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명, 주께 있습니다! 요일5:6-13
우리가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되려면
예수님을 바로 믿어야합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는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습니다.
6절 그는 물과 피를 거쳐서 오신 분인데,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란 고백이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하지만
사실은 당시에는 대단한 고백입니다.
당시에는 목숨을 걸고 고백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이 너무나 싫어했습니다. 유대인 공동체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고백은 철학자인 헬라사람들의 조롱거리였습니다.
‘사람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은 하나님’, 너무나 어리석은 종교라는 것입니다.
로마 정권이 무자비하게 박해하였습니다. 로마황제에게는 반란자들이었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못하게 하려고
마귀는 엄청난 이단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 안에 영생이 있기 때문이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였기 때문이죠.
이런 사람이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핵심 신앙은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사람이시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사람으로 오셔야 했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예수님이 물과 피로 임하셨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6절 ...그는 다만 물로써 오신 것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물]로 임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왜 세례를 받으십니까?
온 인류의 속죄제물이 되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음을 분명히 하신 사건이죠.
요한 사도는 또한 예수님께서 [피]로 임하셨음을 강조하였습니다.
피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신 것을
말하는데, 초대교회 당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셨음을 부인하는
무서운 이단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셨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사도요한이 제시한 증거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증언이었습니다.
7절 증언하시는 이가 셋인데, 8절 곧 성령과 물과 피입니다.
이 셋은 일치합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이심을
하나님께서 직접 증언하셨다는 것입니다.
9절 ... 하나님이 자기 아들에 관해서 증언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세례받으실 때, 실제로 하나님께서 증언하셨습니다.
눅3:22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변화산 상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어떤 고난을 당하고 죽으실 것을 의논하실 때, 하늘에서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마17: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이처럼 하나님까지 나서서 증언하셨던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영원한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과
바로 이 생명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1절 그 증언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과,
바로 이 생명은 그 아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12절 그 아들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고 있지 않은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사도요한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확신을 갖게 하려고 요한일서를 쓴 것입니다.
13절 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분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영원히 살 것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까?
◑적용
△D L 무디가 65세 쯤 되었을 때,
신문에 무디가 나이가 들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무디는 다음 주일에 아주 불쾌한 말투로 이 기사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 신문에 보셨지요. 날보고 늙었다고 그래요.
여러분 제가 늙었습니까?” 교인들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제가 곧 죽을 줄 아는 모양인데, 저는 안죽습니다 100살은 살 거예요.”
교인들이 다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닙니다. 나는 천년은 살 거예요"
그러자 다들 질리는 표정이었습니다. 무디의 말은 점점 과격해졌습니다.
"아니 나는 만년은 살 거예요. 아니 10만년의 10만년을 살겁니다.
아니 영원히 살 거예요. 나는 영생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할렐루야!”
그러자 모든 성도들이 얼굴이 환해지며 “아멘!” 대답했습니다.
100살을 산다고 할 때는 망령이라고 생각했지만
영원히 산다고 하니 아멘입니다.
무디는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기사를 이용하여
영생에 대하여 증거하기 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확신이 있습니까? 이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는 영원히 살 것을 압니다" 하고 선언할 수 있습니까?
요한 사도는 “안다”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믿는다’는 단어 보다 더 강력한 확신의 표현입니다.
“난 내 아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알아요” 와
나는 “내 아내가 나를 사랑하는 줄 믿습니다” 중
어느 표현이 더 강력한 확신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믿었다면서도 영생을 소유했음을 믿지 못하다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생을 소유했다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풍성한 생명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10에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을 뿐 아니라
풍성하게 주시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도 생명은 가졌습니다.
영적 생명도 이렇게 가진 사람은 너무나 안타까운 것입니다.
한 시간 두 시간 상담을 해 보아야 ‘영생을 가졌구나!’
확인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다
‘이 사람은 생기가 넘쳐 흐르는구나!’ 인정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충만한 생명은 어떻게 가지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관계에서 오는 것입니다.
생명은 교리나 지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생명 그 자체이신 예수님으로 사는 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 사도가 이 글을 쓸 때, 단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증거
했을 뿐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요일1:3 ...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요한 사도 안에 계셨습니다.
그러니 요한 사도가 얼마나 충만했겠습니까?
요한 사도는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도전합니다.
요일2:28 그러므로 자녀 된 이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으십시오.
