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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왜 도덕과 경건이 아닌 사랑인가 2

by 【고동엽】 2006. 7. 22.
기독교는 왜 도덕과 경건이 아닌 사랑인가 2
신앙의 세속화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지키며 종교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세상과 친화(親和)하여 연대하려는 태도고, 세속주의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잃고 세상의 가치관에 따라 권력, 명예, 성장, 번영, 업적 등을 신앙의 길로 여기는 태도 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세속화를 거부하는 이유는 예수를 제외한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순결함을 유지하려는 도덕과 경건의 신앙 때문 입니다. 도덕이 무엇인가를 먼저 살펴보고 도덕주의 신앙의 상징인 바리새파의 신앙 태도를 살펴 보겠습니다.
2. 도덕과 바리새파
1. 도덕이란 무엇인가
인류가 문명화 되면서 야수성을 억제하게 되고 미처 억제되지 않은 야수성이 표출되는데 이것을 도덕적 악이라 합니다.
(니체,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111-114p)
도덕은 자연스러움을 억제하면서 표출되기 때문에 모든 도덕은 자연에 대한 폭정이며 또한 이성에 대한 폭정입니다. 모든 도덕에서 본질적이고도 주요한 요소는 그것이 장기간에 걸친 강압 입니다.(홀링데일, 니체 그의 삶과 철학 290p)
니체는 또한 도덕이란 자신의 의지를 펼쳐서 지배하려는 관점을 세운 지배관계에 대한 학설이라고 합니다.(니체, 선악의 저편 39)
김진호는 필자의 첫 번째 책 '기독교의 본류를 찾아서'를 뉴스엔조이에 서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 합니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소비사회가 정착되면서 사회가 제도화되는 것은 군대나 경찰의 통제보다는 규범에 의한 질서가 더욱 중요해 졌고, 사회를 지탱하는 도덕체계는 노골적으로 강자 중심으로 체계화 되었다고 합니다.
사회적 결속을 지향하는 본능에 따라 의무를 강제하는 억압의 도덕은 닫힌 사회를 이루고 애국심으로 똘똘뭉쳐 다른 사람들을 향해 배타적 거리두기를 합니다.(앙리 베르그송,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도덕적 인간은 좋은 사회를 만드는가 ?
스탠리 밀그램은 나찌가 어떻게 유대인 학살이라는 그런 악한 명령에 복종하는 가를 연구하면서 권위에 복종하는 인격성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배우가 거짓으로 괴로워 하는 것을 모르는 채 지시자의 권유에 따라 15 볼트부터 450 볼트까지 차례로 충격을 가하기로 했습니다. 실험자는 몇 달러 상당의 사례를 받습니다.
본인이 선한 양심을 가졌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교시켜 실험했습니다.
본인이 선하다고 하는 생각이 강할 수록 전기충격의 강도를 세게 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선한 사람일 수록 부정한 권위에 복종하기 쉽고 폭력성과 공격성이 높다는 실험 결과 입니다.(로랑 베그,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252-262p)
2. 바리새파 신앙
1 세기 유대사회를 주도하는 세력은 사두개인, 바리새파, 에세네파 입니다.
지배층은 사두개인이었고 바리새파는 그들 아래서 관료나 행정직, 재판관, 교사 등으로 지배층에 고용되어 일하는 가신 그룹으로 이해됨이 타당 합니다.(프레드릭 J 머피, 초기유대교와 예수운동 421p)
에세네파는 가장 엄격하게 율법을 고수하며 별도의 신앙공동체(쿰란)를 형성하거나 마을에서 결혼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에세네파는 바리새파가 율법을 온건하게 해석한다고 부드러운 것을 좋아 하는 자들이라고 비난 했습니다.
안식일 날 웅덩이에 양이 빠지면 에세네파는 건져 내서는 안 되고 바리새파는 건져 냅니다.
바리새파를 요즘 용어로 말하자면 평신도 신앙 개혁운동 입니다. 당시 진보적 신앙운동 입니다.
예수를 법을 반대한 분으로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예수는 엄격한 율법주의자인 에세네파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고 온건한 법치주의자인 바리새인들과 적대한 것으로 보아 예수의 관심은 법이 아니라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권력 입니다. 예수는 정치권력자인 사두개인보다 바리새인과 더 적대 했습니다. 신앙으로 차별과 배제가 일어나는 일을 반대한 것 입니다. 바리새라는 말의 뜻은 분리한다는 의미 입니다.
