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가 끝까지 이끄십니다 눅1:28~30
◑은혜인가, 천벌인가?
눅1:28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
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당시의 유대관습에 따라,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가브리엘 천사가 전하는 ‘은혜’는..
은혜가 아니라, 인간적 관점에서는 오히려 천벌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은총’, 아니 천벌 앞에서
탄원하거나 혼란에 빠지지 않고
그 뜻을 차분하게 묻습니다.
그리고 가브리엘 천사는 엘리사벳의 일을 예로 들면서
“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마리아에게 가르칩니다.
교회의 옛 문헌에 따르면 ‘이 순간 바람이 불지 않았고, 파도도 치지 않았으며,
모든 동물과 새도 숨을 멈추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 마리아의 대답에 숨을 죽이며 귀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이 귀 기울인 그 여인은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장황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대답을 했습니다. 눅1:38 주1)
이 대답을 듣고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고,
마리아의 대답을 숨죽여 지켜보던 온 세상은
아마도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을 것입니다.
▲은혜.. 내 생각과 다른 면도 있습니다.
은혜라고 하면.. 우리는 무조건 인간적으로 좋은 면으로만 생각합니다.
내 기분이 업 되고, 잔고도 두둑해지고, 고속 승진이 되며,
사회적 명성을 얻는 것을.. 은혜로 여깁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은 여인 마리아는,
참 쉽지 않은 삶을, 그 은혜 받은 결과로, 살게 됩니다.
아래 단락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마리아가.. 그 쉽지 않은 자기 삶을, 끝까지 사명 완수 할 수 있었던 것은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가.. 마리아를.. 사명자의 자리로.. 끝까지 이끌고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세상에서 무슨 유복한 삶을 살게 된다기 보다는 (이런 면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핵심은 아님)
하나님이 택하신 자리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그 사명을.. 묵묵히 살아나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혜’가 그를 이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이 위험천만한 은혜.. 그런데 나도 받았습니다.
엡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위 밑줄은 ‘사랑받는 자로 받아들여졌다’는 뜻인데,
헬라어로 눅1:28의 ‘은혜를 받은 자여!’와 같은 말입니다.
즉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로 받아들여졌으며’
그것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친 마리아처럼.. 그 은혜가 나를 이끌어 가십니다.
내가 세상 가운데서 특별히 은혜를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는.. 그 삶에 고난이 아주 많습니다.
그 은혜가.. 그를 구원/회개/성화의 자리로 주도하고 이끌어 가셔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게 하시는데,
그 길은, 마치 풀무불에서 금을 연단하는 것과 비슷하거든요...
◑이것이 은총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께 은총과 복을 구합니다.
어떤 은총과 복을 주십사고 청하고 있습니까?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거나 남들보다 한 50년은 더 살게 해달라고 청하십니까?
그런데 실은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더 살면 무엇하며, 돈을 많이 벌면 무엇하겠습니까?
죽으면 다 놓고 가야하는 그것들은, 진정한 복이 아니지요.
본문의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
은총(=은혜)을 받은 사람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1. 은총을 받으면 기쁨과 평화가 가득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눅1:28
항상 감사드리는 삶을 살게 되지요.
삶이 즐겁고 결코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참 기쁨과 평화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서,
이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오랜 시간 수련을 한 성직자나 수도자들의 모습을 보면 참 고요하지요.
그들은 후손도 없고 재산도 없으며 건강에도 개의치 않습니다.
살아가는 모습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잔잔하면서도 여유 있고 평화롭지요.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자유롭습니다.
은총을 받으면,,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2.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건강을 잃을까, 자식이 어떻게 될까, 또 재산이 어떻게 될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눅1: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두려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생각해 보십시오. 처녀 잉태를 예고 받았을 때, 마리아의 두려움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약혼자와의 관계, 부모와 이웃 사람들의 시선들, 또 돌에 맞아 죽는 장면 등이
순식간에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이러한 처지에서도 자유로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죽음 앞에서도 자유롭습니다.
바로 순교자들이 그랬습니다. 스테판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평화와 사랑이 가득 찬 모습을 보이며.. 오히려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지요.
이것은 비단 스테판만이 아닙니다. 모든 순교자들이 다 그랬고
누구보다도 시련과 고난이 많았던 바울 사도 역시
감옥 안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3. 또한 은총을 받으면 하나님께 순명(순종)합니다.
