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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δεδομένα 18,185편 ◑/यू की-सेओङ

가나안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라 신11:12~15

by 【고동엽】 2023. 2. 26.

가나안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라   신11:12~15      

  

오늘부터 아주 짧은 기간이 되겠습니다만 새로운 시리즈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성공보다 더 승리를 구하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고 역사할 수 있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으면 좋겠는데, 특별히 이번 시리즈 설교에는 
참고서적 한 권을 여러분에게 추천하려고 합니다. 

<가나안에 거하다> 라는 책입니다. 
저자 이진희 목사님은 제게는 아주 친한 친구 목사님이기도 한데 
미국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이십니다. 

지난번 "광야 시리즈" 책도 참 좋은 책이었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전의 책들 <광야를 읽다>, <광야를 살다>도, 
혹시 못 보신 분들이 있다면 꼭 보시길 바랍니다. 

이번에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말씀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도대체 광야는 뭔지, 가나안은 뭔지.. 
도대체 광야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곳인지.. 
가나안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 곳인지.. 
이번 기회에 한번 명확하게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신11:12~15절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신11:12~15

R A 토레이 목사님이 무디 성경학교에서 가르치실 때 
신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승리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신학생들에게 '자네들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믿음으로 승리한다는 게 뭐라고 생각하느냐?' 이렇게 질문을 하셨다고 그래요. 

뭐 여러 가지 대답이 있었지만 
어느 신학생이 토레이 목사님의 마음에 딱 드는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말씀을 붙잡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토레이 목사님이 대단히 기뻤어요. 
정말 말씀을 붙잡고 사는 것이,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이거든요. 

그러면서 목사님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네 대답이 옳지만, 그러나 자네가 말씀을 붙잡는 것은 한계가 있다네. 
말씀이 자네를 붙잡아야 하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실제로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애를 쓰면.. 항상 좌절이 있습니다. 
'안 된다. 힘들다. 어렵다.' 이렇게 돼요. 

근데 말씀이 나를 사로잡아 버리면 
그러면 말씀대로 살아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경우를 '성령의 충만한 역사'라고 하죠.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였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말씀이 나를 사로잡는 거죠. 

저는 이번 시리즈 설교 중에, 말씀이 여러분을 사로잡는 역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을 듣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지고 
말씀대로 살고 싶고, 말씀대로 살 수 있다고 믿어지고 
말씀이 너무 달게 느껴지고, 
계속 그 말씀이 생각나고... 

이 성령집회 시간만 아니고, 오늘 저녁에 집에 가서도, 내일 아침에도 
계속 그 말씀이 기억나는.. 
이게 말씀이 나를 사로잡은 거죠. 
그래서 이런 역사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갈급한 마음을 가진 여러분들에게 
그렇게 역사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요즘에 여러분 중에는 광야를 살아가는 심정이신 분들이 꽤 많으실 겁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겹쳐있기 때문에 
'아~ 나는 지금 광야 길을 가는 것 같아!' 그런 마음이신 분들이 있으실 거예요. 

그런 분들은 자연히, '빨리 광야기간이 끝나고 
가나안 땅, 약속의 땅에 나도 들어갔으면..' 그런 마음을 가지시게 되죠.. 

그런데 한 가지 여러분에게 꼭 부탁드리는 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가나안 땅에 오해가 있으면 

그러면 지금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고 있는데도 
계속 광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는 겁니다

내가 생각하는 가나안이, 왜곡된 가나안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미 가나안 땅의 삶을 주셨는데도 
계속 방황하는 경우도 있다는 거예요. 

어떤 경우냐면 '가나안은 문제도 없는 곳, 
이런 고통스러운 어려움도 없는 곳, 거기는 아주 풍족한 곳, 
모든 일이 다 잘되는 곳' ... 그걸 가나안 이라고 생각합니다. 

광야는 어려움이 많은 곳, 

가나안은 문제가 아니라 다 사라진 곳, 아주 풍요한 곳 ..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은 가나안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광야에서도 제대로 이겨나가지 못하고, 가나안에서도 계속 실족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행복하게 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가나안 땅, 가나안 땅' 하면서
하나님 약속하신 땅에 그들이 들어갔는데도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계획대로 살지는 못했어요. 
사사기를 보십시오. 가나안에 들어가서 오히려 엉망이 되었어요.

