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 />필자가 미국에 있을 때 ABC 방송국의 20/20이라는(1987. 12. 18. 금요일 10시) 프로그램에서 여자 앵커 월터 바브라가 스티브 맥도널드라는 전신이 마비된 전직 경찰관과 인터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스티브는 뉴욕시 경찰관으로서 어느 날 뉴욕시에 있는 유명한 공원 Central Park을 순찰하고 있었는데 젊은 흑인 3명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경찰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아무런 경계 없이 그들에게 물어봤는데 갑자기 한 청년이 총 3발을 쐈다. 총알은 스티브의 목을 관통했고, 비록 생명은 건졌지만 이 사건으로 스티브는 목 밑으로 전신이 마비되어 버렸다. 스티브의 집안은 삼대 째 경찰 집안으로서 그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결혼한 지 1년 8개월 밖에 안된 상태로서 그 무렵 아내는 아들을 분만했다. 이 인터뷰는 사고가 난 지 3년 후에 가진 것으로 ABC 방송국의 앵커 바브라의 스티브와의 인터뷰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스티브, 당신은 흑인에 대한 복수심이 있습니까?” “아무런 복수심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여기서 소개하려고 하는 중심 메시지는 다음 질문에 있다. 바브라는 스티브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스티브는 말하기를 사랑하는 아내를 껴안아 주려고 해도 껴안을 수 없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필자는 이 말에 무릎을 치며 깊은 깨달음을 가졌다. 진실로 인간에게 큰 문제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돈이 있어도 쓸 수 없을 때가 문제요,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는 것이 문제요, 손이 있어도 사랑하는 아내를 껴안을 수 없는 것이 문제이다.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이 진정 인간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신자에겐 무엇이 문제인가?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 문제이다.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구원하시고 당신의 구속사에 귀하게 쓰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진정 우리의 문제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이다(롬 8:28).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는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을 뿐이다. 그러면 섭리를 믿는 믿음은 무엇인가?
사도 바울의 고백에서 중요한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다. 여기서 사랑하는 자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이다. 섭리를 믿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를 원하신다. 누구에게 말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말이다. 그래서 인간의 근본 문제는 “왜 하필이면 이런 일이 나에게?”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안 하느냐?”이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을 선한 것으로 바꿔 주신다는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믿는 것이 섭리를 믿는 신앙이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는 우주만물을 놀라운 권능으로 양육하시고 지극한 사랑으로 보호하시며 선하신 섭리로 다스리신다. 그렇다. 하나님의 섭리는 선하다. 이 섭리를 믿는 신앙은 아주 높은 수준의 신앙이며, 이 신앙을 가진 자에겐 운명도 숙명도 우연도 없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한 것으로 바꿔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것은 인간의 최고의 행복이요 동시에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는 것은 인간의 가장 비참함이다. <기독교 강요>, 1.17.11. 창조주 하나님은 선하시고 능력이 많으셔서 인생의 순례 길에서 고통의 세월을 만나는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선한 길로 바꿔주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 창조주 하나님은 당신의 섭리 가운데 자신을 아버지 하나님으로 계시하신다. 당신의 섭리 가운데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은 구속주 하나님도 되신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을 뿐만 아니라 분명히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과 섭리를 마음으로 확신하며 살아야 한다. 즉 거룩한 순례자로서 탄탄대로를 걷는 것처럼 확신을 갖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래적인 지각을 통해 외적으로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는 종교성을 심어주시고, 내적으로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고발하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서 이토록 많은 배려와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한편 창조주 하나님은 구속주 하나님도 되신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 2권에서 구속주 하나님의 지식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Ⅴ. 제 2 권 구속주 하나님의 지식 · 119
1. 원죄 · 121
2. 부패한 자유의지 · 124
3. 율법 · 130
4. 율법과 복음의 관계 · 134
5. 율법과 복음의 신학적 중요성 · 142
6. 성육신 · 144
7. 중보자 · 147
8. 삼중직 · 149
9. 속죄 · 156
1) 속죄 사역의 출발점 · 157
2) 속죄 사역 ·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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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게재글에 계속..........
출처 : 개혁 신학 연구소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원글보기
그렇다면, 신자에겐 무엇이 문제인가?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 문제이다.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구원하시고 당신의 구속사에 귀하게 쓰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진정 우리의 문제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이다(롬 8:28).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는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을 뿐이다. 그러면 섭리를 믿는 믿음은 무엇인가?
사도 바울의 고백에서 중요한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다. 여기서 사랑하는 자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이다. 섭리를 믿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를 원하신다. 누구에게 말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말이다. 그래서 인간의 근본 문제는 “왜 하필이면 이런 일이 나에게?”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안 하느냐?”이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을 선한 것으로 바꿔 주신다는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믿는 것이 섭리를 믿는 신앙이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는 우주만물을 놀라운 권능으로 양육하시고 지극한 사랑으로 보호하시며 선하신 섭리로 다스리신다. 그렇다. 하나님의 섭리는 선하다. 이 섭리를 믿는 신앙은 아주 높은 수준의 신앙이며, 이 신앙을 가진 자에겐 운명도 숙명도 우연도 없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한 것으로 바꿔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것은 인간의 최고의 행복이요 동시에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는 것은 인간의 가장 비참함이다. <기독교 강요>, 1.17.11. 창조주 하나님은 선하시고 능력이 많으셔서 인생의 순례 길에서 고통의 세월을 만나는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선한 길로 바꿔주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 창조주 하나님은 당신의 섭리 가운데 자신을 아버지 하나님으로 계시하신다. 당신의 섭리 가운데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은 구속주 하나님도 되신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을 뿐만 아니라 분명히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과 섭리를 마음으로 확신하며 살아야 한다. 즉 거룩한 순례자로서 탄탄대로를 걷는 것처럼 확신을 갖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래적인 지각을 통해 외적으로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는 종교성을 심어주시고, 내적으로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고발하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서 이토록 많은 배려와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한편 창조주 하나님은 구속주 하나님도 되신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 2권에서 구속주 하나님의 지식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Ⅴ. 제 2 권 구속주 하나님의 지식 · 119
1. 원죄 · 121
2. 부패한 자유의지 · 124
3. 율법 · 130
4. 율법과 복음의 관계 · 134
5. 율법과 복음의 신학적 중요성 · 142
6. 성육신 · 144
7. 중보자 · 147
8. 삼중직 · 149
9. 속죄 · 156
1) 속죄 사역의 출발점 · 157
2) 속죄 사역 ·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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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개혁 신학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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