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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롭다 함을 얻은 믿음! (창 15:1-7)
그러니까 1973년 그 어느 주일에 미국에 로스앤젤레스에 어떤 한인교회에 초청을 받아 설교할 그런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LA에 한인교회가 제 기억에 셋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때에 어떤 한인교회에서 주일날 낮예배 설교초청을 받아 설교를 하게 됐는데 아시는 대로 예배순서는 이렇게 장로님이 기도를 하고 그 다음에 성가대를 하고 그 다음에 설교하게 되는데, 그래서 이 설교 전에 있는 순서, 성가대나 혹은 이 장로님의 기도가 매우 중요한 것이올시다. 특별히 설교자에게 말입니다. 그날 장로님이 뭐라고 기도하시는고 하니 한국의 어려운 사정을 다 이야기하면서 전쟁의 위험이 있고, 먹을 것도 없고, 경제 공황이 있고, 공해가 심하고, 뭐뭐뭐뭐 다… 지옥 같은 한국에서 우리를 "우리와 우리가정을 가나안땅과 같은 지상낙원으로 옮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래요. 이 말을 듣고 나니까 설교할 마음이 없어요. '도대체 내가 저 사람을 위해서 설교하러 왔단 말인가.' 어떻게 화가 나는지. 자, 이거를 삭히느라고요 제가 성가대 하는 동안 이거를 삭히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주기도문을 몇 번 외웠어요.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 시험에 들지……." 저 장로님 잊어버리고 나머지 교인들을 생각하며 설교하게 해달라고 제가 마음을 스스로 달래느라고 무척 애쓰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난 주간에 제가 월요일 날 미국에 갔다가 토요일 날 돌아왔는데요. 전 주간에 신학대학에 강의가 있어서 이렇게 갔다왔는데 지금 미국엔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여러분 다 아시지마는 월드 트레이드 센타(World Trade Center)가 폭파하는 테러가 있었지요. 탄저균(Antrax)하는 그 밀가루 같은 거, 그것 때문에 편지봉투 뜯는 게 겁이 난 거예요. 이거 뜯다가 한번 코로 냄새를 맡으면 그냥 가는 거예요. 어쨌든 지금 미국은 난리가 났습니다. 그야말로 얼굴도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전후방도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쟁 상황 속에 들어가 있는 미국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고 보니 또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교회마다 교인들이 터지게 모이는 겁니다. 그 동안 교회를 등한히 했던 분들도 열심히 교회에 나옵니다.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에 L.A.에 있는 유명한 크리스탈 처치, 가든 그로브 처치, 그 교회 건축이래, 설립이래 지금 최고로 많이 나온다는 거예요. 주일마다 교인들이 많이 나와요. 서점마다 성경이 너무 많이 팔려서 동이 났어요. 이 두 가지가 달아진 거예요. 이제 아직도 미국이 지상낙원입니까? 아직도 이민 가고 싶습니까? 무엇을 믿고 사는 것입니까? 경제입니까, 정치입니까, 기술입니까, 지식입니까, 넓은 땅 덩어리입니까? 쏘 홧(So what)?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거요? 저는 미국에 갈 때마다 제일 부러웠던 건 땅덩어리입니다. 어디를 가나 얼마나 넓은지 '휴∼ 이건 정말 하나님이 불공평하다' 그런 생각도 했어요. 허나 요새 보니깐 그것도 아니에요. 아니더라구요.
여러분, 무엇을 믿고 무엇에 근거하여 안정을 찾을 것입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 내 고향 내 친척 익숙한 바로 이곳이 제일 좋은 곳이 아니겠습니까마는 전혀 보장도 없는 이방 땅으로 하나님은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고향과 친척 평안한 곳 안정된 곳을 떠나서 전혀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라. 분명히 히브리 11장 8절에서 보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다 그랬어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말입니다. 특별히 지명을 일러준 것도 아니고 방향을 제시한 것도 아니에요. 지시할 땅으로 가라! 떠나면 그때에 그때 그때 지시해줄 것이다.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리고 지금은 없는 자식을 약속해 주시면서 "내가 네게 후사를 주리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이 약속은 25년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래 25년 동안을 어찌나 답답하게 살아야 했던가 말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발붙일 만큼도 유업을 주지 않았다. 발붙일 만큼도 자기 땅에 살아보지 못했습니다. 한평생을 남의 땅에 나그네로 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나는 너의 방패니라. 내가 있어 네가 평안한 것이지 네가 땅을 가져서 평안한 것도 아니고, 자식이 많아서 평안한 것도 아니고, 정치가 안정돼서 평안한 것이 아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내가 한 말을 믿으라. 내 약속을 믿으라. 내 능력을 믿으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이렇게 해서 한평생 나그네로 살았으나 그는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아브라함의 믿음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반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6절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랬어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의로 여기시고. 이 한 요절은 아주 중요한 우리 신앙의 핵심이요 복음의 뿌리가 되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의로 여기시고.
