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여호수아 5:10-12)

by 【고동엽】 2022. 9. 22.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여호수아 5:10-12)

태머레인(1336-1405)이라는 중세 근동의 정복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 많은 군대를 양성하였습니다. 그는 수없이 많은 전쟁을 치렀는데, 한번은 전쟁에서 패하고 그의 군대가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태머레인은 급히 피신할 수밖에 없었고, 적들은 혈안이 되어 그를 찾아다녔습니다. 은신처에 숨어 겨우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태머레인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는 나무 그늘 아래 누워 죽음만을 생각하며 하루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아주 작은 벌레들이 나무 줄기 아래로 기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개미였습니다. 개미들은 큰 나무 아래있는 작은 구멍 속으로 열심히 먹을 것을 날랐습니다. 태머레인은 신기한 듯 개미들의 행렬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한 개미가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큰 먹이를 나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른 개미들도 큰 먹이감을 나르고 있었지만, 그 개미가 나르려고 하는 것은 도저히 한 마리의 힘으로 나르기 힘들어 보일 정도로 컸습니다. 결국 그 개미는 먹이를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먹이를 물고 나무 줄기를 오르려고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태머레인 그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개미는 수없이 반복해서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그는 개미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 먹이를 들어 구멍 입구까지 들어줄까도 생각했지만 그 끈질긴 개미가 어떻게 할지 좀 더 두고 보기로 했습니다. 서른 번이나 실패한 개미는 결국 서른 한 번째 시도에서 먹이를 놓치지 않고 한 발을 내딛었습니다. 위태롭게 보였지만 그것은 분명 성공으로 가는 첫 걸음이었습니다. 그 한 발을 내딛기 위해 그 개미는 그렇게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던 개미는 결국 그 거친 길을 헤쳐내고 개미 구멍 입구에 다다랐습니다. 그리고 그 큰 먹이를 자기 집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태머레인은 이미 구멍 속으로 들어가 버린 개미를 향해 말했습니다. “정말 잘했어.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것을 가르쳐 주어 고맙다. 그래 나는 꼭 해내고 말 것이다. 최소한 네가 실패했던 만큼은 도전해 볼 것이다. 하고 또 하고 그렇게 너처럼 끝까지 해내고 말 것이다.”

우리 가운데 혹시 삶을 실패하여 절망 중에 이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이들이 있습니까? 인생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어서, 실패와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우리 눈 앞에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오늘 개미가 주는 교훈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도전하고 또 도전해서, 결국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새로운 시대를 앞두고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고난의 세월을 겪고 난 후, 드디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기적을 경험하다가, 드디어 가나안 땅에 첫발을 내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일단 길갈이라 하는 곳에 진을 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직면한 현실은 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광야에서보다 상황은 더욱 열악해졌습니다. 먼저 그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올 때, 모세는 이미 세상을 떠나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가나안을 정복해야 하는 엄청난 일을 앞두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공백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새롭게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있었지만, 모세에 비하면 여러모로 부족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광야 생활로 지칠대로 지쳐 있었기 때문에, 가나안의 강력한 도시 국가들의 잘 훈련된 군사들과 맞서 싸우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놀라운 기적가운데 요단강을 건넜다는 소식을 접한 가나안 백성들이 두려워했다고는 하지만(수 5:1), 실제 전투가 벌어졌을 때, 어떤 결과가 돌아올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나안의 수많은 적들과 견고한 성을 바라보며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지 않고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수 5:2)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온 ‘출애굽 세대’가 아니라, 광야에서 태어난 ‘광야 세대’였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광야를 떠돌아 다니느라 할례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가나안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상황은 가나안의 수많은 적들과 대치하고 있는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할례를 행하면 남자들이 3~4일 동안 움직일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언제 가나안의 대적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서 전쟁에 나갈 만한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행한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신 것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그 일이 중요한 것일수록,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할례란 남자의 양피를 베는 의식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몸에 표시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 나라에서 소의 뿔에 화인을 찍어서 국가에서 인정하는 소라는 표시를 한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할례는 자기의 몸에 부패한 본성을 잘라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할례를 했다고 인간의 본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할례를 통해 내 안에 부패한 본성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이런 본성을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실 것을 간구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을 빨리 정복하는 것보다, 먼저 이와같은 관계정립을 먼저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에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목숨을 걸고’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겠다는 목숨을 건 결단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무엇인가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분기점이 될 만한 큰 일을 앞두고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의 가정이나 자녀가 큰 일을 앞두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바르게 정립하시기를 바랍니다. 길갈에서 목숨걸고 할례를 행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겠다고 결단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새로운 시대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의 할례 사건은 출애굽 세대와 광야 세대를 구분하는 것이요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우리 교회가 새 성전에 들어간다는 것, 또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새로운 건물로 이사한다고 해서 새로운 시대가 저절로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길갈에 모여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심정으로 다시 한번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살겠다고 새롭게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 의식을 행한 후, 유월절을 지켰습니다(9절). 그것은 하나님이 출애굽 시켜 주신 것과 수없는 고비를 넘기면서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입성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 의식이었습니다.
가나안에서의 첫 번째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의 소산’을 먹었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다가, 이 날로부터 만나가 그치고,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게 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두 번 다시 광야 생활을 하지 않게 하신다는 약속이며, 앞으로는 땅의 양식을 공급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표현이었습니다.
만나를 먹다가, 곡식을 먹게 되었다는 것은 식사 메뉴만 바뀐 것이 아닙니다. 삶의 패턴과 양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 하루 하루 하늘에서 내리던 만나에 의지하지 않고, 농사를 지어 추수한 곡식을 저장해 두고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매일 매일 일용할 양식을 걱정하던 불안한 삶에서 벗어나, 풍요롭고 안정된 삶을 살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만나는 필요한 양 이상을 거둘 수 없었지만, 이제는 능력껏 농사지어 풍성한 수확을 거두면 넉넉하고 여유있게 살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광야에서는 만나가 매일 매일 내리니까, 당연히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고 고백했지만, 한해 동안 농사를 지어 창고에 쌓아놓고 먹다보면 하나님보다 창고에 있는 곡식에 의지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사람은 하루 하루 근근히 먹고 살 때,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부르짖습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많은 돈을 저축해놓고 살다보면 통장만 봐도 마음이 든든해서, 기도를 멀리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부와 명예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돈이 있든 없든, 집이 있든 없든,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물질이 많아진다고 해서 마치 자기 능력으로 잘 사는 줄 알고 교만해지면, 도리어 화를 입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할례 의식을 행한 후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유월절을 지켰던 것입니다.

