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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속으로 〓/영성 교회 성장 10대 지침등(가나다순)

주의 종과 자녀

by 【고동엽】 2010. 4. 12.
 

                                               종과 자녀

 

 

 

스데반은 은혜와 능력이 충만해서,  큰 기적을 행하고 있었다. 그때에 몇몇 사람들  즉 구레네 사람, 알렉산드리아 사람,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스데반과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것을 당해 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한다는걸로  사람들을 선동했다.(행 6:8~11)


종교개혁자였던 마르틴 루터는 교황이나 주교가 기름을 붓고, 서품을 하고 봉헌례를 하고 평신도와는 다르게 옷을 입음으로써, 스스로를 '영적 계급'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위선이라고 비판하였다. 루터의 주장에 따르면, 사제(성직자)는 특정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단지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일시적으로 직무를 맡긴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사제가 무슨 특별한 신분이라도 되는 듯 생각하여, 한 번 사제가 되면 영원히 사제로서 특별한 신분을 얻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이는 단지 인간이 만들어낸 그릇된 제도일 뿐이라고 루터는 선언하였다.


현재 한국교회에서는 목사라는 특별한 신분이 당회장. 제직회장.  공동의회장. 설교권. 축도권 등의 권한을 손에 거머쥐고있다.  그런데 성경은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성경을 보면, 초대 교회에서는 사람들에게 직무를 주고 그 직무에 걸맞은 호칭을 붙여주었던 것이지, 특별한 신분을 정해놓고 그 신분에 귀속되는 권한이나 직무를 규정해놓았던 것이 아니었다.

마치 오늘날 이슬람권은 사람이 예수믿고 선교사나 목회자를 원하면 미리 먼저 목사 자격인정서를 주고 나중에 신학교에 가서 공부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무슨 사정상 그 일을 그만두게 되면 역시 목사가 아니고 다시일반 성도로서 봉사한한다. 본인이 얼마전에 애기했던 화란의 아브라함 카이퍼 처럼 처음에 목사로서 임직받고 봉사했지만 특별한사정으로 목사직 사표내고 그후 장로로서 봉사했던 것 같이 말이다.

아마 이러한 제도가 제7일 안식일 교회가 그러한 줄로 알고 있다. 군대에서 같이 군종복무했던 그분이 제대후 10년동안 목사로서 목회하다가 지금은 장로로서 교회 봉사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제도는 목사 장로 머리에 손 얹은 집사들은 죽을 때까지 항존직 이라는 직임을 헌법이 보장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  그 직분에도 알게 모르게 서열이 매겨져 있다. 담임목사·장로·시무권사·안수집사·권사·서리집사·성도로 이어지는 직분의 순서는 공식적으로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암묵적으로 지켜지는 서열이다.

하지만 역시 교회에서의 가장 큰 서열은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구분이다. 오늘날 목사라는 칭호는 특별한 신분을 지칭하는 말이 되어버린 듯하다. 목사들이 흔히 하기 좋아하는 말 중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니까 평신도가 가타부타 따지지 말라' 는 경구가 있다. 이 말 속에는 목사는 특별한 신분의 사람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크리스챤 중  자신을 주의 종 이라고 할 때에는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고 그의 명령대로 행하고 따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주의 종이라는 개그를 제도화하고 목사직의 고유명사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목사=주의 종'이라는 등식을 일반화 하고 있다.

기독교가 세속화하면서 교회가 권력 집단화하고 목회자들이 특혜를 누리게 되고,  기득권자들의 자기발판 확고부동한 누림이라고 볼수있다.

목사들에게 흔히 따라붙는 주의의 종 이라는 명칭은 사실 일반성도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롬 6:22).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한국교회에서는 이 말을 주로 목사들에게만 전유된 호칭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목사가 아닌 일반성도를 보고 하나님의 종이라고 호칭하면 왠지 불경스러운 것으로 간주되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교회에서 일반성도들을 물리적으로 그들을 지배하고  군림하면서, 자신들을 섬겨줄 것을 강요한다. 마치 구약의 제사장들처럼 자신들만이 특별하게 거룩한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일반성도들은 기름부음을 받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러나 성경은 절대로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다 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높고 낮음이 없다. 모두 다 한 형제자매이다.


