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을 통한 섬김의 삶(6)
행 4:32-37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
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오늘은 물질을 통해서 섬기고 중보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물질은 참 신비한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돈이 있으면 명예도 있어 보이고 지식도 있어 보입니다. 신분까지도 높아 보이는 매력이 있습니다. 신앙인도 내가 물질이 있어야 하나님도 내편인 것이 생각됩니다. 돈이 없으면 하나님도 내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물질은 오늘 현대인들에게는 우상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물질은 영적 생활을 하고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시험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물질에 대해서 올바른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물질 때문에 시험 들고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물질을 잘 사용만 하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 수 있고 그 물질을 가지고 중보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물질에 대해서 우선 정신이 건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물질을 가지고 덕을 쌓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선 몇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
물질은 마치 은사와 같은 것입니다. 물질은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물질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알고 살면 절대로 물질 때문에 시험 들지 않습니다. 아니고 물질을 욕심스럽게 여기고 살면 반드시 시험이 옵니다.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물질을 욕심스럽게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온갖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사람들이 인색하고 도적질하고 탐하고 속이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이 물질은 그렇게 사람을 버리면서까지 모아야 하는 것이 아닌데 사람으로 하여금 그렇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이 모두 시험입니다. 모두 탐욕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물질이 다 사람으로 하여금 타락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이 물질을 탐욕을 가지고 대할 때 타락하게 된다 그 말입니다. 이 탐욕은 결국 맘몬신앙에 빠지게 만듭니다. 매먼(mammon)신앙은 물신신앙을 말합니다. 그래서 돈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오늘 이 돈이 우상이 되어 사람을 죽이고 버리고 뺏는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물질은 하나님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도록 주신 선물이라는 점을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복의 근원이 아니다
복에는 땅의 복과 하늘의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복중의 복은 하늘의 복입니다. 구원, 은혜, 천국이 하늘의 복입니다. 보이는 물질적인 복은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그런데 때로 이 복은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도 만듭니다. 실패하게도 합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복인 하늘의 복은 언제나 소망적인 은혜를 끼칩니다. 그래서 이 복을 복중의 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보이지 않는 복을 소홀히 하고 눈에 보이는 복에 집착해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때로 주일도 지키지 않고 돈을 벌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게 물질에 집착해서 살다보면 언젠가 그 좋던 신앙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정신없이 물질에 집착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언젠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세월이 다 지나갔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시간이 흐른 후에 후회하고 다 잃어버린 후에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독수리 한 마리가 겨울이 되자 온 산천에 눈이 쌓여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먹을 것을 찾아 하늘을 날다가 얼음위에 죽어 있는 비둘기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얼음위에 앉아서 정신없이 뜯어 먹었습니다. 꼬리가 얼음위에 얼어붙는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마침내 배가 불러진 독수리는 이제 날려고 하니 꼬리가 얼어붙어서 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맘몬신앙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말로의 모습입니다. 물질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복의 근원은 아닙니다.
규모 있는 운영
그래서 물질은 반드시 규모 있게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물질을 계획 없이 소비하고 지출하다 보면 반드시 과소비를 불러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삶은 무분별한 삶이 되고 본의 아니게 사치하게 됩니다. 이 땅에는 많이 가진 사람이 있지만 동시에 너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너무 가진 것이 없어서 탄식하고 눈물 흘리고 절망하는 이웃들이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알아야 물질을 사용하는 자세가 달라지고 누군가를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주어집니다.
