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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마음의 파수꾼(잠언 4:20-27)

by 【고동엽】 2023.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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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파수꾼(잠언 4:20-27)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어느 비오는 날 아침, 학교에 출근하기 위해 부지런히 차를 몰고 잠수교를 건널 때였습니다. 쏟아지는 비속에 우산도 쓰지 안은 채 노란 운전 기사복을 입은 사람이 몹시 다급한 듯 손을 흔들며 차 태워주기를 간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급한 길이긴 하였지만 비를 맞아가며 간청하는 그 분을 모른 척할 수 없어 차를 세워 태워드린 후 그 사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분은 영업용 택시 운전 기사인데 그만 차에 휘발유가 떨어져 잠수교 한가운데서 멎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유소로 휘발유를 사러 가는 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약간 어처구니 없어 '차가 멎게 되도록 몰랐느냐'고 짓궂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분은 다 떨어져 가는 줄은 알았지만 적어도 잠수교는 무사히 건너 주유소까지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각기 나름대로의 인격과 교양, 수양과 신앙 등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내 인생을 이끌고 가는 자동차의 휘발유와 같은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하고 방심했다가 뜻밖에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그만 당황하여 쓰러지고 마는 경우를 봅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각자의 인격과 신앙의 상태를 재정비하여야 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겠는지 아니면 자동차에 휘발유를 넣는 것처럼 우리의 인격적인 면으로나 신앙적인 면에 수양과 성령의 은사가 좀더 필요한지를 말입니다.

성경 본문의 말씀에서는 이렇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더욱더 네 마음을 지키라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음을 파수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전주 어느 고등학교에 집회를 인도하러 갔을 때였습니다. 집회를 인도하는 동안 묵기로 한 호텔 옆에는 아주 멋있는 집이 있었습니다. 제 방이 3층이라서 그 집을 환히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넓은 정원에 잔디가 곱게 깔려 있었고, 여기저기 신경을 써가며 훌륭하게 손질을 해 놓은 나무와 돌등이 보기에 매우 좋았습니다. 그 집 담은 철장과 가시 철망으로 씌어져 있었고, 말 만한 개 두 마리가 집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빈틈없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도착한 그날 밤 굉장히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깨었습니다. 집을 전부 부수는 것 같은 요란한 부부 싸움 소리였습니다. 어찌나 요란한지 집을 전부 두드려 부수는 줄 알았습니다. 비록 집은 철조망에다 사나운 개까지 동원하여 철저하게 지켰지마는 정작 잘 지켜야 될 마음을 지키지 못해 한밤중에 소란을 피워 잠자는 이웃 사람들을 깨워 놓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돈을 지킵니다. 또는 건강을 지킵니다. 명예를 아주 소중히 다룹니다. 심지어는 누가 내 기분을 해칠까봐 상당히 신경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지키지 못하여 들어오지 말아야 할 것이 침입해 들어와 결국 우리의 모든 인격이 깨어지고 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외부의 도적은 막았지만 마음속에 들어오는 원수, 곧 악마는 막지 못한 것입니다.

잠언 16:32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을 빼앗고 경제계를 주름잡고 국가와 사회의 운명을 한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세대에 걸쳐 여러 성현들이 강조한 것은 극기(克己),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자신의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어떤 때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과거의 실수를 돌이켜 기억해내고는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때로는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이 떠오르지 않아 얼마나 고심했는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정도일 것입니다.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마음 먹고 싶은 대로 마음먹고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세계적인 영웅 나폴레옹은 전쟁에 패하여 세인트 헬레네 섬에 정배가서 여생을 보내다가 임종이 가까왔을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 생에 행복한 날들을 손꼽아 헤어보니 겨우 엿새도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장님이요 벙어리요 귀머거리였던 헬렌 켈러 여사는 세상을 떠날 때 "나의 일생은 참으로 아름다웠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두 사람을 비교하여 보십시다. 한 사람은 돈, 권력, 명성과 지위도 뛰어난 경륜을 가지고 있던 세기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용기 있고 위대했던 황제였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불과 엿새도 행복하지 못했습니까? 그와는 반대로 가진 것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또 말할 수도 없었던 헬렌 켈러는 생을 마치는 순간 "내 생애는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었던 그 이유는 모두 그 마음에 달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행복은 어떠한 것을 가졌느냐 하는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마음에 달린 것입니다. 언제나 마음이 먼저이며 중심입니다.

