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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롬 12:1-2)

by 【고동엽】 2022. 9. 14.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롬 12:1-2)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옛 어른의 글이 있습니다. 죽어도 좋을 만큼 ‘귀한 도를 깨달음’이 여러분들에게 있으십니까?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내가 곧 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말씀하신 길이 바로 도입니다. 도이신 예수님을 믿고 사는 우리들에게 정말 죽어도 좋을 정도로 귀한 도의 깨달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르는 곳에 갈 때 우리는 그곳에 가는 약도를 대개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약도를 따라 길을 찾아갑니다. 약도를 그려주는 사람의 실력에 따라, 그리고 약도대로 찾아가는 사람의 실력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은 대개 목적지를 찾습니다. 저는 이제껏 기껏 약도를 요구해 받아 들고 약도를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가는 사람을 본 적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시라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천국으로, 행복으로, 구원으로, 성공으로 인도하는 약도를 그려 주시는 분이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은 성경 66권을 통하여, 그것을 가지고 설교를 하는 목사의 설교를 통하여 끊임  없이 행복하게 잘 사는 길과 법, 즉 구원의 길과 법을 말씀해 주시지만 우리는 대개 그 길대로 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때문에 주일날 교회도 잘 나오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하고, 십일조도 잘 하고, 힘든 건축헌금도 하지만 정작 중요한 예수님의 길은 믿지 못하고 딴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우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믿어지지가 않아서 다른 사람에게서 몰래 약도를 다시 받아 가지고 그 약도대로 길을 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길은 예수님의 길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는 세상의 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하지만 우리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세상의 길을 세상 사람들과 함께 갑니다. 이때 예수님과 하나님은 그 세상길을 남보다 더 빨리 잘 가게 하는 힘을 얻는 데 이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사는 삶의 결국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길을 잃음입니다. 목적지를 찾지 못함입니다. 구원받지 못함, 천국가지 못함, 행복하지 못함, 성공하지 못함, 잘 살지 못함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깨달은 도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잘 산다는 것과 부자로 산다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예수를 믿으면서 깨달은 매우 중요한 도  중에 하나입니다. 저는 그래서 절대로 잘 산다는 말과 부자로 산다는 것을 혼돈해서 아무렇게나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을 혼돈하여 부자로 사는 것을 잘 사는 것으로 혼돈하지 않고 살려고 나름대로 무진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부를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를 부정하지 않는 것 때문에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오해 받을만한 짓을 하기도 하고 그런 짓을 하게 하는 욕심이 제게도 있습니다. 그것을 다스리는 것이 제일 힘듭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합니다. 마음처럼 잘 살아지지는 않지만 제 진심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소유가치가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치가 높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잘 믿어도 가난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안 믿어도 부자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고 잘 살 수는 없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구원 얻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천국에 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대부분을 한 마디로 하자면 부자가 되는 것을 위하여,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을 위하여 씁니다. 부자가 되기 위하여 쓰는 우리의 힘과 진정으로 잘 살기 위하여 쓰는 힘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잘 사는 사람이 부자가 되면 그 부함까지도 자신을 진정으로 잘 살게 하고 또 남을 잘 살게 하는 선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잘 사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 되면 아무 힘도 없어 보이는 것과 같은 가난함도 자신을 잘 살게 하고 남을 잘 살게 하는 선한 그리고 능력있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 사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부함과 가난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가 없는 정도가 아닙니다. 잘 살지 못하는 사람이 부자가 되면 그 부함이 자신을 점점 더 잘 못할게 하는 능력있는 도구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못살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잘 못사는 사람의 가난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가난 때문에 자신이 못산다고 확신 할 만큼 가난은 저들 삶의 발목을 잡습니다. 저들은 가난 때문에 자신들이 못살고 불행하다고 착각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가난에 있지 않고 잘 살줄 모름에 있는 것입니다.


   존재가치는 존재목적에서만 옵니다. 모든 존재의 가치는 존재 목적에서만 옵니다. 목적대로 존재 할 때만 그 존재는 가치를 갖게 됩니다. 고장 난 시계, 고장 난 마이크는 가치가 없습니다. 목적대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람의 가치는 그의 존재목적에 있습니다. 그 목적대로 존재할 때 있는 것입니다.

