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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2,922편)〓/소망 설교

대하23:1-15 결심하는 자

by 【고동엽】 2021.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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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23:1-15 결심하는 자

 

역대하23:1-15 말씀으로 결심하는 자에 대해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867년에 미국의 국무장관 윌리암 시워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남들보다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결심 때문에

미국에 큰 이익을 주었던 사람입니다.

그 당시 러시아는 어려운 재정을 모피산업으로 충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래스카 쪽에서는 모피가 별로 안나오니까

그 땅을 필요가 없는 땅이라고 판단하고 미국에 720만달러에 팔려고 제의를 했습니다.

그때에 모든 미국의회사람들은 러시아가 팔고 싶을 만큼 쓸모 없는 얼음 땅을

살 필요가 없다고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국무장관 윌리암 시워드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큰 결심을 하고

많은 반대와 조롱속에서 국민들과 국회위원을 설득해서

1867년에 720만달러를 주고 알래스카를 샀다고 합니다.

140년이 지난 현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큰 가치를 가진 땅이 알래스카입니다.

아무도 알래스카의 가치를 모를 때 한 사람의 선견과 그의 결심으로

미국은 너무나 귀한 땅 알래스카를 얻은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결심을 통해서 미래에 귀한 계기가 되고,

중요한 일을 이루는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좋은 결심이라고 판단된다면 뒤로 미루지 말고 그 결심을 따라 갈 때

어려움과 난관이 있어도 앞으로의 희망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아하시야왕이 일찍 죽으니까

할머니인 아달랴가 손자들을 다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됩니다.

그때 제사장 여호야다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몰래 숨겨 6년을 키웁니다.

아달랴가 왕이 된지 7년째 되는 날, 제사장 여호야다가 백부장들에게 얘기를 해서

모든 사람들을 다 동원해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는 얘기가 나옵니다.

여호야다는 아달랴의 사위가 됩니다.

여호야다는 얼마든지 자기가 왕이 되려고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었던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고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고

혁명으로 왕이 된 아달랴를 몰아내 마문어귀에 이를 때 아달랴를 죽이는 내용입니다.

여호야다의 올바른 결심으로 불의의 세력인 아달랴의 세력은 다 죽고 새로운 나라가 시작되는 귀한 계기를 만든 사람이 바로 여호야다 라고 하는 제사장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나 하나의 올바른 결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우리 모두가 돼야될 줄 믿습니다.

 

오늘 여기 본문을 통해서 어떤 결심을 해야되는가 하는가 보겠습니다.

 

첫 번째 대하23:1

1 제 7년에 여호야다가 세력의 내어 백부장, 곧 여로함의 아들 아사랴와 여호하난의 아들 이스마엘과 오벳의 아들 아사랴와 아다야의 아들 마아세야와 시그리의 아들 엘리사밧 등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매

첫 번째 하나님의 때를 가만히 기다리기를 결심하는 자게 되어야 됩니다.

지금 여기 보면 제 7년이란 말이 나옵니다.

 

7년이란 말은 요아스왕이 제사장 여호야다가 아내인 여호세바와 같이

요아스왕이 애기때 성전에 숨겨서 6년 동안을 키웠습니다.

어린 왕을 아무도 모르게 키웠던 것입니다. 만약 걸리면 아달랴에게 다 죽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6년 동안을 몰래 키워서 제 7년에 나오게 됩니다.

이 7년이란 말은 하나님의 때를 말합니다. 만들어진 때입니다.

7년에 세력을 내어서 백부장 다섯사람을 통해서 언약을 세우고

모든 레위 사람과 이스라엘 조장들을 다 모으고 회중들도 모아서 설득시켜서 잘못된 정권을 잡고 있는 아달랴를 몰아내고 올바르게 만들려고 한 사람이 여호야다였습니다.

여호야다는 죽음을 무릅쓴 큰 결심을 한 것입니다. 어떤 결심이냐?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리자 그것이 7년에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일을 하면 우리는 조급증이 나서,

내가 편하고 좋을 때 내가 원할 때 빨리 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빨리 빨리 라고 하죠. 중국사람들은 만만디 라고 느릿 느릿 한다고 합니다.

중국 선교사님이 오셔서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중국 땅 끝에서 끝으로 가려면

약 100시간 정도 기차를 타야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기차가 가도 가만있고 혹시 안가도 빨리 가자고 하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너무 멀리 가니까 빨리 빨리 없어요.

우리도 여기서 이걸 깨달아야 됩니다.

