살려는 마음보다는 수단을 먼저 생각합니다. 이것이 소위 요령주의입니다. 성실하게 살면 혼자만 손해를 본다고 믿고 있으니 얼마나 잘못된 생각입니까?
둘째는 '변칙주의'입니다. 사람들은 법대로 살다가는 손해만 본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법이 지켜지겠습니까? 그러니까 무법천지가 된 것입니다.
셋째는 '불신풍조'입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론 보험이 그렇게 유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남편도 믿을 수가 없고, 아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믿을 것이라고는 보험 뿐 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신풍조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살기가 힘이 든 것입니다.
넷째는 '황금만능주의'입니다.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먼저 돈이 등장합니다. 일이 막히면 돈 싸들고 갑니다. 그러면 막힌 곳이 금방 뚫립니다. 그러니까 지금 온 나라가 뇌물천국이 된 것입니다.
다섯째는 '연고주의'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연줄과 배경이 있어야 출세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 사실 그런 세상 아닙니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니 그쪽 사람들이 득실거립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요직들은 '고대인맥, 소망교회인맥. 경상도인맥'들이 독식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말을 합니다.
여섯째는 '예외주의'입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이 바로 '예외주의'입니다.
일곱째는 '이기주의'도 상당합니다. '내가 뭘 어떻게 하든지 네가 무슨 상관이야?' 이것이 이기주의입니다. 나만 잘되면 남이야 죽든 살든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협동이나 협조니 책임이니 하는 정신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나라가 이렇게 어려워진 것입니다.
▶머리 둘 달린 새가 있었습니다. 몸은 하나인데 머리가 둘입니다. 한쪽 머리가 나무열매를 따먹었습니다. 그때 다른 쪽 머리가 화가 났습니다. 자기가 따먹으려고 눈독을 들였는데 딴 머리가 그만 따먹어 버린 것입니다.
화가 난 머리가 그만 독이 든 열매를 따먹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둘 다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독한 이기주의는 자기만 죽는 것이 아니고 함께 죽습니다. 모두가 함께 불행해 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잘못된 생각들을 가지고 달아갑니다. 그리고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삶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 정말 어렵습니다. 삶의 전쟁터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삶의 전쟁터에서 꼭 이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꼭 승리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살아가야 합니다. /아멘!/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승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요16:33절에서 우리 주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겨놓으신 그 길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보고 살아가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제목소개!▶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성경의 인물 중 손꼽히는 위대한 인물입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다윗 하면 끔벅합니다. 그는 군사 전략가로써 승리한 장군입니다. 그는 정치가로써 성공한 지도자입니다. 그는 문학가로써 불후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는 신앙 인으로도 하나님 앞에 '네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인정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다윗이 오늘 본문을 보면 블레셋에 거장 골리앗의 일대일의 맞대결에서 멋있는 승리를 거두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배경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점령한 뒤에도 끊임없이 주변국들의 도전을 받았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모압, 블레셋, 가나안, 미디안, 암몬, 아멜렉' 이 일곱 부족들이 계속해서 위협을 합니다. 이때 이스라엘을 사사 시대를 거쳐 왕정시대에 돌입하면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기름부음을 받은 사울이 초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블레셋입니다. 블레셋 나라가 끈질기게 달려듭니다. 저들은 먼저 철기 문화를 도입해서 최신무기를 많이 가지고 있었고, 당시 세계적인 장군인 골리앗이란 명장이 엘라 골짜기에서 싸움을 진두지휘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도 많은 장수가 있었지만 아무도 그를 당해낼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 사울 왕으로서는 더 이상 나라를 지탱할 수 없는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방을 붙였습니다. '누구든지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는 막대한 재산과 권력을 주겠다. 그리고 나의 딸과 결혼시켜 사위로 삼겠다.'는 명을 내려놓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군사와 블레셋 대군은 엘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40일간이나 함성을 지르며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전쟁 방식은 모두가 싸우기 전에 먼저 각 진영의 장수가 나와서 일대일의 맞대결이 있은 후 결정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쪽 블레셋 진영에서는 거인 골리앗이 나타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온갖 욕설을 퍼부으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모욕하고 있었지만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무서워 떨고 있을 뿐 그 누구 한사람 나서서 대응하거나 싸우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골리앗은 한마디로 거인이었습니다. 이때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군대에 있는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기 위해 면회를 갔다가 그 현장을 목격하고 분을 참지 못하며 형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의 결재를 얻어 골리앗과 맞붙게 된 것입니다.
사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은 큰 자와 작은 자의 대결이었으며 강한 자와 약한 자의 대결이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투구와 갑옷과 단 창과 칼과 방패로 무장한 거인 골리앗이 큰 자이며 강한 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거인이며 큰 자이며 강한 자인 골리앗이 소년 다윗이 던진 조약돌 하나에 맞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강한 자는 골리앗이었지만 이긴 자는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인 다윗이 이겼습니다. /할/ 그러니까 그 날 엘라 골짜기의 대결은 약한 자의 승리였으며 작은 자의 승리로 끝이 난 것입니다. /믿/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단순하게 재미있는 동화가 아닙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이며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영적 의미가 담겨져 있는 사건입니다.

