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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인생고(人生苦)의 의미

by 【고동엽】 2022. 10. 14.

욥38:1-7, 42:1-6, 요9:1-12, 히12:7-11

이스라엘 백성들은 망국의 슬픔을 안고, 바벨론에서 고통스러운 포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버리셨는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자기들 안에서 심한 논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이 범죄한 결과라고 예레미야와 에스겔 같은 선지자가 계속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포로민 중에서는 선량하게 살아온 사람, 의롭게 살아온 백성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고난에 대한 문제를 생각할 때, 다양한 해석과 주장이 있었습니다. 죄를 범한 사람이 죄에 대한 형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그 형량이 가벼우냐, 무거우냐만 토론할 것이지 다른 논의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의롭게 사는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는 상당한 토론이 필요했습니다.
욥의 세 친구는 '하나님의 정의와 인간의 고통'을 인과응보라는 차원에서 일률적으로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인생고에는 많은 유형이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취급해서는 안됩니다. 욥이 당한 총체적인 고통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경제적 손실에서 오는 고통이요, 둘째는 자녀들이 죽음으로 인한 고통이요, 셋째는 자신의 육체적 질병으로 인한 고통, 넷째는 아내의 몰이해로 인한 고통, 다섯째는 친구들의 비난과 곤경으로 인한 고통, 여섯째는 '하나님께서도 나를 버리시는가?'하는 영적인 고통이었습니다.
죄인의 고통은 인과응보의 법칙으로 쉽게 생각되지만, '의인의 고통'에 대한 문제는 그렇게 쉽게 설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은, 욥의 고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세 친구와 엘리후와 욥이 토론하는 장면을 보면서, 자신들의 그 많은 문제들을 스스로 풀어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욥에게 질문하시고 욥이 응답하는 장면을 보면서 자신들의 근본적인 고난의 문제를 해결해 나갔을 것입니다(욥38:1-7, 42:1-6).
우리가 인생의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토론이 필요합니다만, 그 모든 토론이 어떤 해답을 시원하게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토론과정을 통해서 각자의 상황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이해하고 터득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한 편의 영화나 연극을 보면서, 한권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고민과 문제의 해답을 찾을 때가 많습니다.
히브리인들은 토론을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끝없는 질문과 거기에 대한 랍비들의 답변이 산더미같이 쌓입니다. 이것이 모여서 지혜문서들이 되고 탈무드나 미쉬나 같은 문서들이 됩니다. 같은 문제이지만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하기도 하고, 반복되는 지루한 토론 속에서도 해답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 있는 포로민들을 위해서 날마다 공연되는 '욥의 이야기'라는 한 편의 드라마로 생각해 봅시다. 수십년, 수백년, 수천년동안 연속으로 앵콜 공연되는 '욥의 이야기'를 통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될 줄 믿습니다.
욥기를 통해서 얻는 교훈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①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정의로우신 분이시며
② 인간은 불완전하고 유한한 존재이기에
③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시초를 인간이 다 알 수 없습니다.
④ 그리고 인간의 고통은 반드시 죄에 대한 형벌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피조성에 근거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고통은 반드시 동반되는 것이고, 그 고통의 정도와 종류와 성격이 다를 뿐입니다. 대부분의 고통은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특별히 의인의 고통은 많은 교육적인 의미가 있고(요9:1-12), 대속적인 효력이 있어서 세상의 모든 병리현상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의인의 고통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능력까지도 발휘하게 됩니다(히12:7-11).
욥이 그렇게도 의로운 사람이고, 훌륭한 신앙인이었지만, 창조주 앞에 서 있는 '불완전하고 유한한' 피조물로서의 욥은 아직도 죄인의 자리에 남아서 티끌을 무릎쓰고 참회하고 있습니다(욥42:6).
여기에서 욥기의 수수께끼는 풀어지게 되는데, '하나님은 하나님이요, 사람은 사람이라'는 교훈입니다('神之 神也, 人之 人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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