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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란 무엇인가 3

by 【고동엽】 2006. 7. 21.
구원이란 무엇인가 3
(처음 읽는 분은 필자의 계정에서 같은 제목 1, 2 를 먼저 읽으세요)
우리는 이제까지 기독교신학이 관념이 중요시 되고 땅의 삶은 경시되는 플라톤 철학위에 세워진 것과 신플라톤주의 자인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삶의 구원이 아니라 개인영혼 구원으로 신학이 정립된 과정을 살펴 보았습니다.
원시 기독교는 복음서가 증언하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기쁨과 평화 그리고 희망찬 삶의 역동성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한 예수가 어떻게 신인가를 플라톤철학으로 알리는데 집중했습니다.
원시 기독교에서 구원이란 1. 용서의 구원 2. 새창조를 통해서 실현되는 악마의 지배로부터의 구원 3.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 입니다.(하르낙, 기독교 신학과 교회 교리의 형성). 오늘날도 유효 합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하나님이 세상을 위해 이스라엘을 선택하심을 세상에서 자신들을 구출하려 선택하심으로 오해한 데서 비롯 됩니다.
아브라함의 선택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을 통해 세상의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려는 의도 입니다.(창12:3, 22:18)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법을 주심도 제사장 나라로 삼기 위함 입니다.(출 19:6)
이스라엘은 세상의 제사장 나라가 되어서, 세상을 위로하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해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과 적대하며 차별 했습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의 선택도 이와 같습니다.
요한복음이 증언하는 구원이란 무엇인가를 살펴 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3:16)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오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한3:17)
우리는 이 말씀 중에 '영생'과 '세상을 구원하려 하신다' 를 주목 합니다.
그동안 16 절 말씀만 뽑아서 설교되고, 읽고 해 왔습니다. 구원이 영혼구원인 까닭에 읽고 싶은 거만 뽑아서 읽고 그것만 믿어 왔습니다.
먼저 17 절의 예수는 세상을 심판 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 하려는 것이다를 새깁니다.
신은 그리스도인만을 세상에서 구출하려고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상을 구원하는 구원사역(work)에 그리스도인을 쓰시려고 선택했습니다.(고후5:17-21)
따라서 예수의 구원사역의 현실에 내가 동참되어 있는 것이 구원받음 입니다.
정죄하고 차별, 배제하는 사람은 그 행위가 예수의 구원사역이 아니므로 당연히 구원받지 못한 사람 입니다. 나의 가족부터 이웃에 까지 내가 구해 주면 그것이 신의 구원사역이므로 나도 구원받음 입니다. 여기서 구하여 준다는 말은 교회로 데려가는 것을 말함이 아니라 그 대상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평화와 기쁨으로 살도록 도우는 것을 말 합니다. 지금 내가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선택됨을 말하고, 그것은 하나님나라에서 기쁨과 평화의 삶이므로 구원이 맞습니다. 다만 그 구원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오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 가노라 라고 합니다.(빌립보3:12) 또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고 합니다.(빌립보2:12)
예수를 믿으면 영생한다를 새깁니다.
영생한다는 죽지않고 끝없이 산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 즉 영원에서 산다는 말 입니다.
나중에 하늘천국가서 아우구스티누스 할아버지 만나면 '네 눔이 나를 욕하고 다녔다며' 하시면서 나의 엉덩이를 발로 차실 것 같아서 칭송을 해드려야 겠습니다.(나는 하늘천국에 갈 것을 믿습니다)
현대 철학자들의 시간개념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서 배웠습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과 폴 리꾀르의 '시간과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시간은 지구가 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을 관찰하여 얻었습니다. 별이 제자리에 오는데 365 일, 달이 다시 차는데 약 30 일, 해가 남쪽 중앙에 다시 오는데 24 시간임을 계산해서 인식 했습니다.