 

1.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의미가 무엇인가?

 

한마디로 '전쟁터와 같은 세상에서 싸워서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골리앗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입니다. 가정의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요, 건강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요, 사업의 축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요, 우리 신앙생활을 가로막는 장애물일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건이요 고난이요 어떤 괴로운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온통 문제 속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산으로 보았습니다. 그 산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에 있는가? 시121:1-2절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 서로다."
이 사건을 통해서 전쟁터와 같은 세상에서 싸워서 자신을 이기고 세상도 이기고 승리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까? 다윗이 승리한 비결만 알기만 하면 우리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믿/

 

2. 다윗의 승리한 비결이 무엇인가?

 

다윗은 누구인가? 다윗이라는 이름의 뜻은 '사랑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아브라함의 14대 손이며, 유다 지파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로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 직업은 양을 치는 목동이요, 악기를 잘 다루는 음악가요, 시인이요, 그는 사자나 곰을 쳐죽이기도 하는 장군이요, 통솔력과 지도력이 있고 훌륭한 군인이요, 위대한 정치가였습니다. 또 성전을 건축할 준비를 하였으며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골리앗을 이긴 승리의 비결이 무엇인가?

 

①전쟁 현장에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당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인 골리앗 앞에서 절망적으로 떨고만 있었습니다. 사울 왕도 그의 앞에 나가는 장수마다 패하여 죽어버리므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제는 두 손들고 항복하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골리앗을 두려워함으로 감히 그에게 대항할 마음조차 갖지 못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들을 너무 크게 생각함으로 전의를 상실할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가나안을 정탐하고 와서 보고하기를 '그곳에는 아낙자손들이 있고 우리는 그들에게 비교할 때 메뚜기와 같다'고 했던 것처럼, 우리들에게 메뚜기 신드롬(다른 것에 비해 우리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 하는 증상)이 있음으로, 우리가 싸우기도 전부터 미리 겁부터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운명이 풍전등화 위기였습니다. 이때 담대한 믿음을 가진 다윗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의 도전은 만용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의 용기였습니다. 객기도 아니었습니다. 믿음의 용기였습니다. 도박도 아니었습니다. 확신의 투지였습니다. /할/ 남들은 그 앞에 감히 서지도 못했으나 다윗은 용감하게 힘차게 나아갔습니다. 다른 군사들은 도망하려고 애썼으나 다윗은 도전해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담대함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쳐 올 때 두려워 떨고 있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믿음 있는 성도의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한때 여호수아가 두렵고 떨리는 때가 있었습니다. 왜 그랬는가? 지도자 모세가 죽고 난 뒤 그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야할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사명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수1:9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할/ 여러분, 여호수아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담대한 신앙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베이실 킹'은 '담대하라! 그러면 큰 힘이 우리를 도와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막9:23절에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비록 골리앗이 키가 크고 힘이 세 보였지만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골리앗을 자기 자신과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골리앗과 자기들을 비교했지만 다윗은 그를 자기 하나님과 비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아무리 크고 힘이 셌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우리의 적들과 우리를 비교하면 메뚜기 신드롬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들과 적들을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과 비교하면 다윗처럼 담대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문제가 무엇인가? 우리를 괴롭히는 원수 마귀의 세력이 크게 보입니까? 여러분과 비교하지 말고 하나님과 비교하십시오.
요일4:4절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할/ 그러므로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승리는 우리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인 사고가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님은 하루에도 열 번이나 넘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히10:35절에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을 얻느니라'고 하셨고, 다시 한 번 요16:33절에 보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을 이겨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은 엘라 골짜기의 전쟁터처럼 온통 골리앗이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골리앗 앞에 담대히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을 향하여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