그 문제를 한번쯤 정확하게 짚어봐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신자들이 주님을 영접하고나면                         주1)
그러면 이제 고생 끝! 
뭐 이제는 어려움도 없고, 모든 게 편안하고 
모든 일이 잘 되고, 잘 풀리리라고.. 왜냐면 가나안에 들어왔으니까..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어려운 일은 많았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그때 그 가나안 땅은, 광야보다도 훨씬 더 어려움이 많은 곳이었어요. 

광야생활이 어려울까요, 가나안 땅에서의 삶이 어려울까요? 
따지고 보면 가나안 땅에서의 삶이 더 어렵습니다. 

광야에서는, 자기 땅, 자기 집이 없었을 뿐이지 
아침에 만나가 내리지요. 
그리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하나님이 정확히 길을 인도하시죠.

사실 지나는 곳이 광야고, 어디에도 내 집은 아니니까 
그런 점이 좀 늘 피곤한 느낌이지만 
주님의 이끄심을 따라 사는데 있어서는 명확한 곳이에요. 

그런데 가나안 땅은, 거기서 정착을 해서 농사를 짓게 되지만 
그때부터 거기 가나안 족속과 싸워야 돼요. 
그리고 그곳에서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처음에는 갈대아 우르에서 살던 사람이에요. 
그때 당시에 가장 지구상에서 문명이 발달된 곳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우리나라의 서울이죠. 
모든 문화 혜택이 다 있고, 경제적인 모든 부가 다 집중되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고, 가장 첨단 문화와 문명이 있는 곳이 갈대아 우르였어요. 

근데 하나님이 그 갈대아 우르에 있던 아브라함을 불러내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곳에 인도해 가셨는데, 거기가 가나안 땅이에요.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데려다가 
가나안 땅으로 가서 살게 하셨다 그러면 
가나안 땅이, 갈대아 우르보다 훨씬 좋은 곳이어야 되잖아요. 
그래야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더니 복을 받았다' 이런 간증이 나오는 거죠.

그런데 갈대아 우르에서 너무 풍요하고, 그리고 당대 최고의 문명세계에서 살던 아브라함을 
이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서 정착하게 한 곳이 어디냐면 헤브론이에요. 

헤브론은 해발 8백 미터쯤 되는 아주 높은 산악지대입니다. 
거기는 나무 하나 제대로 자라지 않는 돌산이에요. 
그런 곳에다가 아브라함을 옮겨놓고 
'여기가 내가 너에게 줄 땅이다' 참 아브라함이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그런데다가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기근이 일어났어요. 
그것도 아주 심한 기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기근을 피해서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갔는데 
 
아브라함이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이 여기가 내 땅이라고 했는데 애굽으로 갔던 게 아니고..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도무지 가나안에서는 살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기근이 들면 먹을게 없는데, 
돈이 있어도 양식을 살 수가 없어요. 

워낙 양식 자체가 그 땅에 적으니까 
가나안 땅에 살던 사람이, 자기 가족들, 동족들도 제대로 먹을 게 없는데 
아브라함은 나그네입니다. 그 나그네한테 식량을 줄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은 그 가나안 땅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었어요. 
살아보려고, 버텨보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애굽으로 피난을 갑니다. 

창12:10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거류라는 말은, 일정 기간 머무는 것을 뜻합니다. 영구 이민은 아니고요. *구르, sojourn

 

그래서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날 때, 아브라함은

'내가 고향 갈대아 우르에서 잘못된 음성을 들었나봐'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나님이 좋은 곳에 데려가는 줄 알았더니 
와 보니까 세상에! 살 수 없는 곳이네!' 

그러고 보니까 그 옆에 애굽이, 거기가 굉장히 좋은 땅이 있는 곳이라서  
'차라리 애굽에 가서 살아야되겠다..' 그리고 애굽으로 갔다는 겁니다. 일정기간 이라도요.

애굽이라고 하는 곳이 어떤 곳이냐 하면 
여러분이 쉽게 생각하는 그 가나안(축복의 땅이란 의미)과 같은 곳이에요. 

거기는 양식도 풍족하고, 기근이 와도 거기는 농사의 걱정이 없어요. 
문명도 발달하고, 그런 번화한 곳이에요. 

이 창13:10절에 보면 그 애굽을, 에덴 동산과 거의 같은 동급으로 설명을 합니다. 

