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로마서 8:26-30
제목: 성도의 탄식에 공명하는 성령의 탄식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아멘! 오늘 ‘성령’이라고 번역된 이 구절이 있죠? 요 구절을 ‘영’이라고 번역하시는 것이 더 좋아요. 이렇게 성령이라고 번역하니까 은혜롭기는 한데 헬라어 원전을 보면은 여기가 성령이란 말은 ‘토 프뉴마 하기오스’ 이거든요. 성령은. 성령은 항상 ‘하기오스’라는 말이 붙어 있어요. 거룩한 영. Holy-Spirit 이라고 붙어 있거든요, Holy가. 그런데 여기는 성령이란 말로 번역된 이 말은 전부 다 영으로 ‘프뉴마’로 되어 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뭐라고 생각하느냐 하면 8장 9절, 10절 보십시오.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요 9절, 10절 때문에 우리가 26절에 나오는 이 ‘영’을 ‘성령’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실마리는 있는 거예요. 있긴 있어요. 그런데 정확하게 문법적으로 말하면은 8장 26절 이하에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인간의 영이라고 봐야 돼요. 성도의 영.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하나님의 영에 이끌림을 받고 있는 사람의 영이에요. 성도의 영. 그렇게 해야만 이 번역이, 이 뜻이 잘 통합니다. 자, 8장 9절, 10절입니다. 자, 하나님의 영에 붙들린 성도가 어떻게 되는가 볼까요. 9절 볼까요.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아, 이 말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여러분은 단순히 육신적 존재가 아니라 영이 됩니다. 영적 존재가 됩니다. 영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10절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있는 것이니라
아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 죽을 몸은 더 이상 살았다고 말 할 수 없을 만큼 약화되고 아주, 아주 쇄약해집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면은 우리의 육신의 소욕, 육신의 하등 욕망들은 약화되고 비존재처럼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그때는 뭐가 살아나냐 하면은 내가 육신의 요구대로 살았을 때 갈라디아서 5장 17절이 말한 것처럼 육신의 소욕을 좇을 때는 비활성화 되어 있고 수면 상태에 있고, 동면 상태에 있던 영이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이 바로 오늘 8장 26절에 말하는 이 영입니다. 그러니까 8장 26절에 말하는 이 영은 바로 다시 살아난 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살려내신 우리 영입니다. 그러니까 엄격하게 말해서 8장 26절에 나오는 이 영은 성령이 아니라 8장 9절과 10절의 논리에 따라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 안에 살려 놓은 영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는 갈라디아서 5장 17절부터 19절이 말하는 그 하등 욕망, 열등한 욕망, 우리를 비인간화시키는 그런, 과잉된 그런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면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우리는 몸을 가진 영입니다. 몸을 가지고 있지만 몸의 사욕에 복종하는 존재가 아니라 영의 예민한 요구에 호응하는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영이 됩니다. 자, 그러면 8장 9절과 10절의 논리를 따라서 이렇게 읽으면 됩니다. 어떻게 읽어야 되냐 하면은 이렇게요.
이와 같이 영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영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도대체 이 영과, 영과 우리가 차이가 뭐예요? 우리가 영이 되는데…….’ 그러니까 이 영이 우리를 위해서 간구한다고 하니까 이 영은 성령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번역을 성령이라고 한 거예요. 그러나 문법적으로 말해서는 이게 성령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셔서 살려 놓은 우리의 영! 다시 말해서 성령에 붙들린 우리의 영이라 할 수 있죠. 그러니까 성령에 붙들린 우리 영이 몸의 속량을 기다리면서 애쓰고 분투하는 우리를 도와준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결국 성령에 붙들린 영이 우리를 도와주니까 그 영도 우리의 영이거든요. 성령이 돕는 거나 마찬가지이지요. 그러니까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도와준다. 그 말은 틀린 말은 아닌데 문법적으로, 구문론적으로 말하면은 이것을 ‘성령’으로 번역하는 것보다 ‘영’으로 번역하는 게 훨씬 옳다는 겁니다. 그래야 27절이 말이 됩니다. 마음을 살피는 이가, 마음을 살피시는 이 하나님이 영의 생각을 아시나니 자, 영의 생각! 8장 27절 이 보세요. 하수진님? 8장 5절 좀 읽어주십시오. 5절, 6절요.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아~ 여기 보세요.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나오지요? 정확하게 8장 27절이 말하는 성령의 생각이 영의 생각입니다. 이게. 8장 6절에 말하는 이 영의 생각이 8장 27절에 말하는 성령의 생각 그러니까 ‘하나님이 성령의 생각을 안다’ 말이 안 되잖아요. 하나님은, 하나님이 자기를 안다는 말인데 그것은 말이 안 되죠. 하나님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우리가 영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에 붙들린 우리 영은 하나님 뜻대로 성도를 구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에 붙들린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도 공동체, 자기가 속한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는 중보 기도적 존재로 거듭난다. 