 

②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갔습니다.
다윗은 45절에서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소년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절대적인 신앙이 있었습니다. 본문 46절에서도 다윗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신앙의 근본이며 능력의 원천이었습니다.
누가 강한 자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입니다. /할/ 골리앗은 힘센 장수요 다윗은 양을 치는 목동입니다. 무엇으로 보나 이번 전쟁은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골리앗은 자기를 의지하고 나갔으나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승리의 원인이 있고 비결이 있는 것입니다. 골리앗은 아무리 무장을 잘하고 힘이 세고 큰 키였지만 오직 자기의 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무장도 못하고 약하고 작았으나 하나님의 힘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능력을 가졌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합니다. 대통령이 보내는 편지에는 대통령의 서명이 있습니다. 그 서명은 곧 대통령의 권한과 권위를 상정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실체를 믿는 것이고 그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다윗은 오직 그 하나님만 믿고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믿었습니다. 다윗은 그의 시20:7절에서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할/ 다윗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 자랑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신앙 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절대 믿음은 절대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 절대자의 위력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의 군대입니까? 군대는 그 부대와 지휘관에 따라서 좌우됩니다. '모택동의 군대냐? 장개석의 군대냐? 이스라엘의 군대냐? 아랍의 군대냐? 유엔의 군대냐? 사담 후세인의 부대냐? 하나님의 군대냐? 사람의 군대냐?' 그 지휘관이 중요합니다. 그 부대의 마크가 위력이 있습니다.
바로 다윗은 이 전쟁의 지휘관이 하나님이시고, 자신은 하나님께 속한 자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승리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영적 싸움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구약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갔지만 신약에는 십자가 위에서 위대한 승리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마크를 달고 나아가야 합니다.
상대자가 골리앗처럼 큰소리를 치고 덤벼들어도 위협을 하고 협박을 해도 자기가 제일이라고 고함을 쳐도 하나님보다 세지는 못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골리앗이 너무도 많습니다. 질병의 골리앗, 환경의 골리앗, 조건의 골리앗 등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믿/
어렸을 때 내 뒤에 큰 형이나 아버지가 버티고 있으면 내 앞에 아무리 큰 아이가 나를 위협해도 끄떡없습니다. 오히려 용기가 나고 힘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내 뒤에도, 여러분의 뒤에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환경과 조건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내 삶을 변화시킵니다. 운명도 아닙니다. 팔자도 아닙니다. 그 날 재수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신앙만이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믿/

 

③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싸웠습니다(46).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 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고 하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싸웠습니다.
자기의 조국을 위하여 싸우는 사람은 많습니다. 자기의 명예와 영화를 위하여 싸우는 사람도 많습니다. 의무감으로 싸우는 사람 또한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를 모욕하는 일을 보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싸우러 나갔습니다.
우리는 내 얼굴에 먹칠을 당하면 이성을 잃어가면서 싸우지만 여호와를 모욕하는 일을 보고도 아무런 감각도 없다면 그 영혼은 불쌍한 심령입니다. 분명한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싸운 자들은 하나님이 승리의 깃발을 세우게 하십니다.
다윗은 나중에 이 사건을 회고하면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4-5)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이제 우리의 이름으로 세상을 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서 싸우며 승리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④다윗은 확신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신앙은 확신입니다. 우리는 다섯 가지 확신을 붙들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 기도응답의 확신, 성령인도의 확신, 사죄의 확신, 승리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다윗은 32절에서 무서워 떨고 있는 사울 왕에게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고 했으며 37절에서는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실 것'이라고 했으며, 46절에서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싸우기 전에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싸우기도 전에 벌써 패배의식을 가지면 이미 지고 만 것입니다. 본문의 다윗처럼 골리앗과 직접 대결하기 전에 그를 넘어뜨려서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 밥을 만들겠다는 그 확신이 승리의 원동력이 된 줄 믿습니다. /할/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근본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시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합시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셨고, 또 '내가 세상을 이겼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롬8:37절에서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했고, 고전 15:57절에서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1서 5:4절에서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하나님의 승리를 믿는 자가 위대한 승리잡니다. /할/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지금도 히로시마에는 원폭투하 되었던 바로 그 자리에 만들어 놓은 박물관이 있답니다. 원자탄 하나에 일시에 꽝 하는 순간에 50만 명이 사라지고 어떤 강한 쇠붙이라도 다 녹아 없어지고 그냥 깨끗하게 사라집니다. 모든 집, 건물이 그대로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요한 성당 성전에 있었던 '노란 종' 하나가 그대로 있습니다. 이것을 그대로 떠다가 박물관에 갖다 놓고 그 옆에 '불가사의한 일이다'라고 써있답니다. 어떻게 이 종이 원자탄의 불꽃 속에서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었겠는가? 저는 여기서 하나님의 음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꽝 하는 순간에 50만 명이 날아가 버리는데 그래도 그 불꽃 속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거기에 있었노라!' 이것은 인간의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거기 있었노라' 지금도 주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41:10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약속을 믿으십니까? 이 말씀을 믿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할 때 다윗처럼 우리도 승리합니다. /할/