'에덴 동산 같았더라' 그 정도로 애굽이 좋았다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그 애굽으로 이사를 가요. 
가나안은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그 기근때문에 애굽으로 피난 내려가서 
잠깐 거기 머물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은 괜찮은데 
아브라함이 너무 오래 거기에 머물렀는지  
바로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십니다.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하려고 까지 하죠. 
이런 당황스러운 사건을 만나고야 아브라함이 기겁을 해서 
결국 바로에게 거의 쫓겨나다시피해서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아브라함은 아마 그냥 애굽에서 계속 눌러 살았을 겁니다. 
그 정도로 솔직히 가나안은 별로 가서 살고 싶은 곳이 아니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바로 왕의 무자비한 핍박, 심지어 아들을 낳으면 바로 죽임을 당해요. 
그러니 어떻게 살아요? 노예 취급을 당하고, 아들은 낳으면 바로 죽임을 당하니 

 

그들이 출애굽을 하긴 했는데, 만약에 그 정도가 아니었다면
처음에는 바로 왕이 회개하고 마음을 바꾸게 해달라고 기도했지, 
자기들이 애굽을 떠날 거라고는 생각을 안 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이미 그 땅에서 여러 대를 이어 내려가면서 정착해서 살았어요. 
재산도 그들이 거기서 축적했고, 그리고 삶의 기반도 마련하고 
무엇보다도 살기가 좋은 땅이었어요. 

애굽의 나일 강 하구 삼각주의 비옥한 곳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던 곳입니다.  *고센

근데 도무지 거기서는 살 수가 없으니까 
바로 왕이 자기들에게 너무 중노동을 시키고, 아들을 낳으면 그 즉시로 죽여 버리니 
그러니 결국 모세가 '우리는 애굽을 떠나야 된다' 말할 때 
정말 눈물로 그 땅을 떠났던 거죠.. 좋아서 떠났던 게 아닙니다. 
  
가나안이 애굽보다 훨씬 더 좋은 곳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떠난 게 아니에요.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까 떠난 거죠.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거죠? 
물론 성경에,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런 땅도 일부 있어요. 가나안 지역에. 

지중해 연안에 있는 평지, 그리고 요단 강변이죠. 
그렇지만 지중해 연안은 블레셋이 장악해서 이미 터를 닦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자리 잡은 곳은 산악지역이에요. 
그 산악 지역은 그대로 광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가나안 땅까지 오는 동안에 그들이 거쳐왔던 
그 땅들만큼 거친 곳, 광야, 거기가 가나안 땅이에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험한 곳인데도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까닭이 뭘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줄 땅을 정하셨고, 
가나안 땅을, 하나님이 그 땅을 정하신 거에요. 
그리고 그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들인 겁니다. 

신명기 9: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두 가지 약속을 주셨는데 
-하나는 후손에 대한 약속
후손은 '네가 큰 민족을 이룰 것이다. 너희의 자녀들이 앞으로 큰 민족이 될 것이다'

-또 하나는 땅에 대한 약속이에요. 
'너에게 영원한 기업인 땅을 줄 것이다' 

근데 애굽에서 그들이 큰 민족을 이룹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하나는 벌써 이루어졌죠. 큰 민족이 이루어진 거죠.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땅으로 그들을 이끌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이제 출애굽을 시키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신 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 약속하신 것을 지키려고 택하신 땅이라면, 

이왕이면 갈대아 우르보다, 또는 애굽보다
더 좋은 땅을 정하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이 정하신 그 가나안 땅은 너무 평범한 땅이에요. 
평범하다 못해서 오히려 거의 광야같은 느낌이 드는 척박한 땅입니다. 

성지순례를 가보면, 이스라엘의 유대 광야를 지나가게 되면 
다 아마 느낌상, 우리 한국에서는 그렇게 거친 땅을 거의 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그런 곳을 주신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데는 굉장히 중요한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왜 택하셨을까요? 

그 이스라엘 백성이 잘나서, 뛰어나서, 강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선민으로 택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은 믿음이 좋으니까' 택하셨을까요? 
성경을 가만히 읽어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난 다음에 
믿음이 자랍니다. 그가 처음부터 믿음이 좋았던 건 아니에요. 

처음에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 못합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그냥 은혜로 택하신 거예요. 
아무 이유 없이, 너무 평범한 사람을!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은, 아주 작은 민족이기에 택하셨다고 하셨어요. 신7:7
그러니까 하나님이 고르고 고르다가, 아주 작고 약한 민족 하나를 택하신 게 이스라엘이에요. 

