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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시작이다! (욘 2;4-10)
감사절입니다.
일년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던 초막절이 감사절의 뿌리입니다.
감사가 점점 메말라 가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 먼저 드리고 시작하려고 합니다. 조그만 마을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이 사람들이 얼마나 감사할 줄 아는 지 감사를 실험하여 보기로 하였습니다. 방법은 매일 한 집에 10,000원씩 넣어 주면서 두 달 간 반응을 실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날 마을을 돌면서 한 집에 10,000원씩을 넣어 주었습니다. 첫 반응이 나왔습니다.
<이상한 사람이다.> 그리고 한 명도 10,000원을 도로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둘 째 날도, 셋 째 날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고마운 사람이다.> 이런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동네 사람들이 모이면 10,000원을 돌리는 사람이야기였습니다. 화제 거리가 되었습니다.
일 주일이 지났습니다. 다 그렇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미리 대기하고 있다 10,000원을 받으면서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웃 마을의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 사람 왜 우리 마을에는 10,000원을 안 주냐?>
한 달이 지났습니다.
사람들은 고마워 하지 않기 시작하았습니다. 당연히 받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두 달 동안 그렇게 하였습니다.
마지막 날은 10,000원을 주지 않고 거냥 마을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오늘은 왜 안 주는 거요?>
어떤 사람은 돈을 주지 않는다고 화를 부렸습니다.
<오늘 10,000원을 받아 쓸 데가 있는 데 왜 거냥 지나가는 거요?>
그런데 두 세명이 말했습니다.
<그 동안 불경기에 계속 돈을 주시더니 돈이 떨어졌군요.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많은 선지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물들과 관계가 많습니다. 엘리야는 까마귀를 생각나게 합니다. 다니엘은 사자를 떠오르게 합니다. 베드로는 닭을 기억나게 합니다. 아론은 금송아지를 연상하게 합니다. 아담은 뱀을 기억나게 합니다. 그러나 요나하면 고래가 연상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성을 구원시키고 싶으셔서 요나를 선지자로 파송하였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과거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니느웨를 구원시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스로 도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시는 분이시기에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는 사람은 거냥 두시지 않으십니다.
누가 하나님의 손길을 벗어 날 수 있겠습니까?
도망가는 요나가 탄 배는 파도에 침몰할 것같이 되었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원인없는 결과가 없으니 반드시 누군가 죄인이 이 곳에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까닭없는 저주는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제비를 뽑아서 죄인을 가려내기로 하였습니다. 제비를 뽑았습니다. 요나가 뽑혔습니다. 요나는 바다에 던져지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바다로 던지자 말자즉 고래가 요나를 삼키고 말았습니다. 이제 요나는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요나는 감사하였습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나이다.>
요나는 고래뱃속에서 감사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랬더니 요나는 감사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 감사는 여유의 시작입니다.
고래는 무엇을 먹든지 3시간 내지 4시간이면 모두를 소화시키는 동물입니다. 그 속에서 요나는 3일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3일간 무덤에 계신 것을 요나가 고래뱃속에 계신 것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무덤과 같은 그 곳에서 요나는 감사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여유가 마음에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요나의 여유있는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4-6)
얼마나 여유있는 말입니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나는 그런 사망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구덩이에서 건져 주실 것을 믿는 여유를 가졌습니다. 감사는 여유를 만들어 내는 <여유 제조기>입니다.
나이가 들어 가니까 머리칼이 자꾸만 빠집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내 얼굴을 볼 수 있지만 나만 내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4인 4색으로 TV에서 내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머리가 많이 빠져있음을 나는 보고 느낍니다.
<내가 이 교회에 36살에 왔는 데 세월이 많이 지났구나!>
그 동안에 손녀도 생겼습니다. 손녀 세아가 내 머리를 만지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여기도 이마고 여기도 이마야!> 이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이마가 둘입니다. 아직 뚜렷한 대머리는 아니지만 대머리가 되어 가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대머리 남자가 감사할 조건 5가지를 써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머리가 거의 다 빠지고 몇 개 안 남은 대머리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감사하다.
1. 이발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아서 감사하다.
2. 물자가 절약되어 감사하다. 샴프나 비누가 적게 들어 가서 감사하다.
3. 하나님이 나를 예쁘다고 쓰다듬어 주신 증거라고 생각하니 감사하다.
4. 하나님을 골치아프게 만들지 않을 것이니 감사하다. 하나님은 머리털까지 세시는 분이신 데 내 머리는 세기가 편할 것이니 감사하다.
5. 여자들은 대머리가 없으니 여자들이 나를 볼 때마다 감사하게 되니까 감사하다.>
이런 글을 보니까 머리가 좀 빠지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탈무드 이야기입니다.
