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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방인의 경건! (행 10:1-8)

by 【고동엽】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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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방인의 경건! (행 10:1-8)
 

앤소니 드 멜로우라고 하 는 신부님이 쓴 '종교박람회' 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 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있었 는데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같이 지낸 친구, 그는 믿지 않는 친구입니다. 그 친구와 더불 어 대화를 나누는,
뭐 그런 얘기입니다. 믿지 않는 친구 가 처음 예수 믿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그래, 자네 요새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며?"라고 묻습니다.
"그렇게 됐네"라 고 대답합니다.
"그럼 그리 스도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알겠구만."

"글세.. 뭐 그렇 게 아는 것이 없는데.."

"그 러면 내가 묻겠는데 그리스도 께서 어디서 태어났나?"

"모 르겠는데.."

"그러면 몇 살 때 죽었지?"

"그것도 모르겠 는데..."

"설교를 몇 번이나 하셨나?"

"그것도 모르겠는 데..."
대화가 이쯤 되니까 그 믿지 않는 친구가 예수 믿 는다는 친구를 비웃기 위해서 이렇게 말
했습니다.
"자네는 그리스도에 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구만. 그래도 예 수 믿는 건가? 한심하게
보 이누만."
그때에 예수 믿는 친구가 정중하게 대답했습니 다.
"나는 별로 아는 게 없 고 배운 것도 없는 것 같으 네. 그러나 내가 예수 믿고 교회 다니면
서 달라진 게 하 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기 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그걸 알기 시작했고,
더 중요한 것 은 내 자신에게 변화가 왔구 만. 내 자신이 달라지고 있 는 것을 내가 보고
나 스스로 놀라고 있네. 자네도 알다시 피 3년전 까지는 나는 주정뱅 이요 빚도 많았고, 가
정은 산 산조각이 나고, 내가 저녁에 집에 돌아갈 때는 아이와 아 내 할 것 없이 온 집안
식구 가 나를 무서워했네. 그리고 모두가 나를 반가와 하지 않 았고, 또 반가와 하지 않는다
는 것을 나도 알고 있기에 늘 골 부리면서 화를 내며 그렇 게 살아왔는데 예수 믿고 달 라
진 것은 모든 사람이 나를 반가와 하네. 또 나도 내 가 족들과 아이들과 만나는 것이 이렇
게 반갑고 즐거울 수가 없구만. 그리고 나는 몰랐는 데 오래 전부터 하나님은 나 를 사랑하
고 계시다.. 그 한 가지를 배웠네. 그러고 보니 까 감사하고, 내가 사는 하루 하루의 생이 얼
마나 소중한 지 삶 자체가 소중해졌네."
이 긴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 수 믿지 않는 친구는 아무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믿 는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어서 얼마 나 공부를 했습니까? 가끔 보면 성경공부도 많이 하고, 전도도 많
이 하고, 봉사도 많 이 하는 것 같은데 그 사람 자신은 하나도 안 달라지는 사람이 있어요.
어느 젊은 목사님의 설교에 그런 말이 있더라구요. 지방에 살면서 서울에 와서 공부를 하면
서 하숙을 했는데 그 하숙집 마 나님이 예수 잘 믿는 사람이 에요. 전도도 잘하고, 봉사도
