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자료 18,185편 ◑/자료 16,731편

사명대로 살아가기2 (사도행전 20:24)

by 【고동엽】 2022. 7. 18.
 
전체 목록가기 사명 목록 돌아가기
   

 

사명대로 살아가기2    (사도행전 20:24)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저녁 초여름 호반광장은 아름다웠습니다. 장마소식으로 마음을 졸였으나 비 온 뒤 맑은 하늘, 하얀 구름, 시원한 바람, 더 이상 좋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광장을 가득 메운 청소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조금 더 많이 왔더라면 복잡했을 것이고 더 적게 왔더라면 아쉬웠을 뻔 했습니다. 아주 완벽하게 날씨도 인원도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동원해 주셨습니다. 기도와 동원에 참여해 주신 것을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올 들어서 계속 21세기를 살아가는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들을 몇 달 걸쳐 다루어 왔습니다. 우리 모두는 함께 살아갈 사람들이 필요하고 따라 살아갈 원리가 있어야 합니다. 실천할 신앙고백이 필요하다는 것을 살핀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성공적인 삶을 사는데 어느 세기든 꼭 필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이번 주일 우리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살펴온 21세기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시리즈를 마감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다룰 주제는 “사명대로 살아가기 2”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공동사명에 대해서 살폈습니다. 오늘 우리는 왜 좋은 소식을 이웃과 더불어 나누어야 하는지 그 좋은 소식의 내용은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왜 우리가 그들에게 좋은 소식을 나누어야 하는지 그 동기가 어떠해야 할까요?

한 마디로 그 동기는 사랑 때문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 그리고 이웃을 향한 사랑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4) 그리스도의 그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결코 만드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저 사람 왜 태어났을까 부터 시작해서 왜 저 사람은 내 주위에서 날 성가시게 할까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런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비열한 인생조차도 하나님은 사랑하셨기에 창조하셨고 사랑하기에 지금도 세상에 두셨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우리가 배제시켜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돌보시는 사람을 우리가 따돌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면 그것이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징검다리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비난해서 야단쳐서 항의해서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촛불시위는 보기는 아름답지만 근본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오직 사람은 사랑으로만 변화합니다. 한 번에 한 사람씩 사랑을 받을 때에 사람은 변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우리 곁에 두신 것은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나누는 사랑, 우리가 꿈꾸는 세상으로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필 여러분의 이웃에 사는 것은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 받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그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은 지금 3층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몫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해야 할 몫입니다.


부담스럽고 두렵다고요?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요”(딤후 1:7) 예, 그렇습니다. 성령께서는 부담을 여러분에게 팍팍 안기는 분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사람의 이목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지혜롭고 담대하며 때로는 절제하고 사랑과 기쁨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두려움을 물리치는 것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두려움의 해독제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자녀들이 불타는 건물 속에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냥 바라보고만 있진 않을 것입니다. 그 불길이 아무리 맹렬해도 아이들을 구하려고 뛰어들 것입니다. 다치든 말든 상관치 아니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미쳤냐?”고 해도 우린 신경 쓰지 아니할 것입니다.


뛰어들어 아이를 건져내다가 화상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대단한 용기라고 칭찬할 것입니다. 하지만 용감해서도 아니고 미쳐서도 아닙니다. 불속에서 아이를 구한 것은 부모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는 도다”


사랑하면 전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여러분의 친구를 사랑할 때에 여러분이 만나서 행복해 하는 그 주님에 대해서 말해야만 합니다. 부모님을 사랑한다면, 형제를 사랑한다면 자녀를 사랑한다면 우린 말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면 복음을 전할 용기를 가질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기쁜 소식을 감추려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런 좋은 소식은 세상 어떤 곳에서도 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여러분 곁에 배치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해서 그러므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빌 하이벨스의 책, ‘사랑하면 전도합니다’란 책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전도하는 것 보면 대책이 없다고. 상대방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꾼 꿈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데 처음 듣는 사람들한테는 아주 거북함을 일으킬만한 그런 이야기를 자기는 은혜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그런 사람들이 한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미국에도 꽉 있더라고요.


