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자! (갈 4:1-7)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대신합니다. 그래서 들으면 기분이 좋은 이름이 있고, 들으면 기분이 나쁜 이름이 있습니다. 고재봉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살인마로 들려서 끔찍합니다. 이완용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매국노로 들리기에 기분이 나쁩니다. 유영철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여자들을 죽이는 악마 같아서 섬뜩합니다. 조 세형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도둑놈이 얼른 연상되어 금방 어두워집니다.
그러나 에디슨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발명왕 생각이 나서 의욕이 생깁니다. 베토벤, 헨델, 바하, 슈베르트라는 이름을 들으면 아름다운 음악이 떠올라 기분이 상쾌하여집니다. 세종대왕, 이순신장군, 대조영, 연개소문 같은 이름을 들으면 민족의 자궁 심이 팍팍 생깁니다.
또 이름을 들으면 축복이 떠오르는 이름이 있고 저주가 떠오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병철, 정주영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부요가 떠오릅니다. 록펠러라는 이름을 들으면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빌 게이츠라는 이름을 들으면 믿음이 좋은 세계최고의 갑부를 연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바디매오라는 이름을 들으면 거지라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히틀러, 스타린,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저주스러운 영상이 머리를 채웁니다. 아간이라는 이름을 들어도 저주가 가득 차게 됩니다. 가룟 유다의 이름만 들어도 배신자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생의 모습이 얼룩져 있습니다. 어느 여인이 아들을 낳고 목사님에게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자, 목사님은 무엇이라고 이름을 지을지 몰라 고민하다가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발할 발(發), 빛 광(光)자를 넣어서 발광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의미는 좋지만 발음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친구들에게 엄청나게 놀림을 받았습니다.
어느 가정에서는 계속 실패하고 쓰러지기만 할 때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 이름을 재기(再起)라고 지었습니다. 다시 일어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성이 양씨였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도 양재기라고 놀림을 받고 있답니다.
또 그 이름을 들으면 하나님을 향한 사명이 불타오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울이 그렇고 베드로가 그렇습니다. 슈바이처라는 이름을 들으면 아프리카 오지에서 흑인들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불타는 사명이 떠오릅니다. 마더 테레사라는 이름을 들으면 인도 칼타코에서 빈민들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아름다운 이름으로 떠오릅니다.
이름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부쳐진 이름도 많습니다. 신도, 성도, 크리스천, 교인, 예수쟁이 등 다양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라고 합니다. 보통 이름이 아닙니다. 바울은 '하늘의 시민권자'라고 부릅니다. 미국에 이민 간 사람들의 꿈은 '시민권'을 얻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시민권이 나오면 얼마나 자랑하는지 모른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이 있습니다. /믿/
▶하나님의 우리를 어떻게 보시는지 아십니까?
시16:3절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사49:5절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는 하늘의 유업을 물려받을 자들입니다. 7절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할/ '유업을 잇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상속자다.' 그 말입니다.
어떻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인생을 막 살아서는 아니 됩니다. 꿈을 가지고, 비전을 가지고, 자신에게 큰 기대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믿/
잠29:18절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여기서 우리말 성경에는 묵시로 나와 있지만, 영어성경에는 비전, 꿈으로 나와 있습니다. 묵시의 '히'어로 '하존'인데,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계시된 뜻은 언제나 미래 적이고 내일을 향한 희망적인 뜻입니다.
그리고 '방자히 행하거니와'의 '히'어의 뜻은 '멸망하다. 사라지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비전, 즉 꿈이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다 결국 망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소망을 두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늘의 복을 유업으로 이을 자들입니다. 가슴을 활짝 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시시한 분이 아닙니다. ◀제목소개!▶
1. 자신에게 큰 기대를 거십시오!