솔로몬 왕은 본문에서 네 마음속에 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네 눈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그리하면 그것을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온 육체의 건강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요즈음 현대인들의 병 중에 70~80%가 신경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현대인들의 병자 중에 75%가 정신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정신분석학이나 각종 심리학이 발달하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한 현대인들이 저지르는 각종 범죄 사건의 요인 역시 정신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 많다고 합니다. 교통 사고 같은 경우 운전 기사의 사고 요인 중 아침에 부부싸움을 하고 나온 것이 90%로 나타났고, 교통 사고요인의 40%는 음주에 있다고 합니다. 결국 모든 것이 정신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정신이 맑고 깨끗할 때에 우리의 육체도 건강하고 쾌적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고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으로 육체는 따라갑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월남하신 분들이 종종 음식점에 가서 냉면을 잡수시면서 평양이나 함흥에서 먹던 것과는 맛이 틀리다고 합니다. 그러나 통일이 되어 고향의 냉면을 언제나 먹을 수 있다면 어느 쪽이 더 맛이 있겠습니까?

또 이런 것을 생각해보십시다. 잠은 푹신한 이불 위에 편안히 누워 자야만 편한 것인데, 어린아이들은 어머니 등에 업히거나 무릎에 앉아 불편하게 잠을 잡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어머니의 따스한 체온과 사랑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불편한 자세이지만 가장 편하고 행복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평양이나 함흥에서 먹었던 냉면이 더 맛이 있었다고 느껴지는 것은 거기에 갈 수 없다는 간절한 그리움과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가미(加味)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모든 삶을 지배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에 대하여 극히 동기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미 살인한 것이요,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간음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살인은 우리 마음에 있는 미움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간음은 음욕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인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다시 비약해서 말씀드린다면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도 악도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은 인간의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위 이전에 마음을 지켜 그 마음에 죄된 생각을 품지 않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진정 마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머리 위로 지나가는 새는 막지 못하지만 머리 위에 둥지를 트는 새는 막아야 한다." 슬쩍 우리의 머리를 스쳐 가는 생각을 우리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머리를 계속 맴돌며 어지럽히는 생각은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26,27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이스라엘에서는 해가 지면 벌써 다음날 저녁까지를 하루로 칩니다. 그러므로 "해가 지도록"이란 표현은 화를 다음날까지 끌고 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만일 화를 계속 며칠 동안 풀지 않으면 마귀가 틈탈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마음에 분노와 미움 등의 죄된 생각이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는 상태를 가장 좋아합니다. 마치 파리가 지저분한 곳을 좋아하듯이 마귀는 우리의 마음이 더러워졌을 때를 최상의 기회로 여기고 달려와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달래주는 척하며 유혹을 합니다.

솔로몬은 훌륭한 지혜의 왕이었습니다. 40년 동안이나 전쟁도 없이 평화스럽게 나라를 다스리며 온갖 부귀와 영광을 누렸습니다. 건강하였고 명예도 지켰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가서 자기 마음을 지키지 못하여 죄악에 빠지고 나라는 둘로 갈라지는 비극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우리에게 오늘의 이 말씀을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이 말씀은 그의 깊은 경험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마음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솔로몬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입을 지켜라." 그렇습니다. 첫째로 입을 지키는 것, 바로 그것이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그러나 말을 하지 맙시다. 아무리 내 마음에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차 있을지라도 말을 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워하는 마음이 가득차 있을지라도 말을 하지 않는다면 미움은 거기서 머물고 말 것입니다.

만일 말을 하면 미움은 자신도 감동 못할 정도로 점점 굳어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29에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마음이 더러워서 입이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입을 다물고 더러운 말을 하지 않으면 그 더러운 마음은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라도 좋은 말을 하도록 합시다.