많은 학자들은(특히 E P 샌더스와 카렌 암스트롱) 바리새인들의 높은 도덕성 때문에 그들에게서 잘못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두개인들은 로마 앞잡이로 백성들의 원성을 샀고, 에세네는 가난한 사람들은 지킬 수 없는 법을 강요하여 사람들이 경원했으나 바리새인들은 법을 온건하게 해석하고 도덕적 삶을 살았기 때문에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 자신들도 모르고 학자들도 모르는 바리새인들의 잘못은 무엇일까요?
예수가 그들을 위선자라 했다고 뒤로 나쁜짓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들은 높은 도덕성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에 온다면 가장 존경받는 그리스도인일 것 입니다. 그들이 도덕성 때문 에 자연스러움을 잃어서 예수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에피쿠로스도 질서를 세우는 플라톤을 위선자라고 비난 했습니다.
도덕이 신앙과 합세하면 무서운 결과를 낳습니다. 예수에게 지적된 바리새인들의 유일한 잘못은 그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 입니다. 현대에서도 세력을 이루어 자신들의 이념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바리새인 입니다.(밀란 쿤테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순결한 신앙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신앙인을 정죄하고 배제 합니다.
오늘의 전광훈 사태나 최바울 사태도 여기에 해당 합니다.
페친인 논설위원 이건행은 정권의 독재권력은 수직적 권력이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권력은 수평적 권력이라 합니다. 아마도 검사들의 횡포에 대한 지적이겠으나, 이러한 도덕과 경건으로 또 일정 이상의 헌금으로 무장된 신앙권력이 수평권력으로 교회에 존재 합니다. 오늘의 교회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존중받는 교회가 아닙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시에 만인 사제설을 주장한것은 하나님 앞에 서열이 없다는 것 입니다.(벧전2:9) 종교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니체는 교회에 탐욕이 들어온 건 모두 아는데 도덕이 들어온 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백 여년이 지났지만 한국교회는 아직도 모르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에세네파와 다르게 종교를 세속화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와 다르게 도덕주의로 신앙함으로써 실패했습니다.
새로 일어나는 교회는 모든 사제의 호칭을 설교자로 하고 일체의 권한을 행사하지 않으며, 집사를 포함한 교회의 모든 직제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매년 선출하는 운영위원회와 공동의회로 운영되어 교회에서 만큼은 가난한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모든 인간의 존엄이 평등하게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축의 시대(BC 900 - AD 200)에 인류의 현자들은 인류의 정신문명의 기둥으로 선(도덕)과 지혜로 삼기로 합의를 이루었습니다.(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그러나 1 세기에 예수는 사랑을 주창했습니다. 인류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 입니다. 도덕과 경건은 힘의 논리로서 신앙엘리트 입니다.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정도에 못 미치는 것을 악으로 규정 합니다. 우리가 뱀을 혐오하는 것은 육지의 모든 동물은 발로 움직이는데 유독 뱀은 덩치도 크면서 배로 움직이기 때문 입니다. 정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악 입나다.
도덕과 경건으로 무장된 신앙인은 자기들 수준에 못미치는 사람은 배제 합니다.
도덕과 사랑은 부부처럼 함께할 수 없습니다.
도덕은 남이 나쁘다는 인식하에 발생하는 정죄 메카니즘 입니다. 도덕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지 남에겐 전혀 도움되는 일이 없습니다.
사랑은 남을 용납하는 화해 메카니즘 입니다.
3. 그리스도인의 신앙
예수와 바울은 반도덕주의 자가 아닙니다.
바울은 믿음이 교회 다니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나타난다고 하고,(갈5:6) 사랑으로 도덕을 이룬다고 합니다.(로마13:10)
에배소교회 감독인 폴리캅의 증언에 의하면, 사도요한이 에배소교회에서 설교하면서 1 시간 내내 '여러분 사랑하십시오'만 반복해서 말하고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도덕과 경건의 사람이 아니라 즉 선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입니다.
글이 길어져 이만 마칩니다. 본래 결론은 짧습니다.
필자를 잘 따라 오시면 못된 종교꾼한테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일에 지식은 소용 없습니다. 유사 기독교에 5 백만 명이나 되고 교수 의사 등 지식인이 수두룩 합니다.
한 번 그사람들의 타킷이 되면, 빨래해 주고 아이들 등하교시켜 주고 돈 꿔주기 때문에 절대 못 벗어 납니다. 종교에 대한 바른 지식으로 무장하여야 나와 가정을 지킬 수 있습니다.
다음엔 구원파 문제, 즉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하여를 올리겠습니다.
여러분과 가정에 평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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