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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속으로 〓/영성 교회 성장 10대 지침등(가나다순)

교단 총회장 할 사람이 없어 골치 썩는 영국 교회

by 【고동엽】 2010. 4. 24.
 

 교단 총회장 할 사람이 없어 골치 썩는 영국 교회

8년 6개월 남짓한 영국 생활을 정리하느라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영국 생활에 대한 느낌을 잊기 전에 몇 줄 글로 남겨 놓아야겠다. 물론 내가 경험한 교회 생활을 중심으로 말이다.

솔직히 영국 교회는 한국 교회에 별다른 관심거리가 못되고 있다. 세계적 규모의 교회도 없고, 눈에 띄는 유명한 부흥사나 당장 써먹기에 좋은 다양하고 자극적인 교회 성장 프로그램 같은 것들이 없어서가 아닌가 싶다.

무엇이든 많고 크고 유명한 것을 선(善)인양 여기는 우리네 풍토에서 보면 영국 교회는 별 영양가 없는 교회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교회를 떠나는 이들은 지속적으로 늘어가고 있고, 정치인들은 더 이상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게 되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성 싶다.

하지만 아직 젊은 한국 교회는 오랜 신앙역사와 전통을 가진 영국 교회로부터 지혜를 빌리려는 겸손함을 보여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지금은 비록 늙었으나 이들이 젊었을 때는 지금 한국 교회보다 훨씬 패기가 넘쳤고, 다양하고 왕성한 활동들도 지칠 줄 모르게 펼쳤으니까 말이다. 나는 한국 교회가 조용히 귀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는 영국 교회의 모습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1. 전통과 역사를 소중히 여기고 지킨다.

일반적으로 메가처치를 선호하고 꿈꾸는 우리와 달리 영국 교회는 조상 적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여러 가지 신앙 유산들을 소중히 여긴다. 대부분 영국 교회 예배당은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는 규모이다. 대규모 모임보다는 예전을 중요시 한다. 또 성공회 뿐 아니라 감리교, 구세군, URC 등 제도권 교회들은 교회력에 근거하여 설교하고 교육하려고 애쓰고 있다. 매달 성찬식을 거행하면서 신앙 안에서 형제애를 나누는 것도 잊지 않는다.

산뜻한 최신식 건물들보다는 사방에 먼지가 수북하고 여러 세대들의 손때가 낀 예배당과 집기 도구들을 더 선호한다. 우리 가족들이 8년 6개월 동안 다니고 있는 영국트리니티교회는 103년 전에 지어졌을 때와 별 차이가 없는 옛 모습 그대로이다. 설교단 위치도 변함이 없고 목재를 사용한 강대상도 103년 전 것과 동일하다. 급격하고 빈번한 변화와 옛 역사와의 단절 현상은 이들에게서 발견하기 곤란하다.

2. 연합과 일치가 일상화 되어 있다.

한국 교회는 대개 개 교단 및 개 교회 중심이다. 물론 부활절 연합예배나 구국 기도회 같은 대형 이벤트들은 초교단적으로 전개할 때가 더러 있지만 연합과 일치가 일상화 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비록 이 곳에는 몇 만 명이 모이는 대형 연합 집회는 없지만 서로 다른 교단 소속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생활 속에서 조용히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등록한 트리니티교회는 장로교회와 회중교회 그리고 그리스도의교회를 묶어서 만든 URC 교단 소속 교회와 인접해 있던 어느 감리교회를 합쳐서 설립한 것인데 바로 길 건너에 있는 침례교회와 성공회교회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적지 않은 부분에서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 오고 있다.

정기적인 강단 교류는 기본이고 네 교회 신자들이 매주 함께 모여 기도회를 갖고 지역 봉사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들도 한 마음으로 펼치고 있다. 이들에게서는 교회 간 혹은 교단 간 경쟁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소중한 형제요 자매일 뿐이다.

3.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에 헌신적이다.

교회 건물 자체가 지역사회를 섬기는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예배만 하고 교회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해 수시로 개방하는 것을 당연시 한다. 난민들에게는 영어와 컴퓨터를 무료로 가르쳐 주고 상담도 해준다. 무슬림과 힌두교도들도 괴리감 없이 부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지역에 있는 여러 장애인 시설, 고아원, 교도소, 병원 등을 돕기 위하여 교회 안에서 식당이나 커피숍을 운영하는 교회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매년 전국 교회가 일제히 지키는 Christian Aid Week은 거의 국가적인 행사처럼 느껴진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서 교인 수를 늘리거나 교회를 홍보하려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역 공동체를 돕고 세계 각 곳 어려운 이웃들을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 같은 일들에 참여하는 것 자체에 만족해한다.

