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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별 설교〓◐/6월달 설교

산(山)을 옮기며 사는 사람들 (막 9: 14-29 마17:14-20, 눅 9:37-43)

by 고동엽. 2022. 9. 23.

산(山)을 옮기며 사는 사람들  (막 9: 14-29 마17:14-20, 눅 9:37-43)

우리에게 주어진 사건은 예수께서 간질병 들린 아이를 고쳐 주신 일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따르는 중대한 교훈입니다.

  Ⅰ. 산 위(山上)와 산 아래(山下)의 세계를 봅니다.

  이 사건이 있기 직전에 예수께서는 세 제자, 곧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 변화산상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진 영광의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 변화산상에서 내려왔을 때 예수 앞에 벌어져 있던 사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의 모습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께로 나아와 꿇어 엎드려 절하면서 이르기를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여기 있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 앞에 있는 그 아이에게 귀신은 다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리게 했습니다.
  예수께서 그 아이의 아비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비의 대답인즉 어릴 때부터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아이 아버지는 예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막 9:22)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이르시기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고 대꾸하셨습니다.
  이때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곳에 모여든 무리들 앞에서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막 9:25)고 하시며,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셨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귀신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로 하여금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그 아이에게서 나갔습니다. 그때 그 아이가 죽은 것같이 되니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고야 말았다고 하였습니다(막 9:26-27). 그 아이는 그 아비의 외아들이었습니다(눅 9:38).
  실로 영광의 세계와 현실 세계의 대조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변화산상은 영광이 나타났던 곳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산 아래의 세계는 아홉 제자들을 위시한 군중들의 불신앙과 간질병이 든 자의 참상이 보였던 세계였습니다. 예수님의 탄식대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마 17:17)였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불신앙의 세대는 ‘패역’, 곧 ‘거스리는 세대’일 뿐이라고 탄식하였습니다.

  Ⅱ. 불신앙과 패역은 산(山)과 같은 문제의 시대를 말합니다.

  산 아래 모였던 군중들이 모두 떠난 다음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막 9:28)라고 조용히 주님께 물었습니다(마 17:19). 그때 예수님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마 17:20)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르시기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생이 만나고, 겪고 있는 온갖 종류의 인생고(人生苦)를 산에다 비유하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해하고, 불가능한 난제들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 귀신에게 붙잡혀 간질로 고생하고 있던 이 아이가 만난 문제는 그 자신에게도, 아비에게도 뚫거나 넘어갈 수 없는 산더미 같은 큰 문제였습니다. 바로 인생이 만나고, 겪고, 마침내 그것 때문에 죽음을 만나고 마는 온갖 종류의 질병은 인류가 만난 산더미 같은 문제들입니다.
  결코 현대 과학이 인류의 질병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초현대적인 병원 안에는 반드시 영안실이 따라오고 있지 않은가!
  산처럼 무겁고 큰 근심꺼리들은 비단 질병뿐이 아닙니다. 타락한 인류역사는 산위에 산을 더하는 온갖 난제들로 쌓여가고 있습니다. 정치문제, 경제문제, 교육문제, 기아문제 등을 위시하여 날로 심각해져가는 오늘날 세계의 환경오염문제들은 실로 인류가 만난 산이요 산더미입니다.
  오늘 인류가 만난 온갖 종류의 사상문제, 그리고 인종분쟁문제, 사회문제, 군사문제 등은 산이요 산더미입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남북분단문제는 실로 산이요 산더미입니다. 오늘 우리 앞에 나타난 핵문제 역시 실로 산이요 산더미입니다. 이런 것들은 넓은 의미에서의 산입니다.
  가정마다 산 같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노인은 자식들에게 산과 같이 무거운 짐입니다. 경제적인 가난, 실업, 대학진학, 결혼문제, 부부갈등, 재산문제로 일어나는 형제와 부모와 혈족간의 싸움문제… 등등 실로 산이요 산더미 같은 난제들이 쌓여 있습니다.
  교회가 겪는 영적인 문제에도 산이 있습니다. 가족의 불신앙이 산과 같습니다. 교회가 받은 선교적 사명도 때로는 산과 같습니다.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라는 주님의 선교명령에 따라오는 온갖 종류의 시험과 핍박과 경제적 부담(연보)이 실로 산이요 산더미 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교회를 도전하는 온갖 종류의 사탄의 시험도 산과 같습니다.

  Ⅲ. 주님은 산을 옮기는 가능의 삶을 알려 주었습니다.