자신에게 큰 기대를 걸라는 말은, '자기 스스로 존경하는 사람, 자기의 가치로 인정받는 사람,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형제나 부모에게 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은 사회에 나가서도 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을 무시하면 그 남편은 세상에 나가서도 무시를 당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겸손도 도가 넘으면 교만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특히 예수를 믿는 사람은 십자가의 피 값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 천하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믿/ 우리 주님이 내 죄 때문에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그 고초를 다 당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겐 주님의 보혈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예수의 흔적이라고 했습니다.
갈6:17절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우리는 주안에서 무한한 능력을 소유한 잡니다. 예수의 권세를 붙잡은 잡니다. 시37:24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아멘!/
2.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존귀한 자들입니다.
▶왜 우리가 존귀한 잡니까? ①우리의 가치 때문입니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가치가 있으면 존귀한 법입니다. 물건을 보면 어떤 물건은 다른 물건에 비해서 월등하게 값이 비싼 것이 있습니다. 금이나 진주 같은 것은 그 어떤 물건보다도 값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물건 자체가 값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화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존귀한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인데, 우리는 예수의 피로 구속을 받은 존재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생명과 맞바꾼 존재입니다. 나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면 아멘! /할/
나는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받은 존귀한 사람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 같은 의식이 있어야 매사에 확신이 있고, 세상을 값있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왜 우리가 존귀한 잡니까? ②우리의 쓰임새, 즉 용도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도구들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대통령 앞에 쓰임 받아도 굉장한데, 세상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면 이 얼마나 영광입니까? 가치를 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도구다'는 의식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절대로 방종할 수가 없습니다.
▶왜 우리가 존귀한 잡니까? ③우리의 주인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할/
하찮은 물건이라도 그 주인이 귀하면 그 물건도 덩달아 귀해 집니다. 이순신 장군의 칼이 지그까지 박물관에 보관중이랍니다. 칼이 귀해서가 아니라 이순신 장군이 귀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세종대왕의 먹과 벼루도 보관중이랍니다. 그 붓으로 훈민정음을 반포하셨기 때문입니다. /할/
우리가 존귀한 이유는 생김새가 아름답거나 지식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나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귀하시기 때문에 내가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시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때 겸손해 집니다. /할/
▶왜 우리가 존귀한 잡니까? ④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황송하게도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십니다. 또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천사도 흠모하는 대상이라고 하십니다.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존귀한 자라고 하십니다. 이래도 기가 죽습니까? 힘을 내세요! 자신에게 크게 기대를 거시기 바랍니다.
▶왜 우리가 존귀한 잡니까? ⑤하나님의 유업을 이를 자이기 때문입니다. /할/ 한마디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천국의 기업을 우리가 이를 자입니다. 즉 상속자입니다.
3. 본문에 하나님의 유업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1-2절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세계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상속자가 아무리 막대한 재산을 가졌다고 해도, 미성년자일 경우에는 법적으로 아무런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미성년자는 어른이 되기까지는 권리를 행사할 수도 없었고, 모든 일에 간섭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린아이의 사회적 지위를 노예나 다름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3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3절에서 바울은 이러한 세상적 질서를 영적 질서로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여기 '우리도 어렸을 때에'는 '우리의 믿음이 어렸을 때'를 말합니다. '세상 초등학문'은 세상적 지식을 말합니다. 그 당시 갈라디아 교회가 처한 상황에서 초등학문은 '점성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고대 세계에는 점성술에 대한 신앙이 대단했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한 사람이 태어나면 그와 함께 별도 태어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자기별이 있고, 그 사람의 운명은 그 별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별 자리가 어떻게 바뀌는가에 대해 대단히 민감했고, 그 움직임에 따라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예측했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믿음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생활로는 초등학문인 점성술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이 세상 지식에 의존했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지식의 종노릇하고 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4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때가 차매' 이 말은 때가 무르익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는 그 때는 정말 주님이 오셔야 될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때 오셨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 살면서 꼭 알아야할 것이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때를 알아야 되고 하나는 자기 분수를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이나 일반 생활에 동일하게 요구되는 것들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방법으로 그 아들 예수를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때를 아시는 분입니다. 예언하신 대로 약속한 장소에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동정녀 몸에서 신비한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이분이 창3:15절에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야이십니다. /믿/
'율법아래 나셨다'는 말은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으로 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5절에 '율법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에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기 '속량'이라는 말은 노예를 살 때에 노예의 몸값을 지불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속량은 '값을 지불했다, 대가를 치렀다'는 뜻입니다. 그게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주님은 죄인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서 우리를 속량하신 것입니다. 그 십자가에는 그러한 대속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대신 그 값을 치러주신 것입니다.