잘하고, 기도도 잘하고, 금식 도 잘하고, 전도 많이 해서 전도상도 타고 이런 권사님인 데
좌우간 집에서 부부싸움을 할 때는 온 동네가 알게 시끄 럽게 싸우는 거예요. 이 청 년이
갈등을 일으켰다는 거예 요. '저렇게 잘 믿고 열심히 믿는 사람이 왜 사람은 저 모 양일까?
왜 이럴까?' 이거 고민하다가 그거 해결하겠다 고 신학공부를 해서 목사가 되었다고 그러더
라고요. 지 금까지도 그 수수께끼는 풀리 지 않는데요. 여러분 이걸 아셔야 됩니다. 결국은
사랑 이라는 것은 혹은 믿음이라는 것은 그 믿음과 사랑으로 인 해서 내가 나도 모르게 달
라 지는 것이에요. 그것이 경건 이요, 경건의 능력이요, 경건 의 신비요.
오늘 본문에 보면 이방사 람 하나가 경건하게 살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 이방인의 경건이
있는데 그건 아주 심 각한 신학적 의미를 가졌습니 다. 왜냐하면 예수님 말씀하 시기를
"예루살렘과 유대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 파 되겠다."고 했는데 사도행 전은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된 이야기 사마리아의 전도, 그 다음에 땅 끝으로 가는 하나 의 단계가, 가이
사랴에 와 있 는 로마 사람 전형적인 로마 백부장이 예수를 믿는 겁니 다. 땅 끝으로 향하
는 관문 이요. 이렇게 설명되고 있습 니다. 그는 군인입니다. 점 령지의 군인이요, 부자요,
이 방인인데 이 사람이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노골적 으로 민족 차별을 하던 남아 공화국을 여러분이 아실겁니 다. 거
기에 있던 실화입니다. 남아공화국 거기는 흑인, 백 인이 따로 따로 예배를 드리 는데 흑인
교회에 Holy Church of Zion, '시온성교 회'라고 하는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에서 고난주간
을 지내 면서 성만찬을 하기 전에 세 족예라고 하는 것을 행하게 됩니다. 서로 발을 씻어
주 는 겁니다. 여기에 그 세족 예가 있는 날 올리버라고 하 는 백인이면서 대법원장, 지 체
높은 대법원장이 이 흑인 교회에 혼자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세족예를 하는 시간에 자기가
지명해서 마르다라고 하는 여성을 불러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해서 발을 씻어 줍
니다. 모든 사 람이 깜짝 놀랐습니다.
"백 인이, 그것도 귀족이, 고관이 어떻게 흑인의 발을 씻기는 냐?"
이거죠. 그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은 내 집에 노예로 있던 사람입 니다. 한평생 우리집 아이들 의 발을 수백 번 씻겨
주었습 니다. 그걸 내가 늘 보면서 마음이 괴로웠는데 오늘 내가 이 거룩한 날 우리집의 아
이 들을 씻어준 바로 이 사람, 내가 그의 발을 씻겨 주어야 만 내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래
서 오늘 그의 발을 한번 씻겼는데 무슨 대단한 일도 아니라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
고 대답을 합니다. 결국은 이 대법원장은 이것 때문에 파면이 됐습니다. 그 러나 그는 오히
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제야말로 참으로 하나님께 찬양할 자유 로운 그리스도인이 되
었다고 기뻐했습니다.
참 경건이 뭡니까? 오늘 이 사람은 로마 사람이요. 정치적으로는 로마 군인이요. 당당한 로
마 군인 문화적으로 는 헬라 철학에 도통한 사람 이요. 그런데 종교적으로는 피지배계급인
점령지 그 나라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을 믿었 단 말이요. 이 자체는 대단 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조그만 한 것, 별 것도 아닌 것을 극복하지 못해서 예수 못 믿는 사람 많습니다.