여러분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의 모범이 되십시오.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의 허점을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소에는 잘합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피곤하면 조금 안될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사단은 딱 그때 우리의 모습을 우리 친구한테 보여주면서 하는 말이 “자 봐, 너 저래도 예수 믿을래?”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니까요. 그래서 우리의 삶의 모습이 때로는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 가는 길을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언제나 면밀하게 관찰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상사도 지켜보고 여러분의 동료도 지켜보고 여러분의 수하에 있는 사람들도 살펴보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친척들도 우리를 살펴보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은 그들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여러분이 나누는 대화, 여러분이 하는 행동, 여러분이 내 뱉는 말이 영원을 결정하는 의미를 지니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너 왜 예수 안 믿느냐?”하고 하나님이 물으면 “하나님, 저 사람 때문에요.”라고 우릴 가리키면 우리가 얼마나 책임이 큽니까?


우리가 이 달 들어서 다루는 주제는 사람들의 생사가 달려있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때로는 피곤하고 지칠 수 있습니다. 지쳐도 우리는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의 말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을 갈라놓는다고 생각하면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는 복음을 말로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봄, 가을뿐 아니라 여름 겨울에도 새 생명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 제주도 새 생명훈련’을 신청하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제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깨달았는데요. 이 여름 제주도 신청자들에게는 덤으로 주어지는 축복이 있더라고요. 보통 부부세미나를 하면 부부당 10만원, 15만원씩 받아요. 그것도 교회가 보조하는 부분이 있어서 본인이 반 정도 부담하는 겁니다. 그런데 제주도 새 생명 가는 부부한테는 한 푼 추가로 안 받더라고요. 오늘 마지막 기회입니다.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전도할 때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줘야 됩니다. 동시에 말을 해야 됩니다. “너 좀 다르다. 왜 그러니?”하고 물어볼 때 답하는 게 그게 전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감동을 받지 않은 정도가 아니고 우리가 사는 것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려 왔어요. 그런데 내가 4영리를 뽑아든다고 그 사람이 손들고 항복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저 사람은 나하고 달라. 저 사람은 뭔가 다른 것을 가지고 있어. 무얼까? 그 비결이 무얼까?” 이렇게 궁금해서 올 때에 “4영리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이렇게 나와야 이게 통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말로 전하는 전도에 대해서 그동안 20년 가까운 세월을 강조해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삶으로 나타내는 사랑에 대해서 좀 더 보안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삶이 그럴듯하니까 삶으로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들은 집에 가서 좋아하는 연속극 볼 때 볼륨 다 낮춰놓고 봐요.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잖아요. 볼륨 다 낮춰놓고 그림만 보라고. 그게 의미가 통하는지 소리를 들어야 되요. 그림과 함께 소리를 들어야 의미가 제대로 전달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셔야 됩니다. 그래서 말로 어떻게 전할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가 훈련시키는 것이 새 생명 전도훈련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완벽한 삶을 사셨습니다. 누가 예수님보다 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데 완벽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분은 분명한 말로 복음에 대해서, 천국에 대해서, 영생에 대해서 전하셨습니다. 비디오 시스템과 오디오 시스템을 동시에 동원해야 제대로 된 전도가 되는 겁니다.


