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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2,922편)〓/소망 설교

계22:1-5 감사 조건을 찾자

by 【고동엽】 2021.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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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22:1-5 감사 조건을 찾자

 

계22:1-5까지 말씀으로 감사의 조건을 찾자 라는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추석날 사모님이 하늘공원을 가자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아침운동을 많이 해서 다리가 좀 안 좋았는데, 하늘공원을 가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올라가서 위를 다 돌고 왔더니 참 좋았습니다.

억새도 많이 있고, 전기발전기 같은 것이 풍차처럼 돌아가서 이국적이었고,

서울 시내도 보이고 한강도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리는 아프고 힘들지만 여기를 오니까 이렇게 좋구나 감사했습니다.

안 갔더라면 그 위에 올라가지도 않았고 한강을 위에서 내려다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월드컵 경기장까지 다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속으로 참 고맙다. 감사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녀와서는 다리가 아파서 힘들었는데 오늘은 거의 괜찮아졌습니다.

나는 가기 싫었는데 가지고 해서 갔거든요. 갔더니 그곳에 좋은 것이 많이 있더라구요.

 

우리의 삶도 그래요. 나는 그것이 아닌 것 같은데 그 속에 감사할 조건이 들어 있어요.

전혀 안 갈곳을 갔는데, 전혀 안해야 할 일을 했는데,

전혀 안봐야 할 것을 봤는데 감사할 조건이 들어 있더라구요.

그래서 우리의 감사해야 할 조건은 내가 싫고, 내가 좋고, 내가 하고 싶고, 하기 싫고,

내가 그곳을 가야 되고, 안가야 되고 그런데서 감사의 조건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환경속에도 감사할 조건이 나오는데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감사의 조건이 나옵니다.

싫어도 나중에 지나면 나에게 복이었고, 나는 어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그 사람이 원수같았는데 그것이 도리에 나에게 유익했다고 고맙다고 손잡고 점심한끼 먹자고 얘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어떤 일을 만났는데 나는 그 일이 도저히 싫었는데

그것이 나의 일생을 바꾸어 놓는 감사의 조건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환경이 와도 어떤 조건속에서도 그 속에 감사가 들어 있다는 거,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감사가 되기도 하고 감사가 되지 않고

원망과 불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요한계시록 22장을 보면 새 예루살렘이 나옵니다.

그곳에 보면 생명수 강이 보이고 그런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와서 길 가운데로 흘르더라.

그리고 생명수 강이 있는 강 좌 우에는 생명나무가 있다. 그런데 열두가지 실과가 맺히고,

달마다 실과가 맺히고,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좋은 모양을 하고 있더라.

그리고 그곳은 다시는 저주가 없고,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에 있어서

그 얼굴도 볼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이 저희의 이마에 있고,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춰주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세세토록 왕노릇 할 것이다 라고 하면서 새 예루살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에덴동산을 만들어 놓고 아담.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으니까 쫓아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그것이 다 회복됩니다.

창세기 3장 이후에 요한계시록 20장까지 오는 과정 안에는

힘듬, 고통, 질병, 사망, 문제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요한계시록에 오니까 전혀 다른 세상이 되고 있는 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은 미래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현재 20장까지 오지도 못하고 오는 과정 중에 다 들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질병도 있고, 저주도 있고, 고통도 있고,

여러 가지 눈물도 있고,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창세기 2장에서 에덴동산을 주시고 3장에서 쫓아냈지만 하나님 가슴에는 요한계시록 21, 22장을 주시고 싶어서 지금 우리에게 여러 가지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시며 이끌어 가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 앞에 현실을 보면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저주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끝은 21, 22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주시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앞에는 21장 22장이 아직은 안 왔습니다.

그러나 21, 22장은 분명히 있습니다. 앞으로 올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것을 생각하며 감사할 조건을 늘 찾아야 됩니다.

우리 앞에 있는 아픔이라고 해서 아픔이 아니고, 질병이라고 해서 질병이 아니고,

고통스럽다고 해서 고통이 아니고, 저주라고 해서 저주가 아니고,

밤이라고 해서 밤이 다 아닙니다.

그 뒤에는 요한계시록 21장 22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삶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아야 되는데 어떤 감사의 조건을 찾아야 되는지 보겠습니다.

 

첫 번째 계22:1-2

1 또 저가 수정 같이 막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 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첫 번째 임재하여 생명과 열매를 주시려는 감사의 조건을 우리는 찾아야 됩니다.

요한은 새 예루살렘을 묘사하면서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이 보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고 있더라 그럽니다.

그러고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는데 달마가 실과를 맺히더라 그랬습니다.