똑같이 땅도 그렇게 하셨어요. 
하나님께서 전세계에 여러 좋은 땅들을 많이 보실 텐데 
근데 하나님이 '가나안 땅이다!' 이렇게 택하신 그 땅은 지극히 평범한 땅, 

위로 메소포타미아, 아래로 애굽 땅에 비하면 
누구도 탐내지 않는 그런 땅, 그 땅을 하나님은 '이 땅이다!' 
이렇게 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쭉 이끌어 오셔가지고 
'너에게 줄 땅은 여기야!' 이렇게 정하셨다는 거에요. 

 

여러분, 잘 이해가 안 될 만한 내용이긴 합니다만,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나를 택하신 것이, 내가 특별히 잘나서, 뛰어나서, 강해서가 아니고 
그냥 나를 아무 조건도 없이 나를 택하셔서, 나를 사랑해 주시는구나!' 
그게 어떻게 믿어져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 뭔가 조건이 있으니까 택하는 거거든요. 
뭐가 잘났으니까 택하는 거거든요. 

못난 사람을 일부러 택하고, 평범한 사람이 일부러 택함 받는 게 
우리 삶 속에는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이 나를 무조건적으로 택하여 주신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세상 사람들은 나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택하시고 귀하게 여기실까? 

이스라엘 백성과 가나안 땅을 보면 '와 그렇게 하시겠구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잘나서 택한 게 아니고, 오히려 약해서 택하셨죠. 신7:7

'가나안 땅이 좋은 땅이라서 택하신 게 아니고 
너무 평범하고 거친 땅이니까 오히려 그 땅을 택하신 것을 보니까, 
나도 그렇게 택하셨겠구나...' 

물론 여러분 중에 좀 잘나신 분들은, 오히려 더 거꾸로 시험이 될 수도 있겠죠..
'아이 하나님, 그래도 뭔가 좀 비교적으로 잘난 사람을 좀 택해 주셔야 
나 같은 사람을 좀 택해 주셔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좀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가 자신을 가만히 따지고 보면 
다 자기 자신에 대한 좌절감과 실망이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나는 진짜 못됐어, 나는 의지도 약해, 믿음도 없는 것 같아!
하나님 앞에 뭐가 제대로 내가 쓰임 받을 존재가 못돼, 
늘 하나님께 실망만 시켜드리고...' 

그래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거죠. 
왜요? 까닭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이죠. 

△그게 가나안 땅에서 그대로 드러나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주리라고 맹세한 땅' 
가나안에 대한 언급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주리라고 맹세한 땅' 
이런 표현이 성경에 33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아주 작정하시고 택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애굽보다도 못하고, 갈대아 우르보다도 못한 것을, 왜 모르셨겠어요? 

그 가나안 땅이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서 편안하게 행복하게 풍족하게 살기에는

어려운 땅이라는 걸, 하나님이 왜 모르시고 택했겠어요?

하나님이 다 아셨어요. 그렇지만 그게 은혜에요. 
'부족한 게 많은데도, 문제가 많은데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렇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도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가 어떤 일들을 판단할 때 

'좋은 땅, 좋은 조건, 편안하고 풍족하고 모든 사람들이 살기 원하고.. 
그런 곳에 나도 가서 살고 싶어!' 
이런 기준으로 하나님께 기대하고 기도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자꾸 가나안 땅에 대한 이해가 헷갈리는 거예요. 

'우리가 생각하는 가나안 땅은, 
광야가 끝이고 이제 가나안 땅이 시작되는 삶은 
이제는 모든 문제도 끝났고, 이제는 성공하고, 이제는 풍요하고, 문제도 없는 
그런 삶을 이제 살게 될 거라고 기대하니까, 
여전히 나는 광야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죠.

가나안은 그런 땅이 아니라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게 가나안이 가지고 있는 복이에요. 

가나안 땅은 항상 하나님이 주목하는.. 
지구상에 있는 많은 땅들 중에 
가나안 땅에는 항상 하나님의 눈길이 머무는 곳,  *신11:12
그 이유가 특별히 없어요. 
별로 뭐 좋은 땅이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에요. 
하나님이 택하셨기 때문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그 가나안 땅 안에서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립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이 있는 지역은 그래도 굉장히 좀 살기가 괜찮은 땅이에요. 
거기는 호수도 있는데, 그 갈릴리 호수는 살아있는 호수예요. 
물이 들어오고, 물이 빠져나가고.. 물고기가 자라고.. 
그래서 거기서 어업도 하고, 농사도 지을 수 있는 그런 호수가 있어요. 

그런데 남유다 땅에는 사해가 있어요. 이 사해는 완전히 소금바다에요. 
아무런 생물이 살 수가 없어요. 