우리는 내 때에 무엇인가를 이루고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한국사람에게는 있습니다.

그런데 빨리 빨리가 좋을 때도 있지만 나쁠 때도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자주 하는 말이 ‘막고 품으세요’ ‘염색되세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화가 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답답하다고 말하더라구요. 왜일까요? 자기가 하려고 하니까 그렇습니다.

모든 일은 때가 있습니다. 그때까지를 우리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어쩔줄을 모르면서 하는게 아니라

가만히 기다릴 줄 아는 그런 결심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면 내 때에 그 일이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때에 그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을 한 번, 두 번 겪어 본 사람은 빨리 하라고 해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때라고 하는 것은 여기 본문에 나온대로 7년인데,

이 7년이란 말은 ‘완전히’ ‘하나님의 때가 무르익었으니’ 그 말입니다.

우리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때를 가만히 기다리기를 속으로 결심하고,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전도서3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전3:1 천하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를 때가 있나니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지금 이 말은 솔로몬이 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왕이니까 얼마든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해보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전도서는 솔로몬 자신이 실패하고 난 이후에 쓴 것입니다. 가장 말년에 쓴 책입니다.

다 겪고 보니까 ‘천하에 범사가 있고 모든 목적이 이를 때가 있다.

그러니 하나님의 때를 우리는 기다려야 된다’고 솔로몬이 말하고 있습니다.

왜요? 모든 이 세상에 있는 일을 하나님의 주권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손밖으로 나가려 하면 그 사람은 잘 못됩니다.

하나님 손안에 있으면 하나님이 다 알아서 장소를 옮겨놓던지 아니면 더 높이 올려놓던지, 잘되게 하든지, 무슨 일을 이루든지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바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가만히 기다리지 못하고, 결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지 못하고, 내 때를 바라보면서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할 때가 너무나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에게 천사가 와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된다고 말했을 때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로니 주의 뜻대로 하시라고 했습니다.

또한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안 요셉은 가만히 끊고자 했으나,

천사가 와서 성령으로 잉태하였으니 낳아서 ‘예수’라 하라고 얘기했을 때

두 사람은 그대로 받아드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결혼하기 전에 임신을 하면 돌로 쳐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위험 속에서도 천사의 말을 듣고 결심하여

하나님의 때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이 요셉과 마리아입니다.

때가 차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잖아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때에 빨리 이루어서 무엇인가를 되고 싶어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이제는 날마다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의 때를 결심하고 기다리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만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대하23:11

11 무리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면류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세워 왕을 삼을새 여호야다와 그 아들들이 저에게 기름을 붓고 모두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

 

두 번째 하나님 제일 주의로 살아가기를 결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여기는 여호야다가 백부장 5명을 통해서 많은 사람을 모이게 하고

또 레위사람 입번할 자와 출번할 자를 다 모아서 자기의 위치에서 지키라고 했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명령한 대로 준행하여 호위하고는 11절에 왕자를 인도하여 내서 면류관을 씌우고 왕을 삼아서 기름을 붓고 왕 만세를 불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합니다.

지금 세운 이 왕은 7살밖에 안됐습니다. 무얼 알겠습니까?

반대로 여호야는 나이가 많습니다.

여호야다가 마음만 먹으면 7살짜리 왕을 물러내고 자기가 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호야다가 사람 제일주의로 살았다고 한다면 그럴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여호야다는 그렇게 하지 않고 7살밖에 안되지만

요아스를 왕으로 세워고 자기는 한 알의 밀 알이 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요아스왕이 나중에 커서 철이 들었을 때

여호야다를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했겠습니까?

여호야다는 자기가 되려고 하지 않고 아달랴왕의 손자인 요아스에게

왕의 면류관을 씌우고 기름을 부어 왕을 삼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왕이다라고 하지 않고 왕 될만한 사람을 왕 삼았다는 것입니다.

요아스 왕은 아달랴의 손자고 그 앞에 왕 아하시야의 아들이므로 적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호야다는 제사장이라 자기가 왕 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신분과 내가 무얼 해야 되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제일 주의로 살아갈 때에 그것이 알아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내가 무엇이 되려고 하면 그것이 안보입니다.

그러니까 무리를 일으켜서 야단납니다.

