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창 50:15-21)
옛날 페르시아의 왕이 세 사람의 현자(賢者)를 불러 놓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세상을 살면서 가장 괴로운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한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늙어서 가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젊어서는 가난해도 상관없지만, 늙어서 가난해지면 참으로 비참합니다. 이것이 가장 괴로울 수도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상황에 부딪힐 때 인간으로 할 수 없는 한계를 느낄 때 가장 괴로운 것'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말했습니다. '해 놓은 일이 아무 것도 없는 데 임종을 맞는 것'입니다. 세 번째 현자의 말을 듣고 왕은 말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늙어서 가난하게 되는 것도 괴로운 일이요, 자기 한계를 느끼며 좌절할 때도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가장 괴로운 것은 한 일도 없이 임종을 맞는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무엇인가 멋진 일을 보람 있게 하고 임종을 맞아야 하지 않을 까요? 멋진 일 중에 멋진 일, 하나님께 보고드릴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 일이 무엇입니까? 전도입니다. 우리는 추수감사절에 '한 영혼씩 추수하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영혼구원입니다. 전도입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보십니다. 눅15:7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전도하는 일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그 분의 독생자 예수를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아 피 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우리가 전도해서 하나님의 전을 채우는 일입니다. 사람이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보답한다'는 것은 '축복 받을 만한 그릇이 된 자'입니다. /믿/
▶전도하지 않는 것은 세 가지 죄입니다. 성경에 하라고 하는 것, 안 하면 죄가 됩니다. 또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하면 그것도 죄가 됩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도 죄라고 사무엘은 말했습니다(삼상12:23).
⑴전도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가장 큰 명령에 '불 복종 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막16:15절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명령이 지상명령입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불순종하는 것은 죄 중에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회개의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기가 싫었습니다. 왜? 니느웨는 이스라엘의 원수국인 앗수르의 수도이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원수의 나라가 구원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니느웨로 가는 배를 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풍랑이 일었습니다. 제비를 뽑아 보니 요나였습니다. 요나를 바다로 던졌습니다. 고래가 삼켰습니다. 고래는 요나를 니느웨에 토하여 놓았습니다. 결국은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라는 곳에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풍랑이 일어납니다. 오늘 당신의 니느웨는 어디입니까? 오늘 당신의 다시스는 어디입니까? 오늘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여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⑵전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태만하게 한 나태 죄'입니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할 때에 로마인들은 여기저기를 점령하면서 노예들을 포로로 잡아 왔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시킨 일이 길을 닦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노예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가 만든 길이 망가지면 그 노예를 죽였습니다. 그래서 노예들은 길을 닦을 때 평생 망가지지 않도록 잘 만들었습니다. 충성을 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태만하게 하는 사람에게는 저주가 임한다고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렘48:10절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당할 것이로다.'
▶어느 전쟁 후에 한 사람에게 사형언도가 내려졌습니다. 그 사람이 항변을 했습니다. '나는 전쟁 중에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왜 사형입니까?' 장군이 말하기를 '모두가 죽을 각오로 싸우는 데 너만 가만히 있었다. 그런 치열한 전투에 가만히 있었다는 것은 사형 감이다.' 판결을 내렸다고 합니다.
⑶전도하지 않는 것은 '영혼 살인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분명히 살인죄입니다. 그렇다면 영혼을 죽이는 것은 영혼살인죄입니다. 아내나 남편이나 자녀, 그리고 부모나 이웃이나 친척, 친구나 옆 집 영혼이 지옥가게 하는 것은 영혼 살인죄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시급한 영혼이 있습니다. 오늘 전도하지 않으면 지옥으로 갈 영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추수감사절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 날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축제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시50: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할/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요!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신앙을 나무의 뿌리라고 한다면 열매는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만 쉬타인'은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는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는 축복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소유한 풍부한 물질,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과 명예, 사회적으로 많은 부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감사할 수 있을 때 행복이 됩니다. 참 감사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감사만이 선한 것입니다. ▶감사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기복적인 감사가 있습니다. 이런 감사는 자기에게 유익하고 받은 것이 있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또 ▶조건적인 감사도 있습니다. 조건이 있기 때문에 감사가 있는 것, 이런 감사는 물리적인 감사입니다. 물리적으로 얻은 것이 있으면 감사하고 없으면 불평하게 됩니다. 이런 감사는 세상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감사입니다.
