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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사상! (신 22:5-11)

by 【고동엽】 2021. 12. 1.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사상! (신 22:5-11)
  지난 해 이스라엘에서 한 달을 머믈면서 여러 가지 체험을 많이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음식중에 싸고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이 있습니다. 팔레팔이라는 음식입니다. 빵을 두 겹으로 만들었습니다. 빈대떡을 두 겹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한 쪽을 잘라 내고 가운데 야채, 과일 그리고 고기를 잘라 넣습니다. 불룩하여집니다. 그 것을 하나 먹으면 한 끼 식사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 양고기를 넣은 것이 제일 비쌉니다. 그래 봐야 3,000원 정도합니다.
한번은 음식점에 앉아서 양고기 팔레팔을 시켰습니다. 마침 우유를 사 가지고 간 것이 있어서 음료수는 시키지 않고 가지고 들어간 우유를 따랐습니다. 유대인 주인이 불같이 달려와서는 막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이곳은 코셔 음식점이라 그렇게 먹지 마십시오"
무슨 뜻인 지 몰랐습니다. 양고기와 양 젖을 같이 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근거입니다. 같은 종류를 한꺼번에 먹으면 안 되는 것이 성경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음식점에서 쫓겨 날 뻔 한 체험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생소한 금지사항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중에서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새가 그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만나거든 그 어미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가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라고 하는 이상스러운 율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사상을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사상은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간첩으로 우리 나라에 몰래 들어 왔다가 잡혀서 50년을 감옥 생활하면서도 결코 공산 사상을 버리지 못 한 소위 미전향 죄수들이 작년에 북한으로 도로 돌려 보내졌습니다. 이북에서는 영웅 취급을 받았습니다. 지독한 이들이었습니다. 한번 사상이 들어가면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사상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네 가지 사상을 싫어하시는 것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랑을 싫어하시는 것일까요?

1. 혼합주의
하나님은 혼합주의 사상을 싫어 하십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옷이 혼합되는 것을 싫어 하십니다. 여자와 남자 옷이 혼합되는 것도 싫어 하십니다. 두 종자를 같이 뿌리는 것도 싫어 하십니다. 소와 나귀를 같이 혼합하여 사용하는 것도 싫어 하십니다. 소는 소끼리, 나귀는 나귀끼리 겨리하여 농사짓거나 마차를 끌어야 합니다. 그리고 옷을 짤 때 양 털과 베실을 같이 혼합하여 짜는 것도 싫어 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한 마디로 하나님은 혼합주의를 싫어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혼합은 마귀의 속성입니다. 마귀는 혼합되고 섞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곡만 있는 밭에 가라지를 심었습니다. 선만 있는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따먹게 하여 선악이 혼합되게 하였습니다.
만나만 먹어야 하는 광야에서 부추, 마늘, 파 그리고 수박 참외를 같이 섞어 먹게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만 섬기는 데 우상을 혼합하여 섬기게 유혹하였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에 다른 무엇을 혼합하는 것이 이단입니다. 어거스틴은 한 때 마니교에 깊이 빠진 적이 있습니다. 마니가 만든 종교가 마니교입니다. 마니는 3세기 경에 살았던 메소포타미아 의사이자 화가이자 예언가였습니다. 그는 예수님, 공자님, 그리고 조로아스터를 섞었습니다. 그래서 마니교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것이 이단입니다. 기독교 진리에는 그 어느 것도 섞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주일은 온전히 드려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주일이 다른 날과 혼합되는 것을 싫어 하십니다. 주일은 온전히 영광받으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주일에는 다른 일을 하지 말고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는 일에 전력하기를 하나님은 바라고 계십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십일조가 많다고 떼어서 선교 헌금이나 다른 교회를 돕는 데 사용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서원한 것은 그대로 갚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나중에 마귀 생각이 들어가는 혼합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지난 주간 동탄 교회 집회를 인도하고 돌아 왔습니다. 장로님 한 분이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제 직장에서 저를 퇴출시키기로 정하였습니다. 다른 직장에서 나를 영예롭게 끌어가는 영광을 주시옵소서, 스카웃해가는 기쁨을 주옵소서. 그러면 그 스커웃 비용의 반을 하나님께 대지 헌금으로 드리겠나이다"
이렇게 기도한 지 얼마 안 지나서 인도네시아 회사에서 그를 스카웃 한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스카웃 비용은 3억원이었습니다. 그래서 1억 5천만을 대지 헌금으로 드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너무 많이 작정하였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대로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주신 생각에 내 생각이나 마귀 생각이 혼합되기를 원치 않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은 순수한 하나님의 생각을 원하시지 결코 혼합을 원치 않으십니다. 순수하고 깨끗하기를 원하십니다.

