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과 하나님사랑 (수22:10-20) 2005-06-05
민34:1-12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들어가 차지할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상세히 일러주셨음을 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민34:13-15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그 땅을 어떻게 나누어 가질 것인지를 또한 명령하셨음을 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는 너희가 제비 뽑아 받을 땅이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아홉 지파 반 쪽에게 주라고 명령하셨나니 이는 르우벤 자손의 지파와 갓 자손의 지파가 함께 그들의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들의 기업을 받을 것이며 므낫세의 반쪽도 기업을 받았음이니라. 이 두 지파와 그 반 지파는 여리고 맞은편 요단 건너편 곧 해 돋는 쪽에서 그들의 기업을 받으리라." 즉 열두 지파 중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절반은 요단강 동쪽의 땅을 차지할 것이고 요단강 서쪽에서부터 지중해까지의 모든 땅은 나머지 아홉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다른 절반이 제비를 뽑아 나누어 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죽고 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백성과 함께 제일 먼저 한 일은 요단강을 건넌 일이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기에 앞서 여호수아는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모든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되 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그들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 그리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해 돋는 곳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수1:14-16). 그러자 그들은 여호수아에게 대답하기를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수1:17) 했고 그 다짐대로 가나안 전체를 정복하기 위한 모든 일에 참여하며 동족들과 함께 끝까지 열심히 싸웠습니다. 수4:12는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널 때에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 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이미 자기들 몫의 땅을 차지했으니 다른 지파들이 어떻게 되던 "나 몰라라" 하지 않고 가나안 정복이 끝날 때까지 앞장서서 싸웠으며 다른 모든 지파가 각각 자기의 몫을 다 나누어가지기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자기들 몫으로 정해진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사실을 오늘 본문보다 조금 앞서는 22:1-6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여호수아가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너희가 다 지키며 또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일에 너희가 내 말을 순종하여 오늘까지 날이 오래도록 너희가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그 책임을 지키도다. 이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쪽에서 너희에게 준 소유지로 가서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되 오직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명령과 율법을 반드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하고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축복하여 보내매 그들이 자기 장막으로 갔더라."
그런데 가나안 정복이 끝나고 각 지파의 자손들이 자기들 몫의 땅으로 흩어지며 나눈 축복의 소리가 아직도 귓전을 울리고 있을 때에 하마터면 이스라엘의 분단과 비극적 대결을 낳을 뻔했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사건의 전말을 알리는 기록의 일부입니다. 사건의 발단과 그 진행과정은 이러합니다. 요단강 동쪽 건너편에 살기로 되어 있었던 지파의 자손들이 가나안 땅 요단 언덕 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큰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10절). 그 소식이 요단강 서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려지자(11절) 온 회중의 대표들이 실로에 모여서 요단 동편의 지파 자손들과 싸우러 가자고 한 것입니다(12절). 그러나 이들은 전쟁을 벌이기에 앞서 신중하게도 백성의 대표들을 보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를 만나보고 자초지종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해명을 듣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지도자씩 열 지도자들로 하여금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를 만나보게 했습니다(13-14절).
이들이 서로 만나게 되자 요단강 서쪽에서 나아온 대표들이 요단강 동쪽의 두 지파 반 대표에게 힐난하며 물었습니다. 16-20절을 다시 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서 너희를 위하여 제단을 쌓아 너희가 오늘 여호와께 거역하고자 하느냐? 브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으나 오늘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받지 못하였거늘 그 죄악이 우리에게 부족하여서 오늘 너희가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고 하느냐? 너희가 오늘 여호와를 배역하면 내일은 그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리라. 그런데 너희의 소유지가 만일 깨끗하지 아니하거든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지를 나누어 가질 것이니라.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거역하지 말라. 세라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에 대하여 범죄하므로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의 죄악으로 멸망한 자가 그 한 사람만이 아니었느니라."
이 말에서 우리는 요단강 서쪽의 아홉 지파 반 백성이 요단강 동쪽 두 지파 반 백성이 제단을 쌓은 것일 왜 격분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같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도록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곳에 있는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세우는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일이고(16절), 하나님을 따르는 데서 돌아서는 일이며(16절), 하나님께 거역하는 일이고(16절), 하나님을 배역하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18절). 둘째로는 이스라엘 백성 중 한 사람이나 일부가 하나님께 죄를 범해도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은 이스라엘 회중 전체에게 내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비느하스와 열 대표는 이 사실에 대한 역사적 경험 두 가지를 거론했습니다. 그 하나는 브올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모압여자들과 음행하고 그들을 따라 바알브올에게 절하는 죄를 범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염병으로 이만사천 명이 죽은 사건입니다.17-18절을 봅니다: "브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으나 오늘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받지 못하였거늘 그 죄악이 우리에게 부족하여서 오늘 너희가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고 하느냐? 너희가 오늘 여호와를 배역하면 내일은 그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리라." 비느하스 일행이 거론한 다른 한 가지 사건은 보다 최근에 여리고에서 있었던 아간의 범죄사건입니다. 20절을 봅니다: "세라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에 대하여 범죄하므로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의 죄악으로 멸망한 자가 그 한 사람만이 아니었느니라."