당시 로마시대에는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노예를 살 때는 그에 해당하는 몸값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때 그 노예의 값을 준 그 행위가 속량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 종 된 데서 자유 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엡2:2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우리가 누구를 따라다니는 종이었습니까? 공중의 권세를 잡은 사단을 따라다니는 종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사단의 종이며 노예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들을 했습니까.
엡3:3절에 보면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더니"라고 했습니다.
종이란 주인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하나님의 곁을 떠나 사탄의 종이 되어 세상의 영광과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며 하나님의 뜻을 떠나 범죄하며 살았습니다.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사탄을 말을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죄와 사탄의 종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자신이 사단의 종인 줄도 모르고 하나님이 계신 줄도 모르고 살았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사탄과 함께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었던 자들입니다.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에는 에이즈라는 무서운 병에 국민 ⅓이 걸려 있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기막힌 사실은 이들은 자신들이 이 병에 감염된 것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죽음과 파멸로 끌고 가는 무서운 죽음의 병이 자신의 몸 속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사는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영혼은 이보다 다 비참한 것입니다.
그럼 그러한 속량 후에 우리에게 온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신분의 변화입니다. 노예에서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종에서 아들이 된 것입니다. 5절에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바울은 이 놀라운 사실을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칼 바르트는 '나는 십자가만 쳐다보면 나의 값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셨으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하셔서 나를 구원하셨을까? 그래서 십자가를 쳐다보면 나의 값을 발견하게 되고 용기를 얻게 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럼 자녀의 명분 얻음이 왜 그리 중요할까요?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 속에서 아들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유업을 이을 자'라는 표현을 두 차례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유업을 이을 자'라는 표현이 나오고 7절에도 보면 '유업을 이을 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에 바로 극적으로 변한 우리의 신분이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의 은총으로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그 상속의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영생복락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유산은 바로 천국입니다. 그리고 천국 가는 이생 길에서도 우리는 주님 안에서 부요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형통하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허락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힘써 해야 할 일은 종의 멍에를 메지 않는 것입니다. 갈5: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종은 가난합니다. 종은 자기 재산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부자입니다. 종은 자유가 없지만, 아들은 자유 합니다. 종은 주인 아래 있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 아래 있습니다. 종은 애써 주인을 모방할 수 있지만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 아버지의 성품을 가지고 태어나 행동합니다.
종은 주인의 재산관리인에 불과 하지만, 아들은 모든 것을 물려받을 상속자입니다. 종은 주인에게 쫓겨날까 두려워하지만 아들은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종은 날마다 살아 갈 것에 걱정하지만, 아들은 미래가 있습니다. 이것이 아들 된 자의 특권입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에는 램프의 종이 있습니다. 램프가 알라딘에게 속해 있을 때는 램프의 종도 알라딘에게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램프가 잡하르의 손에 들어가면 램프의 종도 잡하르에게 속하게 됩니다.
이처럼 종은 상전을 바꿀 수 있습니다. 주인이 바뀌면 종은 새 주인에게 충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를 바꿀 수 없습니다. 또 종은 상전을 위해 마지못해 일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를 위해 일합니다. 왜 이러한 차이가 납니까?
그것은 간단합니다. 종은 아무리 일해도 그것이 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열심히 일한 모든 것이 결국 자기 것이 됩니다. 아들에게는 종에게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상속'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좀 더 자세히 말한 성경 구절이 롬8:17절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얼마나 종과 아들의 차이가 큽니까?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지니라.' /할/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늘의 복을 유업으로 이을 자입니다. 가슴을 활짝 펴십시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시시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있게도 하시고 없게도 하십니다. 오늘도 믿는 자들에게 능치 못함이 없는 힘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몇 가지 영적 원리를 알아보겠습니다.
