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사람 자료원 : 충신교회 박종순목사 구 절 : 고린도후서 12:1-9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하늘을 셋으로 구분했습니다. 첫째 하늘은 날 짐승이 날아다니는 하늘이고 둘째 하늘은 달과 별 그리고 해가 떠 있 는 하늘이고 세째 하늘은 하나님이 계시는 신령한 하늘이라고 생각했 습니다. 첫째, 하늘보다는 둘째 하늘이 높고 둘째 하늘보다는 세째 하늘이 높 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셋째 하늘은 에녹이나 엘리야같은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이 올라가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사도는 바로 그 세째 하늘에 올라가 신비한 체험을 했습니다. 본 분은 그가 세째 하늘에 올라간 신비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의 바울의 세째 하늘 경험이 주는 간증과 교훈을 발 견하게 됩니다. 1. 그런 경험을 말하는 것은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영적체험은 환상과 계시를 통한 것이었습니다. 즉, 그는 신령 한 눈으로 보았고 귀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계시는 그리스도인 이라면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내가 직접 날마다 하나님의 모습을 직접 뵉고 그 음성을 듣는다면 얼 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그것은 무익한 자랑이라고 못박고 있 습니다. 바울이 가장 자랑했고 자랑스럽게 여긴 것은 신비한 체험이 아닙니 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그의 자랑이었습니다. 즉, 예수를 자랑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자랑이라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계시자랑, 환상자랑, 병고치는 자랑은 결국 자기를 과사히게 되기 때 문에 그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 안에 능력받았다는 사람들과 병고치는 사람들과 기 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병자를 고치고 능력을 행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들은 말로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예수의 복음자랑은 퇴색하고 자기 자랑쪽으로 세월이 지날수 록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병자를 수없이 고쳤다는 어느 권사 님은 천당 갔더니 자기 집이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너는 세상에서 예수 이름으로 병고치고 능력행하면 서 영광은 다 받고 잘 살았기 때문에 받을 상이 없다"고 하더랍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하지 않았습니다만, 경고를 주는 이야기임엔 틀림없습니다. 성령께서 주신 은사는 본인이 간직하고 복음 전하는데 사용해야지 그 것을 자랑하는 것은 무익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은사를 받았든지 어떤 능력을 받았든지 우리는 다음의 기본틀에서 벗어나면 안됩니다. 첫째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내가 받은 은사나 가진 것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내가 그 영광을 받거나 그 영광을 가로채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도 주셨지만 영광은 양보하지 않습니다. 둘째, 성경대로 활용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활용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제아무리 능력을 받고 은사가 충만하다고 해도 성경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셋째, 교회에 덕을 끼치고 유익을 주어야 합니다. 은사받은 사람들일 수록 성령 충만한 사람들일수록 교회 덕을 세우고 교회의 지도자에 순 종해야 합니다. 넷째, 함부로 그 은사를 남용해선 안됩니다. 사도행전 2장의 경우 성 령을 충만히 주신 것은 복음 전하라고 주신 것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다양한 은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그 은사도 역시 복음 을 전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전하지 않고 함부로 은사를 남용하거나 남발하면 하나 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부득불 자랑한다고 하는 본문의 말씀은 어쩔수 없어서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 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위대한 겸손이 아닐 수 없습니다. 2.세째 하늘에 이끌려 갔습니다. 2절 중간을 보면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두가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는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가]라는 대명사로 부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울이 경험한 신비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세째 하늘에 올라갔다면 그것은 최고의 하늘인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2절 끝을 보면 그가 몸안에 있었는 지 몸 밖에 있었는지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요즘으로 말하면 입신상태 를 의미합니다. 4절을 보면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 고 했습니다. 이쯤되면 자기 이름과 그 사건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자랑하고도 남은 이있습니다. 요즘 은혜받았다는 사람들은 바늘만한 신비를 체험하고도 황소만큼 부풀려 떠벌리는 일들이 많습니다. 천당 갔다왔다는 사람도 있고 죽었 다가 깨어났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직접 통화를 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구실만 있 으면 자기 이름을 드러내고 자기를 과시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엄청난 신비를 체험하고도 자기이름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우린 여기서 배울 것이 많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내가 자꾸 드러나면 안됩니다. 둘은 이끌려 갔다는 것입니다. 2절 셋째 줄에서도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고 했고 4절에서 도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자기가 세째 하늘을 구경하러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이끌려 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 삶의 인도자가 하나님이시며 그 인도를 절대 순종하고 살아나온 바울의 삶을 한마디로 설명해 줍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언제 어디서나 이끌림을 받는 삶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가 가고 싶다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선택하 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의 결과를 따라 주시는 선물이며 은혜 입니다. 