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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란 무엇인가 2

by 【고동엽】 2006. 7. 20.
구원이란 무엇인가 2
(같은 제목 앞글의 보충)
이제까지 우리는 고대와 중세의 철학과 신학이 이땅의 삶은 중요시 되지 않고 하늘의 본질이 중요시 됨을 살펴 보았습니다.
이제 중세는 끝나고 땅의 삶이 중요시 되는 시대가 열립니다.
1. 유명론
하늘의 본질이 중요하고 땅에서 사는 것이 무시되던 중세시대를 마감하고 근대로의 출발은 윌리엄 옥캄(1287-1347)의
유명론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유명론이란 관념속의 사물은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노랑은 이름으로만 있는 것이고 노랑꽃이라야 실재한다는 것 입니다. 플라톤의 하늘 즉 관념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유명론은 개별적 인간의 자율성을 확립하고 후에 영국의 경험론과 유물론의 토대가 됩니다. 또한 옥캄은 스콜라신학을 마감한 인물인데, 스콜라신학은 이성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으나 그는 신은 이성으로 증명될 수 없다고 합니다.
2. 종교개혁
16 세기에 기독교에 종교개혁이 일어 납니다.
이때의 진보란 알 수 없는 미래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좋았던 옛날로 돌아가는 것 입니다. 여러 종교개혁자들이 고문헌 학자인 이유 입니다.
가톨릭신학은 아우구스티누스를 계승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받아들인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정립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법칙의 영향으로 행위를 중시합니다.
개신교 신학인 종교개혁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스콜라신학을 폐기하고 아우구스티신학을 비판 없이 그대로 계승합니다. 그 결과로 개신교신학은 플라톤의 관념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마르틴 루터(1483-1546) :
1. 가톨릭의 서열을 강조하는 위계제도 신학(히에라르키아)을 허물고 만인이 평등한 시대를 엽니다. 그는 만인이 사제라고 합니다. 교회만이 아니라 사회전반과 가정에서도 평등한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2. 루터는 에라스무스의 인간성을 강조하는 휴머니티 자유를 거부하고 인간의 의지란 노예의지일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그가 인간의 자유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휴머니티 인간의 자유의지는 예언자 정신이 결여되며 마성적 세력에 의해 노예로 전락할 수 있음을 경고 합니다.
존 칼빈(1509-1564)
칼빈은 신의 절대주권을 세운 신학자 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의 삶에 대한 이해는, 루터의 새사람이란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 안정된 사람이고, 칼빈의 새사람이란 도덕과 경건의 사람 입니다.
특히 칼빈에게 세계란 인간이 하늘에서 추방된 장소고, 육체는 혼의 쓸모없는 감옥 입니다. 칼빈은 복음서 보다 플라톤에 더 가깝습니다.(폴 틸리히, 그리스도교 사상사)
종교개혁자들의 죄인(악인)에 대한 태도가 예수보다 플라톤을 따른다는 말 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소수자 등 죄인을(죄인도 아니지만 그렇다 치고) 용납하지 않고 배제하는 복음주의 우파 그리스도인들의 주님은 예수그리스도가 아니고 플라톤 입니다.
종교개혁자들에게 성서란 예수에 대한 증언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기독교의 핵심인 사랑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말하지 않은 건 우연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신학(프로테스탄트신학)은 칸트의 철학과 독일의 관념론으로 세웠습니다.(서남동 민중의 신학탐구 죽재서남동기념사업회 동연 서울 2018, 209p)
믿음이 칸트의 도덕철학으로 인해 도덕주의가 되었고, 관념론에 의해 믿음이 이땅에서의 하나님나라 구원이 아니라 피안의 내세적 구원이 되었습니다.
3.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다시 철학으로 가서, 고대 중세로부터 이어져온 종교의 억압으로부터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운동이 일어 납니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1694-1778)는 자신의 저서 '관용론'에서 신앙인이 너그러울 것을 요구 합니다. 예수의 핵심이 사랑인데 그리스도인에게 전혀 작동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폭력성이 더 하다는 사실 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도 마찬가지 입니다.