  첫째는, 능하신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귀신을 꾸짖으시니 귀신이 그 아이에게서 나갔다고 하였습니다(마 17:18).
  마가복음 9장 25절에서는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때 귀신이 소리를 지르면서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갔다고 하였습니다(막 9:26). 예수님께서는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고(막 9:27), 그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비에게 도로 돌려 주셨습니다(눅 9:42). 저 부자(父子)에게 있던 산더미 같은 고통의 문제가 주님 말씀 한 마디로 해결나고야 말았습니다. 부자(父子)간에 단절되었던 의사소통이 재개되고, 만남의 정이 회복되었습니다. 능하신 주님의 말씀만이 산을 옮기는 비결입니다.

  둘째는,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마 17:19)라고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마 17:20)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르시기를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옮긴다’는 말은 ‘분쇄해 버리는 것’, ‘산을 두 쪽으로 나누어 버리는 것’, ‘산의 위치를 옮겨 버리는 것’ 등을 뜻합니다. 물론 주님의 이러한 말은 물리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초물리적인 신앙의 힘을 말합니다.
  ‘한 겨자씨만큼 한 믿음’이란 생명력이 있는 믿음을 뜻합니다. 운동하는 믿음을 뜻합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주님 자신과 그의 말씀을 의지하는 믿음을 뜻합니다.
  그 병든 아이의 아버지는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막 9:22)라고 소원하였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고 하였습니다. 그때 그 아비는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라고 주님의 절대 가능을 고백하였습니다. 물론 그는 그의 믿음대로 귀신에게 잃어 버렸던, 빼앗겨 버렸던 아들, 놓쳐 버렸던 아들을 도로 받았습니다. 믿을 때 가능을 체험하였습니다. 건강한 아들, 깨끗해진 아들을 도로 받았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간 아비는 결코 불가능이 아닌, 가능의 축복을 체험하였습니다. 믿음이 태산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비결이었습니다.

  셋째는, 기도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의 두 번째 질문입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막 9:28)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고 하셨습니다.
  바로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힘을 받는 영적 작용의 첩경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 7:7).
  기도는 산을 옮기는 비결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 자신이 우리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신실한 약속입니다. 그래서 태산 같은 문제 앞에서 주님께 무릎 꿇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는 이 세상에서 기적을 체험하는 은총을 입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경향 34년의 교회 운동은 실로 ‘산’을 옮기면서 걸어온 사람들의 역사(役事)입니다. 적어도 저와 여러분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비유적 표현인 ‘산을 옮기는 역사’에 대하여 많은 체험적 은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가 옮긴 산더미 같은 문제 가운데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이 ‘예배하는 집’, 곧 교회당 문제였습니다. 을지로에서의 셋방살이가 산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더 넓고 교통도 편리한 서울역전 동자동에 있는 기독교 여자 절제 회관으로 우리를 옮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한강을 넘어 여의도로 예배처소를 옮기는, 실로 산을 쪼개어 길을 내고 걷는 영적 체험을 하였습니다.
  여의도 주부생활 빌딩에서의 셋방살이 또한 우리에게는 산과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정빌딩 일부를 우리 소유로 사들여 옮길 수 있는 은총의 역사를 입혀 주셨습니다.
  신림9동으로 옮기려던 새 성전 역사를 주님은 가로막으셨습니다. 그리고 여기 강서로 우리를 옮겨 주셨습니다. 실로 이곳 강서에서의 새 성전 공사는 우리 적은 무리들에게 산이요, 높은 산더미 같이 두려워 보이고 무거워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의 결과로 축복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고려신학교 운동, 세계선교 운동은 산을 옮기며 살아가는 경향인들이 받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금번에 교육관을 위하여 200억의 문제를 제시하셨습니다. 제가 확신하기로는, 여러분에게 있는 말씀과 말씀신앙과 기도가 능히 이 산을 옮기는 축복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실 줄을 믿습니다.
  경향인들은 산을 옮기며 살아가는 역군들입니다. 좁게는 자신과 가정에 일어나는 산 같은 문제를 위시하여 세계를 받은 경향공동체로서의 복음운동의 사명을, 주님의 말씀에 의지(믿음)하여 기도함으로 산을 옮기고 살아가는 용사들입니다.
  주님이 명하신 이 산을 옮기고, 저 산을 옮기면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시온의 성산(聖山)에 올라가 승리의 개가를 부릅시다! 실로 경향인들은 산을 옮기면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 아 멘 -

출처/석원태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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