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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 명설교편◑/유기성목사 명설교(199편)

주의 손이 나와 함께 하려면 행11:19~26

by 【고동엽】 2024. 11. 21.

주의 손이 나와 함께 하려면                 행11:19~26                       

▲인도네시아는 (지역에 따라서) 여전히 위험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선교사 수련회에서 많은 선교사님들을 만났습니다.

그 중에 자카르타까지 한 시간 반 비행기를 타고 가서,

다시 14시간 배를 타고 가는 섬에서 사역하시는 여 선교사님도 계시고,

 

99.9% 이슬람 강성 부족이라

신분이 드러나면 언제든지 살해당할 위험한 곳에서 사역하시는

한 젊은 부부 선교사님,

 

그리고 2개월 전 회교 성직자가 강도로 위장하여 집에 들어와

남편 선교사님을 무차별 폭행한 일을 겪은 여 선교사님 등이

아직도 기억이 됩니다.

 

▲위험을 뚫고 나가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

제가 이 선교사님들에게 무슨 드릴 말씀이 있었겠습니까?

제가 선교사님들에게 은혜를 끼치러 갔다기보다는

도리어 그 선교사님들에게서 엄청난 도전과 은혜를 받고 왔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이 이 분들로 하여금 이런 상황에서도 선교사의 길을 가게 하는가?’

‘이런 어려움과 위험을 감당하면서도

어떻게 끝까지 그 선교지로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가져 보았습니다.

 

그 선교사님들의 용기에 대해서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도 됐습니다.

그 때 이것이야말로 성령의 역사임을 깨달았습니다. 성령님이 아니라면

결코 그와 같은 일을 생각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마음의 장벽

 

▲교회의 축이 <선교 중심교회>로 옮겨지다.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의 한결같은 소원은,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임하신 성령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어주신 마음이

땅 끝까지 모든 족속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바로 성령의 이 역사를 기록한 성경입니다.

 

사도행전을 꼼꼼히 읽으신 분들은 사도행전 10장에서부터

교회의 중심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옮겨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부터 9장 까지는 <예루살렘 교회가 중심>이고

사도행전 10장부터는 <안디옥 교회가 중심> 교회가 됩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하신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 선교에 대하여 너무나 마음이 닫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 선교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핍박도 많았습니다.

사도행전 1:8절의 예수님의 예언대로 성령이 임하여

제자들이 큰 권능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 선교의 가장 큰 장애물은, <외적인 핍박>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예수를 믿은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에게 있었던

<이방인에 대한 마음의 장벽>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처음에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약속을 당연히 모든 유대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행11:19절에 보는 대로

그들은 외국에 나가서도 유대인들에게만 전도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소식이 들리는 것입니다.

성령이 이방인 고넬료 집에 임하였고, 그들도 예수를 믿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은 그 소식을 듣고 기뻐한 것이 아니라 당황했고,

일이 잘못되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행11:2-3,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이것은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나 이상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인도네시아 선교 보고를 들으면 기쁘십니까/화가 납니까? ... 기쁘시지요?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 중에는 비난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에 대한 마음의 장벽 때문이었습니다.

 

△위기에 처한 애굽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애굽은 역사상 가장 부강한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우상 숭배의 나라입니다.

지금도 애굽에 가면 수천 년 전에 우상 숭배하던 유적들이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그들은 뱀도 섬기고, 곤충도 섬기고, 하늘도 섬기고, 땅도 섬기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우상으로 여겨, 그것들을 신 같이 음란하게 섬기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에 위기가 왔습니다. 그 나라에 재앙이 임했습니다.

7년 풍년과 7년 흉년의 재앙입니다.

7년 풍년과 7년 흉년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흉년이 오고 다음에 풍년이 온다면, 흉년 때에 견디는 훈련을 합니다.

그래서 다음에 풍년이 들어도 저축하고, 다음 흉년의 때를 위하여 준비합니다.

 

그러나 풍년이 먼저 오면, 그것도 7년이나 계속 풍년이 오면

먹고 쓰고 허비하는 풍년의 습관이 들어서.. 흉년이 오면 다 죽고 맙니다.

애굽은 지금 그대로 두면 곧 흉년을 만나고 흉년이 들면 망하고 말 것입니다.

애굽은 지금 멸망이 임박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그 애굽을 구원하기 위하여 준비하시고,

때가 되었을 때에 놀라운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의 나라, 폭력의 나라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가 많으시며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죄의 삯으로 멸망을 받아야 할 나라인 애굽까지도

사랑하여 용서하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강포한 니느웨 같은 나라도 구원하시는 은혜의 하나님

여러분, 요나의 이야기를 아시지요? 니느웨는 ‘민족들 가운데 이리 같은 민족’입니다.

이 나라는 ‘폭력의 나라’입니다. 너무 잔인하여 용서받을 수 없을 것 같은 나라입니다.