2. 대형 지향주의
하나님이 두 번째로 싫어하시는 사상이 있습니다. 대형 지향주의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런 말씀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노중에서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새가 그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만나거든 그 어미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가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6-7)
복을 받고 장수하게 되는 비결을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복중에서 가장 큰 복은 장수하는 복입니다.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장수의 비결을 여러 가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선 10계명중 5섯번째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하게 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면 장수하게 된다고 잠언에 말했습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잠3;7-8)
이렇게 10계명과 같이 거창한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여야 하는 당연한 일을 하면 장수하지만 그러나 너무나 작은 일도 장수의 비결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지나가다가 새 둥지에서 새 새끼를 꺼낼 때 어미 새는 놓아 주는 것도 장수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작은 것도 무시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축복의 비결이 거창하고 크고 웅대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말씀입니다.
어느 분은 아침에 면도하면서 콧 털 하나가 보기 싫어서 뽑았습니다. 그 속으로 균이 들어가서 직장에서 죽었습니다. 작은 것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세계 제일의 산맥 럭키 산맥을 걸어서 넘은 등산가에게 그 거창한 산맥을 넘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느냐고 신문기자가 물었습니다. 그 등산가는 대답하였습니다.
"신발 속에 들어 간 작은 모래알이 그렇게 힘들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에게 큰 것을 맡기신다고 하셨습니다. 한 고을을 잘 다스린 자에게 10 고을을 맡기신다고 하셨습니다. 양을 잘 지킨 다윗에게 하나님의 백성을 맡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너무 큰 것에만 관심을 갖기 쉽습니다.
어느 회사 취직 면접시험은 사장과 대화하는 척하며 면접을 볼 때 그 앞에 휴지를 흘려 놓고 그 휴지를 줍는 사람을 선택하기로 정하여 그렇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모두 어떻게 하면 면접을 하면서 인상을 좋게 할가에 관심을 집중시킬 때 한 사람은 그렇게 하면서 나오면서 휴지를 주웠습니다. 그가 뽑혔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이에게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새새끼를 둥지에서 꺼내면서 어미새는 놓아 주는 이에게 엄청난 축복인 장수의 축보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너무 대형주의에 들떠 있을 때 작은 것에도 관심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대형지향주의를 싫어 하십니다.
다이아몬드 구별법이 있습니다. 진짜 다이아몬드와 가짜 다이아몬드 구별법은 간단합니다. 물속에 넣어 보면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진짜 다이아몬드는 물속에 넣어도 빛이 그대로 영롱하게 빛나게 됩니다. 그러나 가짜는 물속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 합니다.
참 성도는 어디에 무슨 일을 하든지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누가 무엇이라 하든 상관하지 않고 작은 일에 충성합니다.

3. 편의주의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편의주의를 하나님은 싫어하심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빠른 것을 좋아 합니다. 큰 것을 좋아 합니다. 편한 것을 좋아 합니다. 뛰기보다 걷기를 좋아 합니다. 걷기 보다 앉아 있기를 좋아 합니다. 앉아 있기 보다 누워 있기를 사모합니다, 누워 있기보다 자기를 좋아 합니다. 편할수록 좋아 합니다.
