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눅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23:28
◑1. 자녀를 위해서 울기 전에, 먼저 부모 자신을 위해서 울어야 합니다.
▲자녀교육 위해서 이민 간다.
여러분, 이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한국 부모들은 자녀들 교육만큼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권면하실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열심이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민을 가는데 이민을 가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자녀교육>때문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자녀교육이 이민 가는 목적의 부동의 1위에요.
그 정도로 한국의 부모는 자녀 교육에 대한 열심이 대단해요.
▲1. 부모 자신이 올바른 <신앙적 가치관>을 갖기 위해 울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어떻게든지 훌륭하게 키워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자녀가 훌륭하게 되려면 부모 자신이 훌륭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공부를 열심히 시킵니다.
그러나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
즉 ‘왜 공부를 해야 되느냐?’에 대해서는 부모 스스로가 준비가 없어요.
‘그냥 공부를 많이 시켜놓으면 뭔가가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대학을 시키고, 대학원도 공부시키고 하여튼 다른 사람보다 하나라도 더 많이
가르치면 뭔가가 되지 않겠는가?’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상담전문가 정태기 박사님이 어느 장로님 가정의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장로님에게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은 그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아이 머리맡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가 자라서 이화여대 영문과에 수석으로 입학하게 해 주옵소서.”
그런데 이 딸이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정신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기대만큼 따라가지 못하니까, 아이가 그것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내면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 가치관을 심어주어야
‘공부를 많이 시키면 자녀들이 훌륭하게 되고 잘 살게 되겠지.’
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왜 공부를 해야 되는 지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공부를 많이 시키는 것보다,
왜 공부를 해야 되는 지를 명확하게 알도록 해줘야 하는데,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에요.
‘공부를 열심히 하면 무엇인가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많은 아이들이 막상 대학에 들어가서는
갑자기 공부하는 것을 내던져버리고 방황합니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먼저 왜 공부를 해야 하는 지, 무엇을 위해 공부해야 할지를
분명한 가치관이 서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공부에 대한 가치관을 갖게 된 사연
저는 공부를 왜 해야 되는 지, 철이 든 것이 중학교 1학년 때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이북에서 피란오신 국어 선생님이신데
학기말 시험을 보고 방학 때 성적표를 받는데
한 아이씩 교탁 옆에 있는 책상으로 불러다가 뭐라고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시고
성적표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제 이름을 부르셔서 나갔더니 제 얼굴을 보지도 않으시고
제 성적표를 가만히 보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기성아, 너 이렇게 공부해서
나중에 저 북한에 있는 너하고 똑같은 나이의 아이들과
남쪽으로 통일을 시킬 지, 북쪽으로 통일을 시킬 지 경쟁하게 될 텐데,
너 이렇게 해가지고
북한에 있는 아이들과 싸워 이겨서 남쪽으로 통일시킬 수 있겠니?”
그리고는 저를 보시는데 우시는 것이에요.
저는 할아버지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다 소화할 만큼 철이 들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통지표만 가지고 책상에 돌아와서 앉았는데
할아버지 선생님이 우셔서 그랬는지 저도 눈에 눈물이 핑 돌았어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내가 공부하는 것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구나.
내가 공부 잘하면 북쪽도 남쪽으로 끌어당겨 통일을 시킬 수도 있고,
내가 공부 못하면 북쪽 아이들에게 져서 북쪽으로 끌려 통일이 될 수도 있구나.’
중학교 1학년 남자 아이가 철이 들면 얼마나 들겠나 싶지만,
그때 제가 왜 공부 열심히 해야 되는 지 그 이유를 알았어요.
놀고 싶어도 왜 공부 열심히 해야 되는 지도 알았어요.
▲부모의 역할이 거기에 있습니다.
교사가 일일이 해 주기 어려운, 가치관을 심어 주는 일을, 부모가 해 줘야 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왜 공부를 해야 되는지,
왜 바로 살아야 되는지,
왜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 지를
정확하게 가르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 자신을 위해서 먼저 울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꿈, 마음의 소원, 열망이
그렇게 진짜 소중한 것인가? 정말 가치가 있는 것인가?
우리 부모들이 <믿음의 눈(가치관)>을 떠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자녀들을 제대로 공부하게 하고 자라나게 할 수 있어요.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그래서 대학에 들어갔지만,
대학에 들어가서는 다 무너지는 것이에요.
왜 공부해야 되는지는 모르고, 그저 열심히만 공부했기 때문이에요.
▲2. 부모 자신이 먼저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서 울어야 합니다.
여러분, 자녀들보다 먼저 부모 자신을 위해서 울어야 할 또 한 가지 이유는
부모들의 마음에 있는 상처 때문입니다.
부모 마음에 있는 상처는 그대로 자녀들에게 물려줘요.
여러분, 지금까지 여러분이 살아오는 동안에
‘나는 왜 원치 않는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오늘도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살아야 되는가?’ 그런 심정일 때가 많지 않습니까?