여러분 같으면 어디가 더 살기 좋겠어요? 
당연히 갈릴리 호수가 있는 북이스라엘이 살기 좋죠.

북이스라엘은 산에 나무가 많아요. 
성지순례로 다녀보면, 여기는 숲도 있고 참 경치도 좋구나.. 
그런 쪽은 다 북이스라엘 쪽이에요. 

남유다로 내려가면 진짜 황량한 광야가 대부분입니다. 

북이스라엘은 도로가 발달되어 있어서 
유럽과 아시아를 관통하고, 북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X자형 세계무역로가 북이스라엘 갈릴리 북부 지역이에요.

그러니까 교통의 요지이고 
온갖 세계 문명들이 거기서 오고가면서 세계 최첨단의 문명을 습득하기 좋아요. 

 

근데 남유다는, 북아프리카로 이어지는 무역 통로가 한 갈래 있기는 한데, 
그마저 블레셋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지중해 해안길이죠.

실제로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살고 있는 지역은 
산악지대에 올라가 있어요. 그 산악지대로는 무역상들이 다니질 않습니다. 

그래서 남유다 사람들은 약간 촌스러워요. 시골사람 같은 느낌인거죠.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주 세련된 도시문화... 

그래서 북이스라엘이 남유다보다 훨씬 강대한 나라를 이룹니다. 
거기는 열 지파가 모여 있고, 남유대는 두 지파만 있어요.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은, 북이스라엘이 먼저 망합니다. 
남유다가 한 150년 가까이 더 버텨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남유다가 이렇게 산악지대고, 또 중요한 어떤 무역로에서 이렇게 약간 벗어나있고 
그리고 사람들이 좀 살기가 좀 힘든 지역이다 보니까 
외부의 영향을 덜 받았어요. 
그래서 여호와 신앙을 북왕국에 비하면 그나마 잘 지켜냈습니다. 

물론 그들도 여전히 바알종교의 우상의 시험과, 또는 타락하는 일이 있어서 
결국 나중에는 바벨론에 멸망하게 됩니다만 
그래도 북이스라엘에 비하면 남유다는 굉장히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신앙을 
끝까지 유지했고, 그래도 훌륭한 왕들이 남유다에는 계속 일어났어요. 

그런데 북이스라엘에는 역대기에 기록되어 있는 왕이 없어요. 
예수님이 족보에 나오는 남유다 왕들은, 족보에 언급이 되어도 
북 이스라엘의 왕들은 한 사람도 언급이 되지 않아요. 

그들이 완전히 영적으로 타락해버립니다. 
살기가 괜찮고.. 그리고 사람들의 왕래도 빈번하고.. 사람들도 많이 모여살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바로는, 가서 살고 싶은 곳이죠.

근데 우리가 기억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 곳이 영적으로는 굉장히 위험하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택하셨을까요? 
애굽 땅, 갈대와 우르 등 좋은 땅들이 주변에 많은데... 

그 이유는, 가나안 땅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해야 살아낼 수 있는 땅이에요. 
하나님을 계속 바라보는 믿음으로만 
그 땅이 옥토같이 될 수 있는 땅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가나안 땅은 그냥 광야와 똑같은 것이 돼요. 

△보통 문명이 발달하려면, 큰 강이 있어야 되는데 
그래서 갈대아 우르도, 또 애굽도 다 큰 강이 있습니다. 

큰 강이 있다는 말은 
가뭄이 들어도 농사를 짓는데 어려움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가나안 땅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도, 요단강 이라는 강이 있는데 
문명이 발달한 나라들에 있는 강에 비하면 완전히 개천 수준이에요. 

게다가 비가 안 오면 완전히 말라 버립니다. 
그러니까 가나안 땅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비에 의존해서 농사짓는 땅이에요. 

하나님이 때를 맞춰 비를 주시면, 이 가나안 땅도 옥토같이 돼요. 
비를 충분히 주시면, 제때에 비가 내리면! 

근데 하나님이 만약 비를 주시지 않으면, 완전히 사막같이 돼버려요. 
그러니까 가나안 땅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땅이에요. 
많은 분들이 그런 땅은 싫어해요. 

애굽 땅처럼 기본적으로 물이 엄청나게 많은 강이 기본적으로 있으면 
그러면 언제 든지 그 나일 강물을 끌어다가 농사지으면 돼요. 그럼 너무 편안하죠.

그러면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믿음이 별로 필요 없어요. 
늘 기본적으로 그냥 강물이 계속 흐르니까요! 

