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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δεδομένα 18,185편 ◑/यू की-सेओङ

가족을 구원하는 길 벧전3장1-4

by 【고동엽】 2023. 2. 23.

가족을 구원하는 길                벧전3장1-4    

 

 

◑한 사람을 구원하는 사명

 

▲남편 한 사람만을 위해서 살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아깝습니다?

어느 권사님이 제게 그러셨어요.

“목사님, 남편 한 사람 때문에 내가 얼마만한 세월을 기다렸는지 아십니까?

이제 나도 이만큼 늙었고, 남편 구원하는 문제로 내 평생을 다 허비하는 것 같은데,

정말 답답해서 미칠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남편 구원에 매달려야 합니까?”

 

그런데 그 마음의 조급함 때문에 오히려 더 어려워지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기도를 바꾸시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하나님, 만약에 내 남편 한 사람 구원하라고 제게 사명주신 것이라면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남편 구원을 위해서 평생을 살겠습니다.’

 

오히려 권사님이 그렇게 기도를 하셨다면

훨씬 더 빨리 남편 구원 문제 해결 받고

남편과 함께 주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한 사람을 위한 사명>이         

어떤 때는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는 것같이 보이기도 합니다만,

사실 깨닫고 보면 그것은 정말 귀한 사명입니다.

 

▲한 사람만을 위한 부흥회?

지난 주간에 도봉지역 부흥회를 인도하고 왔습니다.

마지막 날 어느 여권사님 한 분이 제게 일부러 찾아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하나님께서 이번 부흥회에, 목사님을, <나 한 사람>을 위해서 보내주셨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셨다니까 한편으로는 너무 기뻤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말 <한 사람>을 위하여 부흥회를 인도하라고 하신다면 가야 하나?

너무 시간 낭비가 아닐까?’

 

그런데 최근에 바로 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유난히 많은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한 사람만을 위한 사명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에 대하여

계속해서 제게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한 사람을 위한 선교사?

지난번에 북경 코스타에 갔을 때 아프리카 캐냐 나이로비에서 사역하시는

임선교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자신이 섬기는 신학교에 수위가 한 분 계시는데

그 분이 어느 날 이렇게 고백을 하더랍니다.

“하나님께서 선교사님을 아프리카까지 오게 하신 것은

바로 <나 한 사람>을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 선교사님이 그 고백을 듣고 너무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씀을 들을 때만 해도

‘그 신학교 수위 <한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이 그 선교사님을 아프리카 캐냐까지

보내셨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 말씀이 끝나고 잠깐 휴식 시간에 한 찬양 리더 자매가 저를 찾아왔어요.

그리고 제게 “목사님, 목사님은 저를 잘 모르시겠지만,

목사님께서 과거 어느 집회에서 하셨던 설교 때문에 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 설교는 <저를 위한> 설교였어요.”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한 아들을 귀하게 여기는 아버지

한 사람을 위한 설교,  한 사람을 위한 부흥회, 한 사람을 위한 선교사.

한 사람을 구원시킨 삶, 너무 지나친 낭비 같지요?

그렇데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알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부흥회를 인도하러 오셨던 김상현 목사님, 인수라는 아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군에 간 청년이 됐지만,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주일 낮에

아이를 잃어버렸어요. 저녁예배를 앞두고 목사님이 얼마나 속이 탔겠습니까?

 

아이를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저녁예배가 끝난 후에 교우들에게 아들을 찾아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했었습니다.

교우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목사님 아들을 찾고

목사님은 목사님대로 차를 타고 골목골목을 다니는데,

어느 포장마차에서 교인들이 어묵을 먹고 있더랍니다.

 

그것을 본 목사님이 얼마나 속이 상한지..

자기는 속이 타서 죽겠는데, 교인들이 너무 섭섭하더라는 것이에요.

사실 아이 찾으러 애쓰고 돌아다니다가, 너무 출출해서 어묵 사먹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아버지 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는 것이에요.

 

결국 아들은 찾았습니다.

아주 멀리 떨어져있는 교인 집에, 이 아이가 걸어서 거기까지 간 거예요.

그런데 얼마 뒤에 한 교인이 땀이 다 젖어서 헐레벌떡 교회를 들어오더래요.

목사님 아들을 찾았느냐고?

아무리 돌아다니면서 소리 질러 부르고 찾아도 없다는 거예요.

(아이를 찾은 줄 아직 모르고) 너무너무 안타까운 마음으로 예배당에 들어서는

그 집사님이 너무 고맙더라는 것이에요.

 

▲한 사람이 회심하면 충분한 보상

여러분, 아버지 마음을 알고 나면 한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정말 한 사람이 예수님 믿고 거듭나 하나님 앞에 바로 쓰일 수만 있다면,

그 한 사람을 위한 설교 가능하지요.

그 한 사람을 위한 부흥회 얼마든지 가치가 있습니다.

 

1984년, 제가 회심했을 때, <나 한 사람>을 위하여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신 것을,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고백할 수 있었어요.