은혜가 그를 강권해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은총 없이는 순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순명을 보인 대표적인 인물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늘그막에 그토록 원했던 자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셨고
아브라함은 순명했지요.
그는 인간적인 모든 갈등과 이해관계를 넘어서 하나님께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의 불순종, 또 비판적인 모습들은
그들이 결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은혜를 입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은혜를 입은 사람’은
‘여호와는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며 살기 때문에,
세상 복을 그렇게 목숨 걸고 구하지도 않습니다.
대신에, 이 세상보다도 하나님 안에서의 영원한 삶을 희망하며 살아갑니다.
차원이 다르지요. 은총이 충만한 성인, 성녀들의 삶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은총을 하나님께 청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그의 신앙심은 초보자의 수준입니다...
◑은혜로 낳은 아들 세례요한
세례요한이 ‘은혜를 받아 태어났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성경에 없지만,
천사가 나타나서 잉태를 고지해 주는 등,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그의 탄생 역시.. ‘은혜에 의해’ 태어남이었습니다.
▲모친 마리아처럼.. 세례요한도.. 은혜 받은 삶이 녹록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세상의 어느 부모님이
자기 자식이
바람도 피할 수 없는 들에서 생고생하는 것을 원할 것이며,
메뚜기로 허기를 때우고
꿀통을 만나야 배를 채우는 꼴을 보면서
‘이것은 주님의 은혜이며, 은총이다!’라고 할 수 있을런지요?
이리 저리 인간적인 생각을 굴려보면
굳이 굳이
세례요한의 부모님을 연로한 노인으로 택하신
하나님의 심중을
헤아릴 수 있는 듯싶습니다.
늙어서 자녀를 얻은 연로한 부모님이셨던 만큼
세례요한이 고생하는 꼴을
(젊은 부모보다는) 널리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며 (늙으면 다 초월하잖아요..)
또 늙어서 얻은 그 귀한 외동아들이
광야에서 막 고생하다가, 참수되어 죽는 최후도
보지 않고
삶을 마감하셨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이렇게 함부로 추측을 남발하는 이유는,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의 삶이 (특별히 호강하지 않고)
‘특별히 괴롭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모친 마리아처럼요!
그러니까 ‘은혜.. 그거 조심해서 받고!’ 물론 강권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만
또 ‘은혜 받았다고.. 앞으로 팔자 펼 것이라고..’
그런 설교 하지도 말고, 그런 설교 듣지도 맙시다.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되겠기 때문이다." 눅1:15
라고 말씀하신 "큰 인물"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누가 큰 인물인가요?
여러분의 무남독녀가, 세례요한 같은 ‘큰 인물’이 되기 바라시겠습니까?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가.. 참수당하는 ‘큰 인물’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큰 인물이란
출세하는 사람, 돈을 많이 버는 회장님,
국회의원, 장관, 대학총장.. 뭐 이런 분야에서 ‘큰 인물’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은혜 주셔서 세우시는 ‘큰 인물’은
‘하나님이 원하는 자리에 가서
하나님이 원하는 그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이
큰 인물’입니다.
성경에서 큰 인물의 기준은 "주님 앞에서"입니다.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눅1:15
따라서 세상 관점에서 말하는 큰 인물도, 주님 앞에서는 아주 작은 인물이 될 수 있고
세상 관점에서 아주 작은 인물이..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리하면, 은혜를 받으면.. ‘큰 인물’이 됩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됩니다.
은혜로 태어난 세례요한의 삶도..
모친 마리아의 삶처럼, 결코 녹록하지 않고, 늘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았기에’.. 그 은혜가 그의 삶을 이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다 마치게 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딤후4:7
......................................
주1)
케 세라 세라, (Que sera sera) 노래가 처음에는 ‘될 대로 되라’로 번역되었습니다.
처음 번역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잘못된 구석이 있습니다.
‘될 대로 되라’는 것은 무언가 자포자기하는 듯한 어감을 주지만,
‘될 것은 될 것’이라는 표현은 아주 강한 희망의 의지를 담고 있기에,
어쩌면 서로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예고를 들으신 성모님께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받아들였다면,
꼭두각시이자 종노릇하는 처지에서 하나님의 뜻을 마지못해
받아들인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될 것은 될 것입니다’라는 뜻으로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고백을 합니다. 눅1:38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는 마음이 그 안에 담겨 있기에,
처녀이고 자칫하면 돌에 맞아죽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 ‘주님의 종’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을 먹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성모님은 ‘될 것은 될 것’이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길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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