시간은 외부에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정신적 체험 입니다.(리꾀르, 시간과 이야기)
그리스인들은 이렇게 체험되는 연대기 시간(크로노스)과 신의 구원의 시간, 즉 영원(카이로스)을 구분 합니다. 쉽게 다시 설명하자면, 미래는 다가와서 찰나의 순간에 과거로 가 버립니다. 현재는 없는 거와 같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물리적으로 없는 그 현재를 최대한 넓게 사는 게 하나님나라 삶이고 구원이라고 합니다. 또한 그는 주는 여상하시고(한결같으시고) 무궁하시다에서 (시편102:27) 여상하시다 라는 말이 신의 시간은 흘러가지 않고 항상 내곁에 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고백록) 미래는 걱정이고 과거는 우울 입니다. 신과 함께 현재에서 기쁨과 평화의 삶이 구원 입니다 (로마14:17)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은 예수사역을 실행한 순서대로 기록했은데, 요한복음은 저자가 말하려는 의도에 따라 마지막 성전소동 사건도 처음 사역으로 하고 구원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공관복음에 없는 전승도 기록 합니다. 예수를 만나면 삶이 이렇게 변화한다는 것 입니다. 우리는 요한의 편집의도를 따라 갑니다.
신이 예수로 오셨다는 것을 말한 후에 1. 가나의 결혼잔치 2. 성전소동 사건 3 니고데모와의 대화 4.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 입니다.(요한복음2- 4 장)
1. 가나의 결혼잔치
예수가 결혼잔치에 초대되었습니다. 여흥에 술이 떨어지자 예수가 정결예식에 쓰는 항아리 6 개에 최고급 술을 만들어 줍니다.
예수와 함께 하면 경건이라는 이름의 종교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기쁜 축제의 삶을 산다는 걸 말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세속화 입니다. 세속주의와는 다릅니다.(다음주에 별도로 설명 하겠습니다.)
2. 성전소동 사건
예수가 채찍으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환전상을 쫓아 냅니다. 당시 사제들은 장사하는 사람들과 결탁하여 부패했고, 성전은 차별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방인, 장애인, 죄인 등은 성전에 올 수 없었고 남자는 안에 들어가고 여자는 따로 뒤켠에 자리가 있습니다. 죄인은 성전에 못오고 죄인 아닌 사람들만 성전에서 죄용서를 빌었습니다. 신앙인의 논리 없슴은 뿌리가 깊습니다. 성전정화라 해서 교회에서 바자회 를 못하게 하는 건 웃기는 해석이고요,
예수가 차별과 배제의 상징인 성전의 기능을 정지 했습니다.(톰 라이트, 예수) 예수가 상인과 결탁하여 부패하고 부당한 권력 행사를 하는 사제 권력에 저항하고 투쟁한 사건 입니다.
오늘날도 주님이 기능을 정지시킬 교회가 수두룩 합니다.
평화 즉 구원은 저항과 투쟁으로 얻어 집니다.
마태는 예수께서 '비판하지 말라.... 이어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고 하셨다고 증언 합니다.(마태7:1-6) 살인 강도를 비판하지 않으면 내가 다칩니다. 평화를 깨는 개같은 기득권 세력에게는 하나님의 의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씀 입니다.
3. 니고데모와의 대화
유대 자도자인 랍비(유대스승)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예수는 그에게 거듭나야 하나님나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말은 도덕과 경건, 소위 말하는 성화가 아닙니다. 존재의 변화 입니다. 바울식으로는 아담의 시대가 아닌 예수시대의 사람이 되는 것 입니다. 즉 삶의 변화 입니다.
니고데모처럼 자기가 고관이라서 예수 만나는 게 부끄러워 밤에 온다면 그는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부끄러운 사람은 하나님나라에서 살 수 없습니다.
4.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
예수가 정오에 물길러 온 사마리아 여인을 만납니다. 이 여인은 5 번 이혼한 여인 입니다. 이스라엘은 3 번 이혼만 인정해 줍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동네 사람을 피해서 사막의 더운 나라에서 가장 더운 시간에 물 길러 온 불륜녀 입니다. 예수 만나서 구원받고 스스로 동네를 다니며 예수를 전 합니다. 이제 이 여인은 동네 사람들을 피하여 숨어 다니는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라 예수 만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당당하게 이웃에 나서는 거듭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구원이란 차등없이 누구든지 한 인간의 존엄이 존중되고 기쁘고 평화한 삶을 이루는 것을 말 합니다.(로마14:17)
여러분과 가정에 평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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