두 친구가 나란히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회창하였습니다. 길가에는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습니다. 하늘에서는 새들이 날고 있었습니다. 들판에는 소와 양들이 풀을 한가하게 뜯고 있었습니다.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야! 정말 아름답다. 하나님은 위대한 창조주시다. 벌레 하나도 하나님이 세밀하게 창조하셨지. 생각해 봐! 저기 소도 처음에는 작은 송아지였지. 저 새들도 알속에서 나왔지.>
같이 걷던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래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신 분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이해하지 못 할 것이 하나 있어.> <무엇인 데?>
<소는 몸집이 크니까 먹을 것이 많이 필요해. 새는 몸집이 작으니까 조금만 먹어도 돼. 그런데 새에게는 하나님이 날개를 주셔서 온 천지를 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 먹게 하시고, 소에게는 왜 날개를 안 주셔서 주변에 있는 것만 먹게 하셨을 가? 하나님은 이상해.> 그 때 새 한 마리가 머리위를 날라가더니 똥을 쌌습니다. 그 사람의 이마에 똥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 때 그 친구가 탄성을 올리며 말했습니다.
<아! 알겠다. 이제야 알겠다.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나님의 뜻을 알겠다. 감사하다.>
그리고 똥을 닦았습니다.
만일 소가 날라다며 똥을 쌌으면 큰 일 난뻔하였다는 말입니다. 감사하면 여유가 있습니다.
또 탈무드는 말하고 있습니다.
<한 쪽 다리가 부러졌으면 두 다리가 부라지지 않은 것을 감사하십시오. 두 다리가 부러졌으면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을 감사하십시오. 목이 부러졌으면 더 이상 고민할 것이 없음을 감사하십시오.>
스펄지온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촛 불을 감사하면 하나님은 별빛을 주시고, 별빛을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감사하면 천국빛을 주신다.> 감사하면 여유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 많은 것은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생깁니다.
무엇이든지 불평하면 여유가 사라지고, 감사하면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감사하는 습관은 성도들에게 주어진 큰 선물입니다.
2. 감사는 새 출발의 시작입니다.
요나는 숨막히는 속에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쥐를 독안에 잡아 넣고 빛 한 점 안 들어가게 막았더니 절망 가운데 18시간만에 죽어 버렸습니다. 아직 산소도 충분하고 죽을 이유가 없었는 데 죽었습니다. 고래뱃속은 깜깜한 독안 보다 더 지옥입니다. 소화제가 뱃속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위가 계속 움직이고 있습니다. 고래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못 하는 곳입니다. 흔들리는 배를 타고 있다고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런 속에서도 감사를 찾으니까 요나는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6)
그래서 요나는 다시 니느웨성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여 니느웨 백성들 전체를 살릴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감사는 새 출발의 출발점을 제공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군대 내무반에 믿음 좋은 병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믿는 것을 싫어한 상관이 군화를 벗어서 오른 뺨을 후려치면서 말했습니다.
<너희 기독교인들은 오른뺨을 치면 왼쪽 뺨도 내민다면서?>
눈물이 활칵 쏟아졌습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였습니다. 계급장을 띠고 한번 대들고 싶은 욕망이 머리 끝까지 치밀었습니다. 그러나 그 병사는 꾹 참고 이렇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두 대 치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 저를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 다음 날 아침 그 상관이 눈을 떴을 때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부하의 오른뺨을 쳤던 구두가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누가 그 구두를 닦아 놓았는 지를 알아 보았습니다. 바로 그 구두로 뺨을 맞았던 사람이 그 구두를 반질반빌하게 닦아 놓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감사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합니다. 새 출발하게 합니다.
죤 자웻이라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의 핏속에는 세 가지 요소가 나타난다고 말했습니다. 1. 예방제,
2. 해독제,
3. 방부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감사는 어떤 역경도 다 해독시켜주어서 새 출발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지난 주간 일본에 다녀 왔습니다. 니꼬에서 한국 선교사님들 70명 정도를 모시고 성막 쎄미나 231기를 마치고 돌아 왔습니다. 약 6개월간 준비한 쎄미나였습니다. 12 박스 교재를 보내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기독교인이 1% 밖에 안 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계 강국으로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세계 강대국중에 예수 안 믿는 데 그렇게 축복받은 나라는 일본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일본에 들어간 지 금년이 꼭 150년입니다.
과거 일본은 기독교가 놀랍게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이에이아스가 기독교인들을 모조리 잡아 죽였습니다.
나가사키는 순교자의 무덤입니다.
죽인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1) 기독교인들은 자기가 독재 정치하는 데 제일 방해자였습니다. 정적을 닥치는 대로 죽여야 하는 데 기독교인들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바르게 살려고 애썼기 때문이고 성경에 어긋난 명령은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도쿠가와이에이아스를 둘러싸고 있는 이들이 중들이었습니다. 이들이 기독교 말살정책을 썼습니다. 기독교를 모함하였습니다.