주님께서도 이것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셨다(마태복음 23 :8). 단지 구별된 것은 각자가 받은 "은사적 위치"(고전12; )와 "지역교회적 직분"(딛전3장; )의 차이일 뿐이다.

 성경 본래의 가르침은 거부되고, 인간이 만들어낸 이상한 관습이 더 우선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다시 말해서 초대교회 당시에는 은사적 위치에서만 가능했던 것들이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이후엔 교회가 정치권력과 결탁함으로써 "교리"로 그 '뿌리'를 내린 것이다.  콘스탄틴 이후 카톨릭이 그 싹을 트면서 이 "성직 교리"를 자신들의 교리로 정착시켰고, 관료주의적인 성직 계급을 본격화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들의 성직 계급제도(신부 - 주교 - 대주교 - 추기경 - 교황)가 바로 이 교리에서 나온 것이다. 구원받은 모든 백성들이 제사장이 되는 이 은혜의 신약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구약에서의 제사장들처럼 자신들을 특별한 사제적인 반열에 구별하여 올려놓고, 일반 일반성도들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칭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기름부음 받은 자들이요, 사람들의 죄를 사면할 수 있는 자들이며, 또한 초대교회 사도들의 사도권을 계승한 자들이요, 하나님을 대신하여 대리권을 가진 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God forbid!).

예를 들어, "신부"라는 호칭을  해석하면, "하나님 아버지", 또는 "하나님의 아버지"라는 뜻이 된다. 카톨릭의 신부들은 자신들이 "아버지(Father)"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에 대해 마태복음 23 :9에서 이미 경고하신다. "땅 위에서 사는 사람을 너의 아버지라 칭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한 분,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니라." 그런데도 그들이 지금도 "아버지"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종교개혁 당시 카톨릭에 대해 대항(Protest!)했던 개신교가 오늘날 카톨릭의 전통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실로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다시 카톨릭과 손을 잡고 연합하겠다 하며, 카톨릭에 대해 "프로테스트"(protest)했던 개신교가 왜 다시 카톨릭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수치스러운 일이다.

 

 60년대부터 부흥회를 참석했던 나로서는 부흥사의들의 설교단골 메뉴가  주의 종에 대한 설교가 꼭 빠짐없이 등장하곤 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야말로 그리스도가 친히 부르셨고 기름 부어 세우셨으므로 누구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강력히 설파한다. 마치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를 섬기듯이, 여러분은 담임목사를 잘 섬겨야 복받는다고  부르짖는다. 그리고 요즈음도 부흥회는 계속하여  틀의 내용만 조금 바꿔서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수억 년봉에서부터 에쿠스 자동차, 큰 평수 아파트, 최고급 양복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목사를 섬기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주의 자녀들인 성도가 주의 종인 목회자를 섬겨야 된다는 말같지도 않은 이상한 논법을 주장한다.

 

만일에 담임목사가 주의 종이라면 성도들은 주의 자녀들이다. 어떻게 자녀들이  종을 섬겨야 한다는 말인가? 너무나  상식과 성경에 어긋나는 가르침이지만 너무나도 오랫동안 세뇌받아왔기  때문에 교인들의 상당수가 당연히 그러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타교회에서 이명해 온지 얼마안된 어느 여자집사는 어느날 날보고 주의 종에게 안수 기도 받아보지 않겠느냐고 권하기 까지 한다. 얼마나 그렇게 주입시켰으면 그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겠는가?

종은 아버지와 자녀에게 소유이고 물건이다. 자녀에게도  종은 절대 복종한다. 이것이 갈라디아서에서 설명한 몽학 선생의 비유이다.상식적이라면, 주의 종이 주의 자녀를 섬겨야 마땅하다. 그것도 마치 주인을 섬기듯이 그의 종은 그의 자녀를 섬겨야 한다.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들한테  종인 자신을 섬기라고 하는지 참으로 기가찰일이다.