그리고 이제 홍수가 나면, 또 상류의 좋은 흙을 가져다가 토지를 덮어주니까 
농사 짓기에 너무 좋지요.
하나님께 꼭 매달려서 기도하고, 응답받고, 해결받고.. 그럴 필요가 없어요. 
살기는 너무 편안할 것 같죠.

그러니까 영적으로 타락해 버리게 돼요. 
완전히 마귀놀이터가 돼버려요. 

그런데 가나안 땅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비를 그쳐요. 

그러니까 광야도 그렇지만, 가나안 땅에서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바라보고 살아야 돼요. 

광야에서는 아침에 만나를 주시고,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들이 그 광야를 지나갔어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았던 곳이 광야에요. 

그런 점에 있어서는, 가나안도 사실 다를 바가 없어요. 
정착했다는 것 뿐이지, 여전히 하나님 바라보고 살아야 되는 곳이 가나안 이었고 

그게 하나님이 계획에 있었던 거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관계가 좋으면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됩니다. 

근데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면, 그 땅은 그대로 광야같이 되어버려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 말씀하시는 게 뭡니까? 
땅 좋은 것/ 나쁜 것.. 이것만 보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동안에, 세상적인 기준으로 좋은 곳이냐/ 나쁜 곳이냐
이렇게 판단하지 말라는 거예요.

뭐 자녀의 결혼배우자를 택하거나, 진학할 학교를 택하거나 
사는 지역을 택하거나... 우리도 선택할 게 많잖아요. 

그런데 세상적인 기준으로 좋고/ 나쁜 기준만 가지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가 진짜 가져야 될 기준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요. 

하나님과 관계가 좋으면,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돼요. 
근데 하나님과 관계가 안 좋으면, 그대로 그들은 광야에 사는 거나 똑같은 처지가 되어버렸어요. 

우리도 마음에 각자 동경하는 가나안이 있는데 
그 가나안은,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좋은 환경이어야 한다고 기대하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지금 처지가 어떠하든지 간에, 다 마음에 꿈꾸는 것이 있어요.
지금보다는 조금 더 좋은 집, 조금 더 넓은 집,
경제적으로도 조금 더 풍요해지는 것, 
조금 더 대접받는 곳, 조금 더 편하게 사는 곳, 편리하게 사는 곳 
여러분들이 꿈꾸는 미래죠.. 

그런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걸 가만히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지금보다 더 거친 곳으로 인도하시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잖아요.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으로입니다.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오게 하셨죠. 
훨씬 더 어려운 곳으로 오게 하신 거예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광야로 이끄시죠.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으로 데려가십니다. 
훨씬 더 어려운 곳으로,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이끄셨던 경우가 
성경에 수도 없이 나와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이 이끄는 곳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제는 정확한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좋은 곳으로 이끄실 거야, 
전에 보다는 더 잘 사는 곳으로, 더 풍요한 곳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야'
그러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정확히 분별을 못해요. 

하나님은 더 어려운 곳으로 인도하시는 경우가 있고, 또한 많습니다. 

지금까지 저도 제 삶을 가만히 돌아보니까 
하나님이 옥토같은 곳에서 돌짝밭으로 이끄신 경우가 꽤 됐어요. 
아주 낭떠러지로, 저를 내모는 것 같은 경우가 너무나 많았어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이제 여러분이 각오해야 돼요. 
뭘 각오해야 되는 거죠? 
'주님과 함께라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주님, 제가 원하는 것은 좋은 곳/ 나쁜 곳이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주님이 함께 하시는' 거죠..
'주님이 저와 함께 계시는 것만 분명히 알게 해 주신다면 
주님 저는 어디도 좋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믿음이 분명하면 
그러면 여러분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삶을 살게 돼요.

예화 주2) *흐름의 연속을 위해 각주로 배치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마음에 분명하게 믿음을 분명하게 갖게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 제가 제 눈에 좋고 나쁜 것을 따라서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신명기 28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면서

모세를 통하여 신신당부한 것이 있는데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면 하나님이 복을 주실 거예요. 가나안 땅에서

 

신11:8~9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 차지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할 것이며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가나안 땅에서 정말 복을 누리고 살 것이라고 약속하세요. 그런데 조건이 있어요.

 

'하나님을 잘 섬기고, 그 말씀에 순종하라!' 이걸 절대로 소홀히 생각하면 안 돼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나안 땅에서, 우리가 복되게 사는 비밀은,

땅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즉 거기는 모든 조건이 다 갖춰졌기 때문에, 문제도 없는 곳이기 때문에

그냥 들어가면 아주 잘 살고, 재밌게 사는 곳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러면 그 땅은 너에게 복이 될 것이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그 땅이 저주가 될 것이다!' 라고 그랬어요.