<거냥 두면 큰 일 납니다.>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3) 기독교 잘못도 있습니다. 당시 스페인 선교사와 포르투갈 선교사가 와서 경쟁적으로 무역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서로 자기 나라 이익을 위하여 경쟁하며 모함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엄청난 순교자의 피의 덕분으로 하나님이 보상하여 강대국이 되게 하였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연히 일본을 축복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은 보수적인 나라입니다.
60년 동안 정권이 한 정당입니다. 60년 동안 헌법을 한번도 바꾼 적이 없는 나라입니다.
전도가 힘든 나라입니다. 3년에 한명 전도하면 실적이 좋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일본에 선교사가 모두 1600명입니다. 그 중에 1100명이 한국 선교사입니다. 다른 나라 선교사들은 떠나고 있습니다. 떠나며 두 마디를 하고 있습니다.
1. 일본 사람들은 모르겠다.
2. 아무래도 안 된다.
그러나 한국 선교사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된다. 하나님이 이 곳으로 우리를 보내 주신 것에 감사한다. 반드시 이룰 것이다.>
그래서 한국 선교사들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선교사로 덮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역시 한국인입니다.
감사하면 새 출발할 수 있습니다.
3. 감사는 기적의 시작입니다.
요나가 3일간 고래뱃속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3일간 고래뱃속에 있었어도 감사를 알고 났을 대 고래뱃속에서 내보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감사하였다는 말씀 바로 뒤에 고래가 요나를 육지에 토하여 놓았다고 즉각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여호와께서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9-10)
감사하니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낳습니다.
세계 2차 대전 후에 독일은 지금 우리나라처럼 학교에서 점심을 먹지 못 하는 아이들이 늘어 났습니다.
이 때 어느 시골 작은 학교에서 생긴 일입니다.
그 학교에 점심을 못 먹는 아이들이 20명 가량되었습니다. 그 마을에 살고 있는 부자가 점심때면 빵 20개 정도를 싸들고 가서 아이들에게 주곤 하였습니다. 그 때마다 아이들은 서로 큰 것을 차지 하려고 아우성쳤습니다. 재빨리 와서 큰 것을 요령껏 집어 들고 빨리 자기만의 공간으로 살아지는 것을 지혜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달랐습니다. 그레첸이라는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먼저 집어가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뒤에서 기다리다가 남아 있는 가장 작은 한 개를 여유있게 집어 들고는 그 부자에게 인사하였습니다.
<먹을 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인사하고는 사라졌습니다.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레첸은 다른 아이들이 안 집어간 가장 작은 빵을 들고 부자에게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가지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있는 어머니가 점심을 못 먹으니 같이 먹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집으로 가지고 와서 빵을 자르고는 어머니와 그레첸은 놀랐습니다. 그 빵속에서 비싼 은화 6개가 나온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돈은 우리 것이 아니라 그 할아버지가 빵을 만들다가 잊어버린 은화일 것이다. 이렇게 비싼 것이 여기에 들어 있을 리가 없다. 빨리 돌려 드려라.>
아들은 은화를 들고 부자 할아버지에게 달렸습니다. 그리고 사정을 이야기 하고 돌려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말했습니다.
<이 은화는 내 것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나는 20명의 아이들중에 감사할 줄 아는 네게 선물로 주려고 일부터 넣은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네게 주시는 보상이다.>
하나님은 감사를 아는 사람에게 기적을 주십니다. 감사는 기적을 일으키는 불씨임을 증명하여 주었습니다.
400 여년 전에 영국에 길빈이라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때 메리 여왕은 천주교인이었기 때문에 개신교를 핍박하였습니다. 길빈 목사는 복음을 증거하다가 체포되었습니다, 전도자들을 사정없이 죽일 때였습니다. 곧 죽을 것이 뻔하였습니다. 그런데 체포하여 가는 경찰과 함께 가면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경찰이 이상하여 물었습니다.
<곧 죽을 텐데 무엇이 감사하느냐?>
길빈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핍박을 받으면 장차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크니까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잡혀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큰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병원에 입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길빈 목사님은 또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쳐도 이 정도만 다친 것을 감사드렸습니다.>
그런데 완치되기 전에 메리여왕이 죽었습니다. 1558년 투옥되었던 이들이 모두 풀려 났습니다. 길빈 목사님도 석방되었습니다. 그는 이 때 이런 감사 기도를 하였습니다.
<나는 그 때 잡혀가서 죽더라도 순교하는 것이 가장 상급이 클 것을 알고 감사기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나를 넘어져서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게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만일 내가 다치지 않고 런던에 갔더라면 즉시 사형당하였을 것입니다. 가다가 넘어져 병원에 입원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면 기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나가 감사하였다는 말씀과 고래가 요나를 토하였다는 말고 붙어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시작입니다.
1. 여유가 시작됩니다.
2. 새 출발이 시작됩니다.
3. 기적이 시작됩니다.
데오도로 에프(Theodore Epp) 목사님은 요나에 대하여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 물고기는 얼마나 위대한가? 이 물고기는 요나에게 있어서 가장 훌륭한 신학대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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