곧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다는 말은 임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생명수 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달마다 실과가 맺혔다는 것은 열매를 주시겠다는 겁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여기서 쫓아내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그 앞에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임재해서 우리에게 생명주시고, 귀한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해 주시려는

감사의 조건을 우리의 삶 속에서 찾아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 이런 저런 일이 있는 것을 잘 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임재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귀한 열매를 주시려는 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요한복음도 생명 주시려고 기록했다고 나와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 보면 생명수 강이 있는데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곧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걸 통해서 많은 귀한 열매들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 싶다는 것입니다.

22장을 주시려고 우리에게 창세기 4장부터 계시록 20장까지 계속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는 많은 사건, 문제, 어려움, 망함, 흥함, 죽음이 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다 거쳐서 여기에 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생명을 주시고 귀한 열매를 우리에게 주시려고

그 사이에 많은 이스라엘사람들에게 그런 사건이 있었던 겁니다.

 

우리도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우리 앞에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시려고

 

그 과정을 거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꼭 기억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어린양으로부터 나와서 흐르는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고

거기에는 많은 열매가 맺혀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주시고 싶으신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빨리 못 주시는 하나님의 애로사항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 하나님의 심정을 알게 되면 문제가 와도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사의 조건을 찾지 못하고 반대로 안 풀어 준다고

불평할 때가 많은 것을 관과해서는 안됩니다.

 

요7:37-38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지금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와서 먹고 마시면 다 자기 것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것을 주고 싶어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와서 마시라는 겁니다. 생명이 되라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어 가라는 것입니다. 얻어 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좋은 조건을 갖추시고 얻어가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감사의 조건이 많이 있죠? 그런데 우리는 감사의 조건을 못 찾을 때가 많고

또 현재 내 문제 때문에 어려속에서 잊고 살때가 많이 있습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절뚝발이입니다.

피해서 도망가다가 떨어져서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을 만나기 전까지는 마길의 집에서 있었는데

다윗을 만나기 전까지는 얼마나 힘든 세월을 살았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을 만난뒤로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됐습니다.

마길의 집에 살때만 해도 앞이 안보이고, 이제는 다윗세상이 돼서 사울왕가 사람은 다 죽일 것으로 생각하고 숨을 죽이고 무서움에 떨면서 두려움속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므비보셋을 부른다고 했을 때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다윗은 전혀 다르게 대접했습니다. 요나단을 인하여 같은 상에서 밥을 먹습니다. 사울종들에게 므비보셋을 공궤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므비보셋에게 그런 삶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은 다윗을 만나기 전까지 그것을 모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앞의 현실 속에서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우리는 인정하지 않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준비하고 계신 겁니다.

우리가 영적 므비보셋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을 만나기 전까지는 암담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일이 풀어지기 전까지는 암담합니다.

그러나 그 일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늘 우리는 임재하셔서 우리에게 생명과 열매를 주실려고 그러시는구나 하고

어떤 사건이든 감사할 조건을 찾으라는 겁니다.

그 안에는 감사의 조건이 분명히 들어있습니다.

제가 다리 아파서 안 갔다면 사모님은 하늘공원을 못갑니다.

그날 하늘공원을 안갔으면 그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못 봤을 겁니다.

그러면서 내 속으로 하나님이 이것을 서론하게 하시려고 이곳에 오게 하셨구나 했습니다.

 

힘들기는 했지만 감사했습니다.

힘들기는 했지만 그 속에 감사할 조건이 있었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싫어도 하다보니까 그 속에 감사가 들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므비보셋같이 현재 내가 힘들고 어렵고 암담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므비보셋뒤에 다윗이 므비보셋아 요나단 때문에 너를 내가 책임지마 라고 하는 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내가 비록 절뚝발이지만 소망가운데 살다보면 다윗을 만납니다. 주님을 만난다 그 말입니다. 우리는 생명과 열매를 주시려고 하는 하나님을 잘 알고 그 안에서 감사할 조건을 찾아야 됩니다.

 

두 번째 계22:3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두 번째 회복시켜서 축복과 기쁨을 주시려는 감사의 조건을 찾아야 됩니다.

요한은 이제 새 예루살렘에는 저주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나를 넘어뜨리려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힘들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고,

미혹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고, 거짓말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나를 모함하는 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함 당할 때도 있고 유혹 당할 때도 있고, 잘못 평가받아서 미움받을 때도 있습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일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좌절하지 말고 그 안에 감사할 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저도 그 어려움 속에서 손가락질을 당하고,

완전히 다 망해서 인생 끝난 줄 알았는데 그 끝에 감사할 조건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제가 성경을 가르칠지를 누가 알았으며, 제가 교회를 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전

혀 모르는 사실입니다. 제 평생에 목사는 내 인생에는 없었습니다.

저는 성경공부를 어디 못나가니까 성경공부를 한 겁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내 나이정도 되면 다들 은퇴합니다.

