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 해결 법
역대상 4:9-10
역대상 4장은 유다 지파의 후손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의 주인공인 야베스는 유다 지파에 속한 사람이었다는 것 외에 자세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업적이나 환경에 대한 기록도 없습니다. 9절과 10절이 짤막하게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을 뿐입니다.
성경이 인명 사전은 아닙니다만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수를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그들은 복 받은 사람들과 저주받은 사람,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로 대별됩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 요셉처럼 그 생애를 길게 취급한 경우도 있고, 단 한마디로 끝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본문의 주인공인 야베스의 경우 그의 업적이나 생애에 대한 기록이 길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기도로 근심을 해결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9~10절을 중심으로 야베스를 통해 주시는 교훈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1. 그는 다른 형제들보다 존귀한 자였습니다.
9절을 보면 "그는 그 형제들 보다 존귀한 자라"고 했습니다. 존귀한 자라는 것은 존경받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다른 형제들보다 존경을 받고 사랑을 받게 되었는가에 대해선 설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존귀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돈이 많고, 권력을 잡고, 공부는 많이 했지만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은 없고, 권력은 없고, 공부는 많이 못했지만 존경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희망 사항이 있다면 돈도 많고, 권세도 있고, 공부도 많이 했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존경은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이 인정받을 때 성립됩니다. 어떻게 사느냐,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존경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도 고리대금을 했다든지, 부동산 투기를 했다든지, 마약밀수로 부자가 됐다면 존경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떼돈을 벌어 갑부가 됐다 하더라도 낮과 밤을 주색잡기나 도박으로 보낸다면 존경받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바로 벌고 바로 써야 합니다. 권력도 바로 잡고 바로 써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바로 믿고 바로 살아야 합니다.
훗날 우리의 뒤를 따라오는 후배들이나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거나 손가락질을 받거나 욕을 먹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위대한 사람이었다는 칭송은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욕을 먹진 않아야 합니다.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수고롭게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해산할 때 난산을 했다해서 야베스라고 했고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고 했습니다.
태어날 땐 누구나 울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떠날 때(죽을 때)는 울고 가는 사람도 있고, 웃으며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죽을 때도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갑니다. 그러나 영원한 소망이 있는 사람은 웃으며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태어날 땐 순산도 있을 수 있고 난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무통분만법이 개발되어 산모들의 고통이 훨씬 줄어들었다고는 합니다만 그러나 해산의 고통은 하와가 받은 고통이기 때문에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수고롭게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한 평생 그 수고와 근심의 짐을 진 채 살 필요는 없습니다. 수고의 짐을 주님께 맡겨 버리면 됩니다.
근심을 떨쳐 버리고 수고의 짐을 벗어버리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린 그 방법과 비결을 본문 10절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3. 야베스의 기도를 살펴보십시다.
10절을 보면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내용과 받은 응답을 살펴보십시다.
첫째, 복에 복을 더하사 지경을 넓혀 달라고 했습니다.
이미 받은 복이 있는데 그 위에 복을 더해달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6을 보면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했습니다. 은혜나 복은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받을수록 좋고 더할수록 더 좋은 것입니다.
저는 뺄셈보다는 더하는 셈을 좋아합니다. 나누는 셈보다는 곱셈을 좋아합니다. 100에다 100을 더하면 200이 되지만 100에다 100을 곱하면 1만이 됩니다. 9,800의 차이가 납니다. 1,000에다 1,000을 더하면 2천이 되지만 1000×1000은 100만이 됩니다. 축복과 은혜는 덧셈이 되고, 곱셈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도 덧셈이 되고, 곱셈이 되어야 합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빠지고 나누어져 다 없어져 버리면 안됩니다.
야베스는 복에 복을 더하사 지경을 넓혀 달라고 했습니다. 지경이란 땅의 경계를 말합니다.
본래 우리나라의 경우 경계가 만주, 몽골까지였습니다. 그런데 다 빼앗기고 좁아져 휴전선이남으로 작아졌습니다. 캐나다, 중국, 미국, 러시아등은 우리나라 보다 땅넓이가 30배에서 50배가 더 큽니다. 그런 나라들에 비하면 땅이 너무나 좁습니다.