 

이제는 부흥회를 갈 때, 한 사람을 위하여 갈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회심하면 충분한 보상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가족 한 사람 전도하기 - 삶을 보여주시라!

 

▲가정 선교사의 사명 

여러분, 여러분 가정에 전도해야할 <한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 땅에 보내셨다 하더라도.. 그것은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남편 한 사람 구원하라고, 아내 한 사람 구원하라고

여러분에게 사명 주셨다면.. 일평생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가족 전도해야 될 교우들은 ‘나는 이 가정에 파송된 선교사다.’

라는 사명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인도 선교사도 있고, 중국 선교사도 있고, 일본 선교사도 있지만,

더 중요한 선교사가 있습니다. 바로 가정 선교사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나라의 역사를 바꿀 어떠한 위대한 사람이 나올는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째서 나를 가족 구원 하나에만 꽉 묶어놓으셨는가?’하는 분이 있는데,

그것은 몰라서 하는 이야기에요.

 

▲가족 한 명 전도... 놀라운 역사 일어난다.

미국 시골마다 다니면서 부흥회를 인도하는 순회 부흥사가 있었어요.

특별히 유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시에 있는 큰 교회에서는 부흥회를 못하시고

천막을 가지고 시골마다 다니면서 부흥회를 하던

모다카이햄이라는 부흥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마을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16살 된 청년 하나가 하나님께 헌신을 결단하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가 나중에 세계적인 전도자가 된 빌리 그래함 목사님입니다.

 

가정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아십니까?

가장 위대한 선교사는 바로 가정 선교사입니다.  

 

모니카 여인은, 방탕한 아들이 주님께 돌아오기만을 밤낮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결국 그 아들이 회심하였는데, 나중에 성 어거스틴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가족 한 사람을 위한 사명, 그것이 절대로 작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조급함이 오히려 하나님이 역사를 가로 막아요.

 

‘나는 왜 이런 가족을 만나서 이 고생을 하는 것일까?’ 이렇게 낙심하는 마음은

그 사람이 아직도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행복! 모든 가족이 구원받은 천국 같은 가정!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으면 그렇게 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 믿는 목적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는다면,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합니다.

죄 사함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 되었고, 천국 백성 되었고,

성령님을 모시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내가 예수님 믿고 엄청난 천국 영생과 구원의 복을 받은

그것으로 충분해요.

 

▲가족에 대해서 불평이 나오는 이유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믿으면, 가정이 행복해지고 부유해지고 성공하고 건강하게 될 것을 믿으면,

자꾸 그렇게 되지 못하는 현실을 바라보며.. 불평불만이 나오게 됩니다.

 

목표를 바로 설정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고 온 가족이 구원받는데 목표를 두어야지,

내가 예수를 믿어 (가족이 구원 받든지 말든지 부차적인 문제이고)

우리 가정이 행복해지고, 부유해지고,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잡으면

늘 불평불만이 나오기 쉽습니다.

 

▲예수 믿으면서 불평불만이 나오는 이유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왜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났습니까?

왜 예수님 떠나서 다 도망갔습니까?

그들이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성공하고 세상에서 출세하리라는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낙심하고 좌절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을 보니까 이게 다 허사가 되어버렸어요.

예수님 믿으면 출세하고 잘되고 성공할 줄 알았더니

예수님 믿으니까 큰 고생할 것 같아요. 그러니 예수님 버리고 다 도망간 것입니다.

예수님 그 분을 진짜 사랑했고, 그 분을 진짜 믿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지요.

 

여러분은 정말 예수님을 믿으시는 목적이, 예수님 그 분에게만 있습니까?

예수님으로 충분한 그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십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가족들이 다 구원받게 되지요. 행16:31

예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가족을 다 구원해 주실 때까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미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목적 자체가

예수님 믿어서 무엇이 잘돼 보는 것, 우리 가정이 좀더 행복해지는 것,

지금보다도 더 잘 살게 되는 것. 사실 목적이 거기에 있다면

‘예수님 믿는데도 왜 이렇게 안 되는가?’ 자꾸 그렇게 된다 말입니다.

 

▲가족에 대한 불평... 있을 수 없다.

저는 철없는 목회자이던 시절에, (지금도 제가 철들었다고 감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금보다도 더 형편없던 시절에, 저는 좋은 교인, 나쁜 교인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저 분은 참 좋은 교인, 저 분은 참 나쁜 교인’ 이렇게 속으로 판단했습니다.

 

어느 교회 가보니까 어쩌면 그렇게 좋은 교인들이 많은지

‘저 목사님은 진짜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정말 부끄럽게 회개했던 제목이에요.

좋은 교인, 나쁜 교인이 어디 있나요?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준 사람들인데

좋은 교인, 나쁜 교인이 어디 있나요?

 

그런 구분은, 근본적으로 제 시각이 잘못되었던 것입니다.

모두 다 하나님의 양떼요, 자녀인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지요.

 

가족도 똑같지 않아요? ‘왜 이런 가족과 나는 살아야 되는가?’

여러분, 좋은 가족 나쁜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있는 것입니까?

