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딛2:11-15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by 【고동엽】 2021.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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딛2:11-15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오늘 딛2:11-15절까지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동그라미와 메모가 손을 잡으면 어떻게 될까요.
동그라미는 네모한테 뭐라고 할까요.
왜 이렇게 모나냐. 동그랗지 못하냐. 왜 꼭 그래야먄되냐.
그러면 네모는 동그라미한테 뭐라고 할까요. 네모는 왜 그렇게 원칙이 없냐.
항상 좋다고만 해. 원칙이 있어야 될 것 아니야. 네모는 원칙이 있잖아요.
그런데 동그라미는 원칙이 없어요. 다 좋아요.
그런데 누가 굴러가냐면 동그라미가 굴러가요.
동그라미하고 네모하고 합하면 더 잘 굴러가요.
동그라미하고 네모가 합하면 즉, 아무리 반듯해도 그것으로는 못 굴러가요.
그런데 반듯한 것이 동그라미 속에 들어가면 잘 굴러가요.
그런데 동그라미만 있으면 또 안돼요. 그 밖에 또 네모가 또 있어야 돼요.
동그라미하고 네모는 항상 붙어 있어야 돼요. 그래야 잘 굴러가요.
네모밖으로 원이 그어지면 잘 굴러가겠죠. 그런데 네모안으로 원이 그어지면 안 굴러가죠. 그러니까 동그라미하고 네모는 꼭 필요해요.
즉 아무리 원칙이 있고 아무리 탁 탁 하는 공의가 있는 네모라도 네모는 못 굴러가요.
원칙도 없고 아무것도 아니것 같고 잘 못한 것 같고 뭐든 좋은게 좋은 동그라미에요.
그런데 그 네모는 동그라미 속에 들어가면 잘 굴러가요.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내가 하나님의도 안에 들어가면 잘 굴러갑니다.
바로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그렇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원칙이 있어야 돼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있어야 되요. 그러나 무엇이 있어야 됩니까.
동그라미가 있어야 돼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잘 굴러갑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이 디도에게 편지하면서 뭐라고 얘기 하냐면 구원을 주시는 은혜가 나타났는데
왜 나타났느냐면 양육하고 경건치 않은 것 세상 정욕은 다 버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을 살고 우리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나타나서 양육하시되 세상 정욕을 다 버려 버리고
또 이 세상을 살되 영광의 주님이 언젠가 오실텐데 그것을 기다리게 하셨다는 겁니다.
은혜를 통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 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가 예수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 십자가에 못박혀서
자기를 우리에게 준 것은 우리를 불법에서 구원하시려고 그랬다.
우리를 깨끗하게 해서 선한일을 열심히 하는 친 백성,
선택한 백성 만드시려고 그렇게 자신을 주셔서 구속하시려고 자신을 주었다.
그러면서 너는 이것을 말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서 양육하되 모든 정욕을 다 버리고 경건함으로 이 세상을 살고 영광의 주님을 기다리게 하셨는데
바로 그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셨는데 왜 주셨냐하면 구속하시려고
선한 일에 친백성 만드시려고 그분이 그렇게 자신을 주셨다고 하면서,
디도야! 너는 이제 금방 말한 그것을 다 말하고 권면하고 권위로서 책망하여
누구든지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하라고 디도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이 내가 이 세상에 사는 존재 이유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존재하고 사는 것이지, 내가 무엇인가 잘 먹고 잘 되려고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말하면서 지금 디도에게 지금 그레데는 아주 형편없이 나쁜사람들이 많이 있는 동네거든요.
그런데 그 동네에다 대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받은 것이다.
우리를 구속하시려고 우리를 정말로 친백성 되게 하시려고 그분이 우리대신 죽으셨다.
그러니 그것을 꼭 말을 하고 가르쳐라. 그리고 너를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하라.
디도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을 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고 여기다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날마다 우리의 삶에서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인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1-12절 보세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예수를 통한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우상 섬기는 것과 그 말이죠)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죄악된 욕심,탐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나에 대해서 근신하고) 의로움과(나와 이웃에 대해서 의롭고)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하나님 앞에서 살고 경건하게 살고)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첫째 주님을 바라고 욕심을 멀리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수 있는 것을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그렇게 얘기합니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양육하되 경건치 않은 것, 우상 섬기는 것, 정욕을 다 버리고,
죄악 된 욕심 다 버리는 것, 나에 대해서 근신하고 이웃에게는 의롭고,