 

니느웨(앗수르 수도)에서 발굴된 글자판에는

앗수르를 대항하여 싸우는 사람들을 어떻게 취급했는가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매스패로 교수가 읽어낸 그 내용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포위한 앗수르 군대에 대항하며 싸우는 성이 있으면

앗수르 군대가 그 성을 정복한 후에

무기를 들고 대항했던 사람들에게 가장 잔인한 형벌을 가했다.

 

그들의 사지를 하나하나 잘라 내거나, 성 주위에 있는 나무를 4,5피트 높이로 잘라내고

그 끝을 창 같이 뾰족하게 깎아내어

자기네들을 대항하던 군인들을 산채로 거기에 찔러 넣어서

성안에 있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성이 항복하면, 그 성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높은 탑 위에서 밑으로 던져 죽였으며

코나 귀를 잘라 내거나, 손과 발을 잘라 내어 천천히 타는 불 위에서 태우기도 하고

산채로 껍질을 벗겨내기도 하고, 머리를 잘라 내어 누가 더 높은 피라미드를 쌓는가

경주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요나는 앗수르 나라가 하나님의 벌을 받아서 멸망하기를 기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요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너는 일어나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말씀은 니느웨 성에 가서 그 성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여 회개시키고

그 성을 구원시키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마음의 장벽>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행11:20절에 보니, 안디옥에 가서 전도하는 사도들로부터 소식이 오기를

안디옥에 살고 있던 헬라인들이 예수를 믿더라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 교회는 “할렐루야!” 하지 않고,

큰 걱정거리가 생긴 것처럼 반응하였습니다.

그래서 “빨리 가서 조사해 보자!” 하며 바나바를 파견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예루살렘 교회에 대하여 답답하게 생각하였는지 이해할만 하십니까?

지금 하나님의 마음은, 복음이 세계 모든 족속에게까지 전해지기를 원하고 계셨고,

하나님이 그 일을 진행하고 계시는 중인데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이 계속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그것을 걱정거리라고 여기고 있으니

하나님의 마음에 ‘예루살렘 교회로는 안되겠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셨던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 마음의 장벽이 없으니 ... ‘주의 손이 함께 하셨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 교회는 이방인들로 넘쳤고, 이방인에 대하여 개방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으면.. 잘했다고 박수를 치고 환영했으니까

이방인들이 자꾸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행11:23절에, 바나바는 안디옥에 와서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예루살렘 교회 일반적인 정서와 다른 반응이었습니다.

 

바나바가 이렇게 기뻐한 것이 그가 진정으로 성령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행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그러니 안디옥 교회를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그래서 세계 복음화의 중심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주의 손이 함께 하신’ 안디옥 교회

 

행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같이 마음이 열려있는 교회와 성도에게는... 주의 손이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26절에 보면 안디옥 교회에서 처음 교인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워졌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말이 처음 생긴 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아니라, 안디옥 교회에서였습니다.

 

이방인에 대하여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열린 사람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울 자격이 있다는 뜻입니다.

 

또 27절에,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금을 모아 도왔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모 교회이고 안디옥 교회는 개척 교회입니다.

그런데 개척 교회가 모 교회를 도와주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왜 이런 기록을 하였을까요? 하나님의 손이 안디옥 교회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돕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이방인 선교에 마음이 열린 교회는.. ‘돕는 교회’가 되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번에 인도네시아 선교사 수련회를 갔더니, 선교사님들이 그렇게 고마워하셨습니다.

지금이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 상황인데, 수련회가 취소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전 어느 때보다 더 풍성하고 뜨거운 헌신으로 섬겨주어서

너무나 감사해 하였습니다.

 

선교사님들의 감사 인사를 받으면서 제 마음에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인정해 주시면 충분합니다.’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섬기고 복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장벽이 무너져야... ‘주의 손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 뿐 아니라

우리 마음에도 이방인과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좀처럼 내 마음이 열리지 않는 사람,

솔직히 가까이 하기 싫은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람들을 유대인이냐 이방이냐 하는 잣대로 판단했습니다.

한국 사람은 어느 학교 출신이냐, 어느 지역 출신이냐,

얼마나 돈을 많이 가졌느냐로 판단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마음 안에 있던 사람에 대한 이러한 장벽이 무너졌습니까?

그래야 '주의 손이 함께 하시는 능력의 사람'이 됩니다.

 

▲선교지/현지인에 대한 판단은 금물입니다.

김승회 선교사님께서 우리 선교 팀을 안내해 주면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보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주십시오.” 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 선교사님이 인도네시아에 와서

처음에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행동에 대하여 짜증나는 일이 많았답니다.

하루는 너무 화가 나는 일이 생겨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왜 이 모양이냐?’고 불평하는데, 하나님께서 물으시더랍니다,

 

‘너는 인도네시아에 왜 왔느냐?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판단하러 왔느냐?

아니면 나의 사랑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러 왔느냐?’

선교사님은 화를 내었던 것이 부끄러워 아무 말을 하지 못하겠더랍니다.