내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말을 하고 살아요.
어려서 받은 상처 때문입니다.
어려서 받은 상처가 나를 그렇게 끌고 가고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어려서 받은 상처가 그대로 자녀들에게 물려져요.
보통은 부모가, 자기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자기 자식들에게 물려줍니다.
그런데 지금은 부모로부터 받은 그 상처를, 부모에게 되갚는 세상이 됐어요.
그래서 부모를 공격하는 자녀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여러분의 그런 인생을, 자녀에게 물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의 영혼도 문제이지만, 부모의 영혼이 더욱 급선무입니다.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부모는, 먼저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장성하면 치유 받는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13:11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모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어요.
어린 아이의 일이 어린 아이 때 받았던 상처를 말합니다.
그것이 내 삶을 이렇게 힘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고 사는 이유가
내가 어려서 받은 상처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녀를 위해서 울라고 하기 전에
부모 된 너희를 위하여 먼저 울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치유 받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 어린 아이가 잘 되기를 바란다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아이에게만 관심을 쏟는다고 잘 자랄 수 있을까요?
밤이고 낮이고 공부하라고만 한다고 아이가 잘 자라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모의 삶이 정말 거듭나고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부모가 되면 그리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너무나 놀랍게 자라요.
▲중학생 때부터 중국을 위해 준비한 사람
이번 북경 코스타에 갔다가 최고의 강사를 만났어요.
그 분은 주중 한국대사인 김하중 대사였습니다.
1천 여 명 모인 유학생들에게 나와서 그가 짤막한 1시간 정도의 강의를 했어요.
그는 4년 7개월 동안 그 당시 중국 대사로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대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지요.
▪그런데 그 분은 중학교 다닐 때부터 중국 대사를 위해 기도를 했다고 하네요.
대학을 서울대학교 중국어 과를 들어갔어요.
그때 당시에 중국어 과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런 학과였습니다.
‘왜 하필 중국어 과를 가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30년 쯤 뒤에 봐. 중국과 우리나라는 반드시 수교를 하게 되어있고,
중국은 엄청나게 큰 나라가 될 것인데, 그 나라를 위한 준비를 누군가 해야 돼!’
그 때 다 웃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30년도 채 가지 않아서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가 되고
중국 전문가가 필요하게 됐는데, 이 분이 중국 공사가 됐습니다.
▪중국 공사가 되어서 내가 이제 중국대사가 될 텐데.. 기도를 했으니까!
그러면 인맥을 맺어놔야 될 것이 아니냐.
내가 중국 대사가 될 때쯤에 중국의 지도자가 될 사람이 누군지를 몰라요
그래서 하나님께 가르쳐달라고 기도를 했답니다. 중국 공사로 있을 때.
‘하나님, 내가 중국 대사가 될 텐데 그 때에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
그때 중국의 지도자가 될 사람이 누구인지 가르쳐주세요.’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 머리에 떠오르게 하시더래요.
그때부터 40명을 놓고 기도를 했답니다.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가 될만한 분 40명을 놓고 기도를 했다는 거예요.
그 중에 4사람이 지금 장관이고, 17명이 지금(2006년) 차관입니다.
중국 대사로 부임해 와서 그가 일하는데 엄청난 힘이 되는 것이에요.
▪한번은 외교부차관, 대단한 영향력이 있는 관리가 몸이 아파서 입원을 했는데
거의 죽을 것 같은 중병에 그가 입원을 했습니다.
그도 그가 중보기도했던 사람이에요.
중국 외교부 차관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문병을 가고 싶지만
문병을 갈 수 없게 되어 있다고 해요.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마음에 응답을 주시기를 ‘그는 죽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는 자꾸 자기 질병에 대해서 나에게 불평을 하는구나.’
그런 마음의 감동을 주시고,
그 다음에는 기도할 때 그에게 가서 이 말을 전하라고 하는 마음을 주시더래요.
그러나 문병도 금지되어 있고, 누구도 만날 수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자꾸 그런 마음을 기도할 때마다 주세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외교부에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은 죽지 않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당신은 죽지 않는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자꾸 그렇게 불평을 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불평하지 말고 믿으십시오. 당신은 죽지 않습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편지를 전달해 달라고 했다는 거예요.
며칠 지나서 그 분이 자기 부서의 직원들을 데리고 대사관을 찾아왔대요.
그리고 차를 마시면서 하는 얘기가,
김하중 대사의 편지를 읽고 자기가 죽지 않을 줄로 믿었다는 거예요.
그 전까지만 해도 자기는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
그런데 대사의 편지를 읽고 내가 확신하게 됐다는 거예요.
내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왜? 내가 마음에 불평을 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당신이 알 수 있었겠느냐.
내가 마음에 이렇게 죽는 것에 대해서 너무 억울해 하고 답답해하고
불평하는 이 마음이 있다는 것을 당신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느냐.