하나님 앞에서는 경건하게 살고 하나님 즉,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다. 그래서 12절에 보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그랬습니다.
주님을 바라고 세상 정욕을 멀리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금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것은 디도가 그레데 교회를 잘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내 욕심을 내서 디도가 한다고 하면 분란이 날 것입니다.
디도가 어떤 욕심을 내서 어떤 명령을 하면 안따라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디도에게는 뭐라고 얘기하냐면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정욕을 다 버리고,
버리고 욕심을 멀리하고, 주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룰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베드로전서2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2:11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에게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라. 경건하게 행동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자기의 욕심을 이루려고 세 번 거짓말하고, 자기의 욕심을 이루려고,
갈릴리에 고기잡으러 간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하느라고 거짓말도 하게 되고,
자기를 위하느라고 여러 가지 문제를 많이 야기시켰던 겁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주님을 바라보고 욕심을 멀리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수가 있다고 우리에게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속에서 베드로와 같이 목표가 자기 욕심을 이루려고 하면 엉뚱한 소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제일먼저 주님을 바라고 욕심을 멀리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제일 첫 번째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주님을 바라고 욕심을 멀리 할 때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보겠습니다.
14절입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두 번째 주님의 죽으신 이유를 잘 깨달아야 됩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편지를 하면서 그렇게 말합니다. 그가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짊어지신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이 말이죠.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며, 우리를 깨끗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매맺는 친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자기자신이 죽으신 이유를 깨달아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
바울은 여기다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자신을 주신 목적이 뭐냐
우리를 불법에서 구속시키시려, 우리를 깨끗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선한 일에 열매맺는 친백성 선택한 백성이 되게 하려고
자신을 주셨다고 3가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바울이 그렇게 말하고 있듯이
나 대신 우리 주님이 죽으신 이유를 삶에서 많이 만나는 것 참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을 깨닫고 죽으신 이유가 삶속에서 깨달아질 때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이 없습니다. 그
래서 우리의 모든 삶속에서도 한걸음 한걸음이 우리 주님이 나 때문에 죽으신 것
우리 주님이 나 위하여 죽으신 것, 우리 찬송 144장 부르겠습니다.
바울은 주님이 왜 죽으셨는가 라고 하는 것을 잘 깨닫고 알아서,
로마서 14장에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4장 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
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우리는 주님이 죽으신 이유는 나 같은 것을 건지시려고,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 만드시려고, 우리를 깨끗케 하시려 죽으셨다고 얘기를 하면서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또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다 라고 얘기하고 있듯이 우리도 항상 나 위해서 주님이 죽으셨다고 하는 것을 늘 생각하시고 내가 핏 값으로 그 분 것이 되었으니 내가 그분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그 분 것 답게 살아야 됩니다. 주님이 죽으신 이유를 잘 깨닫는 것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귀한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 보면 그렇게 얘기합니다. 3장 8절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조건을 다 포기해버린 바울! 우리의 삶에서도 우리 주님의 죽으신 이유를
내가 많이 이해한 만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그분이 왜 어떻게 죽으셨는가 라고 하는 것을 많이 깨닫는 것 너무나 귀한 것이다. 그러니까 바울은 빌립보서 3장 8-9절에 모든 세상조건들 보다 예수가 귀한 것을 인정을 하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고 그리스도를 얻으려고 자기 일생의 삶을 살았듯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에서 우리주님의 죽으심을 많이 깨닫는 것,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큰 조건이 된다