 

예수께서도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걸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눅 17: 5~10).

 

종은 낮에는 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주인의 시중을 들어야 한다. 많은 목사들이 목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고된지를 설교시간에 말 한다. 새벽기도부터 시작하여 다른 사람들이 다 쉬는 주일인 일요일까지 고되게 일한다고 불평 한다. 그러나 일반성도들이 일주일 내 직장에서 일하고 일요일조차 교회에서 봉사하느라고 쉴 틈이 없는 데 반하여 많은 목사들은 주일의 힘든 노동을 이유로 월요일에 휴식을 취하고 있다.

 

 기막힌 일은 한국교회의 많은 목사들이 전에 주5일제를 반대하기도 했다. 반대하는 명분이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일하라고 하셨는데 왜 5일만 일하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주말이 이틀일 경우에 교인들이 산과 들로 놀러가고 주일날 교회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 때문이다. 참 어쩌구니 없는 주장들이다. 종은 오직 주인이 쉬라고 할 때에만 쉴 수 있다. 수고했다 이제 가서 쉬라 하는 주인의 말이 있기 전까지는 종은 묵묵히 주인이 명령한 일을 해야 한다. 쉬고 싶을 때 쉬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면서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한다면 어불성설이다.  

 

주의 종들을 언제나 가장 좋은 것으로 대접해야 주인이신 하나님이 주인의 자녀들을 축복한다는 엉터리 복음에 한국교회가 크게 오염되고 있다.또 자신의 부인을 '목사 사모님'이라고 부르도록 강요하거나 스스로 실천하는 목사들도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상식적으로 어느 누구도 자신의 부인에게 높임말을 쓰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또한 남에게 자신의 부인을 지칭할 때 높임말을 쓰는 사람을 보면 무식한 덜 떨어진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에서만 유달리 목사들이 자신의 부인을 사모라고 부르도록 교인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더구나 주의 종의 부인이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도리어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당연한 말이다. 따라서 어느 주인도 종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는데 따로 칭찬할 필요가 없으며 종도 그것을 기대할 이유가 없다.

 

바울 사도도 종은 자기를 완전히 비워서 낯춰야하고 죽기까지 복종하라고 한다. 주의 종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을 낮추어 타인을 위해 기꺼이 봉사하는 자를 의미한다.  목사만이 주의 종이 아니다. 믿는 성도들은 모두가 주의 자녀이면서 주의 종이다. 설교도  목사 전유물이 아니다. 헌법외에  성경은 그것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스데반은 교회 집사로서 설교하면서 순교했고 빌립도 집사이면서 세례를 베풀었다.

 

  교회 직분은 신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대로 인간을 쓰시기 위해 주신 은사이다. 그래서 에베소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목자)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1~12)

 

    사도나 선지자나 전도자나 목사(목자)나 교사 등의 명칭은 모두가 각각 그 직무에 따라 붙여진 호칭에 불과하다. 그 명칭이 그들의 신분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한 사람이 선지자로 불릴 수도 있고, 교사로 불릴 수 있고, 사도로 불릴 수도 있다(행 13:1~3). 그에게 맡겨지는 직무에 따라서 붙여지는 호칭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목사라는 호칭을 대단한 주의 종이라는 신분으로 변경시켜버렸다. 목회자라는 명칭 하에 교회의 모든 직무에 있어서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권력의 자리로 만들어 버렸다. 목사가 아니면 강대상에서 설교도 축도도 할 수 없고, 당회장이나 제직회장이나 공동회장도 못하고, 세례도 줄 수 없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도록 헌법이 명문화 시켜 버렸다.  성경의 본래 가르침과 대단히 어긋나는 제도이다.

 

교회라는 공동체는 세상을 향하여 보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청지기로서 이 땅에 존재한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예수의 명령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목자)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1~12).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의 제자가 된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자들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받은자로써,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헌신해야 한다. 베드로와 스데반과 바울이 그렇게 했듯이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에는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신분이 존재해서는 않된다. 오직  부름 받은 자로서 교회 봉사에 대한 헌신만 있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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