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란 무엇인가 1
젊은이에게 예수를 신앙하는 이유를 물으면 바른사람이 되기 위해서 라고 하고, 노인들에게 물으면 죽어서 천국가려고 한다는 대답이 거의 대부분 입니다. 젊은이 대답은 1 도 안 맞고, 노인들 대답은 10 % 정도 맞습니다. 바른사람이 되려는 태도는 기독교보다 불교와 공자의 유교가 훨씬 좋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바른 사람이 되려는 게 아니라 삶에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종교 입니다. 노인들 대답을 10 % 맞다고 한 것도 지나치게 많이 쳐 준겁니다. 복음서의 99 % 이상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의를 따라 어떻게 살 것인가 이고요, 죽어서 천국가는 이야기는 1 % 도 안 됩니다.
복음서는 하나님의 의가 역사에 구현되는 과정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따라서 신이 세상을 사랑으로 구원하는 그 현실에 내가 참여하고 있는 것이 구원받음 입니다.
그 하나님의 의가 인간의 삶에 구현되는 과정을 마태는 하늘나라, 마가와 누가는 하나님나라, 요한은 영생, 바울은 하나님의 의에 따라 믿음으로 산다고 합니다.
흔히 유대교는 사회 공동체적 믿음이고 기독교는 개인구원에 관한 믿음이라고 합니다. 필자도 이제까지 그런줄 알았는데 복음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데 신학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기독교의 믿음과 구원이란 그 삶에 있는데, 어떻게 해서 개인영혼 구원이라는 것으로 둔갑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과 과정을 살펴보고 요한이 증언하는 구원을 알아 보는데 있습니다.
근대가 오기 전까지는 서양철학과 신학은 구분이 없었습니다. 기독교신학에 결정적 영향을 준 고대철학을 먼저 살펴 봅니다. 철학은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현실이 실재인가, 보이지 않는 관념(본질)이 실재인가에 대한 논쟁이 전부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되도록 쉬운 용어를 사용하겠습니다.
첫째로 복음서의 삶에 대한 구원 이야기가 개인영혼 구원으로 바뀌게 된 당시 철학의 배경 입니다.
1. 플라톤(BC 427-BC 347)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가짜(그림자)고 관념(본질)이 진짜라고 합니다.
2.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도, 보고 만져지는 질료(재료)가 진짜가 아니라 형상이라는 진짜가 따로 있다고 합니다. 플라톤은 보편적인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적 입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의 법칙이 가톨릭의 믿음에 중요하게 작용 합니다.
이 두 사람은 이땅에서의 삶보다 영원 즉 관념(본질)이 더 중요 합니다. 복음서의 삶의 중심성과는 동떨어진 사유 입니다.
3. 에피쿠로스(BC 341- BC 270)는 앞의 두 사람과는 다르게 이땅의 삶의 현실이 진짜고 관념(본질)같은 대엔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플라톤을 위선자라고 비난 했습니다.(니체) 당시 철학자란 오늘날 처럼 책상에서 학문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찾는 사람 입니다. 그래서 에피쿠로스에겐 따르는 추종자가 생기고 그들은 자기들 스승을 구원자(소테르)라고 불렀습니다. 당시는 피타고라스학파(수학공식의 그 피타고라스 맞습니다), 견유학파 등이 이 땅의 삶은 가짜고 진짜는 영원(본질)에 있다고 하여 금욕주의로 사는 것이 대세라 에피쿠로스는 성공하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플라톤이 대세 입니다.
후에 에피쿠로스는 기독교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플라톤이 기독교에 받아들여 집니다. 에피쿠로스는 당시나 오늘날이나 기독교에서 쾌락주의자 라는 비난을 받는데, 그의 저서 '쾌락'을 보면 향락이나 퇴폐는 없고 소소한 일상에 대한 삶의 즐거움을 말 합니다. 기독교가 플라톤을 채택하면서 부당하게 평가 했습니다.
둘째로 개인영혼 구원이라는 신학이 형성된 과정 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는 예수의 하나님나라가 이땅에서 지금 시작되었다는 메시지가 중심 입니다.
요한은 그 하나님나라라는 용어를 영원한 생명(영생)으로 설명했습니다.
즉 영생이란 끝없이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금 이땅의 하나님나라에서 참생명으로 산다는 뜻 입니다.
성서시대가 끝나고 2 세기 교부들에 의해 하나님나라 신학이 실종됩니다.
교부들은 성서를 해석하는 신학을 세운 것이 아니라 당시 세계에 기독교를 알려야 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그리스의 우주관 • 세계관의 요구에 기독교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신학을 변증신학이라 합니다.
기독교 첫 신학자인 이레니우스는 하나님나라 신학 없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관한 신학을 그리스의 세계관에 따라 세웠습니다.