이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이 무엇을 알아야 되느냐.
나 위해 죽으신 것을 더 많이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는 뭐가 됩니까?
빚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은혜가 많이 느껴지면 느껴진만큼 더 많은 빚진자가 됩니다.
왜 그분에게 아직 못갚았으니까. 그러니까 그것을 깨닫고 아는 사람은 네모가 되도, 동그래도 어쩝니까 둥그런 사람은 네모 판단하지 않습니다.
또 네모인 사람은 둥그런 사람 판단하지 않습니다. 둘이 합해지면 안에는 제대로 딱 서 있는 원칙이 있어요. 그런데 밖은 어쩝니까 둥그스름해요.
굴러가기는 무엇이 굴러갑니까. 동그라미가 굴러가요. 그러나 속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런데 동그라미와 동그라미가 합치면 어쩔까요. 그런데 자꾸 싸워요. 부부지간도 그래요.
성격이 같은 사람이 잘 살것같아요? 성격이 다른 사람이 잘 살것같아요?
성격이 안 맞아서 못산다고 하잖아요. 이혼한 사람들 다 성격이 안 맞아서 못한다고 하거든요.
그 성격이 안맞다는 얘기는 자기를 안맞쳐준다 그거죠. 그쵸.
자기를 안맞쳐주니까 성격이 안맞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동그라미 두 개가 있으면 잘 굴러갈 것 같아도 속에 원칙이 없어요.
네모와 동그라미가 합치면 어쩔때는 동그라미가 앞에 나가고, 어쩔때는 네모가 앞에 나가요. 원칙이 딱 있어요. 그리고 실제 굴러갈때는 동그라미가 잘 굴러가요.
두 개가 서로 합해지면 못 굴러가면 못 굴러갈 것 같지만 잘 굴러가요.
그런데 성격이 똑 같으면 잘 살 것 같지만 아닙니다. 서로 달라야 돼요.
나중에 보면 내 편에서 보는 눈으로 안보고 상대편의 눈으로 보면 원래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여 하면 금방 넘어가요. 그런데 전부 네모만 있어요. 원칙만 있지 굴러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전부 네모만 돼도 안되고, 동그라미만 돼도 안되고, 물에 술탄 듯,
술에 술탄 듯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거죠.
안에서는 네모가 있고 밖에서는 동그라미가 있어서 밖에서는 동그라미가 굴러가요.
그리고 딱 서요. 설때는 누가 밖으로 나와야 돼요. 네모가 밖에 딱 나와있어요.
우리 부부문제도 똑 같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원칙이 이런 원칙이 돼서 내 안에는 원칙이 있고 밖으로는 항상 두리뭉실해서 상대방이 나를 볼때나 어떤 일을 할 때 두리뭉실해서 원할하다
그 말이에요. 그러나 속에는 원칙이 서있어요.
우리도 우리주님이 죽으신 이유를 내 삶에서 내 안에 갖고 있어요.
그러면서 그것을 둥그렇게 해서 속에서 우리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니 내가 너무나 귀하고,
좋고, 내가 너무나 괜찮은 존재가 되었으니까 나는 그분을 때문에 되었으니까
나는 그분 위해서 살아야 된다. 그렇게 굴러가는 거에요.