 

약속의 땅, 축복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간 너희들이..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 저주는, 하늘이 문을 닫고 비를 내려 주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가나안 땅이 복된 것은, 하나님이 계속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신11:12

하나님이 그 가나안 땅을 택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가나안 땅을 계속 지켜보고 계세요.

이것이 그 가나안 땅의 복입니다.

 

신11: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 정말 2022년 올 한 해를 축복하는 말씀인데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그곳에, 여러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항상 주목하고 계세요.

'이게 큰 복이구나! 하나님이 주목하고 계신 것, 그러면 충분하다!'

여러분 이 사실을 정말 믿어야 돼요.

 

신11:14~15 절에 또 하나님이 복을 약속하시는데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런 역사가 가나안 땅에서 이루어질 건지가 중요해요.

그게 13절입니다.

 

신11:13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이게 핵심입다. 그러니까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가나안 땅은 어떤 곳이죠?

하나님을 잘 섬기고 말씀에 순종하면,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시고

 

만약에 여러분이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그러면 갑자기 그 땅이 광야같이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 광야를 지나고 있는지,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지는

뭘 가지고 분별해야 되냐면

편안하냐, 문제가 없느냐, 풍족하냐? .. 이 기준으로 볼 문제가 아닌 거예요.

 

내가 얼마나 주님을 바라보고, 그리고 주님께 순종하고 사느냐?

그것이 중요한 핵심이에요.

 

▲왜 도대체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되는 거죠?

여러분은, 하나님이 왜 여러분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광야는, 아무리 그 땅을 밟고 다녀도, 그 땅에 자기 땅이 될 수가 없어요.

지나가는 길이니까! 그게 광야입니다.

 

만나도 먹고, 광야생활을 하는 분들은

매일매일 그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으로 살아요.

모아놓고 쌓아두고 살 수가 없어요. 그게 광야입니다.

 

광야에서는 집을 짓거나, 창고를 지을 수가 없어요.

지나가는 나그네인데, 집 짓고 창고지으면 어떻게 해요?

짐이 많으면 많을수록 광야는 지나가기가 힘듭니다.

광야를 지날 때는 모든 게 가벼워야 돼요.

 

광야는 거기서 성공하려고 목표를 세우면 난감해요.

광야는 빨리 거쳐 지나가야 할 곳일 뿐이에요.

 

△근데 가나안 땅은 자리 잡고 정착하는 곳인 거죠.

그 말은 이제 거기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커진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지,

'고생 끝, 이제는 행복 시작!' 이런 개념으로만 가나안 땅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거죠.

 

가나안 땅에도 여전히 동일하게 광야처럼, 환란도, 시험도, 문제도, 기근도 일어나요.

여러분이 지금 광야를 지나기 때문에, 환란이 오고 있는 게 아닙니다.

가나안 땅에도 동일하게 기근이 계속 일어나고, 거기도 환란이 있고, 문제도 있고

땅은 거칠고, 살아내기 힘들 정도의 문제들이 있어요.

 

근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그 모든 문제와 어려움들이 다 변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복을 누리게 해주신다는 거죠.

 

여러분 실제로 우리가 어떤 처지와 형편에 있어도 

가나안 땅에 우리가 들어와서 살아도 

예기치 못한 사고, 어려움, 어떤 때는 정말 설명이 안 되는 시험 거리들이 일어나요.

 

가나안 땅에는 그런 게 없어야 가나안 땅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 모든 상황을 이기게 하시는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뜨고 있으면, 그 상황 속에서도 정말 놀라운 찬송이 나와요.

 

그게 성도입니다. 그리고 '야~ 나는 가나안의 은혜와 복을 누리고 사는구나!'

그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일기를 써가면서 매일 점검해보라는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신경 쓰고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매일 매순간 주님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느 공군 소장 출신인 한 장로님이 '예수 동행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씀했어요.

자기가 현역 때 전투기를 탈 때마다 체크리스트가 엄청 많대요.

그걸 다 점검하고, 그리고 체크 다 끝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비행기를 타고 이제 조종을 한다는 겁니다. 자기가 조종사로 그렇게 살았대요.

 

그런데 이번에 '예수동행일기'를 쭉 매일 쓰면서 그 느낌이 다시 든다는 겁니다.