본문은 편할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쐐기를 박으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하게 합니다. 여자가 남자 옷을 입는 것은 편하기 때문입니다. 한 둥지에서 새끼와 어미를 같이 잡는 것은 편한 일입니다. 따로 잡으려면 어렵습니다. 두 번 노력하여야 합니다. 한 땅에 두 종자 씨를 뿌리면 거두기가 쉽습니다. 꿩먹고 알먹고 같습니다. 소도 나귀도 있으면 구별할 것없이 같이 사용하면 편리합니다. 편의주의입니다. 되는 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편리한 대로 지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편의주의를 싫어하십니다. 예수님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철야기도를 하셨습니다.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안 죽으셔도 되는 분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편의주의는 교회를 망치고 있습니다. 3 D 기피주의는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웃사 이야기가 우리에게 이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성막이 실로에 있었습니다. 불레셋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강대국 불레셋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대제사장의 두 아들은 법궤를 가지고 나가 앞장 세우고 싸우면 하나님이 승리를 줄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법궤를 가지고 나가 싸웠습니다. 그러나 법궤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법궤를 의지하였기 때문에 법궤를 가지고 나간 싸움에서 패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불레셋은 법궤를 간직하지 못 하고 도로 보내고 말았습니다. 빼앗아 왔지만 어느 곳에 두어도 재앙만 일어 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궤를 사람이 끌지 않고 암송아지 두 마리를 겨리하여 수레에 실어 이스라엘로 보냈습니다. 아비아달이 농사를 짓다 보니 법궤가 도로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에 보관하였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자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날라다가 성전을 짓고 싶어 하였습니다. 3만명을 동원시켜서 법궤를 나를 때 아비아달의 두 손자중 아효가 수레를 끄는 소를 앞에서 몰았습니다. 웃사가 뒤에서 감시하며 따랐습니다. 갑자기 소가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법궤가 떨어지려고 하자 웃사가 법궤를 붙잡았습니다. 웃사는 법궤를 잡자 말자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충성하려고 한 것인 데 왜 죽었을 가요? 편의주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법궤를 운반할 때는 꼭 어깨에 메고 나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편하게 수레에 실었습니다.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편하게 살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새벽에 영하 10도의 찬 공기를 마시며 새벽기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요? 그러나 이렇게 하여야 합니다. 환란과 어려움을 무릎쓰고 라도 전도하여야 합니다. 하기 싫어도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편의주의를 싫어 하십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생긴 것입니다. 자기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죽이는 아픔으로 맛보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미국 포천이라는 잡지가 279업체 44,848 명에게 어떤 직장이 좋은 직장이냐고 물었습니다. 회사가 어려워도 해고시키지 않고 발버둥치는 회사가 좋은 회사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실제로 미국 100대 기업가운데 80개 기업이 아무리 불황이라도 한 명도 해고시키지 않았습니다. 같이 대신 월급을 낮추었습니다. 그런데 한 명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필요하면 불러 쓰다가 필요없으면 해고시키는 것은 편의주의입니다. 하나님은 편의주의를 싫어하십니다.

4. 인본주의
하나님은 인본주의를 정말 싫어하십니다. 인본주의가 무엇입니까? 신본주의에서 벗어난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은 여자는 여자로서, 남자는 남자로서 살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여자가 남자처럼, 남자가 여자처럼 살려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지난 번 나는 전직 국회위원중에 기독교인들이 모이는 모임에 가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름만 대면 금방아는 쟁쟁한 분들이 다 늙어서 지팡이를 집고 와서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늙으면 저렇구나 하는 측은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젊었을 때 나라를 흔들던 이였습니다. 그 중에 남장을 한 여자 국회위원이 지금도 남장을 그대로 하고 나타났습니다. 넥타이, 신사복 그대로 남자입니다. 왜 이렇게 남장을 하고 다녔느냐고 물었더니 남자들이 하도 깔보아서 남장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늙어서 깔볼 것도, 일할 것도 없이 은퇴하였는 데 왜 지금도 남장을 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버릇이 되어서 그런다는 것입니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나는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화장실 갈 때에는 남자 화장실 가십니까? 여자 화장실 가십니까?"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이렇게 입고 여자 화장실에 들어 갔다는 여자들이 기겁을 합니다. 그러나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면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고 당연합니다. 그래서 소변기에서 소변을 보는 적은 없지요"
이것은 인본주의입니다.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예 남자가 여자로 성전환 수술한 게이들이 지금 얼마나 많은 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태원에 차를 몰고 가다가 게이 크럽이란 간판을 보았습니다. 남자가 여자로 아예 성전환 수술을 한 이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지난 번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동성 연애자들이 가장 많은 곳입니다. 결혼을 하여 아들 딸을 낳아 대학생까지 잘 기르던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여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성전환 수술을 하겠다고 아내를 설득시켰습니다. 아들을 설득시켰습니다. 그렇게 하여야 자기 인생이 편하겠으니 양해하여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습니다. 남자이기를 포기하고 호적에 여자로 등록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정을 떠나 이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버지를 떠나 이제는 여성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내와 아들은 그의 행복을 위하여 양해하였지만 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동의서에 싸인을 하지 않아 문제가 되어 있는 가정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남자는 남자답게 이마에 땀을 흘리며 열심히 살고, 여자는 가정을 잘 다스리며 자녀를 기르며 여자 답게 살기를 하나님은 바라고 계십니다. 이것이 신본주의입다.