당신의 편지를 읽고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고,
그리고 내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으니 죽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고,
며칠 뒤에 일어났다는 거예요.
이 분이 아주 열심 있는 기독교인인 것을 중국 당국도 다 잘 압니다.
▪한번은 중국의 종교국의 책임자를 대사관에 좀 오라고 요청을 했더니
아마 기독교에 관련된 요청이나 항의할 것이 있어서 그런가 해서
기독교국장, 불교국장, 천주교국장 다 데리고 잔뜩 준비를 해 가지고 왔더래요.
그런데 일체 기독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잘 대접만 했답니다.
그래서 서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그들이 이렇게 묻더래요.
“대사에게는 무슨 일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까?”
그래서 “나는 기도하는 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게 대답했더니
깜짝 놀라더래요.
“아니 대사가 기도가 무슨 중요한 일이냐? 그리고 기도가 도대체 무엇이냐?”
“기도는 내가 믿는 하나님과 대화하고 의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내용으로 기도를 하느냐? 얼마만큼 기도를 하느냐?”
“바쁘면 1시간 반 정도하고 그렇지 않으면 2시간 기도합니다.”
“아니 그렇게 바쁜 대사가 일과 중에 어떻게 그런 시간을 내느냐?
무슨 문제 때문에 그렇게 기도를 하느냐?” 묻더래요.
“중국의 주석과 모든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등소평 주석 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기도해 왔습니다.”
“아니 당신이 기도를 한다면 당신 나라 지도자를 위해서나 기도하지,
왜 중국의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를 하느냐?”
“중국의 지도자가 바른 정치를 하고 바른 정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중국을 위해서 너무 중요하고,
중국이 바른 나라로 발전해 가는 것은 우리 한국으로서도 너무 중요하고
내가 중국의 대사로 와있으니 중국의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당신은 당신 나라인 중국을 위해 기도합니까?”
“나는 기도라는 것을 모른다.”
기독교 국장에게 이야기를 해도 “당신은 기도합니까?” “나도 기도를 모른다.”
“그런데도 왜 기독교인이 중국을 혼란시킬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기독교인들은 나라와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중국 사람이 아니지만 중국 대사로 여기에 와있는 까닭에
하나님께서 나를 중국의 지도자와 중국을 위해서 기도를 하게 하십니다."
그들이 너무 감동을 받고 아무 할 말이 없어서 갔다는 것입니다.
왜 기독교인들이 중국을 혼란시킬 것이라고 생각을 하느냐?
그 강의를 죽 하는데 한국 유학생들이 너무너무 황홀해 하더라고요.
이유는 정말 하나님의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선배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사는 사람,
실제로 기도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며 사는 하나님의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부모가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으로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는 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3. 자녀에게 올바른 본을 보이기 위해 울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있어서 지금 가장 갈급한 문제는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자기 부모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역사를 이루고 계시는가?’
자녀들이 그것을 삶으로 보기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충분한 거예요.
공부를 하라 말라 할 것도 없어요.
그러면 우리 아이들이 그냥 철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자꾸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없어서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맞습니다.
물려받은 것이 없어서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좋은 습관, 좋은 가치관, 좋은 태도 그런 것들을 우리가 물려받지 못해서
지금보다 우리가 더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말이 아니라 삶으로!
이블린 크리스텐슨 사모님이 쓰신「나를 변화시키소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모님에게는 제인이라는 18세 딸이 있었는데,
어느 날 딸이 외출 준비를 하는 중에, 딸의 옷에 대하여 참견을 했는데
갑자기 제인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엄마, 제발 잔소리 좀 하지 마세요.
엄마가 잔소리를 시작하면 목소리가 얼마나 커지는지 아세요?
나는 어머니가 첫 마디만 하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알아요!”
갑자기 대드는 딸의 말에 얼마나 당황하고 섭섭했는지,
사모님은 침실에 들어가 펑펑 울었습니다.
처음에는 딸이 타락한 것 같아 울었으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2절 말씀입니다.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
남편을 향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대로 딸을 향하여 주시는 말씀인 것을 사모님이 깨닫고 기도가 바뀌었습니다.
“주여, 내 딸 제인을 변화시키기 전에 나를 변화시키소서.”
다시는 말로 가르치지 않고, 계속 이 기도만 했다고 합니다.
4년 후에 제인이 어머니날에 보낸 카드 겉장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말없이 행동으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신 어머니께’
▲내 안에 예수님이 키우시도록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시면서 도우시는 분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그래서 우리가 변화된 것이 아닙니까? 우리 자녀들에게도 똑같아요.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이 하십니다.
부모가 자녀를 책임진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녀 교육에 있어 정말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가르치시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면 충분합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우리 아이를 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우리 아이를 느끼고
예수님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나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우리 아이를 만지시고 우리 아이를 대하시도록 하면 됩니다.
◑2. 자녀를 위해 울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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