제가 인천에서 목회할 때 그 교회에서 경영하던 학교가 있었습니다. 이 학교 학생들이 만날 때마다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하는 것이 좋지 않게 생각되어 "반갑습니다"로 바꾸어서 하도록 제안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습관이 되지 않아 어색해 하였지만 학생들에게 그대로 실천하도록 했습니다. 얼마 후에 학생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학생들은 "반가워요"라고 인사를 하다 보니 정말 반가운 마음이 생기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에 괴로움이 있을 때 그 괴로움을 말하지 말고 행복되고 즐거운 말을 하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사랑한다는 말을 해보십시오. 더 나아가 그 사랑을 베풀어 보십시오. 그 괴로움으로 상한 마음을 사랑으로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많은 사람 앞에서 나를 아노라 하면 나도 하나님 앞에서 너를 아노라 하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입으로 증거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로 눈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볼 수 있다고 하여 아무것이나 함부로 보지 맙시다. 얼핏 눈에 보이더라도 빨리 고개를 돌려 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되도록이면 추한 것, 더러운 것은 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도덕적으로 악한 행동도 보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눈은 마음의 창문이기 때문에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은 마음으로 흘러들어가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또 생활을 어지럽히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악인이 잘되는 것을 보며 부러워하지 맙시다. 권모 술수와 죄악을 자꾸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거기에 빠지게 됩니다. 본문 말씀대로 "네 눈을 바라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똑바로 앞만 보아야 하겠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얼마 동안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후 5시 퇴근 시간이 되면 그 공장 앞에 수백 대의 자동차가 꽉 들어섭니다. 남편들을 마중하러 나온 아내들의 자동차 행렬입니다. 남편이 공장문을 나서면 자기 남편만이 아는 휘파람을 크게 붑니다.

그러면 자기 아내를 찾아 달려가서 차를 타고 곧장 집으로 갑니다.

남편이 한 눈을 팔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전혀 주지 않습니다. 다른 것을 보지 못하도록 막는 것, 이것이 바로 남편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셋째는 행동입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지탱하라는 것입니다. 마치 차를 몰고 갈 때 반드시 차도에 그어져 있는 선대로 곧게 나아가야 하듯이 어느 것에든지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지켜 악에서 떠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꾸 죄를 짓게 되면 내 신앙적인 체질이 악의 타성에 젖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한 번 죄를 지은 사람은 또 죄를 지을 가능성이 많고 또 한 죄에 대하여 둔감해집니다. 이것이 두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발의 첩경을 곧게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머리를 단정히 빗고 몸가짐과 눈을 똑바로 하면 우리의 마음자세가 바르게 되듯이 발을 바로 지탱할 때 그 마음은 곧아집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의 마음이 흐트러지고 신앙적인 인격이 무너지고 맙니다.

고린도전서 3:16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격은 마음의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인격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여기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으로 하여금 항상 우리를 지배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자유함을 얻을 것이며 아무도 우리를 구속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으로 나를 지배하게 하고 말씀으로 나를 지배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참된 자유의 길이며 행복의 길입니다.

가톨릭에서 행하던 임종 예식 가운데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죽은 시체에 마치 우리의 세례식과같이 기름을 가지고 다섯 군데에 바른다고 합니다. 눈, 코, 입, 귀, 손과 발에다 기름을 바르는 이 예식을 종유(終油) 예식이라고 하는데, 천주교의 칠성례(七聖禮) 중 하나입니다. 다섯 군데에 기름을 바르는 이유는 죄가 이곳을 통하여 들어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눈으로 죄를 지었고 귀와 코, 입과 손발로 잘못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기름을 붓고 거룩하게 씻는 예식을 거행한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 다섯으로 죄를 범합니다. 그러므로 D똕TXTxV우리는 이 눈과 입과 발을 삼가야 하겠습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에 건강이 됨이니라.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는 말씀을 우리의 마음속 깊이 간직해야 하겠습니다.

 

기도: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마음은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차서 온몸이 말씀에 의하여 다스려져야 할 저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과 마음은 죄악의 도구로 사용될 때가 많았습니다.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시어 우리의 마음을 지키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은 재산을 지키기에는 능숙하오나 마음을 지키지 못하여 후회의 한숨과 눈물을 흘릴 때가 많았습니다. 저희들이 마음이 악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새로이 지음을 받도록 도와주옵소서. 주의 영광을 위해 쓰여질 수 있는 온전한 주의 성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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