4. 민주주의에 기초하여 교회를 운영한다.
일반적으로 한국 교회에서는 민주주의를 비신앙적인 것처럼 취급한다. 하지만 영국 교회는 그것을 소중한 신앙 덕목으로 여기며 우직하게 지켜나가고 있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교회가 잉태한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열매이다.

교회가 민주적인 절차와 과정을 따른다고 해서 교회 지도자들을 함부로 대한다거나 무조건 다수결의 원리에 입각해서 일을 처리한다고 상상하면 안 된다. 목회자와 교인들 간에는 상호존중과 신뢰가 두텁다. 그리고 서로 간에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대화와 성숙한 토론이 뿌리내려 있다.

임기응변, 예측 불허, 깜짝 선언, 무원칙, 월권, 억지, 속임수, 파워 게임 등은 여기 교회 문화에서는 생각하기 곤란하다. 교회에서 적용하는 민주주의 원리와 교회 밖에서 통용되는 그것 사이에 충돌이나 혼란은 없다. 민주주의는 이 나라를 지탱하는 기초요 원리이기 때문이다.

5. 교회 운영은 투명하고 공개적이다.


나는 이 곳 교회 일이 음성적으로나 혹은 소수에 의해 다루어지는 일을 본 적이 없다. 진행되는 일들과 관련해서는 언제나 기록을 남기고 교인들에게는 이를 문서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한국 목회는 대체로 말이 중심이지만 여기서는 문서로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영국 목회자들과 주고받은 문서 양만해도 엄청나다. 지나고 보니 말은 쉽게 번복이 되기도 하고 와전 혹은 왜곡이 되기도 하지만 문서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 것 같다. 문서는 법적 가치를 지니고 효력을 발생하지 않는가? 영국 교회가 우리네 보다 훨씬 안정되고 차분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 투명성과 공개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6. 다문화와 다인종 목회로 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런던의 경우 세계 200여 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웬만한 대도시 교회는 다인종 및 다문화 목회를 할 수 밖에 없다. 보통 수 십여 개국에서 밀려온 온 이들로 교회가 구성되어 있는 편이다. 이런 일은 수 십 년 전만 해도 생각하기 어려웠던 현상이라고 한다.

백인들이 등지고 떠나가는 교회를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유색인들이 대신 채워나가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한국 교회야 아직 이런 상황은 아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교회는 단일 민족과 단일 인종을 자랑스럽게 여기 곳이 아니라 사람 자체를 귀히 생각하는 신앙 공동체여야 하기 때문이다.

7. 탈권위적인 교계 풍토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 교계는 누가 장(長)이 되느냐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엄청난 돈을 쓴다. 영국 교계는 이런 현상을 거의 이해할 수 없다. 총회장 및 노회장, 감독 회장 및 감독, 이런 감투는 대개 기피의 대상이다. 그런 직책을 맡는 경우 지역 교회 담임목사직을 겸할 수가 없고 지역, 연령, 목회 연한 및 교회 사이즈에 관계없이 교단으로부터 지급받는 목회자들 급료가 동일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 영국 교단 목회자들은 서로가 동등하다는 사실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담임과 부목 혹은 협동 목사 간의 관계가 수직적인 상하 관계 혹은 주종 관계이기보다는 역할 관계로 이해되고 있고 역시 동일한 액수의 급료를 지급받는다. 또한 이른바 감투 자리에 오르기 위해 단돈 10원 한 장도 쓸 필요가 없다는 점이 인상 적이다. 예를 들어, 각 교단 총회장은 마땅히 할 사람이 없어서 매번 골칫거리라고 한다. 영국 교회에서 권력 자리는 없다. 최대의 힘은 회중들이 발휘한다.

아쉽게도 나는 이 정도에서 직접 영국 교회 배우는 일을 마쳐야만 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만남의 끈을 이어가자는 현지인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있어 다행이다. 영국 교회에도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아직 배움의 주제와 대상이 되는 것들이 더 많다. 영국 교회는 우리를 차분히 비춰볼 수 있는 소중한 거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신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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