3. 새로운 시대는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길갈에서의 유월절을 지킨 것은 지난 과거와의 단절이요, 가나안에서 경험하게 될 하나님의 축복을 미리 맛본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과 함께 승리의 축하파티를 여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이렇게 하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동행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즉, 새로운 시대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시대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유월절에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셨는데, 이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길갈에서의 유월절의 의미와 같습니다.
예수께서 유월절에 마련한 최후의 만찬은 십자가 사건 직전에 행해졌습니다. 이는 십자가 사건과 부활이라는 일대 사건을 앞두고, 제자들로 하여금 예전과는 전혀 다른 자세와 각오로 나서게 하려는 예수님의 뜻이었습니다. 유월절 최후의 만찬은 제자들 스스로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또한 이것은 장차 맞이할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유월절 최후의 만찬의 의미는 오늘날 교회의 성찬을 통해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함께 나누며 예수님의 고난을 기념하고, 구원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또한 떡과 포도주가 우리 몸에 들어가 몸에 흡수되는 것처럼, 주님과 함께 사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합니다.
간디가 영국의 압제와 폭력에 저항하는 평화 행진을 조직하고 선두에 섰을 때 영국의 한 라디오 방송 기자가 옆을 따라오며 물었습니다. '당신의 노력은 사실상 성공할 희망이 1%도 안보이는데 어째서 이런 고생스러운 긴 행진을 하십니까?' 간디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습니다. '반드시 성공할 날이 올 겁니다. 진리가 우리 편인데 진리가 졌다는 역사를 보았습니까?'
우리는 길이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세상의 거짓과 미움, 시기와 질투, 그리고 죽음의 세력도 능히 이겨 나가야 하는데,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이처럼 힘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놀라운 진리를 나만 소유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이번 총동원 주일은 바로 그러한 사명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한 분도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강남교회는 얼마 있지 않으면 새 성전으로 이전하게 됩니다. 이제 새로운 화곡동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새 성전으로 옮겨가면서 예배장소가 확대되고, 시설이 현대화되었다는 것에만 만족한다면 그렇게 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길갈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오직 믿음으로만 살겠노라고 결단하였던 것처럼, 우리 모두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전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 주신 사명을 최선을 다해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새로운 시대를 함께 열어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출처/전병금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