어 떤 남편은 부인이 집사인데 교회 안 나오는 사람이
"왜 안 나오냐?"
그러니까
"마누 라가 먼저 나가서 예수 믿기 때문에 내가 뒤따라 갈 수 없 잖아요."
나보고 농담 삼아 그러더라고요.
"몇 년 나가 면 장로 주겠소?"
그러더라고 요. 그래서 내가
"못 줘."
그 러고 말았어요. 도대체 이 사람 자기 마누라가 집사니까 나는 장로가 되어야지. 어떻 게
내가 치마꼬리 따라 가겠 느냐? 참 답답한 사람들이 죠. 별것도 아닌 자존심 때 문에 예수
못 믿는, 이런 시 원치 않는 남편들도 있더라 구요. 그래서 어떤 지혜로운 부인들은 예수를
10년 믿으면 서도 세례를 안 받다가 남편 믿게 해 가지고 같이 나와서 받는 분이 계세요.
나는 그 걸 보면서 '부인은 착하지만 남편은 못났다.' 생각했어요. 얼마나 못됐으면 아내가
그렇 게 작정 계획을 세웠겠어요?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요. 별것도 아닌 자존심 말이에
요. 구원의 문제야 그까짓 자존심이 문제입니까? 그리 고 그 시각으로 오늘 성경을 보세요.
로마 군인이 점령지 에 와서 그들이 믿는 하나님 을 믿을 수 있어요? 이것은 참 어려운 겁
니다.
가끔 보면 돈 좀 있다고 그래서 어떤 사람은 또 교회 나가면 자꾸 돈 내라고 그러 니까 안
나가겠다고 그러더라 구요. 요새는 헌금대가 이렇 게 돌아갑니다만 옛날에는 매 미채가 있
었거든요. 북한에 서는 아직도 그 매미채로 합 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을 것이에요.
그런 줄이나 아세요. 옛날에 매미채 같은 게 있었어요. 그거 가지고
"돈 달라고 한다고 나 교회 안 나간다."
도대체 몇 푼 가 졌다고 이렇게 거만한 겁니 까? 사람 이런 것 다 벗어 버리기가 이게 쉬운
게 아닙 니다.
로마 군인 고넬료 여기서 그 피지배 사람들이 믿는 그 나라 사람들이 믿는 유대교를 믿으면
서 경건하게 살았다는 것은 대단히 크게 평가해야 됩니다. 그런데 참 경건이라 는 것은 야
고보서 1장 27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 대한 경건인 동시에 경건은 행동적 이라야 돼요. 고
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불쌍히 여기는 행동 이 따를 때 이게 경건이다. 그렇게 설명하고 있
는데요. 오늘 특별히 제 마음을 감동 시키는 부분은
"온 집으로 더 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온 집으로 더불어, 이게 마음 에 들어요. 요새 보면 오랫 동안 교회 나오면서도 원두막 처럼
자기 혼자만 믿는 사람 있어요. 오뚝 서 가지고 저 만 잘 믿겠다고. 그러나 오 늘 이 사람은
온 집으로 더불 어 자기가 믿고 귀한 신앙이 기 때문에 온 친척, 온 친구 까지 다 믿도록
해요. 온 집 으로 더불어 참으로 중요합니 다. 여러분, 여러분이 믿고 가정을 인도하고, 자녀
들을 인도하고, 친척을 인도하고 온 집으로 더불어 경건한 생 활 아주 중요합니다. 그 속 에
서 귀한 인물이 나옵니다. 그 속에서 귀한 자녀들이 키 워집니다. 세상이 이로써 밝 아지는
겁니다. 어떤 희생을 지불해서라도 온 집으로 더불 어 경건한 생활하는 것은 참 귀한 일이
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교회에서 예배 드 릴 때 하나님께서 좋은 눈을 주셔서 저 뒤에 있는 사람까 지 제
가 알아보거든요. 잘 봅니다. 잘 보여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연세 높은 어머 니, 제가 어머
님을 북한에 두 고 혼자 남하했었기 때문에 늘 그 생각이 그리워요. 부 러워요. 연세 높은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그 다음에 거기 에 나이 많은 아들이 있고, 그 다음에 부인이 있고,
아들, 딸, 며느리, 손자 주루룩 한 의자에 길게 앉아서 예배 드 리는 것을 볼 때마다 부럽기
도 하고 참 아름답게 보입니 다. 너무너무 귀한 일이에요.
"온 집으로 더불어 경건하게 살았다."