요일5:12 그 아들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고 있지 않은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람이 영생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을 믿는 자는 마음에 영생을 가졌다는 증언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요일5: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그 증언을 자기 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증언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마16:16-17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질문하였을 때, 어부였던 베드로는 가난한 시골 목수였던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백하였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베드로를 크게 칭찬하시면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라고 깨닫게 하고 믿게 하고
고백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시라고
믿는 것은 무슨 역사라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그렇게 믿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고전12: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시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 하나님이 제자들의 아버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요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그런데 지금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고 고백합니다.
우리 마음에 임하신 성령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육성으로 말씀을 들은 것을
우리는 성령님으로 우리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차이 뿐입니다.
주 예수님을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그러시면서 무슨 말씀을 더 하셨는지 아십니까?
요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만 함께 하시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요한 사도하고만 함께 하시고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함께 하시고 말씀하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 예수님에 대하여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고 고상한 일이겠지만,
주 예수님과 친밀해지고 하나가 되고 온전히 동행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명절에 순천향대학병원에 계신 어머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아직 식사를 하지 못하시고 혈변을 보시는 상태이신데,
항암 치료를 받고 싶지 않다고 하시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아,
솔직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사는 재미가 없어”
여러분, 혼자 남을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준비되셨습니까?
사람들이 핍박하고 따돌릴 때가 올지 모릅니다. 그 때도 준비되셨습니까?
주 예수님이 함께 하시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기쁘고 감사하고
충만하게 살 준비가 되셨습니까?
주 예수님이 마음에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사는 것입니다. 갈망할 것을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진정 소중한 것은 주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깊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믿되,
“오직 예수님” 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두 주인은 없습니다! 예수님 한분이면 충분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삽니다.
극단적으로 여겨집니까?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구요? 숨 좀 쉬고 살자구요?
부부 사이에서 융통성 찾고 숨 좀 쉬고 살자면 어떻습니까?
생명은 부부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 영생과 영벌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영생을 믿으면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결단이 됩니다.
△부자 청년에게는 '한가지가 부족하였습니다'
한가지가 부족하면 얼마나 신앙생활 잘 한 것입니까?
그는 돈, 재물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생을 잃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주 예수님 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까? 오직 주님입니까?
그것이 갈망입니다. 그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다시 복음 앞에 오신 백부장 선교사님,
너무나 위험한 나라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이십니다.
어떻게 그런 사명을 감당하시나, 영생이 분명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장로님으로 교회를 건축하신 분이셨고
일가 친척이 다 예수님을 믿었으며
어려서부터 교회 열심히 다니고 나름대로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썽꾸러기였던 동생이 고2 때 변화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기쁨이 있음을 느꼈고, 틈만 나면 성경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느날 "형 안에도 이런 기쁨이 있어? 구원의 감격이 있어?" 하고 물어오는데
동생 앞이라 "물론 있지!" 하며 허세를 부렸지만 솔직히 마음으로는
"아니야 내겐 없어!"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지만 힘만 들고 아무리 읽어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 동생처럼 변화되는지 알 수 없어. 어느날 동생에게 솔직히
고백하였답니다. "어떻게 하면 너처럼 될 수 있니?"
그랬더니 동생이 복음을 전해 주었는데 내용은 다 아는 것이었습니다.
고민이 되었습니다. 같은 예수님을 믿고 같은 복음을 아는데
삶이 왜 이렇게 다르냐는 것입니다.
그 때 금식을 하며 새벽기도도 나가기 시작하였는데,
차츰 성령님의 깨우치심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죄를 이길 믿음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9:30 "다 이루었다." 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엇을 다 이루셨습니까?"
그 때, "네가 고민하고 발버둥치는 너의 구원을 다 이루었다.
내가 너의 죄값을 다 치루었다."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미 다 이루신것이군요."
"그 동안 왜 이것을 믿지 못하였을까?" 감격과 감사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 후 "구원해 주세요?' 가 아니고 "감사합니다'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이미 못 박힌 것"을 알았습니다.
'이미 죽었는데 나는 왜 여전히 살았나?' 고민하며 기도하는데,
갈5:24을 읽으면서 눈이 열렸습니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이미 못 박혔지만 계속 못 박아야 함을 알았습니다.
선교사로 나가도록 만들어 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그리스도이십니까?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나 주 예수님의 생명이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성찬을 받으러 나올 때, 지금까지 예수님을 마음에 분명히
영접하지 못하신 분은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었지만 풍성한 생명으로 살지 못한 사람은
이 시간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제 삶의 생명이요 왕이 되시기를 정말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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