 

⑤다윗은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확실히 알았습니다(47).
이 말 속에는 이 전쟁이 골리앗과 이스라엘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싸움이라면 승산이 없습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면 이길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블레셋과 하나님과의 싸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또 골리앗과 하나님과의 싸움이라면 이미 종을 치고 만 것입니다. 시46:9절 "저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아멘!/
전쟁을 쉬게 한다는 것은 이기게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지키고, 내가 보호하고 내가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믿고 맡기면 하나님이 지키시고 관리하시고 보호해주십니다. /믿/ 건강도 맡기십시오, 자녀들도 맡기시고, 사업장도 다 주께 맡기십시오.

 

⑥다윗은 입으로만 싸운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현장 신앙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현장으로 달려가 골리앗을 향해 돌을 던졌습니다. 그 순간 물 맷돌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 골리앗의 이마에 박혔습니다. 그러자 구척 거구가 고목나무 쓰러지듯 넘어졌습니다.
다윗은 현장에서 승리했습니다. 왕하 7장을 보면 네 문둥이가 나옵니다. 아람군대가 이스라엘 성을 포위하고 모두 굶어 죽이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성안에서는 비둘기 똥까지 먹어야 했고, 마지막엔 견디지 못해 어린아이를 삶아 먹는 비극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문둥이들은 사람 취급을 안 하여 성문 밖에 버림을 당했습니다. 그들도 굶어 죽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여기서 굶어 죽든지 적진에 뛰어 들어가 죽든지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스크럼을 짜고 아람 적진을 향해 소리 지르며 쳐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돌진하는 믿음을 보시고 주님이 천둥치는 소리와 말발굽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아람군대는 군량미를 다 놓아두고 도망갔고 문둥이들은 자신도 배불리 먹고 사마리아 성에 갇혀 있는 사람들까지도 다 불러와 먹게 했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이 문둥이들처럼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나아가야 길이 열린 줄 믿습니다. 죽을 각오로는 못할 일이 없습니다. 현장으로 뛰어 들어가야 합니다. 기독교는 현장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산 속에 종교도 아니며 도피의 신앙도 아닙니다. 히10:38절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믿/
우리들이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당신이 앞으로 전진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천국은 빼앗는자의 것입니다. 마11:12절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저와 여러분들도 침노하면 빼앗을 수 있습니다.

 

⑦다윗은 믿음을 쓸 줄 알았습니다. 믿음을 활용할 줄 알아서 승리했습니다.
믿음을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은사도 사용해야 더욱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음도 써먹을 때 더 큰 믿음의 역사가 동반됩니다. /믿/
▶어느 주일날, 어떤 교회 목사님께서 설교 도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앉은뱅이처럼 앉아만 있습니다. 일어나서 걸어야 합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화답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일어나서 걸어야 합니다.' 이어서 목사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일어나서 걷는 것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뛰어가야 합니다.' 교인들은 너도나도 신이 나서 맞장구를 치며 화답했습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뛰어가야 합니다!'
목사님은 더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은 너무나도 넓습니다. 우리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날아가야 합니다. 날아갑시다!' /할/
그러자 모두가 동시에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는 날아가야 합니다. 날아갑시다!' 목사님께서 흐뭇한 모습으로 교인들을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시대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이 시간 구체적으로 작정을 해서 하나님께 헌금을 하도록 합시다.' 그러자 잠잠해졌습니다. 조용해졌습니다. 아무도 화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참만에 한 사람이 용기를 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가 예전처럼 다시금 앉아있게 합시다.'
여러분! 이것이 행여 우리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교회가 문제가 있고 어려울 때 일어나서 믿음을 활용해야 합니다. 주님은 눅18:8절에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강한 자고, 누가 약한 잡니까? 하나님을 믿는 자가 강한 자요, 자신을 믿는 자가 약한 잡니다. 참으로 강한 자는 하나님이 지키시는 잡니다. 참으로 큰 자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참으로 안전한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하는 사람입니다.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이며, 참으로 승리자는 예수를 굳게 믿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할/