①자신에게 큰 비전을 거십시오. 시37:24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구약에 나오는 요셉은 자신에게 큰 기대를 건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꿈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꿈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깨끗하고 고귀한 믿음의 인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분명히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형들의 배신으로 노예로 팔려가 애굽의 보디발 장군 집에 하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보디발 집에서 종으로 있으면서도 자기를 학대하거나 현재의 자기 모습에 대하여 원망하지 아니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직스런 요셉을 보는 보디발의 부인은 은밀히 자기만족에 취해버리고 음욕을 품고 그를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가치를 절대로 상실하지 않았습니다. 끝내는 보디발 부인의 누명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 감옥에서 술 관원 장을 만나 그의 지혜가 인정되어 바로 앞의 꿈을 해석하는 축복을 받아 일약 대 애굽의 국무총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기의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유업을 물려받을 자입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이 가치를 깨닫는 자는 모든 것에서 확신을 갖습니다. 이 가치를 깨닫는 사람은 세상을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또 세상에서 아무 것이나 하지 않습니다. 구별된 삶을 살아갈 수도 있고, 분별력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또 하나님의 유업을 물려받은 자입니다. 이 가치에 무게를 두시기 바랍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나를 쓰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나는 하나님을 위해 쓰임 받는 도구다'는 의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의식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 앞에 나와 봉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존귀한 자입니다. 존귀한 자란 이 세상에서 권세와 영화를 누리는 자란 의미입니다. 가슴을 활짝 펴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쓰시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모습이 바꿔집니다. '하나님 저를 크게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②자기의 믿음을 충분히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달란트와 성령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달란트(재능)은 개발하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성령의 능력도 쓰면 쓸수록 파워가 커집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활용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더 크게 그리고 많이 사용하십시오,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떠한 실패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성도는 억대의 손실을 보고도 빈손 들고 일어서면서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억대의 손실이 있었지만 그것을 담보로 위대한 일을 하겠다는 꿈이 있는 것입니다. 큰 실패 뒤에는 큰 기적이 옵니다.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할/ 주님은 '믿는 자들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능력은 위대한 역사를 일으킵니다.
▶우리는 종교를 개혁한 '마틴 루터'를 잘 압니다. 그는 롬1:17절을 읽고 종교개혁의 뜻을 품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마틴 루터'는 가난하기 짝이 없는 광부의 집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꿈에도 소원인 가정의 가난을 몰아내기 위해 법대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때도 검사, 판사, 변호사는 돈을 많이 벌었나 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루터가 친구와 함께 길을 가고 있었는데 이때 삶을 바꿔 놓을 만한 변화의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갑자기 벼락이 떨어져 같이 가던 친구가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습니다.
그 때 루터는 '왜 나에게는 떨어지지 않았을까?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이 사건으로 심령의 변화를 받은 마틴 루터는 법학부에서 신학부로 옮기고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저를 순수한 사제가 되게 해 주세요!' 이런 기도로 무장했던 루터가 처음 미사를 인도했을 때, 얼마나 은혜가 왔던지 교회가 울음바다가 되었답니다. 그의 친아버지는 더 이상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뛰어나갔다고 합니다.
그 후 루터는 꿈에도 그리던 로마 교황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거룩한 도성에는 7만 6천여구의 순교자들의 유골이 묻혀있고, 빌라도의 28계단 옆에는 40여분의 교황들, 모세가 보았던 불붙은 가시덤불, 세례 요한이 머리를 깎았다는 가위, 가롯 유다가 받았던 은전 등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루터는 이것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 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정한 영을 주옵소서!' 기도하면서 중간쯤 올라갔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심령에 뜨거움이 오고, 깊은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 당시 카톨릭에서 중요시 한 교리는 고행을 통하여 은혜에 이르고 믿음에 이른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오면 빌라도의 28계단을 기어서 올라간답니다. 이때 루터에게 어떤 깨달음이 왔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사람은 고행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는 벌떡 일어나 계단 맨 꼭대기에 섰습니다. '하나님! 내가 다시 깨달았습니다. 고행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산을 옮길만한 믿음입니다. 아버지여 내게 그런 믿음을 주옵소서!'