바울은 주님이 죽으신 이유를 잘 알아서
갈라디아서 1장 4절에도 그런 말을 하고 있잖아요.
우리주님이 우리대신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삶에서 주님이 죽으신 이유를 많이 깨달은 만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걸 알고 삶에서 더 많이 만나고 주님이 나 위해서 하신 모든 것들을 자꾸 발견하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나 위해 이렇게 해주시네 하며 자꾸 만나다 보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 세 번째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15절 갑니다.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세 번째 주의 일에 본을 보여 행동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그렇게 말합니다.
너는 이것을 말하고 이것이라고 하는 말은 2장 1-14까지의 말을 말하고 그 말입니다.
그 다음에 권면하고 그리고 권위로 책망하라 책망을 할 때 권위는 어디서 납니까?
내가 본을 보여야 권위가 납니다. 내가 본을 보이지 않고 책망만 하면 절대로 권위가 서지 않습니다. 그 앞에서 아무말하지 못해도 뒤돌아서서는 너나 잘하시오, 당신이나 잘하시오. 합니다.


본을 못보이면 권위로 책망하면 그것이 도리어 나쁘게 됩니다.
그리고는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마라.
자세에 대해서 올바른 신앙 자세에 대해서 주의 일에 본을 보여 행동을 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수 있다고 디도에게 지금 간절하게 부탁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도 날마다 하나님이 나에게 가르쳐주시고 성경 안에서 나한테 얘기해 주시고
또 깨닫게 해 주신 모든 것들을 먼저 본을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힘듭니까 그것이. 본을 보이는 것 만큼 힘든게 없거든요.
그래야 그만큼 해야 그 뜻을 이룰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엊그저께 박지성이 소속되어 있는 유나이티드 영 국선수들이 왔더라구요.
그런데 내가 봐도 2사람은 알겠더라구요. 공격수인가 봐요.
루니, 호날두가 쇼를 했는데 4:0으로 졌대요.
그것을 딱 보는 순간 얼마나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 연습 않고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저렇게 잘하려면 얼마나 연습을 했을까 저는 그게 딱 느껴지더라구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주님의 일에 본을 보이려면 그 만큼 내가 힘들고 아픔이 있고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은 뼈마디마디가 아픈 그것이 없이는 피아노를 잘 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전에 그런 얘기 했잖아요. 지금은 잘 걸어다녀요.
옛날에 저는 전철을 타러 내려가면 앞으로 못 내려가요. 옆으로 서서 한발 내리고, 한발 따라가고, 한발 내리고, 한발 따라가요. 옆에 사람들이 자꾸 쳐다봐요.
저사람 그런사람 같지 않은데 걸음을 저렇게 걷는고. 왜요.
무릎에 근육이 다 풀려서 잡아주지 못하니까 꾸벅꾸벅 하니까 앞으로 못 내려가요.
옆으로 내려가요.
한발 내리고 한발 따라가고 그러니 저 아래까지 내려가려면 한참 걸리지요.
그래서 내가 병원 갔더니 의사가 나를 쳐다봐요. 왜요. 성경보느라고 근육이 다 풀려버렸어요. 그러니까 성경 보는 눈이 생긴거요. 본은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어떤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도 우리의 모든 삶속에서.


디모데 전서 4장 12절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고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무엇이 되라고 합니까) 본이 되어(그럽니다)
주님의 일에 본이 되어 그 말입니다.
주님의 일에 본을 보여서 행동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수 있다는 것입니다.


갈렙이라고 하는 사람은 배분을 받을 때 제일 먼저 가나안 땅을 분배를 받습니다.
그 갈렙은 제일 먼저 받지만 자기는 헤브론에 있는 산지를 주라고 본을 보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나는 제일 나쁜데를 나는 줘라. 그렇게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불평할 수 있을 까요? 불편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뭐라 할 수 없습니다. 왜 여호수아와 갈렙만 구세대입니다.
얼마나 많은 걸 받을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제일 먼저 분배를 받는데 제일 나쁜 쪽을 받겠다 라고 말한 사람이 갈렙입니다. 여호수아는 제일 나중받았습니다.


딤낫세라를 받잖아요. 에브라임에 딤낫세라를 받고 여기에 있는 갈렙은 헤브론의 산지를 받습니다. 본을 보입니다. 여호수아도 전부 다 말뚝박아 놓고 이것은 내 땅이야 그렇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다른데 나눠줬다면 어쩌겠습니까?
그런데 다 나눠주고 자기는 나중 갖고, 갈렙은 제일먼저 줬는데 제일 나쁜데 주라고 그러고 본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 얼굴이 어떠했을까요.
그 때 갈렙이 나는 80세가 넘었다 나는 힘이 있다 그러니까 산지를 줘라 그럴 때 하나님이 어쨌을까요. 하나님 입이 이만큼 찢어 졌을 거요. 왜 본을 보이니까. 내 뜻을 이뤘다는 거죠.
우리도 마찬가지로 권리가 있어도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어도 내가 그렇게 본을 보여야 됩니다.


내가 가질 수 있어도 내가 얻을 수 있어도 내가 먼저 본을 보일 때 내가 네모졌다면
원칙이 있다면 동그라미 안으로 들어가야 잘 굴러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에 본을 보여 행동을 해야 갈렙과 같이 행동을 해야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고 하나님 뜻을 이루었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주님의 일에 본을 보여 행동해서
하나님의 뜻을 더 많이 이루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됩니다.
오늘 네모와 동그라미는 서로 잘났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서로간에 보완역할을 하면 동그라미 네모는 하나돼서 잘 굴러갈 수 있듯이
우리도마찬가지로 주님을 바라고 욕심을 멀리하고
주님이 나 위해 죽으신 이유를 더 많이 깨닫고
또 주님의 일에 본을 보여 행동해서
하나님의 뜻을 더 많이 이루고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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