또 물질로 덕을 쌓을 수 있습니다. 물질은 잘 사용하면 큰 덕을 쌓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못 사용하면 큰 부덕을 끼치고 부작용을 낳습니다. 내 것을 잘못 사용해도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하고 남의 것을 빌리고 긁어모아 살다가 나중에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서 결국 파산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모두 물질에 대해서 생각이 건전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부작용들입니다. 이 경우는 빌려주는 사람도 문제고 대책도 없으면서 남의 돈을 빌려 살아가는 사람도 문제입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야 하는데 남의 돈 빌려서 살겠다는 생각은 옳은 삶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서까지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물 쓰듯 하는 삶의 태도도 좋은 삶이 아닙니다. 오늘 보면 극에 달하는 사치풍조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삶은 없는 사람들을 초라하게 만들고 용기를 잃게 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강남에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지우개를 사서 사용하는데 그 값이 자그마치 구찌 상표가 붙어서 14만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14만 원짜리 지우개를 사서 주면 어쩌자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아이들이 생각 없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지우개 하나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면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날에는 그 나라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나라 지도자 한사람의 정신과 판단이 잘못됨으로 얼마나 나라 전체가 갈등으로 휩싸여 있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결코 한사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자랄 때부터 인격이나 심성이나 더불어 살아가고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자세나 정신이 없는 사람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면 결코 한사람으로 끝나질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이들을 이렇게 키우고 있으니 이것이 작은 문제입니까. 그러니까 아이들이 생각 없이 자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생각 없이 자라는가 하면 이렇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글을 짓게 했습니다. “( )라면 ( )겠다“하는 문제를 내 놓고 가로 안을 채우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부자라면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 라는 식으로 문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머리가 잘 돌아가는 아이가 일어나더니 말하기를 “컵 라면 맛있겠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생각이 단세포적입니다. 참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어느 택시 운전자가 지금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차를 사 달라고 졸라서 고민 중이라고 합니다. 지금 택시 운전해서 겨우 식구들이 먹고 살고 있는데 생활을 뻔히 알면서 철없이 자꾸 차를 사달라고 조른다는 것입니다. 이 아들이 생각이 있는 젊은이입니까. 정상적인 젊은이라면 어려운 집안 사정을 생각해서 나가 일해서 등록금이라도 벌려고 해야 건강한 젊은이 아닙니까. 오늘 사람들이 이렇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오늘 부모들이 만든 결과일 수 있습니다. 오늘 부모들이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해야 하는데 어려서부터 달라는 대로 다 해 줘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오늘 부모들 입에서 “안돼”라는 말이 없습니다. 아무리 졸라도 안 되는 것은 끝까지 “안돼”하고 단호하게 말해 주어야 하는데 이 안돼 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늘 부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부모들도 아이들과 똑같이 자기중심적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변해 가느냐 하면 이렇게 변해갑니다. 한석봉이 어머니가 떡을 썰어 장사해서 아들을 공부시켰습니다. 그것도 옛날일입니다. 지금은 아주 달라졌습니다. 얼마나 달라졌는가. 어느 날 아들이 집에 왔습니다. 어머니가 “불 끄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들이 말합니다. “글 쓸 준비를 할까요.” 그러자 어머니가 말합니다. “글은 무슨 글, 피곤해 자야겠다.” 그럼니다. 그러자 아들이 어머니에게 말합니다. “어머니 너무 하십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아들에게 냉정하게 말합니다. “깜깜한데서 떡 썰다 손가락 베면 네가 책임질래.” 오늘 부모들이 모두 이렇게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부모들도 자식들에게 매이거나 희생하려 안합니다. 그러니 앞으로가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교육 중에서 가장 건강한 교육은 사명을 강조하는 교육입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조화를 하는 능력을 갖도록, 협력자로 살아가도록 교육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입니다. 오늘은 이 사회구조가 사명이나 더불어 사는 것을 무시합니다. 그냥 간과해 버립니다. 오늘 정치지도자들 조차도 국민들을 염두에 두지도 않습니다. 국민을 염두에 둔다면 지금 한창 경제가 어렵다고들 야단인데 국보법폐지문제, 일제잔재청산문제, 수도이전문제를 가지고 국론을 분열시키고 분란 일으키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일들은 어려운 문제들이 모두 극복된 후에 다루어도 얼마든지 늦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어려서부터 규모 있게 성장하고 생각하고 폭넓은 생각과 배려하는 마음을 가르쳐 자라게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 벌려는 분명한 목적
또 물질은 돈을 벌겠다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물질에 대한 분명한 개념이나 목적이 불분명하면 맘몬신앙에 빠지기 쉽고 결국 정신이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사탄이 한 청년에게 다가가서 열 개의 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말했습니다. “이중 아홉 개의 병에는 꿀물이 들어있고 단 한 개의 병에만 독약이 들어있다, 열 개중에서 아무 것이나 하나를 마시면 엄청난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청년이 한참을 고민합니다. 엄청난 돈이 탐나기도 했고 10개중 한 병을 잘못 골라 마시면 죽을지도 모르고 해서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마침내 많은 돈을 준다는 말에 그만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떨리는 손으로 10개의 병중에서 한 개의 병을 골라 조심스럽게 마셨습니다.