그런데 ▶특별한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오는 감사, 구원해 주신 것이 감사하고,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동행 해 주실 것을 생각하니 감사합니다. 이런 감사를 가리켜 '의인의 감사'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요셉은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선으로 바꾸어주실 것을 믿고 감사했습니다.
본문의 20절의 고백은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주셨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롬8:28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할/ ◀설교제목!▶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좋은 것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생긴 얼굴로 태어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좋은 가문, 좋은 부모,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좋은 성격, 좋은 재능을 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것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외모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이것은 변해갑니다. 아무리 부모님이 좋아도 세상을 떠납니다. 우리의 환경도 변합니다.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더 좋은 것으로 주시려고 섭리하셨습니다. 이것이 창세로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창1장에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에덴동산을 주셨습니다. 에덴이란 말은 '행복, 즐거움, 낙원'이란 뜻이 있습니다. 인간들에게 가장 살기 좋은 은혜의 세계가 바로 에덴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그 에덴을 상실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에게는 좋은 것이 없어졌습니다. 저주가 왔고, 엉겅퀴가 나는 삶이 계속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것은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창3:15절에 나오는 '여자의 후손'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짓고 저주받아 고통에 떨어진 인간들에게 더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시려고 구약에서부터 많은 신앙의 인물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모형입니다. 요셉의 일생이 그렇게 위대했던 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자기 아버지 야곱에게 지극히 사랑 받는 아들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포였습니다. 그는 결국 자기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갑니다. 예수님도 자기 땅에 왔으나 자기 백성인 유대인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유대인들의 손에 의하여 십자가에 처형됩니다.
요셉은 의로움 때문에 고난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죄를 짓고 감옥에 가지만 요셉은 의롭게 살다가 감옥에 갔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는 너무 의롭기 때문에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들어갔다가 살아 나오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대신이 된 것같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만백성을 통치하는 만 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요셉의 전 일생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모형이요, 예표가 된 것입니다.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계시하여 준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요셉을 연구해 보면서 본문이 주시는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1. 본문의 배경은 무엇인가?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열한 번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야곱은 노년에 얻은 요셉을 다른 형제들보다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형들로부터 질투를 받게 됩니다. 하루는 그의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는데, 형들과 양떼가 다 잘 있는 여부를 보고 돌아 오라'는 말씀을 듣고 떠났습니다. 도단까지 가서 형들을 만났습니다.
멀리서 오는 요셉을 보았을 때 형들이 '꿈쟁이 요셉이 오니깐 그를 죽여서 구덩이에 던지고 악한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하자고 합니다. 르우벤이 '그를 죽이지는 말고 광야 구덩이에 던지고 가자'고 합니다. 그러자 유다가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자'고 해서 은 20냥에 요셉을 팔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애굽으로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창37장).