 

⑧다윗은 '나는 주의 종이다'라는 소명 의식을 가졌습니다.
32(하)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다윗은 그 당시 한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제사장도 선지자도 아니고 아직 왕위에 오르기도 전입니다. 심지어 어른도 아니었습니다. 양을 치는 어린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가정에서도 막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주의 종'이란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소명의식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세워주신 성도다! 집사다! 권사다! 회장이다! 성가대원이다!' 이런 소명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 의식이 성도답게 살게 하고, 집사답게 살게 합니다.
이 의식은 나의 삶 속에 있어야 합니다. 비록 직업이 인간적으로 천하게 보이고 시시하게 보이고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나는 주님이 보내심을 받은 자다. 나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이다. 나의 하나님의 사람이다'라는 소명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직업을 영어로 '콜링'이라고 하는데, 이 뜻은 '모든 직업이 바로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뜻'입니다.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부엌일을 하는 가정주부도 다 하나님이 부르셔서 하는 것입니다. /믿/할/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안 되는 일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들의 모든 일에 어떻게 하나님의 간섭 없이 되겠습니까? 여기 저기 아무렇게나 피어나는 잡초하나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결코 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하는 아주 작은 일도 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시고 '나는 주의 종' 즉 '하나님의 사람'이란 소명 의식 속에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3. 언제 승리의 기적은 일어납니까?

 

'막다른 골목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지금 이스라엘을 보세요!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입니다. 그 누구도 나서서 해결할 수 가 없는 그런 난국입니다. 그런데 베들레헴 촌놈이 나타나서 해결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하나님은 기적을 주십니다. 그 막다른 골목에 다윗을 보낸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믿/
여러분, 기적은 막다른 골목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철두철미하게 망하고 실패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때 새 길이 보입니다. 새 문이 열립니다. 새 눈이 뜨입니다. 새 생각이 열립니다. 성경은 바로 그 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4. 승리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오직 예수입니다!

 

다윗이 던진 물매 돌이 예수입니다. 오늘 우리도 영적인 블레셋을 물리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런 물매 돌이 있어야 합니다.
⑴그 물매 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시68:35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힘과 능을 주시나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시18:1절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빌4: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할/
⑵물매 돌의 의미는 '임마누엘'신앙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 축복이 '가장 귀한 은혜'입니다.
⑶물매 돌의 의미는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45절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름은 단지 소리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 그 사람의 존재, 그 사람의 모두를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돌은 던진 것이 아니라 믿음을 던진 것입니다.
⑷물매 돌의 의미는 '산 돌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신학적으로 이 돌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실로 예수님은 모세가 말한 반석 돌이요, 다니엘이 증거한 뜬돌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돌입니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 되시니' 찬송가 가사와도 같습니다. /할/

▶말씀을 정리합시다. '아놀드 토인비'는 그의 '역사 연구'라는 책에서 '인류 역사를 자세하게 면밀하게 연구하고 결론'을 내리기를 '여기는 도전과 응전이 있다. 인류는 계속해서 문제의 도전을 받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응전하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좌우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끊임없는 원수 마귀의 도전이 있습니다. 우리는 결단코 예수의 이름으로 응전해야 합니다. 오늘 다윗처럼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다윗은 조약돌 다섯 개에서 하나만 사용하고 네 개가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승리는 항상 여유 만만합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넉넉히 이기는 싸움'입니다. '메투헨리' 주석가는 '그 날 엘라 골짜기에 있었던 다윗의 승리를 사탄과 모든 어두움의 세력에 대한 다윗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예표'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생기를 되찾아 총 진격을 시작했고, 블레셋은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쳤습니다. 우리도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약한 자가 아니라 강한 자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은 작은 자가 아니라 큰 자입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강하고 많이 소유했고, 큰 자라고 장담해도 하나님을 떠나면 그 순간 엘라 골짜기에 쓰러진 골리앗이 되고 맙니다. 참으로 강한 자는 하나님이 지키시는 자요, 참으로 큰 자는 하나님께 소속된 사람입니다.
강한 자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큰 자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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