또 기도했다.
"항상 기도 했다."
그랬어요. 이 기도는 또 '항상'이라는 말에 일상적 의미가 있습니다. 가만히 보 면 병들면
기도하고, 실패하 면 기도하고, 억울하면 기도 하고, 꼭 기도할 때가 따로 있어요. 이것은 경
건이 아니 에요. 경건은 항상 기도해요. 일이 있건 없건 항상 기도해 요. 유대사람들은 특별
히 하 루 세 번씩 시간을 정하고 기 도합니다. 그것이 항상 기도 하는 거예요. 항상, 시간을
따라서 온 집으로 더불어 기 도합니다. 이렇게 기도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 셨습
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 합니다. 뭐 특별기도 열심히 하는 것 보다 온 집으로 더불 어 같이
앉아서 하나님 앞에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 참 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바라 고 생각합니
다.
또 뿐만아니라
"구제했 다."고 했어요. 그 신앙이 생 활화되면서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게 되는데
피점 령지 사람들을 돌아보았어요. 정복자로서 그 약소민족에 속 한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
았어 요. 비참한 사람들을 기억하 는 사람이었어요. 권력자가 피지배자의 형편을 돌아보는
그런 마음을 가졌어요. 대단 히 귀한 일입니다.
여러분, 경제문제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적어 도 신앙적으로 생각하면 가난 한 자
를 돌아보지 못한 죄로 인하여 가난하게 되는 겁니 다. 이걸 알아야 돼요. 가끔 어떤 분들은
"이제 IMF시대 인데..."
그러니까 더 돌아보 아야지요. 이상하게도 옛날 에 얻어먹는 사람이 많을 때 보면 부잣집에
가면 못 얻어 먹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돌 아봅니다. 가장 어려운 사람 이 오히려 구제를 하
지 부자 는 구제를 하는 일이 없어요. 그것이 다르다는 겁니다. 구 제하는 사람 만들기 위해
서 구제할 줄 아는 사람을 만들 기 위하여 IMF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걸 알아야 해요. 가
진 자는 더 가지고, 더 가 지려고 욕심만 부렸지. 불쌍 한 사람을 돌아보는 마음이 없었어
요.
요새 특별히 남북회담이 시작되는가 하더니 그만 결렬 되고 말았어요. 너무너무 마 음이 아
픕니다. 아,비료 주려 고 갔으면 비료 주면 되지. 왜 이산가족 문제를 놓고 이 렇게 줄다리
기를 하다가 비료 와 자주권을 바꿀 수는 없다 는 선언과 함께 끝나고 말았 어요. 왜 이래
야 됩니까? 지금 이 비료 문제라는 것은 시간을 다투는 겁니다. 엄청 난 식량과 관계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절박한 시간에 이 걸 놓고서 줄다리기를 해요. 이게 무슨 대단한 일입니
까? 참으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 구제를 간단하게 생각하지 마 세요.
제 2차대전 나찌독일이 덴 마크를 점령하고 있을 때 독 일 사람들이 이 유대 사람을 전부
죽이기 위해서
"유대 사 람은 전부 가슴에 노란 별을 붙이라."
그랬어요. 전부 노 란 별을 붙이게 될 때 이래가 지고는 하나씩 하나씩 잡아가 는 거예요.
잡아다 처형하는 거예요. 덴마크 크리스찬 10 세라고 하는 왕이 있었는데 이 왕은 온 국민
에게
"다 노 란 별을 붙여라. 덴마크 사 람은 다 붙여라."
모두가 노 란 별을 붙였습니다. 이것으 로 인해서 어떤 불이익이 온 다하더라도 우리는 유
대 사람 들이 죄없이 죽어 가는 것을 그냥 볼 수가 없다. 여러분, 이게 쉬운 일입니까?
우리가 남을 구제한다 할 때는 벌써 그 사람의 처지와 나와 이게 동일시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에 는 불이익도 따르고 비난도 따릅니다. 그것은 악세사리 가 아니요.
구제는 훈장이나 명예가 아닙니다. 이것은 희 생입니다. 그것이 아니고는 참 구제일 수가 없
단 말입니 다.
특별히 오늘 성경말씀 속 에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 은
"내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께 상달했다."
그랬어요. 그 렇습니다. 우리가 구제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 람에게 한 구제가 하
나님께 상달되는 것이에요. 하나님 이 기억하신 바 된다는데 여 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고넬료가 하는 일은 정성껏 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 어요. 여기에 아름다움이 있 습니
다.
제가 몇 일전에 북한에 갔 을 때에도 차를 타고 밤중에 지나가는데 보니까 그 식량을 구하
느라고 보따리 하나씩 걸 머쥐고 캄캄한 밤에 불빛 하 나 없는데 그냥 길을 걸어가 는 겁니
다. 너무 안 되어서 가다가 차를 세우고 타라고 몇 사람 태워놓고 가다가 보 니까 아 옷이
그런대로 괜찮 아요. 전에 입던 옷이 아니고 깨끗한 옷을 입었어요. 그래 서 제가
"거 옷이 좋습니다."
그랬더니
"이거요. 평화그룹 에서 보내준 거예요."
그러니 까 옆에 있는 분이
"이 분이 평화그룹 이사장이요."
그랬 어요. 우리 교회에서 보내는 모든 것은 교회 이름으로 보 내는 게 아닙니다. 평화그룹