요셉은 엄청난 역경 속에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하심으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죽고 나자 염려가 생겼습니다. 혹 요셉이 과거에 자신들이 요셉을 애굽에 팔아버린 것에 대하여 보복을 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너무나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요셉에게 보내 종들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생전에 형들을 용서하라고 요셉에게 이른 말을 다시 상기시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요셉은 몹시 마음이 아파 울었다고 했습니다. 형들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이번에는 요셉을 찾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그 순간 요셉이 오래 전에 꾸었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때 요셉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요셉은 '악한 짓을 행한 사람을 징벌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이 하실 일을 대신 하겠습니까? 당신들이 악을 행한 것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고, 다만 내가 할 일은 당신들을 용서하는 것'이라며 형들을 위로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닮은 요셉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참으로 위대한 믿음과 인격을 가진 훌륭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런 요셉의 인격을 본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의 긴 이야기는 사실상 이 한 절의 말씀을 위해서 썼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습니까?' 이 말속에는 사람의 잘잘못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일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 주께 속한 것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의 지위와 권세를 이용하여 형들에게 복수를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모든 일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형제들을 심판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요셉의 놀라운 신앙을 보여 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어 놓으신다'는 그의 신앙은 참으로 귀한 믿음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여 그를 이집트에 노예로 팔아먹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 요셉을 통하여 그 가족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기근에서 구원하는 큰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2. 요셉은 '흠이 없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성경은 믿음의 훌륭한 인물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이 모두 훌륭했지만 거의 대부분이 흠이 있고, 실수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베드로, 바울 등 모두 위대했지만 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만은 흠이 없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야곱은 허점투성이었고, 권모술수도 있었으며, 사기성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에 반해 요셉은 달랐습니다. 요셉은 부모에게 효도했습니다. 형제간에 우애했습니다. 왕에게 충성했습니다. 이웃들에게 선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진실했고, 온유했으며, 인내심도 있었습니다. 그는 흠 없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오실 예수님의 예표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구약의 예수님이라고 했습니다.
①그런데 요셉이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던 동기가 두 가지였습니다.
⑴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지어준 채색 옷도 한몫 했습니다.
야곱은 아들을 12을 낳았는데 그중 자기가 14년 동안 정열적으로 연애하여 돈도 안 받고 머슴살이해서 얻은 부인에게서 난 아들 요셉만을 편애했습니다. 옷도 다르게 입혔습니다. 채색 옷, 요셉을 편애해서 채색 옷을 입혔고, 잘해준 것이 요셉을 불안하게 했습니다. 다른 형제들의 시샘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형들은 요셉을 찍어 놓았습니다.
⑵요셉이 꾼 꿈 때문에 미움을 받았습니다. 창37:5-10절까지는 요셉의 꿈 이야기입니다. 9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이 말이 형들의 분통을 터트리게 했습니다.
성경은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실패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재산을 물려준 자녀는 실패가 있지만 꿈을 물려준 자녀는 실패가 없습니다. 어떤 자리에서도 꿈이 있으면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위대한 꿈을 가지십니다. /아멘!/
요셉은 두 가지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은20냥에 애굽의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누구의 집으로 갔습니까?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 집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주인은 요셉을 가정총무로 삼고, 집안 일을 돌보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의 부인이 유혹을 합니다. 이 부인은 요즘말로 자유부인입니다. 요셉의 미모에 반했고, 진실성에 반했습니다. 이 여인이 계속 요셉에게 눈짓하며 동침하자고 유혹할 때, 요셉은 옷을 벗어버리고 도망을 칩니다.
인간은 분위기에 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참았습니다. 견디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득죄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신앙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신앙이 귀합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도 하나님은 보십니다.
요셉은 옷 때문에 여기서도 고난을 받습니다. 요셉은 끝까지 문제된 것이 옷하고 꿈입니다. 채색 옷 때문에 팔려왔다가 지금은 부인의 옷자락을 쥐고 사정하는 것을 뿌리치고 도망갔는데 그것이 오히려 범죄의 단서가 된 것입니다. 부인이 뒤집어씌운 것입니다.