그러고는 이제 나는 모든 것을 다 알았다고 소리치며 자기 교회로 돌아와서 종교개혁의 3대 원리를 당당하게 내걸었습니다. ⑴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⑵성경대로 믿어야 합니다. ⑶고행으로 인간의 죄가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을 수 있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니까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할/
그 당시 로마 교황청의 막강한 권력 앞에 루터는 당당히 싸워 나갔습니다. 그에게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왔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능력을 활용한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을 쓰십시오! 크게 활용하십시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종교인은 종교 행위를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은혜의 사람, 성령의 사람은 믿음을 중요시합니다. 죽은 나무는 외형은 그럴 듯하지만 꽃도 잎도 없습니다. 생명이 없는 죽은 나무보다 산 나무가 중요합니다.
행위를 따라가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은 산을 옮길 수 있습니다.
드디어 '마틴 루터'는 1521년 '윔스 종교회의'에서 재판을 받게 됩니다. '마틴 루터'는 엄청난 고난을 받았습니다. '사제 옷을 벗어라', 그가 내 걸었던 '95항을 버리라!' 난리를 칩니다. 그러나 루터는 '내가 받은 이 신품은 하나님이 이 시대를 위해 세우신 것이니 누구도 이 사제의 신품을 벗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95항도 버릴 수 없다'고 하면서 '나는 이 시간부터 나를 위해 싸우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싸우겠다.'고 외쳤습니다. 그는 '나를 위한 것이면 곧 폐할 것이요 하나님을 위한 것이면 역사가 증거 할 줄 믿는다'고 외치면서 말하기를 '주님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했는데, 오늘 눈을 들어 보십시오! 교황청은 세상이 다 내 것'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주님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셨는데, 교황청에서는 면죄부를 사면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주님은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는데, 교황청은 양의 털을 깎고 있지 않습니까?'
루터는 조목조목 말하면서 '나는 이 믿음의 싸움을 결코 취소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크게 활용하여 썩어져 가는 종교행위를 뜯어고치고 새로운 종교개혁의 선구자가 되어 오늘날 개신교의 기틀을 세웠습니다. /할/ 그래서 개신교는 '오직 믿음으로!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혜로!'입니다.
③이제 우리는 믿음 안에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⑴작은 생각은 큰 생각으로 바꿉시다. 작은 생각은 작은 성취의 전주곡입니다. 큰 성취는 큰 생각에서 잉태됩니다.
⑵절망적인 생각은 소망적인 생각으로 바꿉시다.
⑶약한 생각은 강한 생각으로 바꿉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 다음에 목표를 세우십시오. 이왕이면 큰 목표를 세우십시다. '별을 보고 활을 쏘다 독수리를 잡는 것이 독수리를 겨냥하다가 비둘기를 잡는 것보다 더 낫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 왕이 된 것도 자기를 초월한 목표 설정 때문입니다. 그는 자동차를 통하여 재벌이 되기보다는 바쁜 사람들의 발이 되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값싸게, 안전하게, 안락하게 만들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뛰었더니 그를 자동차 왕이 되게 했습니다.
생각을 바꾸고 목표를 정했으면 이제 출발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할 것이다.' 이런 사람은 성공할 수도 축복 받을 수도 없습니다. 세상일에도 하나님의 일에도 미루고 연기하는 습관은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출발은 항상 적은 것부터 해야 합니다. '지극히 적은 것에 충성한 자가 큰 것에도 충성'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적다고 시시하다고 사람을 우습게 본다고 시험 듭니다. 아닙니다. 세상일에도 하나님의 일에도 적은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그 다음에 있는 것 가지고 출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무엇이 있어야 사업을 해도 하지, 무엇이 있어야 하나님께 봉사하지 그렇게 말합니다. 건강이 있으면 그 건강을 가지고 시작하십시오, 믿음이 있으면 믿음을 가지고 시작하십시오.