귀신의 영이나 사단의 능력은 내가 노력하고 힘씀으로 접신이나 강신 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는 내가 노력한다고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낙원을 구경했고 그곳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계시를 받았습 니다면 그는 하나님이 이끌어 주셨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 점이 바울 의 위대한 점이며 우리가 배워야 할 점입니다. 3. 자랑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5절을 보면 그런 것들은 자랑할 수는 있으나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 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쓴 서신들 속에서 위대한 교훈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 가 쓴 서신들도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 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 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등 13권에 달합니다. 그런데 그는 단 한번도 자기 자신이 행한 기적이나 능력을 언급하거 나 쓴일이 없습니다. 바울도 기적을 많이 행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9:17 을 보면 아나니아에게 안수받고 성령충만을 체험했습 니다. 사도행전 14:8 이하를 보면 루스드라지방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사람을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는 한마디로 그를 고쳤습니다. 사도행전 16:25이하를 보면 빌립보옥 중에 갇혀있을 때 기도하다가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28:1이하를 보면 멜리데 섬에서 독사에 물렸으나 죽지않고 기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적과 능력들은 바울 자신은 그가 쓴 편지들 속에서 단 하가지도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울을 수행했던 의사인 누 가가 쓴 사도행전에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입이 없어 말을 안한 것도 아니고 문자를 몰라서 그것을 남기 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자랑하면 자기 인기나 위신이 급상되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에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자랑하고 약한 것들만을 자랑 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을 일어나 걸으라는 한 마디로 고쳤습니다. 사도행전 5장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마음을 꿰뚫고 그들 이 돈 감춘 사건을 들춰내는 능력을 행했습니다. 사도행전 9:32 이하를 보면 룻다지방에서 중풍병으로 8년을 누워 고 생하던 애니라는 사람을 고치는 기적을 행했습니다. 사도행전 10:44을 보면 그의 설교만 들어도 방언을 하는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 사도행전 9:36 이하를 보면 욥바에서 다비다라는 여자가 죽어 그 시 체를 다락에 뉘어 놓았는데 기도하고 살려낸 기적도 행했습니다. 사도행전 5:15-16을 보면 베드로가 지나갈 때 그 그림자만 환자위에 덮이면 병자들이 고침받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기록 역시 베드로가 쓴 베드로 전후서에서는 없습니다. 누가가 쓴 사도행전 에만 언급이 되어 있을뿐입니다. 우리는 바울과 베드로의 능력과 기적을 대하는 자세 속에서 실로 많 은 것을 깨닫고 배우게 됩니다. 주님만 자랑하는 것은 성령충만이고 자기를 자랑하는 것은 사단의 유홀입니다. 주님만 자랑합시다.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다시한번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올바르게 관리하는 자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모든 은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둘째,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셋째, 교회 덕을 세우고 순종해야 합니다. 넷째, 함부로 은사를 남용해선 안됩니다. 환청, 환상, 계시, 병고치는 능력, 영서,속삭임 등 이런 것들을 이미 주신 성경말씀보다 더 높이고 남용하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다섯째, 함부로 기도해 준다로 머리에 손을 얹거나 아무나 찾아 다 니면서 안수받는 것을 금해야 합니다. 가장 바람직한 기도생활은 내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를 위해 기도 전문가처럼 기도해 준다든지 전문가를 골라 기도를 받으러 돌아 다니는 것은 금해야 합니다. 안수기도는 그 사람이 받은 은사나 능력을 전수한다는 긍정적 요소가 있는가 하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귀신의 영을 전수한다는 부정적 요소도 있기 때문에 함부로 안수를 하거나 받으면 안됩니다. 여섯째,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병고치는 은사 받았다고 왕진의사처럼 돌아다니면 안됩니다. 예언은 은사를 받았다고 점쟁이로처럼 안됩니다. 능력의 은사 받았다고 전능자처럼 굴면 안됩니다. 신령한 섹례를 듣고 보았다고 해서 함부로 입을 열고 말을 옮겨선 안 됩니다. 영적인 세계, 신비한 세계에 깊이 들어갈수록 마귀의 역사가 나를 강 하게 공격하고 틈타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깨어라 근신하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신 그 말씀의 대상은 불신자나 초 신자가 아닙니다. 신앙의 깊은 세계에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 사람들이 조심해야된다는 것입니다. 말씀만 붙잡고 신앙생활을 하면 냉냉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신비한 세계를 사모하고 신령한 생활을 힘쓰다 보면 고무풍선처럼 붕 붕 뜨는 단점이 있습니다. 올바른 신앙생활(충신교회의 신앙생활)은 지적이면서 영적이고 영적 이면서 지적인 조화와 균형에 있습니다. 신령한 은사로 충만한가하면 그 은사를 조절할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말씀을 실천하는가 하면 깊이 있는 기도와 영 적은사를 체험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받았다고 고무풍선처럼 들뜨는 것보다는 말씀의 능력에 사로잡혀 그대로 살고 열심으로 전도하고 교 회에 봉사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합니다. 세째하늘에 올라갔던 바울이 그 사실을 그다지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 은 이유는 장차 우리가 다 들어가서 직접 보고 경험할 세계이기 때문 이었습니다. 성령충만하고 능력 넘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신령한 힘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시다. 그리고 그 체험과 능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도합시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그 능력을 쏟읍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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