   존재의 목적은 존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존재의 목적은 존재로부터 말미암지 않습니다. 존재케 하신 이로부터 말미암습니다. 우리의 존재목적은 우리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은 우리 뜻과 욕심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욕심대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기도가 그래서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미국의 릭 워렌이라는 목사님이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고 하는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를 썼습니다. 제목부터 탁월합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 잘 사는 삶입니다. 정말로 잘 살려면 우리의 삶이 목적에 끌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끌고 있는 것은 목적이 아닙니다. 거기에 우리의 어리석음이 있고 불행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강력하게 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욕심입니다. 세상입니다.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정말 유명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핵심은 ‘이 세대를 본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대를 본 받지 말라는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세상 따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끌려 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목적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니 세상을 따라 사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저들은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일이고, 성공하는 것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틀린 길입니다. 틀린 생각입니다. 그 길을 따라 살면 바보 됩니다. 세상과 세대를 본 받으면 정말 바보 됩니다. 절대로 잘 살 수 없습니다. 절대로 구원 얻을 수 없습니다. 절대로 천국갈 수 없습니다.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는 식을 바꾸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의 뜻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는 식을 바꾸는 것 그것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그것을 ‘변화’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각을 바꿔야만 합니다. 사는 식을 과감하게 바꾸어야만 합니다. 생각 없이 세상 따라 살면 망합니다. 불행하게 됩니다.

   변화란 무엇일까요? 거듭 남이란 무엇일까요? 구체적으로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요? 어떤 변화가 필요한 것일까요?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이제까지 목적으로 삼고 살던 것을 다 도구로 삼아라.’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세상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돈이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뜻과 욕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욕심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목적으로 삼고 살았던 모든 것은 우리의 진정한 목적을 위한 도구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 동안 우리의 목적이었던 세상도 하나님의 뜻 다시 말해서 진정한 우리의 삶의 목적을 위한 도구가 된다면 그 또한 선한 것이 됩니다.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목적을 도구로 삼는 것이 변화이고 거듭남이고 제사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우리 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의 삶의 목적이었던 것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삼는 것이 제사입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목적으로 삼아왔던 것을 제물로 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그와 같은 제사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예배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사야 55장 2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제가 자주 사용하는 예화 하나를 다시 하려고 합니다. 아프리카에는 스프링 폭스라고 하는 산양이 있답니다. 수 천 마리씩 떼를 지어 다니는데 그 양들은 집단으로 달리기를 잘 하는데 벼랑 끝까지 달려 집단으로 떨어져 죽는 일을 종종하는 양이라고 합니다. 학자들이 왜 저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연구하였습니다.


   수 천 마리 씩 떼를 지어 살다보니 뒤에 있는 양은 먹을 풀이 없게 됩니다. 본능적으로 앞으로 나가야만 풀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지만 워낙 앞을 가로막고 있는 양이 많아 쉽게 앞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려고 앞에 있는 양을 자꾸 밀게 됩니다. 앞의 양은 뒤에 있는 양이 자꾸 미니까 걸음이 조금씩 빨라지다가 나중에는 뛰게 됩니다. 양은 연약한 동물이기 때문에 집단으로 몰려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집단에서 이탈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앞의 양이 뛰게 되면 뒤의 양도 뜁니다. 집단에서 이탈하지 않으려는 본능 때문입니다. 앞의 양은 뒤의 양이 미니까 뛰고 뒤의 양은 앞의 양이 뛰니까 덩달아 뛰게 됩니다. 벼랑에 다 달아도 걸음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앞의 양은 뒤의 양에게 밀려 떨어지고 뒤의 양은 그냥 앞의 양을 따라 떨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청년 때 이와 같은 내용의 글을 어느 책에서 읽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우리 인간도 그 양보다 낫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정말 다 양 같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왜 뛰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세상 사람들이 뛰니까 따라 뜁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왠지 낙오되면 죽을 것만 같은 믿음 없는 불안 때문에 죽어라고 따라 뜁니다. 세상을 본 받으려고, 세대를 본 받으려고, 다시 말해서 세상과 세대에서 분리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따라 뛰어야 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본을 받아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이 아닙니다. 세대가 아닙니다. 잠시 정신없이 살던 삶을 잠시 내려놓고 생의 목적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잘 사는 것과 부자로 사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세대를 본 받으면 아마 부자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어도 행복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게 잘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잘 사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잘 사는 사람이 되려면 목적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우리의 뜻과 욕심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목적이 이끌지 않고 욕심이 우리의 삶을 이끌면 그 욕심은 죄를 잉태하게 되고 그 죄는 결국 장성하여 우리를 벼랑 끝 사망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믿음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니다. 하나님으로 우리의 목적을 삼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삶의 길과 식을 삼으십니다.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듯 우리가 이제껏 삶의 목적을 삼고 왔던 그 모든 것들을 진정한 삶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잡으십시다. 그것의 피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삶을 사십니다. 주일마다 인간적이고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지 마시고 진정 하나님이 받으심직한 영적 예배를 드리며 사십시다.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애지중지하며 살아왔던 우리의 이삭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 드리십시다. 우리의 미래처럼 귀히 여기던 물질, 세상적인 성공과 권력 지위를 더 이상 목적으로 품고 살지 말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새로운 삶의 목적을 위한 좋은 도구로 사용하며 남은 여생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한 천국의 삶, 구원의 삶을 이 땅에서부터 누리고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김동호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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