아~하 됐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성도를 위해 간구하는 우리가 속하는 예배 공동체, 우주적 공교회를 위해서 중보 기도하는 영적인 신령한 신자로 거듭 난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야 말이 됩니다. 그래야 전체적으로 정확한 뜻이 그런 뜻입니다. 마음을 살피는 이가 영의 생각을 즉 로마서 8장 6절이 말하는 영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영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자기가 속한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중보 기도합니다. 간구합니다. 아~하,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리스도가 우리를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공감하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이때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 로마서 8장 26절 이것, 우리 한 번만 더 읽어주십시오. 우리 강보선 교우님 한 번만 더 읽어주십시오. 8장 23절이요. 8장 23절 한 번 읽어주십시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요때 이 성령의 열매 이것도 영의 열매입니다. 영의 열매. 그러니까 뭐냐 하면은 우리가 그리스도가 살려 놓으신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적 존재가 되었고 육체의 하등 욕망을 능히 제압하는 존재가 되었는데 그렇게 됐는데도 아직까지 속량 받지 못하고 구원 받지 못한 세상 한 복판에 나아가게 되면은 구원 받지 못한 자처럼 우리 몸은 아직도 죄의 식민지처럼 작동한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영의 열매를 맺는 우리도 속으로 탄식하며 몸의 속량을 기다리는 이 상태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돕는 것은 누구냐 하면은 하나님의 영과 공명하고 소통하는 영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영적 존재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영적 존재인 것을 알아야 된다는 말은 뭐냐 하면은 여러분 안에 되살려 놓은 영은 하나님을 향하여 갈구하고 찾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여 소통하려는 여러분의 영의 요구를 예민하게 들어야 만이 하나님과 영적 소통이 되고 우리는 영적 존재가 되고 영이 됩니다. 육체의 소욕에 얽매여서 일방적으로 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영의 열매를 맺은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성령의 처음 열매 아닙니다. 영의 열매 즉 영적으로 살아서 열매를 맺었고 상당히 기독교적 교양과 미덕을 획득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양자 될 것을 또한 소망합니다. 아직까지 몸의 속량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몸의 속량을 받지 못한 성도는 탄식을 합니다. 탄식을 합니다. 왜요? 이제 하나님을 향해서 되살아난 영이 우리를 하나님과 소통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우리를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만들고, 하나님을 닮아가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희망이 가까이 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세상의 완력은 너무나 더 세고 강하여서 내가 구원 받지 않은 자처럼 자꾸 내 구원 감격을 냉각시키고 뭔가 내가 구원 받지 못한 자처럼 나를 황량하게 만들고, 나를 고립시키고 나를 격리시킵니다. 그런데 로마서 8장 9절, 10절이 말하는 그리스도가 살리신 이 ‘영’이, 로마서 8장 6절이 말하는 그 ‘영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조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자꾸 자신도 모르게 간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영’ 그리스도가 살려 놓으신 로마서 8장 9절, 10절의 영, 로마서 8장 6절이 말하는 그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조응이 잘 돼서 내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는지 기도 제목의 아젠다와 긴급성, 우선순위 이런 것이 쫙 정해져서 자신도 모르게 성령을, 성도를 위해서 막 친히 간구하는 자가 됩니다. 여기서 친히 간구한다는 말은, 친히 간구한다는 말은 영입니다. 영. 그런데 로마서 8장 34절 번역 때문에, 34절 때문에 이것을 ‘친히 간구한다’ 그렇게 하니까 ‘친히 간구한다’ 이것을 아마 로마서 8장 34절 때문에 성령으로 번역을 해버렸습니다. 로마서 8장 34절 보겠습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아하~요, 로마서 8장 34절 때문에 앞에 있는 26절부터 전부 다 어, 성령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포괄적으로 틀린 말은 아닙니다 만은 영입니다.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성도의 예민한 필요를 알고 친히 간구하는 중보기도자로서 살게 됩니다. 자,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친히 성도를 위해서 간구하는 영이 된 신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냐 하면은 영이 된, 영의 열매를 받은 성도들이 무슨 일이 일어나냐 하면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아하~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생각과 소통하는 영의 사람들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여기서 중요합니다. 