여자가 한을 맺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는데, 요셉 하나를 죄인 만드는 것은 문제도 아닙니다. 그래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책임감이 강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쓰십니다. 꿈이 있는 사람, 성결한 사람, 책임감이 있는 사람, 요셉은 감옥에서도 책임감이 인정받아 교도소 소장이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갔지만 그 기간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은 준비 기간이었습니다. 고 정주영 회장님의 책에서 읽은 내용이 기억납니다. 어떻게 해서 '현대그룹을 그렇게 발전시켰느냐?'고 물었더니 '초반에는 망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방앗간인가 뭔가를 하다가 불이 나서 완전히 망했다가 그 다음에 사업이 일어났다고 고 정주영 회장님이 말했습니다. 망해봐야 그 다음에 커지는 것입니다. /믿/
하나님께서 요셉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감옥에서 꿈 때문에 국무총리가 되고 기반을 잡게 됩니다. 꿈 때문에 망했다가 꿈 때문에 다시 일어섭니다. 같은 감옥 안에 있었던 정치범이 자기가 꾼 꿈 이야기를 해 줍니다. 계시적인 꿈이었습니다. 요셉이 그 꿈을 해몽해 줍니다. 그랬더니 그대로 맞아 떨어졌습니다.
2년 후 바로가 엄청난 꿈을 꾸었는데 그 나라 안에서 그 꿈을 해석할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전에 떡 맡은 관원 장이 자기 꿈을 해몽해 준 요셉이 생각이 나서 바로에게 추천해 주어 드디어 요셉이 바로의 엄청난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요셉은 그 꿈을 해몽해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대안까지 제시해 줍니다. 7년 대풍년 기간에 거둬들인 곡식을 잘 저장하여 두었다가 7년 흉년기간에 인구 단위별로 분배하는 정책을 요셉이 바로에게 올렸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경제문제가 제일 큽니다. 지금 같으면 요셉이 '노벨 평화상 후보자' 감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요셉은 바로가 인정해 주어 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요셉이 국무총리로 있을 때 가나안땅에 있는 그 부모형제를 다 데리다가 애굽 고센 땅에 히브리 민족 촌을 건설하고 부모와 형제를 섬기며 삽니다.
그러던 중 그의 아버지 야곱이 운명하게 되자 형들이 불안해서 요셉에게 용서를 빕니다. 왜 그의 형들이 불안했는가? 전에 요셉에게 행한 악을 요셉이 보복하지나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죄인들의 일방적인 심리를 알 수 있습니다. 죄는 언제나 가책을 주고, 두려움을 줍니다. 죄는 순간에 짓지만 그로 인한 양심의 가책은 오래 갑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동안에는 요셉이 아버지를 생각해서 그대로 놓아두었지만, 이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마당에 요셉이 자기들에게 보복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온 것입니다.
잠28:1절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본문 18절에 보면 형들이 두려워 떨며 요셉에게 엎드려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당신 말대로 무엇이나 순종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이 소리를 들은 요셉이 19절에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고 합니다.
이 말은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신해서 심판할 수 있느냐?'는 의미입니다. 요셉의 이 고백이야말로 하나님의 위대한 주권을 믿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어떻게 인간이 대신할 수 있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요셉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다같이 20-21절을 읽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이와 정서가 같은 말씀이 롬8: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②요셉의 신앙 인격 몇 가지를 살펴봅니다.
⑴성결한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은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이 유혹해 와도 넘어가지 않고 자신을 깨끗하게 지켰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집요하게 유혹했지만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늘 자신의 인격을 성결하게 가꾸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창39:9절에 보면 보디발의 부인이 유혹해 올 때 그가 보인 반응이 나오는데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추하고 더러운 것은 단호하게 거절한 요셉의 모습입니다. 그는 청문회가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뒷조사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진가가 드러나는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추한 모습이 없는 성결의 인격자였기 때문입니다. /아멘!/
⑵겸손한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은 늘 겸손했습니다. 겸손이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성공한 후에도 하나님만 높이고, 사람들 앞에서 거만을 떨지 않았습니다. 겸손은 외적인 모습보다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인격입니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두 관원 장이 꿈을 꾸고 근심할 때, 얼마든지 신비로운 은사를 받았다며 잘난 척하고 거만을 떨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낮추고 오직 하나님만 높입니다. 창40:8절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나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두 관원 장에게 꿈의 해석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증거하는 모습입니다.