이라는 이름으로 갑니다. 이 름을 숨기고 평화그룹 다 압 니다. 평화그룹은 소망교회 라는
걸 압니다. 평화그룹 에서 보내 온 거예요. 문서적 으로는 평화그룹에서 그런데 또 한마디
뜨거운 마음이 있 어요. 참 귀한 말씀이 있어 요 나를 기쁘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 곳에서 옷을 보 내 오는 게 있는데 평화그룹 에서 오는 게 젤 좋고 깨끗해 요."
어떻게 기분이 좋은지. 그게 반대로 되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어요.
"평화그룹에서 온 게 제일 깨끗하고 좋다."
그래요. 그래 내가 악수를 하고 말이에요. 얼마나 반가 웠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의 하는 일이 좋은 일이지만은 첫째는 받는 사람이 받을만 해야지요. 받는 사
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야 되고요.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야 돼 요. 하나님의
마음을. 그걸 잊지 말아야 돼요. 이게 얼 마나 귀한 일인지 몰라요. 난 그래서 나 스스로 이
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교회마다 이 IMF 사건 때문에 교인도 줄고, 헌금도 줄고 그럽니다
지금. 그러나 우리 교회는 교 인도 늘고, 헌금도 늡니다. 줄 지 않습니다. 그것은 북한을 돕
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합 니다. 구제하기 때문이다. 선 한 일 하기 때문이라고 그렇 게 믿
고 있습니다. 이걸 알 아야 돼요.
그리고 오늘 성경에 보니 까 기도를 응답하셨다. 기도 한다고 몸부림친다고 그것이 되는 겁
니까? 하나님이 기도 를 응답하셔야지요. 하나님 이 응답하셨어요. 구제와 기 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어요. 이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는데, 지금까지 가졌던 유대교적 경건, 거
기서 한단 높여서 기독교적, 복음적 경 건으로 승화시키는 장면이 오 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지 금까지 경건했습니다. 그것 만 가지고는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런고로 높은 차 원의
경건을 주시는데 그래서 저 시몬, 욥바에 있는 시몬을 데려 오라 그럽니다. 그 시 몬이 머물
렀다는 집이 지금도 바닷가에 있습니다. 가보면 거기 있는데 제가 한 번 예루 살렘에 갔을
때 보고 한참 서 서 생각했습니다만
"그 집에 가서 베드로를 청해 오라"
그 래요. 청해옵니다. 오늘 본 문에 보니깐 이건 순종이지 요. 주시는 말씀에 대한 순 종, 이
것이 경건이요. 그 다 음에는 영접하는 모습을 보세 요. 온 집으로 더불어 꿇어 엎드리고 얼
마나 정성껏 절을 했는지. 베드로는 갈릴리 어 부입니다. 초라한 그저 덥수 부리 영감입니
다. 그런데 고 넬료는 군인입니다. 같이 있 는 사람들도 장교입니다. 훈 장을 단 로마 군인,
화려한 군인인데 다 엎드려 절을 하 는데 얼마나 간절하게 엎드렸 던 간에 원래 '부르스 쿠
내 오'라고 하는 헬라어는 '발에 입 맞춘다.'는 뜻입니다. 어 떻게나 간절히 절을 했던지 베
드로가 절하는 사람을 일으 키면서
"나도 사람이요."
그 럽니다. 그러니까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한 것이 아니라 신에게 하는 절처럼 신에게 하
는 것을 한 거죠.
"나도 사 람이요. 일어나세요."
얼마 나 진실하고 경건했던가를 말 해주는 겁니다. 그뿐아니라 모두가 함께 얘기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말씀을 듣기 위하여 우리가 다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
습니다. 베드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니요. 그는 신 앙적으로 하나님 앞에 있습니 다."라고 대
답합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을 합 니다. 아랍말로 설교했겠지 만 듣는 사람은
방언의 역사 가 나타나서 각각 자기말로 듣게 됩니다. 다 알아들어요.
"방언을 하더라"
그랬어요. 이래서 큰 역사가 나타납니 다. 저는 늘 이 장면을 소중 히 여깁니다. 베드로라는
사 람을 본 게 아니요. 하나님 이 보내신 베드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저 한 것
뿐이에요. 여기에 경건의 모습이 있습니다. 예배의 경 건, 예배의 경건이 있었어요. 말씀을
듣는 경건이 있었습니 다. 큰 역사가 나타나고 마 침내 고넬료의 가족이 다 세 례를 받습니
다. 전설대로 보 면 이들은 로마로 돌아가서, 로마에 가서 교회를 세우는 하나의 선교적 사
명을 감당하 는 일꾼이 됩니다. 너무너무 귀한 일 아닙니까? 그는 귀 족 의식이나 계급 의
식이나 자존심이나 자기 명예를 다 포기하고 그런 경건,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을 영접하면
서 하나님 앞에 있는 그 말씀을 듣는 복음적 경건이 있었기에 그와같이 하나님 앞에 소중하
게 쓰여지는 이방사람으로서 온 가족이 구원을 받는 첫 번 열매가 됩니다. 이 놀라운 경건
의 능력을 우리도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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