모든 것입니다. 모든 것. 이 말은 뭐냐 하면은 개별적인 사건 하나하나는 선이 아닙니다. 그런데 개별적 사건 하나하나는 선이 아닌데 그것을 다 합해보니까 선한 일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아주 중요한 영적 연금술과 같은 것인데요, 구리와 은과 아연과 이 청동을 섞었더니 금이 되는 것 연금술 뭐 이런 거잖아요? 그러니까 나한테 금이 될 만한 일이 아니라 굉장히 돌과 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합력하여 금이 되었다. 뭐 이런 것인데 개별적으로는 분명히 안 좋은 일입니다. 개별적인 일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안 좋은 일 1, 안 좋은 일 2, 안 좋은 일 3이 나타났는데 합해서 제일 마지막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음! 안 좋은 일입니다. 안 좋은 일 1이에요. 그 다음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 받아서 이스마엘 노예상에 팔려서 이집트 노예 시장으로 끌려감! 안 좋은 일 2입니다. 노예, 이집트 노예 시장으로 끌려간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당함! 안 좋은 일 3. 그 다음에 감옥에 갇힘! 안 좋은 일 4. 감옥에 갇힌 술 맡은 관원장이 끝내 자기를 기억해 주기로 약속해 놓고 망각한 채 기억나지 않게 함! 안 좋은 일 5. 이렇게 안 좋은 일을 연속으로 당했는데 마침내 이집트에 기근이 와서 파라오의 꿈에 흉흉한 악몽이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그때 갑자기 요셉이 입신양명을 합니다. 그러니까 안 좋은 일만 계속 당하다가 합력하여 온 세계 만민의 기근을 해결하는 위대한 총리로 거듭납니다. 아버지까지 만납니다. 형제까지 용서합니다. 그렇게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자, 이때 선은 뭘까요? 8장 29절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덧입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덧입는다는 말은 뭐죠? 상속자의 품격을 갖춘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의 품격을 갖춘다. 아마 이것이 참 여러분이 실감이 안 갈 것입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부러워합니까? 돈 많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부동산 여러 채 가지고 임대 소득을 몇 천만 원씩 올리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누가 마음씨가 착한 사람을 부러워합니까? 이 세계가 너무 타락했기 때문에 마음씨가 착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좋은 성품을 가진 아버지, 엄마를 둔 자녀를 부러워하지 않고 건물을 가진 아버지, 엄마를 부러워합니다. 시대가 너무 많이 타락했죠. 그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는 실감 안 갑니다.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는 상속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런데 문제는 뭡니까? 하나님은 부르신 이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이를 영화롭게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롭게 했다는 이 완료시제가 무색할 정도로 우리는 지금 아직 속량 받지 못한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기진매진하게 때때로 영적인 혈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참 존재의 모순이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는데 이렇게 영화롭게 해서 ‘죄 없다’고 선언하시고 ‘하나님의 친 백성 되었다’고 했는데 우리 주변에는, 우리를 에워싼 고소자들, 중상모략자들, 박해자들이 주변에 가득 널브러져 있습니다. ‘어찌 우리가 받은 선언에 비해서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이렇게 다르단 말입니까?’ 이렇게 탄식하는 겁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이렇게 크고 놀라운데 우리가 매일 아침 맞이하는 현실은 구원받지 못한 자의 황량한 현실처럼 느껴지니 이 얼마나 탄식이 일어납니까? 이 괴리감을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하시고 성령에 붙들린 우리 영은 또한 성도를 위하여 친히 간구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교우 여러분 오늘도, 오늘도 부디 탄식할지언정 낙담하지 마시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는 중보기도의 달인이 되게 하시옵시고 여러분에게 일어난 이 안 좋은 일들이 결국 합하여서 선을 이루는 놀라운 은혜가, 반전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아직도 성령 받지 못한 몸으로 탄식하며 살아가는 저희들에게 견딜힘을 주시고, 오래 참는 힘을 주셔서 끝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 가향교회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나서 다시 목사를 택해야 될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 세계는 좋지 않은 코로나 때문에 좋지 않고 불쾌한 이 불편한 창궐하는 바이러스 때문에 너무 어려운 일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님! 이 안 좋은 일들의 연속에 끝내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다고 고백할 수 있도록 하나님 저희들을 끝까지 지탱시켜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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