순리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늘 하나님 보시는 속에서,

우리가 하려고 하면 무리를 안 일으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려고 결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도 인정받고 모든 문제가 잘 풀려나가고 걸림돌 되지 않고,

문제가 되지 않고, 손가락질 안 받습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무엇을 하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 제일주의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겁니다. 내 영광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기를 결심하고 실천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디바는 버가모 교회의 충성된 증인이라고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버가모 교회는 사단의 위가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안디바는 발람의 교훈도 좇지 않고 니골라당에 소속되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니골라당은 이단이고, 발람은 자기 욕심을 이루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안디바는 속에 들어가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사단의 위가 자기를 넘어트리려고 했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키려고 목숨을 건 사람이 안디바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안디바와 같이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려고 결심할 때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만들어 가실줄 믿습니다.

뒤에 있는 모든 삶의 결론 또한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줄 믿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어떠한 환경에 처해도 내 뜻은 다 뒤로하고, 하나님 먼저인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 제일 주의로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 대하23:15

15 이에 무리가 길을 열어주고 저가 왕궁 마문 어귀에 이를 때에 거기서 죽었더라.

세 번째 하나님께 반하는 것을 잘라내기를 결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1절에 어린 요아스왕이 왕으로 백성들에 의해서 등극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12절에 아달랴가 그것을 보고 반역이다 라고 외쳤습니다.

사실 반역은 아달랴가 한 것입니다.

그 당시 여자는 왕이 될 수 없었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아달랴는 자기가 손자들을 다 죽이고 왕이 된 사람이니까 실질적으로 자기가 반역을 했으면서 요아스왕의 세력들이 반역을 했다고 덮어씌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14절에 여호야다가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에게 반열 밖으로 몰아내라고 명령합니다. 왜냐면 아달랴는 왕이 아니니까 쫓아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달랴를 따르는 자도 칼로 죽이라고 했습니다.

반열 밖으로 몰아낸 것은 여호와의 전에서는 사람을 죽일수가 없으니까

길을 열어 주어서 왕궁 마문 어귀에 나갈 때 거기서 죽인 것입니다.

이 아달랴는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을 말하냐면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이요,

세상적인 것이요, 육신적, 마귀적인 것입니다. 이것을 잘라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애라고 하는 것을 잘라내기를 우리는 결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에서는 할례 받으라고 했습니다.

신약에 오면 세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그것은 다 같은 말입니다. 할례는 더러운 부분을 잘라내라는 겁니다.

그래야 거룩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세례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어야 부활한다는 것이 세례입니다.

하나님께 반대되는 것,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 하나님이 버리라고 하는 것, 하나님이 없애라고 하는 것을 잘라내기를 결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거룩해 지니까 그렇습니다.

 

벧전2:11-12

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더 많이 갖되, 하나님이 싫어 하는 것은 잘라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절에도 그런 말이 나옵니다. 1절 보시기 바랍니다.

벧전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이것은 잘라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원하시는 부분은 더 많이 취하고 받아들이고 알고 깨달아서

내 것을 만들어야 되지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과감히 잘라 버려야 합니다.

 

우리 삶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내가 가지려고

애를 쓰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께 반대되는 것을 사정없이 잘라내야 할 것을 잘라내기로 결심하는 사람이 돼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여호야다는 6년을 기다리다가 때가 되매 요아스를 왕 세우고 아달랴를 없앱니다.

우리 안에도 영적 아달랴가 있습니다. 이 영적 아달랴는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자격도 없습니다. 그런데 손자들을 다 죽이고 자기가 왕이라고 나섰던 사람이 아달랴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야다가 반열 밖으로 몰아내라고 명령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야다와 같이 내 안에 영적 아달랴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니까 잘라내기를 결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민수기 25:1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싯딤에 있을 때 모압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4절에 여호와께서 목매어 달아라 그럽니다.

5절에 모세가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7절보면 비느하스가 그걸 보고 8절에 막에 들어가서 남자와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간음하는 두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염병이 그쳤습니다.

그랬더니 13절에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받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이 비느하스는 하나님께 반하는 것을 사정없이 잘라냈습니다.

사람 배를 뚫을 때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을 하나님이 인정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반대되는 것은 어떠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잘라내기를 결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결심을 해야 됩니다.

내 때는 안됩니다.

두 번째 하나님 제일 주의로 살아가기를 결심해야 됩니다.

내가 무엇이 되려고 하면 안됩니다.

세 번째 하나님께 반하는 것을 잘라내기를 결심해야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내가 무얼 해보려고 하면 나중에 그것때문에 내가 힘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때를 잠잠히 기다리고, 하나님 제일 주의로 살아가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반대되는 것을 잘라내기를 결심해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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