4 세기에 와서 콘스탄틴대제에 의해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AD 313) 기독교는 가난한자와 약한자의 종교에서 지배자의 종교가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스승인 암부로시우스를 비롯해 여러 교부신학자들은 로마의 관리였습니다
이때부터 신학은 제국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신학이 되었습니다.
18 세기 근대가 되기까지 국가의 관리가 되는 길은 귀족의 문하생이 되거나 신학교를 통해 성직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예수는 갈릴리의 가난한 사람, 사회체재로 인해 소외된 약한 자의 존엄을 지키는 사역을 했는데 신학은 오늘날까지 지배층에 봉사하는 신학이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이 땅의 삶은 가짜고 하늘에 있는 천국이 진짜라는 마니교에서 10 여 년간 신앙생활을 하다가 먼저 신플라톤주의로 개종 했습니다. 마니교는 이땅에서는 구원이 전혀 없는데 반하여 신플라톤주의는 선한 의지를 통해 신에게 가는 구원 종교 입니다. 이러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기독교로 개종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1. 그는 정신적 하나님나라의 역사와 육욕적인 지상의 나라의 역사를 구별하여,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세속사 밖의 구원으로 파악했습니다. 또한 교회를 예수의 재림 때까지 지상에서 군림하는 사회 절대자로 군림하는 사상을 낳아서 역사 안에 있는 종말 사상이 없어졌습니다. 즉 하나님나라의 현재성이 상실되었습니다.(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죽재서남동기념사업회 서울 2018, 22-23p)
2. 스토아적 인식론을 받아들여 믿음을 교리에 동의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또한 이것을 전하는 권위에 대한 동의도 믿음으로 발전시켰습니다.(볼프하르트 판넨베르그, 판넨베르그 조직신학 3 신준호 새물결플러스 서울 2019, 243-244)
로마사람은 어느 하나를 택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종합하는 사람들 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관대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 영향으로 이 세상의 삶을 부정적으로 생각 합니다.(폴 틸리히)
가이샤라 유세비우스는 제국신학을 세웠습니다. 바빌론으로부터 해방시켜준 고레스를 하나님의 종이라 했던 것처럼 기독교를 국교화한 로마황제 콘스탄틴 대제와 로마제국을 하나님의 도구라고 했습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자(410년) 기독교의 존폐가 위험하게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에 답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성(City of God)을 집필하여, 하나님나라는 이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알리스터 맥그레이브,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지성 66p)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 철학에 따라 영을 은사(donum) 개념으로 파악합니다. 영의 인격성이 퇴각했습니다. 이에 따라서 대부분의 중세 신학자들은 성령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진 사랑의 은사와 동일시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고, 그 은사를 피조적 은사로 여기며 성령과 구분했습니다.
영은 곤란한 곳에서는 어느 곳이나 등장하는 일종의 미봉책이 아니라 현실로서, 종말론적 은사로 숙고되는 현실주의적 요구가 필요합니다.(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판넨베르크 조직신학 3 새물결플러스 서울 2019, 28p)
아우구스티누스는 복음서가 말하는 충만한 삶의 기쁨과 평화를 알 수 없었습니다.
2. 신학함에 있어서 지성과 이성을 중시하는 주지주의와 인간의지를 중요시하는 주의주의가 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주의주의자 입니다. 그래서 그는 믿음을 의지의 문제로 보았기 때문에 바울과 같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믿음을 볼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복음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를 통해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삶의 기쁨과 평화를 볼 수 없었습니다.
3. 그는 신의 내적체험을 근거로 신학을 세웠습니다. 복음서에서 말하는 사회 공동체적 삶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리스의 영혼불멸설을 받아들여 개인영혼 구원의 신학을 세우게 됐습니다.
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의주의는 프란치스코파로 계승되어 주지주의의 도미니크파를 누르고 기독교 신학으로 정립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기독교가 반지성주의로 흐르게 되었습니다. 페북에서도 자기는 신학은 거부하고 성서만 본다고 하면서 보고싶고 믿고싶은 구절만 잘라서 봅니다.
신학을 안 하면 성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개신교 신학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세우고 종교개혁자들이 이것을 이어서 사회 공동체적 믿음이 아니라 개인영혼 구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은 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가 자연, 정치, 윤리에 입각해 신학을 세운데 따르고 있어서, 보다 사회 공동체적 신앙태도를 보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토마스를 포함해 스콜라신학 전체를 파기 했기 때문에 이 신학이 개신교에는 없습니다.
글이 길어져 다음으로 이어 가겠습니다. 다음엔 이 땅의 삶이 무시되고 영원의 본질울 추구하는 중세를 벗어나 삶을 중시하는 근대로 이어지는 철학과 이에 대항하는 기독교가 어떠했나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야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 기독교가 어떻게 해서 사회와 멀어졌는가를 찾는 과정 입니다. 천천히 익히셔서 성서로 돌아가는 믿음의 길을 찾기를 소원 합니다.
여러분과 가정에 평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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