먼저는 하나님의 의가 있습니다. 여러분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분들도 똑바로 알아야 됩니다. 이 세상에는 자연을 위해서 자연법칙이 있습니다. 우주적인 무궁 무궁진한 법칙이 있어서 그 속에 삽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인격이 있습니다. 인격을 향한 하나님의 법칙이 도덕성입니다. 자유를 주었으나 그 자유 안에 도덕성이 있어요. 그래서 선하게 산 사람에게 복을 더하시고 악하게 산 사람에게 벌을 내리시고. 하나님의 도덕성 하나님의 도덕적 법칙! 이것을 우리는 잠깐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두 번째는 사람의 의라고 하는 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하나님의 법에 얼마나 가까이 가는가, 얼마나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사는가, 얼마나 양심에 따라서 살아가는가,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니는 의올시다. 의!세 번째 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의롭다하시는 의입니다. 그건 높은 차원의 것입니다. 이건 '칭의'라고도 하고 '득의'라고도 합니다. 영어로 말하면 져스티피케이션(Justification), 져스티파이(Justify) 의로운 게 아니야. 비커밍 져스트(Becoming Just)가 아니고요 Justify, 의롭다 하시는 겁니다. 의로 인정해 주시는 겁니다. 제가 젊었을 때 자 이거 의롭다 함, 의롭다함. 이거 아무래도 좀 법적인 용어거든요? 이게 우리에게 익숙지 않아요. '이걸 어떻게 우리 좀 쉬운 말로 바꿀 수 없을까?' 나름대로 연구해 봤는데 이것은 '보아준다' 그거예요. 안 예쁜 것도 예쁘게 보아준다. 실수한 것도 그 중심을 보고 잘한 일로 보아준다. 분명히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이 사랑으로 덮어서 불쌍히 여기시고 그것을 의롭다하시면 의로 보아주신다. 그거 기가 막힌 말씀이에요. 그 점이 중요한 거예요.
그러면은 자, 이제 이 죄인을 보고 '내가 너를 의롭다 하노라' 믿지를 않아요. 믿음이 생기지를 않아요. 아니 내가 분명히 죄인인데 어떻게 복을 받는다 말인가? 내가 분명히 죄를 지었는데 어떻게 용서했단 말인가. 증거가 없어요, 증거가. 그래서 소 잡아들이고 양 잡아들이는 제사법이 나온 거예요. 하나님께서 자, 이제 그 순진한 양을 갖다가 양의 머리에다 손을 얹고 죄를 전가하는 의식을 한 다음에 그걸 죽여서 재단에다가 불태우라. 그 지글지글 타는 것을 보면서 "자 내가 너를 용서했다. 네 죄를 여기서 대신, 대신 양을 죽였으니깐 죄 값은 사망이지만 너는 살 것이다" 말씀하세요. 이 맥락에서 십자가를,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어요. 그 희생을 치른 다음에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를 보라! 내가 너를 용서했느니라. 내가 너를 사랑하느니라." 이제는 문제가 있어요. 그걸 믿어야 되는 거죠. 이 엄청난 사랑과 용서를 이 속죄와 이 대속의 은혜를 믿어야 되는 거예요. 나 자신은 불의하나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면 그만이에요. 그럼 믿어야되요. 나는 죄인이지만 내가 너를 의롭게 여기노라 하시면 이제는 믿어야 되는 거예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돼.