그런데 저는 할 일이 많습니다. 저는 지금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제가 냄새 펄펄 나는 골방에 앉아 있었던 것에 감사의 조건이 싹트고 있었다는 겁니다.

축복과 기쁨을 주시려는 감사의 조건이 싹트고 있었다는 겁니다.

 

계7:16-17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십니다. 너 얼마나 많이 힘들었냐, 골방에 앉아 있느라 많이 힘들었지.

너 다른 사람들이 따돌릴 때 많이 힘들었지. 그런 눈물 다 씻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우리를 회복시켜서 축복하시고 기쁨을 주시려는 것이 준비되어 있으니까

현재는 힘들고 어렵지만 그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으라는 겁니다.

지금 당장은 준비 안된것 같은데 실상 지나놓고 보면 준비되어 있다고

저는 확실히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다 라는 말씀처럼

우리 눈물을 다 씻어 주실줄 믿습니다.

우리는 회복과 기쁨을 주시려는 감사의 조건을 찾아야 됩니다.

38년된 병자는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물 속에 넣는데 자기는 안 넣어 준다고 불평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일어나 걸어라 하니까 일어나 걸었습니다. 그때 어땠을까요?

38년 동안 앉아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했던 것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이런 일이 있으려고 38년 있었구나 했을 겁니다.

여러분들도 생각해 보세요. 이런일이 있으려고 나에게 그렇게 안되게 했구나,

이런 일이 있으려고 자꾸 시험에 떨어지게 했구나,

이런일이 있으려고 다른 사람은 다 앞서 가는데 나는 꼴등가게 했구나.

하나님이 이것을 주실려고 그렇게 했구나.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과 기쁨을 주시려고 그것을 준비해 놓으신 줄 믿습니다.

아무리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그 속에 들어있는 감사의 조건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원망과 불평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순간 일생이 바뀌어졌습니다.

딱 일어서서 걸어가니까 이러실려고 그랬구나 하고 변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가 38년 된 병자입니다. 몇 년 째 병자입니까? 지금도 못 일어납니까?

다른 사람은 뛰어가는데 나는 앉아 있습니까?

절대 낙심하지 말고 그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항상 축복과 기쁨을 주시려고 지금도 들고 서 계십니다.

그것을 우리는 못 볼뿐이지 하나님 손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안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계22:4-5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세 번째는 보게 해서 영광과 존귀를 주시려는 감사의 조건을 찾아야 됩니다.

요한은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또 그곳에는 밤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등불과 햇빛이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밤이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전까지는 감춰져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밤이 있었지만 새 예루살렘 안에는 다 보게 되고 밤이 없다는 겁니다.

새 예루살렘 안에 오기 전까지는 너무나 힘들었지만,

그 안에 온 후에는 밤도 없고 하나님 얼굴도 다 볼 수 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지금 현재 살아가는 환경 속에서는 앞을 못내다 보고,

지금 당장만 보니까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가죽옷을 입혀서 쫓아냅니다.

그리고 지금 요한계시록 22장에는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쫓아내서 밖에 살다가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이 있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힘듬이 있었습니까? 그런데 결론은 밤이 없는 겁니다.

우리의 결론은 밤이 없는 겁니다.

우리 생각과 전혀 다르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믿음의 경주가 절대 헛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어떤 형편에 처해도

우리 앞에는 분명히 영광과 존귀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영광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광이 영광다워 지려면 고난이 먼저 있습니다. 낮이 낮다워 지려면 밤이 먼저 있습니다.

우리 앞에 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앞에 밤이 길어도 분명히 낮은 오게 됩니다.

그 기간에 나를 다듬고 만들어 가야 합니다.

 

바디메오는 소경입니다. 디메오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나갈 때 ‘다윗의 자손 예수여!’

그럽니다. 왕이라고 예수님을 인정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바디에오의 눈을 뜨게 해주었습니다.

눈이 캄캄할 때는 밤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그 밤이 없어졌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캄캄한 밤같고 언제 낮이 올까 해도

분명히 낮은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리 앞에 영광과 존귀를 주시려는

감사의 조건을 늘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 바디메오입니다.

지금은 잘 못 봐도, 주님에 의해서 영적 눈이 떠지면, 이것이 끝이 아니라

그 다음 것을 준비하고 계시구나를 알면 그때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됩니다.

우리의 삶에는 감사의 조건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 고정관념, 내 생각, 내 처지, 나만을 생각하니까 감사의 조건을 못 찾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첫 번째 임재하여 생명과 열매를 주시려는 것을 알고

두 번째 회복시켜서 축복과 기쁨을 주시려는 것을 알고

세 번째 보게 해서 영광과 존귀를 주시려는 것을 잘 알고

삶에서 그런 감사의 조건을 더 많이 찾고 인정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고 하는 말을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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