'내 영혼의 상태를 매일 점검해 가는 일이 이렇게 중요한 것을

왜 내가 몰라서 이제껏 무관심하게 살았을까?' 하는 거죠.

 

비행기 탈 때 비행기에 하나라도 체크안 된 것이 있으면, 아주 큰 사고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체크를 꼼꼼이 한답니다. 체크안 하고 사고 나면 죽음이에요.

 

그렇게 체크하면서 비행기 조종을 해놓고는

'비교할 수 없이 더 중요한 내 영혼의 상태에 대해서는 왜 건성으로 그냥 살았을까?'

예수동행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하나하나 이렇게 점검해보면서

엄청 유익을 얻으셨다는 소감을, 일기에 쭉 쓰셨더라고요.

 

정말 그렇습니다. 그게 가나안의 삶이에요.

우리가 가나안에 사는 삶은,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늘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체크하고 사는,

 

내가 계속 주님을 바라보고 살면, 하나님이 이른 비와 늦은 비로 나에게 내리셔서

비록 내가 사는 곳이 비록 좀 광야같이 거친 곳이라도

거기에서 풍족한 젖과 꿀이 흐르게 하나님이 만드세요. 

내가 주님과 관계가 끊어지면, 그러면 굉장히 좋은 형편에 사는 것 같은데도

그게 망하는 길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때는 우리를 다시 광야로 내모세요.

주님과 관계부터 점검하라고.. 다 거둬가지고, 오직 주님 만 바라보게 만들어 버리세요.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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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이번 주간에 제가 부흥회를 인도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부흥회 첫번째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 증거'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어요. 

근데 그 설교를 들은 한 고등학생이 감사원금을 낼 때 
봉투의 감사제목에 뭐라고 썼냐면 
"내 안에 예수님이 안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기에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을 확신해서 감사하다' 그러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 
'예수님이 내 안에 안 계신 것을 너무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썼어요. 

그래서 물어봤더니 하는 얘기가
늘 자기 마음에 두려움이 있었대요. 
'하나님이 나를 목사되라고 하지 않을까? 
나를 선교사 하라고 하지 않을까?' 그런 이상한 마음의 두려움이 늘 있었대요. 

그런데 이번에 목사님이 쭉 설교하시는 걸 들어보니까 
'내 안에는 안 계시구나' 확신이 들면서
그러면 목사되라고 할 이유가 없는 거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지도 않는데.. 
그래서 선교사 가라고 할 이유도 없는 거죠..

그래서 뭐 너무 자유함을 느끼게 됐다고 
해서 너무 감사하다고 헌금을 했더라고요. 

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이니까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하죠.
충분히 이해할 만도 해요. 믿음없다, 그렇게 탓할 문제가 아니고 
그런 생각 할만 하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들 중에도 혹시 그런 분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힘든 삶은 난 너무 싫어, 고생은 나는 정말 끔찍해. 
하나님 저 좀 편안하게 살고 싶어요. 제 마음대로 살고 싶어요. 
좀 그렇게 살게 해주세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절대로 가나안에서 복되게 살지 못합니다. 

마치 그 고등학생처럼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참 감사하게도 집회 마지막 날, 그 고등학생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했어요. 

만약 마음에 예수님이 안 계시다면, 그러면 영접하면 되지.. 
그래서 그 여고생 자매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저를 따라서 영접기도를 했어요. 

여러분 중에도 혹시 내 안에 예수님이 안 계신가봐?
이렇게 생각되는 분이 있다면, 어쩌면 잘된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정확하게 영접할 수 있으니까요. 


주2)
이번 주일에 유기영 장로님, 이원희 권사님 부부가 캄보디아 선교사로 파송을 갑니다. 
유기영 장로님은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심장 전문 의사입니다. 
이분이 캄보디아에 있는 병원에 내과 전문담당 의사로, 의료선교사로 가시는 거예요. 

그 유기영 장로님, 이원희 권사님 부부가 이번에 선교사 파송받으시는데
정말 좋은 형편인 곳에서 어려운 형편으로 가시는 거죠.

하나님의 종으로 자신을 드리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니까 
그들이 선교사로 가요. 

한국에 있으면 대우받고, 그리고 부족함이 없이 계속 그렇게 사실 수 있으실 텐데 
하나님이 그분을 택하여 캄보디아로 보내시는데 
유기영 장로님 내외에게는 캄보디아가 가나안 인 거예요. 

그러니까 가나안이 더 좋은 곳이다, 살기 좋고, 풍족하고, 문제가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가 없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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