그런데 안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청년이 환호를 지르며 “야 나는 살았다, 자칫하면 죽을 뻔 했다, 어서 돈을 내놓으라”고 소리치며 많은 돈을 받아가지고 사라져 갔습니다. 그때 사탄이 사라져가는 청년에게 더 크게 소리쳤습니다. “다음번에는 언제라도 와서 아홉 개 병중서 하나를 골라 마시면 돈을 곱으로 주겠다.” 이 청년이 가서 방탕생활을 했습니다. 그 인생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돈이 떨어졌습니다. 다시 사탄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9개병 중에서 하나를 골라 마셨습니다. 그랬더니 또 무사했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이 환호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갑절의 돈을 가지고 가서 방탕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청년은 돈이 떨어질 때쯤 되면 다시 찾아와서 남은 병중에서 하나씩 하나씩 골라 마셨습니다.
어느덧 이 청년은 노인이 되었습니다. 이 노인이 마지막으로 나머지 두병 중에서 하나를 떨리는 손으로 골라 마셨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용하게도 독약이 든 병을 골라내고 무사히 죽지 않고 남았습니다. 그때 이 청년은 “야, 내가 이겼다, 나는 독약이 든 병을 용케도 골라냈다, 나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돈 내놔라, 이번으로 끝이다, 나는 다시는 너를 찾아오지 않겠다“하고 의기양양해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사탄이 남은 한 병의 독약을 훅 마셔버렸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극약은 없었다, 그러나 너는 돈이라는 극약을 마시고 죽어가고 있다, 나는 너의 청춘을 망가트렸다, 나는 너를 돈밖에 모르는 바보로 만들었다“하고 사라져버렸습니다. 이 청년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돈에 미쳐버리고 폐인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맹목적 돈의 추구는 이런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슨 이유로 돈을 벌려고 그렇게 애를 쓰고 계십니까. 돈을 벌려고 애를 쓸 때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스탠리 탬이라는 미국인 기업인이 있습니다. 그분은 플라스틱 사업을 하다가 4번이나 망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는 어느 날 꿈을 꾸다가 환상 속에서 물에 빠진 베드로가 허우적거리다가 예수님의 손을 잡고 무사히 살아나는 환상을 봅니다. 그 꿈에서 깨어난 이분이 “그렇다, 사람들 손을 잡으려 하지 말고 예수님의 손을 잡고 사업하자”하고 결심합니다. 그는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가 회사의 명의를 예수님 이름으로 등록하고 주식의 51%를 예수님의 것으로 돌리고 수익의 51%를 선교비로 지출할 것을 서약합니다. 그리고 책상 옆에 예수님이 앉을 회장 자리를 마련합니다. 그리고 새벽마다 나와서 기도합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예수님과 상의합니다. 그 결과 1년 안에 200만 불을 벌어들이는 기업인으로 성장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 후 이 분이 텍사스에 있는 유명한 석유회사를 방문합니다. 거기서 이 스탠리 탬씨는 젊고 유능한 석유회사 사장을 만납니다. 이 분이 그 젊은 사장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무엇에 사용하려고 돈을 법니까.” 그 사장은 지금까지 생각도 못하고 상상도 못한 질문을 받고 몹시 당황해 합니다. 그때 스탠리 탬씨가 “당신은 돈을 벌어서 예수와 함께 하는 삶을 사십시오”하고 방법까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는 그 말 한마디를 받고 고민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회사를 사직하고 돌아와 선교사로 자원하여 선교사 사역을 하다가 지금은 회계사로서 더 많은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사람들을 구제하고 구원하고 선교하는 일에 사용하고 있으며 지금 80의 나이인데도 OMS선교부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헌금하는 기쁨이나 재미를 아십니까. 내가 누군가를 돕는데서 오는 기쁨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물질을 통해서 얼마든지 중보사역을 하고 나누고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십시오. 물질을 사용하는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으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이 있는 사람들이 팔아 그 판 것을 사도들 앞에 가져오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이런 삶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물질을 주신 이유는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함께 살고, 고치고, 싸매고, 중보하고, 세상을 살리는데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중보의 삶입니다. 그 삶이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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