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맡은 관원장이 아닌, 나라를 지킨 애국자 느헤미야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 때 왕의 술을 맡은 아주 높은 관원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궁궐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훼파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몹시 괴로워합니다.
결국 그는 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귀한 기회와 자리를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훼파된 성전을 다시 수축하게 됩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에 굴하지 아니하고
그는 그 귀한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수축한 사람으로
성경에 기록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왕의 술을 맡은 관원장이라면
날아가는 새를 떨어트릴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자리이었지만
느헤미야가 그것에 연연하여 성전 수축의 일을 감당치 아니하고
자기 자리 만 지키고 있었다면 우리는 지금 그가 누구인지를
도무지 알지 못할 그러한 사람으로 인생을 끝마쳤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는 느헤미야가 어리석어 보였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술맡은 관원장 느헤미야와
그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많은 어려움과 위험 속에서도
예루살렘 성을 다시 수축한 사람 느헤미야와는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술맡은 관원장 느헤미야로 인생을 마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귀한 기회들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하나님 의 성전을 잘 수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그 일에 뛰어 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들 중에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와 같은 귀한 몫과 기회를 놓치지 아니하는
지혜롭고 용감한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술맡은 관원장’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와 재산을 자랑하고 또 그것을 은근히 부러워도 하지만
하나님이 기대하시고 바라시는 삶은 그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늘 이 설교를 들으시면서 ‘술맡은 관원장’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예루살렘 성을 위하여 인생을 건 느헤미야’로 살 것인가를
결정하실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들 위험한 예루살렘에 가서 살기를 꺼려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을 다시 수축하려고 했을 때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은 아직도 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변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살려고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지 않으면 성을 지키기가 어려웠으므로
누군가는 그 곳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당시 3종류의 사람들 이 변방 예루살렘에서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첫째는 백성들의 두목들이었고,
둘째는 자원하는 사람들이었고,
셋째는 백성들 중에서 제비 뽑힌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로 귀환했으나, 아직 위험한 예루살렘에 가려고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총독이었던 느헤미야는
백성들 중에 1/10을 제비 뽑아 예루살렘으로 강제 이주를 시켰던 것입니다. 느11:1~2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실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첫째,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은 언제나 처음에는 변방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루살렘은 사람들 보기에 변방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축복의 땅 예루살렘은 오히려 한적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도 생명으로 인도 한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땅 예루살렘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고, 매력이 없는 변방을 먼저 찾아보아야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고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곳은
예루살렘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2. 예루살렘은 언제나 나중에는 중심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은 처음에는 변방이었지만 나중에는 중심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중심에 있다고하는 사람들이 변방에 살게 되었습니다.
변방이었던 예루살렘이 중심이 되니
당시 중심이었던 곳이 변방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처음에는 언제나 변방이지만
나중에는 언제나 중심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 중에 시편 122편 6절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저는 그 말씀을 믿습니다.
예루살렘이 아직 변방일 때
느헤미야처럼, 백성의 두목처럼, 그리고 자원하는 백성들처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강제적이기는 하였지만 순종하여
변방 예루살렘에서 살던 사람들도 결국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를 부리고 꾀를 부리며 당시 중심에 살던 모든 사람들의 삶은
결국 변방이 되고 말았습니다.
군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라크 등 접전지역으로 자원해서 가는 군인들이
나중에 승진하고, 진짜 대우를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집니다.
진짜 하나님 나라의 군병은,
비유하자면, 군화가 반짝 반짝 광이 나는 군병이 아니라,
군화에 먼지와 진흙이 뽀얗게 묻은, 실전에 투입된 ‘야전 군병’입니다.
▶3. 제일 먼저 변방 예루살렘 성에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백성들의 두목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두목(지도자)들이 변방을 선택하는 나라는 부흥하고 발전한 나라요
두목들이 먼저 중심을 차지하려고 하고 힘없는 백성들만 변방으로 내 모는 나라는
쇠퇴하고 망할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흥할 나라인가 아니면 망할 나라인가를 알아보려면
그 나라의 지도자들이 변방에 있는가, 아니면 중심에 있는가를 먼저 알아보면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교회가 될 교회인가 아닌가를 알아보려면
교회의 지도자들이 어떤 자세로 교회를 섬기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힘들고 위험하며 또 낯이 안서는 변방에는 교인들만 있고
교회의 중직자라고 하는 지도자는 존귀하고 대접받는 자리에만 있으려고 한다면
그 교회는 결코 좋은 교회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선한 목자인가 아니면 삯군 목자인가를 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변방에 있기를 좋아하는가, 아니면 중심에 있기를 좋아하는가를 보면 됩니다.
우리 교회에도 ‘두목’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저들을 무거울 중(重)자를 쓰는 중직자 라고 부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의 변방에서 언제나 무거운 일을 교인들 앞서서 감당해야
한다는 뜻에서 중직자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참된 의미의 중직자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무거울 重자의 중직자 보다는 가운데 中자의 중직자가 많으며
무거운 직분을 감당하려고 하는 중직자보다는
자기의 자리를 중히 여기고 무겁게 하려고 하는 重席者 들이 많지 않은가
한 번쯤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들, 어려운 일이 앞장서는 두목(지도자)들이 되기를 힘쓰십시오.
그리고 변방에 가기를 힘쓰십시오!
▶4. 넷째,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성 예루살렘을 지켜 주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두목들만으로는 예루살렘 성을 지킬 수 없습니다.
자원하는 백성들이 있어야만 예루살렘 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얼마든지 당신의 성을 지키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가 당신의 성을 지키시는 일을 좋아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과 삶을 지켜 주시는 일은 즐겨 하시지만
당신 스스로 당신의 성을 지키시는 것은 좋아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성을 지켜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성을 지킬 능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성을 지켜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우리가 비록 힘이 없고 능력이 없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하나님의 성을 지키겠다고 헌신하면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그에게 축복과 은사를 주실 것입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을 지키려고 하였던 백성들의 두목들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을 지키려고 하였던 백성들은 모두가 다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비록 억지로 이기는 하지만 순종하여
제비에 뽑혀 예루살렘 성에 살았던 1/10의 사람들도 복을 받았습니다.
변방이 중심이 되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치는 말
저도 설교는 이렇게 하지만
‘변방 예루살렘’에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그와 같은 삶을 살아 내야만 합니다.
예루살렘이 변방에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습니다.
그 때를 놓치면 평생 변방 예루살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 동안 교회가 힘들고 어려운 때를 사는 것 같지만
그 시간도 정말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변방에 있을 때가 기회입니다.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와 같은 때와 기회를 놓치는 사람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꾀부리지 말고 느헤미야와 같이, 백성들의 두목들과 같이,
그리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변방에 나섰던 백성들과 같이
우리의 짐을 앞장서서 감당함으로써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중심에 서는 축복을 받으시는
저와 여러 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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