사람들을 하나님의 가족으로 초대하는 것은 우리가 감당할 고귀한 사명입니다. 이번부터 구역별로 그 사역을 펼치고 있습니다. 구역별 VIP를 정하셨습니까? 여러분 각자가 정해놓은 VIP 가운데서 이야기를 해 보면 구역에 함께 참석해 빈자리에 구역의 VIP에 가장 쉽게 앉을 수 있는 세 사람을 고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각자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데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그걸 나누는 것입니다. 했는지 안했는지 구역 모일 때마다 다시 점검하고 새로운 전략을 세우고 그렇게 하면 세상은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동원하고 참여하니까 어젯밤엔 정말 아름다운 호반의 경치였습니다. 함께 행동하면 세상은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여러분 구역에서는 누가 우선순위 1, 2, 3번인지 정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가 무엇을 그 사람에게 해야 될 것인지를 나누어야 하고 그리고 모일 때마다 위해서 기도하면서 지난 주일을 점검하고 새로운 전략을 세우고 우리가 움직이면 세상은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울산은 교회가 움직이면 10만 청소년들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10만 청소년 가운데서 10분의 1, 하나님께서 어젯밤에 충분히 보내주신 것 같습니다. 구역별로 VIP 세 사람을 선정 하십시오. 그러면, 그 세 사람이 나오게만 되면 하나님이 순종하는 자에게 어떤 축복을 주시는지 우리가 경함하게 될 것입니다.
  

빈 방석에 그분들이 앉게 되는 그 순간까지 기도하며 돌보며 사랑하는 일을 중단하지 마십시오. 처음에는 그분들이 여러분의 빈 방석에 앉겠지요. 그러나 세월과 함께 주일날 나올 것 같습니다. 그분들을 위해서 어떤 말씀을 준비해야 될까? 저는 6월 즈음해서 부터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날 동안에 필생의 사명이 있습니다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사명을 두고 구역별로 함께 기도하고 주간마다 전략을 세우고 검토하는 복된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삶에 모시면 세 가지 놀라운 축복이 찾아오게 됩니다. 여러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주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먼저는 과거를 사함 받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오는 유익입니다. 우리가 행한 것, 말한 것, 생각한 것, 상상한 것을 영화처럼 쫙 펼쳐놓게 되면 보고 앉아있기 힘들 거예요. 황당하고 당혹해 할 것입니다. 전들 예외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아무도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마다 실수와 허물이 있습니다. 감추어 놓은 해골 같은 더러운 것들이 우리에겐 다 있습니다. 정말 그 일만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 말은 내 입으로 내뱉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가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네 대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너의 모든 과거를 용서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새로운 삶을 펼쳐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정말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을 다 지우시고 아름다운 것만 담을 수 있는 새로운 테이프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깨끗한 양심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소망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삶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둘째로 현재를 돌봐주시고 새로운 삶의 목적을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개인적으로 경험해야 주님이 나를 위해서 가지신 놀라운 계획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막연한 사람은 삶도 막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만드셨기에, 목적을 가지고 여러분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찾아보려고 살펴보지만 스스로 답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의식세계 밑바닥까지 내려다보지만 거기에 여러분의 진정한 자아가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만나기까지는 2%가 부족하다는 거 아십니까?


"뭔가 내 인생에 없는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으로만이 채워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살도록 의도되지 않았습니다. 자신만을 위해서 살면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예수 없이 공부 잘할 수 있어요. 예수 없이도 직장생활 잘 할 수 있다니까요. 예수 없이도 진급할 수 있다니까요. 예수 없이도 대한민국 탑 10에 속할 수 있다니까요. 그러나 예수님 만나지 않고는 결코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야! 이게 사는 거구나.”하고 고백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옷을 챙겨 입고 학교도 가고 직장도 갈 수 있습니다. 하는 일마치고 퇴근길을 통해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저녁을 먹고 앉아서 텔레비전 보면서 아무짝에도 의미 없는 코미디 프로 보면서 웃고 시간 보내다가 하품나면 끄고 잘 수 있습니다. 다음날 또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다음 날 또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겠지요. 가끔가다 휴가도 2박3일 갈 수 있습니다. 오붓하게 가족끼리 갈 수도 있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왁자지껄하게 떠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에 느끼지 못했던 만족을 거기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삶은 그 보다 훨씬 더 고상한 것을 위해서 지어졌다는 것을 아셔야만 합니다. 직장생활하고 돈 벌고 그러고 살다가 늙어서 병들고 죽도록 아무 의미 없이 부들부들 떨면서 마지막을 보내도록 그렇게 하나님은 인생을 짓지 아니했습니다.
  