캐나다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한 일이 있습니다. 절경에 장관이었습니다. 동행했던 친구에게 "이 폭포 뚝 떠다가 한강에 옮겼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 친구 하는 말 "이건 거져줘도 한국에 갔다 놓을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온타리오 호수도 함께 옮겨와야 되는데 그 호수 크기가 남한 만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땅덩어리 좁은 거야 어떻게 바꾸겠습니까? 그러나 걱정은 사람들의 통이 적다는 것입니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이북, 경기도, 강원도 지역을 찢어 나누고 지역 감정을 부추기고 민족화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마음을 넓히고 세계를 호흡합시다. 큰 꿈을 꾸고 비전을 세웁시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맙시다. 마음의 지경을 넓히고 생각과 행동의 지경을 넓힙시다.
둘째,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환난을 벗어나고 근심을 해결하는 비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의 손이 나를 도와 주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심」이라는 단어는 "메리조"(분리시키다, 나누다)라는 말과 "누우스"(마음)라는 말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근심이란 마음이 둘이나 셋으로 분리되고 나눠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찰스 스윈돌은 「다시 웃자」라는 자신의 저서 속에서 기쁨을 빼앗아 가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나는 근심입니다. 근심이란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는 일에 대한 터무니없는 염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근심하고 걱정하고 염려하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심이라는 독소는 서서히 그 효과를 발휘해 기쁨을 부식시킨다는 것입니다.
둘은 스트레스입니다. 스트레스는 근심보다 더 심각한 것인데 스트레스가 쌓이면 정신과 육체를 괴롭히고 모든 질병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셋은 두려움(공포)입니다. 이것은 위험이나 불행이나 고통이 있을 때 느끼는 무서운 불안정인데 근심이나 스트레스처럼 기쁨을 빼앗아 가고 사람을 망가트린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근심, 스트레스, 공포는 기쁘게 살고 싶은 사람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원수인 것입니다.
사람에겐 누구나 공포증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공포증이 500여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뱀 공포증, 고소 공포증, 어둠 공포증, 개 공포증 등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공포증을 치료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연구되고 있는데 가장 확실한 치료 방법은 공포의 대상을 피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맞닥트려 대면하고 바라보는 적극적 방법이 최고라고 합니다.
근심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하여 성경은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길을 보여 줍니다. 본문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했고, 요한복음 14:1에서 주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5:7을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세 구절 말씀을 합하면 근심을 해결하는 비결은 하나님께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입을 열어 맡기는 것을 「기도」라고 합니다.
야베스에게 어떤 환난과 근심이 있었는가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큰 시련을 겪었고, 근심에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난과 근심을 없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응답 받고 근심을 해결한 것입니다.
태산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은 근심도 하나님께 맡기는 순간부터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믿고 맡기면 하나님이 반드시 들으시고 해결하신다"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노처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날 밤부터 침대 위에 남자 바지 한 벌을 걸어놓고 무릎꿇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구하는 바를 허락해 주세요, 여기 바지 한 벌을 걸어놓았어요 저 바지를 입을 남자를 허락해 주세요"라고. 그리고 하나님은 노처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바지 임자를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간증처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심각하게 듣고 있는 10대 소년이 있었습니다. 몇 주가 지난 후 그 소년의 어머니가 목사님을 찾아와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상담내용은 목사님이 설교를 듣고 난 그 날 밤부터 자기 아들이 침대 머리맡에 여자 스커트를 걸어놓고 "주님, 이 스커트 입을 사람을 저에게 주십시요."라고 기도를 하고 있는데 혹 정신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는 얘기였습니다.
목사님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들의 기도대로 될 것입니다."라며 안심시켜 돌려보냈는데 얼마의 세월이 지난 후 그 아들이 스커트 임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목사님은 그 결혼식 주례를 했다는 것입니다.
근심과 걱정을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님께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내 손안에 쥐고 있으면 내 문제가 되지만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현금이나 보석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 내가 지키고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만 은행에 맡기면 그 날부턴 은행이 책임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베드로가 말씀하신 "너희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라"는 말씀의 뜻은 믿고 던져 버리라는 것입니다.
야베스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 하셨더라"로 끝납니다. 드라마나 영화로 치면 해피엔딩인 것입니다.
잠언 10:22을 보면 "여호화께서 복을 주심으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복을 주시고 근심은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나를 괴롭히고 근심과 걱정을 주지만 하나님은 내게서 근심을 물리치시고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근심, 걱정의 반대는 기쁨과 평안입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근심을 털어 버리고 기쁨과 평안을 주안에서 누립시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네게 주노라
기쁨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을 네게 주노라
행복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행복 행복 행복 행복을 네게 주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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