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예수의 족보와 탄생 이야기

by 【고동엽】 2006. 4. 19.
예수의 족보와 탄생 이야기
마태복음 1- 2 장에 대한 해설 입니다. 먼저 마태의 글쓰기에 대한 인식을 알아 봅니다. 이스라엘인들의 전통적 경전은 3 가지인데. 1.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급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2. 미드라시 3. 할라카 입니다. 모세오경을 주석한 것이 미드라시 입니다. 오늘날의 주석 방법과는 전혀 딴판 입니다. 고대인들은 지구가 평평하고 우주는 이 평평한 것이 3 층으로 되어 있어서 하늘 위의 또 하늘에 하나님,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이 살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미드리시엔 하늘로가서 하나님 만나고 오는 건 다반사고 위에 열거한 인물들과 상의도 하고 구름타고 다니는 등 그리스신화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고대인들은 의미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고 그게 사실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 독일인들은 고대정신을 살려서 역사를 둘로 나누어 이해 합나다. 의미 전달을 중심으로한 역사를 '게쉬히테'라 하고 사실을 전하는 역사를 '히스토리'라 합니다. 엄밀히 말해 사실이란 없습니다. 이 에치 카는 역사는 해석사라고 합니다. 무엇이 됐던 자기가 해석한 것을 기록한다는 말 입니다.
내가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성서는 현대인을 예상해서 쓴 글이 아니라 당시 고대인들이 읽히도록 쓴 글 입니다. 고대인들이 아무 불편없이 읽은 글을 현대인이 논리나 사실여부를 묻는 건 적절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문자 그대로 믿는다고 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은데 이는 웃기는 일 입니다. 저자의 의도를 살피는 것이 적절 합니다.
1. 예수의 족보
마태는 예수가 하나님의 구원사인 아브라함과 다윗의 계보를 잇는 다고 인식해서 두 집안의 사람들을 열거하는데 여기에 특별한 여인들이 있습니다
ㄱ. 다말 : 유다의 며느리 입니다. 3 아들이 있었는데 첫 아들이 죽어서 둘째의 아내가 됩니다. 둘째가 성행위시 사정을 질 밖에 합니다. 그의 이름이 오난인데 그래서 남자의 자위행위가 오나니가 되는 어원이 됩니다. 이 둘 째도 죽어서 3 째의 아내가 되어야 하는데 3 째가 5 세의 어린이라 유다는 며느리 다말을 친정으로 보냅니다. 3 째가 장성해도 집으로 부르지 않자 다말은 꾀를 내서 유다가 출타하는 길에 변장하고 나타나 매음을 합니다. 후에 다말이 임신하여 유다가 불러드려 죽이려 하자 담보로 잡고 있던 허리띠, 지팡이, 인장반지를 내놓고 아이의 아버지가 시아버지 유다임을 밝힙니다.
다말은 상간녀 입니다.
ㄴ. 라합 :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함락할 때 이스라엘을 도운 창녀 입니다.
ㄷ.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 다윗과 간통한 간통녀 입니다.
마태는 예수의 족보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영웅에 상간녀 다말, 창녀 라합, 간통녀 밧세바를 열거 합니다. 마태의 족보는 누가의 족보와 전혀 다르고 주전 1850 년의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기록이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미드라시적으로 마태가 말하려는 의도를 찾는 게 적절 합니다.
2. 예수 탄생 이야기
마태는 족보를 기록하고 나서 예수를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예수가 남자 경험이 없는 동정녀 마라아에게서 태어 났다고 합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와 논쟁하는 적대자들이 '우리는 음란한 가운데 나지 않았다'(요한8:41)고 합니다. 예수를 사생아라고 공격하는 겁니다.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나았거나 사생아 이거나 둘 중에 하나 일 수 있습니다.
동정녀 탄생은 당시 지중해 연안의 문화 입니다. 위대한 사람은 동정녀에게서 낳다고 합니다. 플라톤도 알렉산더도 동정녀에게서 나았다고 합니다.
동방박사를 인도한 별이 헤롯의 집에 머물다 탄생지인 베들레헴으로 가고 동방박사는 황금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립니다.
3. 요한은 예수 오심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고 합니다.(요한1:14)
누가는 예수 오심이 하늘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라고 합니다.(누가2:14) 여기서 영광이라는 말은 '독사'인데 '독사조'가 어원 입니다. 나타난다는 의미 입니다. 즉 이땅에 평화를 이루려고 신이 나타났다는 의미 입니다.
마태는 예수는 하나님의 역사인 구원사 안에 드는 사람이지만 이 땅의 역사와는 별개인 영원에서 오신 분이기 때문에 이땅의 질서를 따르지 않고 동정녀에게서 나셨다고 합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한1:5) 헤롯이 깨닫지 못한 상징 입니다. 그리고 헤롯은 권력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친아들 3을 권력에 방해되어 죽였고 자신이 죽을 때 애곡하게 하기 위해 한 가정에 한 사람씩 4 천 명을 경기장에 가두고 자신의 죽음과 동시애 죽이라고 경비대장에게 명령 하였습니다. 그러나 해롯이 죽고 난 후에 경비대장이 그 명령권자가 없어졌으므로 그 사람들을 모두 귀가 시켰습니다.(요세푸스) 권력은 예수가 구원자임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 권력이란 사회, 일터, 가정 등 곳곳에 있습니다. 오늘날 권력은 사회 뿐만아니라 가정을 무너뜨리고 청년을 절망케 합니다. 마태는 예수가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 것이라 합니다.(마태2:23) 그리고 예수의 조상엔 상간녀, 창녀, 간통녀가 있다고 자랑 합니다. 예수가 이루는 평화는 힘의 평화가 아닙니다. 예수는 권력이나 세력이나 어떤 통치의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루살렘 사람이 아니라 고난의 현장이고 천대받는 나사렛 사람입니다. 예수는 상간녀, 창녀, 간통녀를 포함해 천대받고 소외받는 사람의 존엄이 존중되는 평화를 이루는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의 평화가 있기를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