다 내 가족인 것이지요.

 

▲예수 열심히 믿어도, 어려움 당할 수 있다.

응답받고 결혼했는데, 왜 이렇게 어려우냐고 우는 교인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응답받은 길에도 고난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응답받고 고향 떠났지 않아요? 하나님이 떠나라고 해서 떠났지 않아요?

가나안 땅으로 온 아브라함도 기근을 만났습니다.

 

요셉도 하나님으로부터 분명한 꿈을 응답으로 받았지 않아요?

그러나 요셉의 삶에 고난이 많았습니다. 응답받은 자의 삶에도 고난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유럽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듣고 빌립보로 건너갔어요.

응답받고 간 것입니다. 그런데 가자마자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혔지 않아요?

 

여러분, 내가 응답받았다고 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정말 나와 함께 계시는 것> 하나에요.

 

요셉은 그가 죽을 고비도 넘기고 종으로 팔려가고 옥에 갇힌 때에도

<하나님께서 언제나 나와 같이 계신 것>을 확인하고 모든 시련을 다 이겼습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혔던 사도 바울, 분명히 성령님께서 건너오라고 해서 건너갔는데

내가 왜 이렇게 감옥에 갇혀야 되는가? 하나님 원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성령님께서 지금도 함께 계시는 것을 알고는

그는 지하 감옥에서 한밤중에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지진이 일어나서 옥문이 다 열리고 빌립보에 교회가 세워졌지요.

 

여러분,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한 믿음>을 가지면

아무 것도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가족 전도의 열쇠 - 삶을 보여주는 것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어요. 가족 전도 어떻게 하는가?

먼저 예수님 믿은 내가, 예수님 제대로 잘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청교도 설교가인 리차드 백스터 목사님은, [참 목자상]이라는 책에서

아주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가 목회 잘하는 길은.. 목사 자신이 예수님 잘 믿는 것이다.”

 

여러분, 가족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예수님 안 믿는 가족 전도하는 길이 무엇이냐?

먼저 믿은 내가 예수님 잘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남편에게 아내에게 또는 아이들에게 부모에게 형제에게

꼭 예수님 믿으라고 구원받으라고 전도하면 “너나 잘하세요!” 하는 말을 듣는데.

이것이 성령님의 음성일 수 있는 것이에요.

내가 예수님 잘 믿으면.. 그 사람도 반드시 예수님 믿게 되어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전도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도는 눈으로 보여줘야지, 귀로 들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들은 절대로 말로 남편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돼요.

아무리 설교해도 듣지 않고 남편 마음은 더 굳어져요.

어떤 부인이 도무지 자기 말로는 안 되니까 기독교 방송을 집에서 크게 틀었대요.

그것이라도 듣고 변화 받으라고요.

 

그랬더니 남편이 아예 집을 안 들어오려고 한답니다. 방법을 잘못 택한 것입니다.

사이가 가까울수록 설교하는 말은 오히려 잘 통하지 않습니다.

설교(잔소리)로 변화시킬 수 없는 가족은.. 보여주는 길 밖에 없어요.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 믿지 않는 남편을 전도할 여인들에게 권했습니다.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벧전3:1~2

 

안 믿는 남편이 믿는 아내의 행위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저 사람 교회 다니기 시작하더니 삶이 진짜 달라졌네.”

이것이 충격이 된다는 것이에요.

 

사람이 어떻게 달라질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달라졌다는 거예요.

삶이 달라지고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면

아무리 강퍅한 사람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될 수 없는 일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족들이 인정할 정도로 삶이 달라졌다면 그것은 진짜 기적이거든요.

그러니까 가족들이 충격을 받게 되어 있어요.

말로 충격을 받는 것이 아니고, 그 달라진 삶으로 충격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으면 되는 것이지요.

 

▲모니카의 순종의 결과

어거스틴은 어머니 모니카가 눈물의 기도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가 회심한 다음에「고백록」에서 자기 어머니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를 주님 모시듯 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모니카가 남편을 주께 하듯 섬겼어요. 그 남편이 예수님처럼 잘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나 아내에게 주께 하듯 남편에게 주께 하듯 순종하라고

성경이 가르치기 때문에.. 남편을 주께 하듯이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들 어거스틴이 보았습니다. 방탕한 아들이었지만

어머니의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고 했어요.

결국 하나님이 그 아들을 회심시키는 일에, 어머니를 쓰실 수 있었어요.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라 벧전3:3

 

이 말씀은 아내에게 외모를 꾸미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괜히 이 말씀을 잘못 받아가지고 아무런 치장도 화장도 안하고

그냥 그대로 살아서 오히려 남편 전도를 막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아내 얼굴 예쁜 것으로 남편 구원받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는 아내 얼굴이 예뻐서 감동받아 교회에 나온 남편을 보았습니까?

그런 일은 없다는 말이에요.

아내를 보고 남편이 예수 믿겠다는 마음 갖게 되는 것은 ‘아내의 마음’입니다.

남편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것은 마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벧전3:4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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