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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왜 도덕과 경건이 아닌 사랑인가 1

by 【고동엽】 2006. 7. 22.
기독교는 왜 도덕과 경건이 아닌 사랑인가 1
그리스도인 천 백만 명 중에, 교회가 싫어서 안나가는 가나안 성도가 2 백만 명, 기성교회가 타락했다고 하며, 보다 도덕적으로 성별된 신앙을 하겠다는 유사 기독교가 3 백만 명, 기성교회가 율법적 신앙을 한다고, 보다 자유로운 신앙을 하겠다는 구원파가 2 백만 명 입니다.(거친 통계이므로 잘 아시는 분은 바로 잡아 주세요)
실은 기성교인 4 백만 명도 이 가운데 어느 하나로 경도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보다 도덕적인 경건한 신앙을 하겠다는 신천지 류의 유사 기독교 입니다.
이들은 세속화와 세속주의를 구분하지 못해서 별도의 신앙집단을 이루는 거 고요, 기성교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도 이것을 구분하지 못 합니다.
구분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의 신에는 예수그리스도는 없고 유대교 하나님과 플라톤이 있기 때문 입니다. 즉 기독교가 세상의 모든 종교와 어떻게 다른지 주목하지 않습니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한국교회가 유럽과 미국보다 더 처철하게 무너진 후에 불씨가 있어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가를 찾을 때 보탬이 되려는 데 있습니다.
세속화(secularity)와 세속주의(secularism)
복음주의는 세속화와 세속주의를 구분 합니다.(알리스터 맥그레이브, 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
필자의 스승인 박봉랑 박사는 예수, 바울, 루터는 종교를 세속화 했다고 합니다.(박봉랑, 신의 세속화)
예수와 바울은 그리스도인에게 종교와 법이 주는 도덕과 경건의 억압으로부터 해방하여 자유를 주었습니다. 예수는 바리새인들로부터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긴다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루터도 금욕의 수도원 생활을 하다가 수녀 5 명과 함께 수도원을 나와 4 명을 차례로 결혼 시키고 마지막의 뚱뚱한 수녀와 결혼 했습니다. 부인이 맥주를 만들어 파는 등 집안 경제를 일으켜 루터는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고 세속의 삶을 즐겼습니다.
문화, 오락이나 술 담배 등 기호식품은 세속의 삶을 즐기는 것이고 세속주의와는 다릅니다.
세속주의란 하나님의 의는 무시하고 세속에서 추구하는 번영, 성공, 업적, 성장, 명예를 신앙의 목표로 삼는 것을 말 합니다.(신앙과 결부하지 않으면 상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다 도덕적이고 경건한 믿음생활을 하겠다며 별도의 신앙집단을 형성한 후에 성장과 번영을 추구하는 유사기독교는 종교를 세속주의로 물들 게 한 것 입니다. 이들 유사 기독교는 어김없이 교회가 수익 사업을 합니다.
교회의 양적성장을 추구하는 대형교회들도 세속주의에 물든 교회 입니다. 부동산 사업, 교육, 의료 사업 등을 하는 교회는 세속주의에 물든 교회 입니다.
신앙인들이 세속화를 거부하는 이유
신앙인들의 웃기고 슬픈 현상은 세속주의인 성장과 번영, 명예와 권력은 탐하면서 예수가 종교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준 세속화는 오히려 거부 한다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성서를 유대교와 똑같이 해석하기 때문 입니다.
1.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거룩하라.(벧전1:15, 레19:2) 거룩은 그리스어 '하기오스'를 번역한 것인데 성화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예수의 사역과 가르침에 따라 실행하는 게 아니라 예수께서 비난한 유대인들과 똑 같이 실행 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거룩함이 사회 최대 규범이었습니다. 정결을 부정으로부터 지킵니다. 선조들의 어록 제 1 장 제 1 절은 법을 지키기위해 '울타리를 처라' '울타리를 처라' 입니다.(조철수, 선조들의 어록)
유대인들은 정결과 부정을 엄격하게 구분 하였습니다. 자기들은 신의 백성이고 외국인은 개라고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안에서도 강도, 창녀, 세리, 목동, 고리대금업자, 십일조 못내는 소작농, 장애인, 안식년 농산물 장사꾼, 고아 등은 부정한 죄인 이라고 성전에 올 수 없습나다.(송성진, 예수그리스도 121p) 같은 민족인 사마리아 인도 외국문화로 타락했다고 성전에 못 오게 합니다.
특히 중병이 걸린 사람은 부정하다고 동네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정결과 부정을 엄격하게 구분 합니다. 이들 모두를 차별하고 사람 취급 않합니다.
유대교에서도 거룩이라는 말이 초기에는 하나님께 속했다는 의미인데 후대에 와서 도덕적 의미로 변질되었습니다.(프레드릭 J 머피, 초기유대교와 예수운동 93p)
예수는 스스로 부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손을 씻지 않고 식사 하고(손 씻고 먹기가 법으로 정해졌습니다) 하열하는 여인이 만지는 것을 허락 하시며, 부정한 죄인인 세리와 함께 식사 합니다.
안식일을 어길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에 같이 하기 위해 일부러 안식일에 병자를 고칩니다.
스가랴 선자자는 구원의 날에는 거룩과 세속의 대립은 사라질 것이라 예언하는데(슥14:20) 그 약속이 예수에게서 성취되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거룩이란 유대교처럼 부정과 거리 두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거룩하라는 말은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아라 입니다. 하나님나라 백성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에 따라 사는 사람 입니다. 즉 세속주의를 멀리 하는 사람 입니다.
세속주의에 물들어 있으면서도 막무가네로 세속화를 거부하면서 믿음을 사랑이 아니라 도덕과 경건으로 삼으려는 그리스도인이 대부분 입니다.
왜 그럴까요 ? 원래 종교가 그렇습니다.
초기 교부들과 지금의 기독교는 세계종교와 예수가 어떻게 다른지 주목하지 않습니다.
종교라는 단어는 '렐리기오(religio)' 로서 '다시 만나다', '다시 되돌아 오다' 라는 의미 입니다.
그래서 고대부터 옛것은 좋고, 옛날로 돌아 가는 게 좋은 것으로 생각 합니다.
즉 종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옛날부터 신성함이 있다.
2. 신탁에 의해 신성함과 성스러움을 지켜야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성스러움을 지키기 위해 전쟁, 불화, 갈등을 서슴치 않습니다.
성스러움에 대한 숭배는 과시, 팽창, 풍부, 번영에 대한 기대를 낳습니다.(자크 데라다, 신앙과 지식 134, 182, 190-191 p)
앞서 이야기한 대로 예수는 성스러움과 세속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그래서 성서저자들은 예수의 시대를 새 시대, 새로운 하나님나라 라고 합니다.
바울은, ' 이제는 법이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합니다.(로마3:21)
바울이 말하는 법에 도덕과 경건이 포함됩니다.
다음에 우리가 존경해 마지 않는 도덕과 경건에 무슨 문제가 있나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올리겠습니다.
여러분과 가정에 평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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