사람은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생애를 위한 목적과 사명을 주셨습니다. 주님을 만나지 않고는 그것을 결코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약속하신 것이 또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미래를 향한 계획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을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어떻게 보면 여러분을 위한 하나님의 은퇴계획이라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세우신 계획으로부터 결코 은퇴하시지 아니하십니다. 천국에서는 할 일이 더욱 많을 것입니다. 좋은 일들이 더욱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목사님은 천국 가봤어요?” 안 가봤어요. 저 안 가봤습니다. 그러나 천국을 밀쳐놓고라도 나는 예수 믿는 것이 의미 있다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 믿고 내 과거의 모든 좌와 허물에서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온 세상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의 피로 날 용서해 주셨다고 말씀해 주신 것을 저는 알기 때문입니다. 사죄함을 받은 평안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어제 아침에 인도네시아에서 돌아와서 어제 저녁에 틴즈 페스티벌하고 목사님 안 피곤합니까?” 그러더라고요. 의미가 있으면 목적이 있는 삶을 살면 피곤한 걸 모릅니다. 왜 피곤하지 않겠습니까마는 피곤한 것을 다 잊고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그 거처를 아름다운 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천국 가셨다고 말하네요. 거기는, 천국은요 “아휴, 못살겠어, 못 죽어서 살지.” 그런 사람들은 아무도 천국 못 간다는 사실 아십니까? 여기 70, 80년 세월도 못 죽어서 산다고 그렇게 지겨워하는데 천국 갖다놓으면 매우 지겨워집니다. 천국 가면 예배시간 1시간이 지겨운 사람들에게는 천국은 절망입니다. 예배시간은 끝나지만 천국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 아십니까? 여러분 갈 수는 있지만 나올 수 있는 길은 없거든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여기에서 예배하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만이 천국으로 갈 것이므로 가서 고민할 일은 없을 겁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성경은 별반 설명이 없지 않습니까. 기껏 우리에게 아는 것이 아무도 상상해 본 적이 없고 아무도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행복해 하며 살고 있습니다. 제 아내와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고 있고, 자녀들과 더블어서도 행복한 삶을 살고,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어머니, 아내 며느리 보면서, 며느리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니까 참 신기하더라고요. 그래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삶을 저는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건 맛보기에 지나지 않고 진짜 내가 가서 즐길 곳은 저기라는 것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우린 선행을 통해 거기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을 통해서 가는 것 아닙니다. 거기는 완벽한 곳입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생애를 위한 목적과 사명을 주셨습니다. 주님을 만나지 않고는 그것을 결코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티켓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그 분의 포인트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오셔서 완벽한 삶을 사신 그분의 플러스 포인트가 있어야 천국 간다는 거 아십니까? 예수님을 믿어야만 천국 갈 수 있습니다. 죄의 값은 죽음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공짜 선물을 주셨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천국 가는 아름다운 초여름 밤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나라를 예비하셨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어떤 축복을 받는다고요? 예수 앞에 나가면 모든 죄 사함 얻습니다. 사함을 얻으면 마음에 평안이 있고 기쁨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하늘 아버지와 더불어서 대화가 시작됩니다. 그러면 매사 감사한 것 밖에 없습니다. 아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과거의 죄를 청산해 주십니다. 현재를 살아갈 힘을 공급받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고 나를 위하여 자기 목을 버리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현재를 노래하면서 살아갈 뿐만 아니라 과거의 죄를 사함 받고 새 힘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것은 다만 맏배기에 지나지 않는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저는 여기 살면서 피곤을 느끼지 않습니다. 저는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나와 함께 천국에 가야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피곤하다고 자고만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발걸음이 어제 같은 아름다운 밤을 만들었다고 하면 이 주간도 여러분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찾아서 한 걸음 한 걸음 옮겨보십시오. 하나님은 또 한 번 우리의 구역들에 기적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아멘.

출처/정근두 목사 설교 중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