나중에 바로 왕이 꿈을 꾸고 불안해 할 때 불려가서도 그랬습니다. 창41:16절 에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올챙이 적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존귀한 백성이 된 것 맞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아니면 멸망할 죄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육신 적으로도 이만큼 살게 된 게 다 하나님의 은혜임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교만할 수도 없고, 교만해서도 안 되는 존재들입니다.
요셉이 형제들과 상봉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출세했다고 자랑하고 거들먹거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돌립니다. 창45:5절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7절에서도 '하나님이' 8절에서도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는 말할 때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요셉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여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이러한 겸손이 너무 향기롭습니다. 너무 아름답습니다. /아멘!/
⑶용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자기를 팔아먹은 형제들을 용서하는 요셉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요셉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실제로 가장 어려운 문제가 바로 용서입니다.
엡4:32절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할/
⑷사랑의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은 용서로 끝나지 아니하고 그들의 앞으로의 생활을 책임져주겠다고 합니다. 형들이 보복할까봐 벌벌 떨자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눈물을 흘립니다. 위로하고 심지어 온 가족을 부양하겠다고 재확인합니다21).
신앙은 마음공부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 요셉의 신앙의 인격을 잘 배우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3. 요셉은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믿는 신앙'의 소유자입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이루어진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으로 고백합니다. 애굽에 팔려온 것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로 생각하고 믿었습니다.
창45:5절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또 7-8절에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요셉은 하나님이 형들을 구원하시려고 그들 앞서 자기를 보내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었기에 악한 형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또 억울한 누명을 씌운 보디발의 아내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선하신 하나님만 믿었습니다. 어떤 환란이나 역경이 휘몰아쳐도 주님만 바라보았고, 사람들 때문에 실망하지 않았고, 환경으로 인해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이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믿/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나를 오늘 이 자리에 세워준 것도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어떤 일에도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누구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계획된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4. 요셉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악을 선으로 바꾸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가운데 큰 일이 바로 바꾸시는 일입니다. 사탄이 망쳐놓은 세상,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세상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내셨습니다. 요셉이 악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말은 구원 적인 사건을 의미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죽이려고 했으나 하나님은 나를 살려주셨습니다. 내가 살아남으로 당신들도 살게 하셨습니다.' /할/ 요셉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장차 인간의 모든 악을 선으로 바꾸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된 것입니다.
20절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으니' 이 말씀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만민을 구원하러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못 박아 죽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의 생명을 부활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마다 멸망에서 생명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믿/
당시 십자가의 형틀은 저주의 형틀이요, 끔직한 형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끔찍한 형틀이 아니라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마크가 되었습니다. 전 인류의 평화를 상징하는 적십자도, 병든 자를 치료하는 병원의 녹십자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저주와 질병, 고통과 사망으로부터 우리를 바꾸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마다 운명이 바꾸어집니다. /할/
마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내게로 가져 오라! 그리하면 내가 바꾸어 주리라'는 약속입니다.
저는 지금도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일이 있습니다. 엿장수가 가위소리를 내면서 동네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동네 아이들이 고무신 떨어진 것, 빈 병, 찌그러진 양재기 등을 엿장수에게 줍니다. 엿장수는 그것을 받고 엿으로 바꾸어줍니다. 아이들은 엿을 바꿔먹었지만 어른들은 비누, 성냥 같은 생활의 도구로 바꾸었습니다.
지금도 엿장수의 가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때 그 엿 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압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주시려고 지구촌 우리 동네로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시려고 찾아오셨습니다. 헌 것을 가지고 새것을 주시며, 못쓰는 것을 가져가시고 좋은 것, 귀한 것으로 바꾸어 주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믿/
①교회는 바꾸어 주는 집입니다.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가지고 오면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런데 '바꾼다'는 말은 '반듯이 가지고 오는 것을 전제'합니다. 엿장수도 그냥 주지 않았습니다. 가지고 올 것이 없으면 바꾸어 갈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엄청나게 좋은 것으로 바꾸어 갔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가지고 왔습니까? 죄인으로 들어오면 의인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쓸모없는 인간을 유능한 인간으로 바꾸십니다. 불의한 자를 선한 자로 바꾸십니다. 낙심한 자에게 용기 있는 사람으로, 병든 자에게는 건강을 주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그런데 가장 큰 것은 '우리의 생명을 죽음에서 영생으로 바꾸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눅18장을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자기의 의로움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옵니다. 바꾸어 줄 것이 없습니다. 자기가 의롭다는데 무엇을 바꾸어 주겠습니까?