베드로와 요한은 금과 은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모세는 있는 지팡이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이끌었습니다. 사렙다의 과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밀가루 한 옴큼과 기름 두 방울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벳세다의 오병이어의 기적도 어린 소년이 가지고 있던 보잘 것 없는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있는 것 가지고 출발합시다.
우리가 하다보면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실패하면 또 출발하십시오, 포기는 절대 금물입니다. 큰 실패 뒤에는 큰 기적이 있습니다. 영적인 원리입니다.
수영선수가 되기 전에는 절대로 물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성공하기 전에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입니다.
실패를 두려워 마십시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들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진다 해도 두려워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욥5:17-19절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유업을 물려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존귀한 자라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바꿔져야 합니다. 아무리 자신에게 큰 기대를 가진다 할지라도 그 안에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④신앙의 태도가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주님의 요구는 '차갑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메달 릴 때. 크게 얻어집니다.
▶적극적인 신앙인은 ⑴그 앉은 자세부터 다릅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자세를 흩트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앞좌석이 축복의 자리입니다.
⑵눈동자가 다릅니다. 눈은 항상 설교자를 맞추십시오, 주의 종의 눈과 눈이 마주칠 때, 능력이 나갑니다.
⑶교회를 향한 걸음걸이가 다릅니다. 힘이 있고 확신에 찬 걸음이어야 합니다.
⑷시간을 잘 지켜야 합니다. 예배시간은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입니다. 세상 높은 사람들과 약속이 있을 때에도 10분전에 나가서 기다립니다. 하물며 하나님과 만남의 약속인데 늦어도 10분전에 나와서 준비하여야 합니다. 늦는 것도 습관입니다. 고쳐야 복을 받습니다.
⑤예배의 태도에도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모이기에 힘쓰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이 축복이요 인간의 최고의 선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장 큰 봉사가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하여 축복해 주십니다. 능력도 예배를 통해서, 문제 해결도 예배를 통해서 내려오는 축복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축복 받는 통로입니다. /믿/
⑥말씀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이어야 합니다.
시119:105절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이 진리의 말씀이 내 발에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하루 종일 성경 말씀, 한 줄도 읽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갓난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말씀은 곧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읽고 묵상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⑦가정생활도 적극적으로 하십시오,
주님은 맨 먼저 가정을 축복하셨습니다. 가정생활을 떠나서는 우리의 신앙이 바르게 설 수가 없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잘 내조하십시오, 남편은 아내를 늘 사랑으로 돌봐주십시오,
미국의 루즈벨트 전 대통령은 소아마비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다닙니다. 그런 대도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미국의 어려운 경제 공황을 극복시켰고, 미국사람들은 루즈벨트 대통령에 대한 경애심이 대단합니다. 그가 대통령시절에 휠체어를 탄 사건을 한 번도 신문에 낸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가 그렇게 존경받는 대통령이 될 수 있었고, 세 번이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부인의 훌륭한 내조의 공이 크다고 자서전에 나와 있습니다. 세계는 남자가 다스립니다. 그러나 그 남자를 다스리는 사람은 여자랍니다.
⑧세상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흘러가는 인생입니다. 무엇인가 나 때문에 세상이 달라졌다면 큰 축복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이름을 남깁니다.
결론을 말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위대한 사람은 없습니다. 위대한 소망이 위대한 사람을 만듭니다. 또 위대한 사건이 위대한 사람을 만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자입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삽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의 마음이니' 밥을 먹어도 예수, 앉아도 예수, 일어서도 예수, 걸어도 예수, 잠을 자도 예수, 꿈을 꿔도 예수, 예수 안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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