 

▲판단하는 사람은 - 마치 ‘예루살렘 교인’과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선교사로 나가 있지 않더라도... 똑같습니다.

선교사만 아니라, 우리도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미워하고 화를 낼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나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판단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까?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인생을 허락하셨을까요?

다른 사람과 경쟁하라고 주신 세월이겠습니까?

한 생애를 분노하고 싸우고 투쟁하다가 오라고 하셨겠습니까?

남보다 더 잘 산다고 더 잘 되었다고 자랑하고 오라고 하셨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에 갈 사람을 천국 가도록 구원하고 오라고

우리에게 생명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시간도 주신 것입니다.

 

우리 생애가 끝나는 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날 그때는 명확하게 알게 됩니다.

결국은 무엇이 남겠어요? 여러분,

세상에서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 살고, 넉넉해지고, 성공한 것이 남겠어요?

여러분이 살았기 때문에,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았던 것만 소중하게 남는 것입니다.

 

자신을 죽이려 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가는 젊은 부부 선교사님,

그들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과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은 다른 분이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사람에 대한 장벽을 가지기 말라 하시는 것은

그런 마음을 가지면 복음 전하는 일이 막혀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람에 대해서 싫고 좋은 것에 대한 마음의 장벽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복음 전하는데 결정적인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장벽을 깨뜨리신 예수님

유대인들은 안식일 법 못지 않게 ‘식탁 정결법’을 목숨같이 지킵니다.

율법 전통 가운데 무려 67%의 내용이 ‘식탁교제에 관한 법’입니다.

유대인들은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을 수 없는 음식을 엄격하게 구분합니다.

 

성지순례를 가서 호텔에서 식사할 때,

김, 고추장, 김치를 먹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습니다.

그들의 그릇에 한국 음식을 담은 것이 발견되면,

그 그릇도 깨뜨려서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음식과 그릇만 아니라, 한 식탁에 함께 앉아서 밥 먹는 사람의 정결도 중요합니다.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같이 밥 먹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식탁의 정결을 위하여 세리들, 죄인들, 문둥병자들과

저주 받은 각종 병자들, 신체가 온전치 못한 사람들,

창기들과는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부정한 자들이 함께 식사하면, 식탁의 거룩함이 깨어진다는 정결법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생명과 같은 금기법을 깨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시면서 말씀하시려는 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그 어떤 사람도 다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적용

 

▲신혼여행으로 알제리로 갔던 이유

최근에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아프리카 알제리로 다녀온 여전도사가 있습니다.

알제리에도 좋은 신혼 여행지가 있는가? 궁금해 하실 것은 없습니다.

알제리 선교사님이 한국에 와서 아이를 출산하고 임지로 돌아가야 하는데,

몸이 너무 약하여 두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 보호자로 따라가 주어야 될 상황이었습니다.

너무 안타까워하고 있다는 말을 들고

신혼여행 삼아 선교사님을 도와주러 갔다 온 것입니다.

아기도 보아주고 짐도 많이 가지고 갈 수 있었답니다.

 

▲남의 일이 아닙니다.

전도사님이 알제리를 갔다 와서 준 편지 속에 안타까운 글이 있었습니다.

알제리가 130년 동안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는데, 프랑스가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알제리가 독립한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이

교회와 성당에 걸린 십자가를 떼고,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일에서 깊은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장, 단기 선교사들도, 선교지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과가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전도의 문이 막힌 이유

어느 목사님께서 군목 시절, 한 미혼 장교를 전도하였는데

좀처럼 그가 마음을 열지 않더랍니다.

어느 날 만나서 깊은 대화를 하던 중에

그 미혼 장교의 마음이 닫혀져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대학생 때 하숙을 했는데,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가 열심히 예수 믿는 분이더랍니다.

그래서 그 아주머니의 전도를 받고, 그는 한동안 교회를 다녔답니다.

 

그런데 그 주인아주머니가

같은 교회 교회를 다니는 어느 집사님 험담을 자꾸 하는데...

자기는 그것을 보고 듣는 것이 그렇게 싫었답니다.

‘왜 같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끼리 저렇게 사이가 안 좋을까?’

 

당시에 주인아주머니와 같은 교회 그 여집사님은

남대문 시장에서 함께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물품을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런 어느 날 하숙집에 전화가 왔는데,

전화를 받은 주인아주머니가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뭐라고? 그 집사가 경찰에 붙잡혀 갔다고? 할렐루야!”

그 말을 들은 다음부터, 그는 다시는  교회에 안 나갔다는 것입니다.    

 

▲제발 하나님을 괴롭히지 마세요!

그러기에 우리가 누구를 싫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을 너무너무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하고는 상종 안 해, 나는 어떤 사람하고는 절대 밥도 안 먹어,

어떤 사람은 쳐다보기도 싫어.”

여러분 마음에 그런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을 너무너무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싫어하는 그 사람을

하나님은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그 사람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죽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사랑하시는 사람인데

여러분은 그렇게 싫어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시겠느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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