하나님은 새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새가 영원히 종족을 이어 가기를 원하니다. 그러나 새 집에서 새끼와 어미를 같이 잡아가면 종족이 소멸됩니다. 공룡이 지금 사라져 버렸듯이 사라져 버립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창조물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것이 신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은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에 뿌려서 같이 농사짓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순수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땅을 갈면 보폭이 달라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끄는 힘이 달라 나란히 갈 수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신자와 불신자가 같이 멍에를 메면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고전7;15)
양 털과 베 실을 같이 섞어서 짜게 되면 천이 튼튼하게 보입니다. 양 털로만 옷을 짜면 잘 구겨지고 관리가 힘드니까 약산 베실을 넣어서 짰습니다. 그러면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순수한 것입니다. 섞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본주의를 싫어 하십니다.

이같이 본문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네 가지 사상을 지적하여 주고 있습니다.
1. 혼합주의
2. 대형 지향주의
3. 편의주의
4. 인본주의
이 네 가지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사상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어느 교회에 너무나 진실하게 그리고 충성스럽게 사는 자매 한 분이 있었습니다. 말도 없이 자기 할 일에 언제나 충성하는 모습에 모든 교인들은 그를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목사의 눈이나 장로의 안목이나 교인들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할 일만 충성스럽게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한번은 목사님이 그렇게 말없이 충성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자매는 처음으로 입을 열어 사연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예.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 저희 집은 도저히 나를 기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를 광주리에 담아서 근처에서 가정 부잣집 대문 앞에 나를 버렸습니다. 부잣집에서 나를 보지 못 하고 지나 가던 사람 하나가 나를 데려다가 길렀습니다. 그 때 나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술고래였습니다. 알콜중독자였습니다.집안이 술로 기우러 버렸습니다. 내가 14살되던 어느 날 아버지는 나를 창녀굴에 팔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또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더욱 더 심한 알콜 중독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나도 뭇 남자들에게 시달리다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사창가를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생명을 걸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착하고 좋은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오랫만에 맛보는 행복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걸어가는 데 길가에 있는 교회로부터 찬송가 소리가 들렸습니다.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 또 외로워 정처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 주여 이제 내게 오셔서 쉬떠나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예수 에수 내 주여 섭섭하여 울 때에 눈물 씻어 주시고 나를 위로 하소서
예수 예수 내 주여 이제 내게 오셔서 쉬떠나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나는 나도 모르게 교회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들어섰을 때 3절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나도 같이 따라 불렀습니다.
'다니다가 쉴 때에 쓸쓸한 곳 만나도 홀로 있게 마시고 주여 보호하소서
예수 예수 내 주여 이제 내게 오셔서 쉬떠나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어느 덧 내 몸을 교회 뒷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설교를 들었습니다. 늘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내게 예수님만이 내 죄를 사하여 주실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만이 나의 위로가 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무거운 짐을 덜어 주실 분은 오직 예수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증오와 미움이 이글거리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참으로 복된 소식이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내 마음에 다시 모셨습니다. 평화가 깃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신 후로 내 마음은 늘 기쁘고 안정되고 축복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 말없이 충성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순수한 신본주의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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