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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

by 【고동엽】 2021. 12. 12.

11.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

1988년 10월 30일



누가복음 19장 28-40절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29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 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광경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사건은 몇 개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본문의 사건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년의 공생애 기간 중 마지막 한 주간은 매우 중요한 시기인데, 이 한 주에 이루어진 첫 번째 일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이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첫째,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하신 분이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3킬로미터쯤 떨어진 베다니에 가까이 오셨을 때, 제자 둘을 보내며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를 끌고 오라고 명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자 나귀 주인은 아무 소리도 없이 나귀를 내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육안 으로 나귀를 보지 않았으나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것처럼 정확하게 말씀하셨고, 또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의 눈으로부터 숨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혼자 했든지 여럿이 했든지, 밤이든지 낮이든지 주님은 우리의 모든 언행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은밀한 곳에서 귓속말을 한다고 해도 주님은 다 듣고 헤아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진실한 마음으로 죄를 자백함으로 용서받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28-34절은 주님이 우리의 형편과 사정 을 모두 아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어디가 아픈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소망하는지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혹 억울함과 비방을 겪고 고난을 당한다 해 도 우리는 낙심하거나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두 번째 사실은, 예수님이 공개적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자원하여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라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이 행렬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으로나 이스라엘의 전통으로 보나 엄청난 행사입니다. 스가랴 9장 9절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메시아가 겸손히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입니다. 그가 예언한 지 550년이 지났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가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으니, 이것이야말로 메시아가 지금 이 자 리에 오셨다는 것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나귀를 타고 공개적으로 입성하신 예수님의 행동은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오병 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 하자 산으로 기도하기 위해 숨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예수님이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곧 예수님의 지상 사역이 끝날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만민을 위해 드려지는 희생 제물로 자신을 기꺼이 바치기 위해 이렇게 공개적으로 입성 하신 것 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수치스러운 십자가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만민을 죄 에서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였을 때 공개적으로 재판을 받으시고, 골고다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하셨습니다. 이는 매 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복음의 핵심이요, 만민을 구원하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으심을 온 세상에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세 번째 사실은, 예수님이 겸손한 왕이요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 입니다. 예수님이 왜 하필이 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까요? 예수님은 겸손한 왕으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 앞에 순종하셨고, 겸손히 섬기는 자의 본을 보이며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만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11절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 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겸손하게 나귀 새끼를 타심으로 겸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높아질수록 겸손하면 더욱 존경을 받게 되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을 통해 깨닫는 네 번째 사실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초라했지만 그분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재림하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천군 천사의 호위를 받으면서 영광중에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신다고 했습니다(마 26:64; 막 14:62; 눅 21:27; 살전 4:16). 이때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들의 기쁨은 영원할 것 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영광 돌리는 것은 바로 그때를 위함이 아닙니까? 저와 여러분 모두 전지전능 하신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고, 흠 없고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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