미국에 네브라스카 의과 대학 교수이고 심장의학 전문의인 로버트 엘리오트(Robert Eliot)라고 하는 박사님이 계시는데, 그는 심장병을 많이 연구하면서 이런 몇 가지 진리를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사람의 이 병중에 가장 무서운 게 심장이요. 심장병의 그 근본은 스트레스요. 스트레스! 이 정신적 스트레스가 문제래요. 이것이 모든 질병의 근본인고로 자,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그의 긴 경험 속에서 이렇게 정리해 줍니다. 첫째는 "작은 일에 연연하지 마라." 큰 일과 작은 일이 있지 않습니까. 언제든지 이 작은 일, 이 시시한 일, 이 별것도 않은 일, 여기 너무 연연하지 마라. 그 작은 일에 연연하면 이 병이 되는 거예요. 작은 일은 무시하라 그 말이죠. 자, 두 번째가 더 재미있어요. "모든 일은 다 작은 일이다" 그랬어요. 생각해보면 중요한 일이 아무 것도 없어요. 뭐 그렇게 대단합니까 그게. 안 그래요? 대단한 일이 없다고요. 그렇잖아요. 다 시시한 거예요 알고 보면. 세상사가 다 시시하고 너절한 거예요. 모든 것은 작은 일이다! 세 번째는 싸울 수도 없고 또 되돌려 받을 수도 없다면 있는 대로 용납하라. 의예요. 믿음으로 받아들이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곳에 있었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이것만이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라는 게 뭡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벌써 사랑하셨어요. 벌써. 내 지은 죄대로 됐으면 벌써 망하고 죽고 지옥으로 떨어져야 할텐데 이 살아있는 것만 가지고도 기적이야. 벌써 엄청난 사랑 가운데 내가 있어요. 그리고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라. 받아들이는 믿음! 이게 바로 의롭다 함을 얻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로 돌아갑시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나약함을 알고 있습니다. 로마서 4장 19절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죽은 자와 방불함을 알고도" 그랬어요. 하나님께서 늘 말씀하세요. 내가 네게 아들을 준다, 아들을 준다. 아 그런데 뭐 나이가 벌써 100세가 가까워가거든요. 죽은 자와 같아요. 생리적으로 볼 때는 이미 죽은 거예요. 아내는 단산했고 남자는 늙었고. 뭐 그것 다 끝난 거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논리로부터 그는 벗어납니다. 이게 중요한 것이에요. 나약함을 알면서도. 그뿐만 아닙니다. 여러번 실패했죠. 그의 실패한 과거를 그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의롭지 못함도 알고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이 성경의 인물들을 하나하나 이렇게 열거하면서 강의해 나가는 중에 아브라함 몫에 와서 아브라함의 얘기가 너무 기니까 한시간에 다하질 못해서 하루는 아브라함의 잘한 이야기하고 장점, 하루는 단점을 얘기했어요. 아브라함의 실수만 모조리 골라 가지고 쫘악 얘기했어요. 그리고 집에 돌아갔더니 제 아내가 "여보 여보" 이리오라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그렇게 난도질을 해도 되는 거요?" 그래 내가 "내가 말한 가운데 잘못된 게 있느뇨?" 그러니깐 "아, 그러긴 하지만." 여보, 아브라함 실수가 많아요. 자, 땅을 준다고 했더니 흉년든다고 애굽으로 가고, 아들 준다했더니 좀 기다리다가 좀 맘에 안 들어서 또 첩을 얻었고요. 별 짓 다했지요 뭐. 실수가 보통 많은 게 아니에요. 거듭거듭 엎치락뒤치락. 요샛말로 인간적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세요. 오늘도 말씀을 하세요. "네 아내가 아들을 낳으리라." 이건 놀라운 얘기예요. 그래서 창세기 18장에 보면은요 이 이야기를 할 때, 바로 이거 낳기 전에 일년전입니다. 천사가 와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년에 아들을 낳으리라. 사라가 저쪽 천막 뒤에서 웃었대요. 픽, 하고 '웃기느만. 이거 많이 웃기네. 내가 지금 단산한지가 언젠데 부부생활 그만 둔지가 언젠데 고목 나무 같은 난데 뭘?' 픽하고 웃었다는 거 아닙니까? 저 얘기가 지금 25년 전부터 듣던 얘기거든요. 웃어버렸어요. 천사가 "네 아내가 어찌하여 웃느뇨!" 이러니깐 사라가 겁이 나가지고 "안 웃었습니다. 안 웃어요." 참 하나님 좋은 분입니다. "그래그래. 웃었느니라" 그래요. "네가 웃었느니라." 인정해요. "웃을 테지. 그러나 아들을 낳으리라." 이 마지막 말을 믿어요. 이 사라가 위대함이 이거야. 이렇게 웃었다가도 "내년에 아들을 낳으리라" 믿었어요. 믿고 신방을 다시 꾸린 거예요. 믿는 것만 아니에요. 감성만이 아니에요. 그냥 단순한 기적이 아니에요. 행동으로 옮긴 거예요. 결국은 1년 후에 아들을 낳고 너무 좋아서 여기에 '기쁨이다' '웃음이다' 해서 이름이 '이삭'이에요. 웃었다 그거예요. 웃을만 하죠.