비느하스 일행은 요단강 동쪽의 두 지파 반 백성에게 다음과 같은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19절입니다: "너희의 소유지가 만일 깨끗하지 아니하거든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지를 나누어 가질 것이니라.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거역하지 말라." 이것은 요단강 동쪽의 두 지파 반 백성에게 요단강 동쪽의 땅이 깨끗하지 않아서 다른 제단을 쌓고 우상을 숭배하게 될 것이라면 차라리 그 땅을 포기하고 다시 요단강 서쪽으로 건너와 땅을 부족하게 나누어 갖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바로 지켜야 할 것 아니냐는 말입니다.
요단강 서쪽에서 찾아온 동족들로부터 이렇게 준엄한 질책을 받자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변론에 나섰습니다. 본문 뒤에 오는 22절 이하를 봅니다: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를 거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께서는 오늘 우리를 구원하지 마시옵소서. 우리가 제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또는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또는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거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 이들의 첫째 변론은 제단을 세운 것은 요단강 서쪽 동족들이 생각하듯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16절), 하나님을 따르는 데서 돌아서며(16절), 하나님께 거역하고(16절), 하나님을 배역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변론을 강하고 단호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를 두 번씩이나 연달아 부르며 하나님 자신을 증인으로 내세운 것입니다. 즉 제단을 세운 자기들의 행위가 요단강 서쪽 동족들이 생각하는 그런 행위가 아님은 하나님 자신이 잘 아시는 바이며, 만일 자기들의 행위가 요단강 서쪽 동족들이 생각하는 그런 행위였다면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친히 벌을 내리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들은 이어서 그들이 왜 제단을 세웠는지를 적극적으로 설명했습니다. 24-29절을 봅니다: "우리가 목적이 있어서 주의하고 이같이 하였노라. 곧 생각하기를 후일에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 르우벤 자손 갓 자손아 여호와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으로 경계를 삼으셨나니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느니라" 하여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하여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제단 쌓기를 준비하자" 하였노니 이는 번제를 위함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함도 아니라. 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우리의 번제와 우리의 다른 제사와 우리의 화목제로 섬기는 것을 우리와 너희 사이와 우리의 후대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할 뿐으로서 너희 자손들이 후일에 우리 자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다"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말하였거니와 만일 그들이 후일에 우리에게나 우리 후대에게 이같이 말하면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 조상이 지은 여호와의 제단 모형을 보라. 이는 번제를 위한 것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한 것도 아니라. 오직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거만 되게 할 뿐이라. 우리가 번제나 소제나 다른 제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제단 외에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고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려는 것은 결단코 아니라 하리라." 다시 말하면 지금은 비록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 살아도 한 하나님을 섬기는 한 민족임을 서로 잘 알지만, 훗날에는 양쪽의 자손들이 서로 같은 믿음을 가진 한 동족임을 모르게 되고 남남으로 나뉘게 될 것을 염려하여 행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적극적 해명은 비느하스와 그와 함께 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오해를 풀어주었습니다. 그들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의 말을 듣고 좋게 여기고 돌아갔으며 그들의 보고를 받은 온 백성은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찬송함으로써 이스라엘을 분단과 대립으로 몰고 갈 뻔했던 위기는 해소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주목할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12절에서 보는 대로 요단강 동쪽에서 살게 된 두 지파 반 백성이 제단을 세웠다는 소식을 접하자 요단강 서쪽을 차지한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즉 비록 오해였음이 드러나긴 했으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순수성을 훼손했다고 여기자 지금까지 피를 나누고 동고동락하며 긴 여정과 모든 전투에서의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동족을 향해 가차 없이 전쟁을 결심한 이스라엘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동족사랑이라 해도 하나님사랑을 넘어서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둘로 나뉘어 싸울 수 없는 한 민족이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바르게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자신의 입장을 돌아보게 하는 의미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 일각에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조차 우리의 신앙과 일치하지 않는 민족주의를 무작정 주장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민족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민족사랑이 하나님사랑을 넘어서면서까지 절대화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통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은 우리 모두의 간절한 염원이고 또 그래야 하지만 신앙의 자유와 교회의 존립을 말살한 위험이 있는 통일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민족사랑과 통일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우상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사랑과 바른 믿음 안에서 민족을 사랑하고 통일을 추구해 나아가는 우리가 됩시다.
지난 며칠 동안 우리의 선교지 블라디보스톡을 비롯한 러시아의 몇 도시를 돌아보았습니다. 그토록 넓은 땅, 비옥하고 지하자원이 풍부한 나라, 우수한 두뇌와 예술성을 지닌 러시아민족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교회를 탄압하며 그리스도인을 철저히 박해한 공산주의와 그 정권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피폐하고 초라한 사회로 전락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 무엇보다 앞세우고 바른 믿음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이 우리 민족이 다 같이 잘 살고 행복하게 하나 되는 길임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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