그러나 세리는 하나님 앞에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할 때, '네가 의롭다 네 죄인 됨을 내가 의롭게 바꾸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문제를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죄의 문제, 질병의 문제, 인생간의 문제, 사업의 문제, 자녀의 문제, 영적인 문제, 주님께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②맡긴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것을 주님 앞에 가지고 오는 것이 기도입니다. 주님은 무엇이든지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더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마7:7-8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또 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아멘!/
주께로 가지고 오십시오, 무엇이든지 가지고 오십시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병든 자, 실패자, 인생 고에 허덕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언젠가 한 번 말씀드렸습니다. 임숙제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17세에 결혼하여 19세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입니다. 집안에서는 팔자 사나운 자식이라고 안타까이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기구한 운명에 대하여 거부를 했습니다.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녀는 결심하고 거울 앞에서 긴 머리를 사정없이 잘라버리고 단발머리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어느 인심이 좋은 집에 가정부로 들어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주일이면 교회에 다니면서 기도했습니다.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고 말입니다. 착실한 그녀를 보고 주인은 밤에 일하고 낮에 공부할 수 있도록 이화학교에 입학시켜 주었습니다.
몇 년 후 우등생으로 졸업한 그녀는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을 하며 대학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와 조선 통독부 장학사가 되었고, 해방과 함께 숙명여자대학을 세우고 초대 학장이 되었습니다.
기도는 운명을 바꾸어 놓습니다. 기도는 좋은 것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부요한 사람으로, 실패한 사람을 성공한 사람으로, 비난받은 사람은 칭찬받은 사람으로, 자신의 뜻으로 살던 사람을 주님의 뜻으로 사는 사람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근심, 걱정하는 사람을 감사의 사람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마7:9-11절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바꾸어 주십니다. 또한 감사하는 자에게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의 운명을 바꾸어 주십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부정적인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은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지 감사하면서 신앙의 눈을 뜨고 사는 자가 축복을 받습니다. 요셉이 그토록 큰 축복을 받은 것은 일체 불평이나, 원망이나, 낙심이나 부정적인 마음이 없었습니다. 오직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영어로 '생각하다'라는 단어에서 왔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감사할 것이 많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십시오, 가정이 있고, 건강이 있고, 신앙이 있고, 자녀가 있습니다. /할/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영원한 천국을 주십니다. 여러분 사실 인간이 무엇을 바꾼다 해도 그것이 얼마나 영원한 것이 될 수 있습니까?
집을 바꾸어 준다 해도 그 집을 비우고 가야할 날이옵니다. 병든 몸을 바꿔준다 해도 또 죽어야 할 몸입니다. 우리의 직장을 바꾸어 준다 해도 그 직장을 떠나야 할 날이 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꾸고 또 바꾸고 살다가 참으로 바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내 생명을 바꿔야 합니다.
썩어질 몸을 썩지 아니할 몸으로, 욕된 몸을 영화로운 몸으로, 약한 몸을 강한 몸으로 그리고 육신의 몸을 신령한 몸으로 바꿔야 합니다. 이 세상은 천국으로 바꿔가야 합니다. 내 마음을 천국으로 바꿔가야 합니다.
빌2:5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때 세상은 달라집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선으로 바꿔 당신들을 구원할 자리에 나를 세웠다'고 요셉은 고백했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고백입니까?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바꿔져서 그 삶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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