자, 보세요.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 같으면요 "네가 아들을 낳으리라" 그럴 때 웃었거든요. "취소한다" 그러지. 너 왜 웃었냐? 너 믿음 없쟎냐. 그렇지 않았어요. "웃었느니라" 하고는 그리고 "낳으리라" 그랬어요. 이 얼마나 좋은 하나님입니까? 이 하나님을 믿었어요. 마지막 믿음! 이것이 바로 의롭다 함을 얻은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조카 롯을 위해서 전쟁을 치렀어요. 전쟁 끝에 불안이 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이겼지만 저들이 동맹해서 쳐들어오면 속수무책이야.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오늘 본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방패가 됨이니라. 두려워 말라." 또 믿었어요. 또 믿었습니다.
창조신학자이자 영성치료자이기도 한 매튜 팍스(Mathew Fox)라고 하는 분이 오리지널 브래싱(Original Blessing)이라고 하는 책에서 그는 영성 회복의 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첫째는 적극적 사고로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존재임을 인정하라. 여러분, 사람을 낮춰 평가하지 마세요. 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난 존재요. 하나님의 형상이 함께 하는 존재라는 자기 인식을 가져야 되요. 둘째는 자신을 비우라. 내 지식 내 논리, 특별히 자기 논리에서부터 벗어나야돼요. 다 버려요. 지식도 명예도 자식도 기회도 지혜도 없어요. 다 비워버려요. 깨끗하게 비워버려. 특별히 고집스러운 자기 논리로부터 온전히 자유해야 됩니다. 세 번째는 자신의 창조성을 인식하라. 하나님은 아직도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통해서 역사하고 계세요. 창조성을 인정하고요. 그리고 변형된 삶에서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되요. 하나님은 아직도 내가 필요해요. 그 사랑 그 용서 그 인내 그 긍휼 속에 내가 있어요. 하나님께는 아직도 내가 필요합니다. 나는 소중한 존재예요. 이것의 나의 나됨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마틴 루터, 그의 신학은 철저하게 사도 바울의 신학으로부터 옵니다. 사도 바울은 다시 아브라함의 믿음으로부터 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요 중심입니다. 특별히 종교개혁자의 신앙에 중심입니다. 보세요. 분명히 종입니다. 그러나 양자 되어서 아들이 됩니다. 그러면 이제는 아들입니다. 그런 고로 용서받은 죄인이요, 구속받은 의인이올시다. 그걸 믿어야 되는 거예요. 진노의 자녀가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자기정체의식을 분명히 해야 됩니다. 여러분, 삶의 힘은 믿음이요. 물질이 아니고, 지혜입니다. 지혜가 아니고 의입니다. 의가 아니고 의롭다 함을 얻는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제가 미국에 있으면서 밤늦게 텔레비전에 나오는 복음 주의자들의 부흥회 하는 장면을 여러 곳 보았습니다. 복음주의자들이 이 엄청난 사건을 앞에 놓고 하나같이 외치는 메시지의 주제는 이것입니다. God still loves America. 하나님은 지금도 미국을 사랑하신다. 미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주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민족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를 사랑하십니다. 모든 사건 하나 하나를 면밀히 깊이깊이 상고하고 명상해보세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 그 의롭다 하시는 사랑을 내가 받아 드려야 됩니다. 받아들이고 믿고 순종할 때에 엄청난 은혜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여기에 개혁적 신앙이 있습니다.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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