합리주의와 과학의 시대가 열리고 성서에서 이성으로 납득되지 않는 사실이 지적되며 무신론이 발흥 합니다.
4. 유물론
물질이 풍부한 것이 곧 구원이라는 사상 입니다. 마르크스(1818-1883)가 대표적 사상가 입니다. 발터 벤야민은 유물론에 신학이 배제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 합니다.
당시 대부분의 지식인이 그러했듯이 벤야민도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지지했는데 모스크바에 다녀온 후에 입장을 바꿨습니다. 그는 '역사에 대하여'에서 유물론에 신학이 더해졌다면 천하무적이 되었을 거라고 했습니다. 조르즈 아감벤은 이것을 비틀어서 신학에 유물론이 더해지면 천하무적이 될거라고 합니다.
신학이 관념론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문제를 다룬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거라는 말 입나다.
19 세기 당시 기독교는 삶의 희망이 아니라 억압이었습니다. 니체(1844-1900)는 신이 죽었다고 하고, 마르크스는 종교는 아편이라고 합니다. 포이어바흐(1804-1872)는 '그리스도교 본질'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사회주의 최초 이론서인 '신성가족'이 출간되자 비로서 독일청년들이 자기 할일을 찾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5. 자유주의 신학
무신론이 일어나고 성서가 외면되자 기독교를 변증하기 위해 리츨, 하르낙(1851-1930) 등에 의해 자유주의 신학이 일어 납니다. 성서비평이 도입되고 이성으로 납득할 수 있는 방안이 제안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핵심은 영과 자유인데 복음을 지나치게 윤리화 함으로써 자유주의 신학은 교회로부터 거부 됩니다.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을 거부하고 칼 바르트가 본인은 그렇게 불리는 걸 싫어 하지만, 성서로 돌아가서 신정통 신학을 세웁니다. 예수를 화해자로 본 바울에 따라 화해신학을 세웠습나다.
한국의 복음주의 우파가 이것을 거부하는데
이유는 바르트가 아버지 하나님은 조금 말하고 예수를 많이 말한다는 겁니다. 예수교에서 예수를 많이 말한다고 거부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6. 근본주의 / 복음주의 우파
자유주의 신학이 성서를 훼손했다고 보고 성서무오설을 주장하며 성서의 문자대로 신앙한다는 근본주의, 지금은 복음주의 우파가 미국에서 일어나고 한국의 보수주의 신학이 이를 따르고 있습니다. 성서가 법이 아니고 상징, 역설, 급진적 문제의식을 요구하는 선포로 가득하므로, 이들은 문자대로 따르지 못하고 자신들이 믿고 싶은 거만 골라서 문자대로 믿습니다. 문자대로 믿는다는 그리스도인이 성서에서 죄를 지으면 한쪽 눈을 없애거나 한 손을 자르라고 하는 것을 따라서 한쪽 눈이 없다거나 한 손을 잘랐다는 소리를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모든 서양철학과 신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기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을 탈피해서 독자적으로 생명과 삶을 탐구한 철학자는 앙리 베르그송과 윌리엄 제임스가 유일 합니다. 필자가 학자가 아니라서 발견 못한 학자가 있을 수 있겠으나, 십 수년 전부터 예수와 교회가 멀어진 원인을 찾으며 읽어온 천 삼백 여권에는 없습니다.
21 세기 합리주의와 과학만능으로는 해결할 수없는 자연환경의 파괴와 기후변화, 사회에 만연한 구조악으로 인류는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의 구원을 기다립니다.
우리에겐 긴 이야기지만 몇 권의 책이 될 내용을 얼핏 살펴 보았습니다.
성서로 가자는 게 저의 주장 입니다. 다음에 요한복음 말씀을 통해 영생과 구원이 무엇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여러분과 가정이 평화 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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